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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자장면과 좌충우돌 '티스토리' 이주記


'자장면'과 좌충우돌

 '티스토리' 이주記

우리가 먹는 자장면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번쯤 이맛을 당기는 음식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자장면을 한번쯤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별난'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다들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어 본 것과 같은 희귀한 사람일 것이다.


그 자장면의 역사도 만만치 않아서 자장면이 우리나라에 상륙한지가 벌써 100년이 되었고

인천의 자유공원 밑에 자리한 북성동의 중국의 거리에는 화교들이 우리나라에 자리잡은 후에 그들의 삶의 밑천이 된 이 자장면을 두고

지자체와 함게 명물을 만들며 '자장면축제'를 열어가고 있다.

필자도 한때 그곳에서 자장면이나 그밖의 중국식 움식들을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중국집의 어떤 음식들 보다 오랜동안 맛의 여운을 풍기는게 자장면이다.







우리가 배고팟던 시절 싸게 먹을 수 있었던 이 음식은 세월의 변천사에 걸맞게 우리입맛에 맞추어 '진화'를 거듭하며

마침내 우리들 입맛을 정복하여 중국집 보다 더 중국집다운 한국식 '중국음식'으로 자리잡아서

중국집 하면 '자장면'...이 떠 오를만큼 중국집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이 자장면도 처음부터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며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랐고

마침내 '요리' 취급을 받지 못하던 자장면이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다양한 모습의 자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그 종류는 헤아리지 못할 정도며 맛도 다양하나 대부분 처음 길들여진 맛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갖은야채가 돼지고기(비계덩어리?)와 춘장과 함께 어우러진 자장면의 소스는 또 다른 음식돠도 잘 어울리는데

밥에 넣으면 자장밥이 되고 면에 넣으면 자장면이되며 유사한 재료에 어덯게 비벼도 맛있는 소스가 또 자장면의 소슨데

한때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도 불렀으나 '자장면'으로 고쳐 부른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짜장면'에 더 익숙하여 자장면이라는 명칭이 더 부담스럽기도 하다.    


'티스토리 이주記'를 서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자장면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것 같다.

아직 식전이라 이 자장면의 이미지를 보고 있노라니 절로 침을 삼키게 되었는데

꼭 자장면 속에 무슨 중독성있는 물질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나는 얼마전에...그러니까 거의 한달전 쯤 나름대로 '열쉬미' 그리고 있던 블로그를 잠시 중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열심히 글을 쓴 결과 '베스트블로거기자'라는 명예를 얻고 얼마간 원고료를 챙기기도 하고 조회수는 급증하여

댓글을 일일이 달아야 하나 말아야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울러 댓글에 대해서 일일이 대답을 할 형편이 되지 못하면 차리리 쓰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도 하고 있었고

과연 조회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쓸데없는(?) 작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처지의 블로거들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는데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조회수란 별 것 아니었고 내가 '블로거뉴스'에 기고한 '뉴스'는 '베스트'에 등재되는 일이

등재되지 않는 일 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일부 블로거들은 이 '베스트'에 대해서 불만을 늘어 놓았으며 블로거 개인이 한번즘 느꼈을 법한 불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이나 잠재된 불만들은 그저 '불만'이었을 뿐, 현재 '블로거'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진 못했다.


이른바 블로거뉴스의 '편집권'에 대한 거센 저항이라고 할까? 아니면 한계에 부닥친 고뇌라고 할까?

나는 이 문제를 두고 여러날 고심을 하고 거의 블로그를 들여다 보지 않으며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기실 '오픈에디터'제도란, 유명무실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편집권의 아주작은 일부를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데

마치 '추천'을 받지 못하면 기사의 가치가 전혀없는 것 같은 반응과 아울러 쳐다볼 만한 가치도 없는 기사쯤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 기회를 통해서 몇마디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블로거들이 생산하는 '기사'를 미디어다음의 관계자들이 전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일까?

나는 그런 오해는 있을 수 없다고 보여진다. 내가 아는 그들은 편집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더 예리한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에 그들이 '보수적 관점'의 균형감각을 지니지 못하고 필요이상의 '진보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면

'문화일보'가 겪는 '황색언론'의 빌미를 뒤집어 쓰고 벌써부터 거리로 내 몰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들의 인기에만 영합하고 자사의 판매고에 시달린 편집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문화일보의 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거들의 고민은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형편에 따라서 상향조정되기를 바란다.

'맥그로우'의 이론에 따른 욕구의 단계에 따르면 현재 블로거들이 겪는 고민은 상당히 초보적이며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취욕구'는 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처음에 재미로 시작한 '블로그'가 어느새 대중들 속에 파묻혀 인기절정의 '불로거'가 되며 또 '뉴스'가 되어서

대중들로 부터 사랑을 받을 때 앞선 블로거는 고독했고 나 또한 이게 뭔 짓인가?하는 딜레머에 빠졌었다.

특정 블로거가 콘텐츠를 설정하고 기사를 쓰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그 노력의 결실이 너무도 빈약하여 계속 인기에만 영합해야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2%가 부족했다.


돈 때문이었다.



 



돈 때문에 글을 쓴 것만은 아니지만 어느덧 '비용'이라는 한계에 부닥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기사의 '질'을 높여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블로거가 만드는 콘텐츠(UCC)에 '올인'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블로거가 만드는 뉴스는 철저히 'Self-Directed Learning자기주도 학습'과 더불어

기존의 매체가 가지는 '콘텐츠 제작시스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철저히 '외롭고 고독한' 작업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미디어다음의 '블로거뉴스'에 함부로 '투정'을 부릴 수 없는 것이었다.


미디어다음이 블로거들에게 '동기부여'한 원고료는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동기부여를 받는 블로거들의 수는 극히 제한 되어있다.

가능하다면 '등용문'의 넓이와 깊이를 확대하여 더 많은 블로거들이 이 문을 나설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조삼모사'와 다르바 없는 조치로 보여지고 블로거 개인의 자질을 드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곶감 빼먹듯 미디어다음의 처마밑에 달린 그 단맛의 유혹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한

자연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는 '길 들여진 동물'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판단이다. 

     

그런 가운데 내가 눈을 돌린것은 앞선 블로거들의 조언이었고

그들의 조언에 따르면 블로거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규모의  적정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굳이 블로깅을 하지 않고서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금상첨화일테지만

앞서 지적한바 사람들의 '성취욕구'는 거의 반드시 단계를 거슬러 올라감으로 상향욕구를 채워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과감히 'Tistory' 문을 두드리며 이주를 결심했고

그 이주는 '두집살림'과 같은 힘든 것이기도 했지만 언제인가  블로거들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먼저 맞는 매가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어서, 나는 티스토리에 익숙한 특정 블로거를 괴롭히며 이사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사는 쉽지 않았다.

평생 초가삼간에 살던 내가 '삐까번쩍'한 고급아파트에 발을 들여 놓은 것 처럼 우선 티스토리의 대문이 나를 질리게 했고

초가삼간에서 볼 수 없었던 각종 시설들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만큼 나를 긴장하게 했다.

나는 여러날을 두고 새로 이사갈 집에 가지고 갈 짐을 챙기고 있었고

새집에 어울릴 만한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다.


마치 낡은 살림들을 처분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제법 오랜시간동안 고심하며 정리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짐을 다 옮긴것 같은 새 집은 왠지 내게 익숙하지 않아서 잠을 빠리 청하지 못하고 밤을 새는 일이 잦았다.

크게 새롭지도 않았지만 촌부의 눈에 비친 티스토리는

이를테면 양변기에 달린 '비데'를 잘 작동하지 못하여 벌이는 것과 같은 헤프닝이 일어났고

집들이를 해야 겠는데 사람들이 이곳의 위치를 잘 몰라서 찾아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이런 현상은 나와 동년배에서 이루어지는 헤프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얼마나 창피한지...

 젊은세대들이 너무도 편해하는 이 시설을 두고 익숙하지 못한 내 모습이 꼭 '오리궁뎅이'를 닮아 있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뒤뚱거리며 내가 티스토리에 정착하여 먼지를 털고 걸레로 방을 훔치며 거울을 봤을 때

어느덧 티스토리가 내집임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의 다음블로그에서 취할 수 없는 '에드센스'의 '광고수익'이

블로그뉴스를 생산하고 있는 나의 '관리비'며 '종부세'며 '품위유지비'등을 책임져 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다음'으로서는 자사의 블로거가 다른 '포털사이트'로 이주해 가는 것에 대해서 얼마간 '손해'가 따르겠지만,

'티스토리'또한 미디어다음과 무관하지 않아서 나의 이주에 대해서 '시큰둥'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처음 티스토리를 만났을 때,

 나는, 내가 왜 티스토리로 이사를 가야 되는지 발버둥을 치며 앙탈을 부리며 정든 '다음블로그'의 기둥을 붙들고 있었다.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정든 고향땅을 등지고 먼길을 떠나는 것과 같은 쓸쓸함이 나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장면이 이 땅에 들어온지 100년이 되었다.

처음 중국에서 건너 온 화교들이 외진 땅 인천의 북성동쯤에서 만들기 시작한 자장면은 그 동네 사람들이 아니면 먹어보지 못했다.

다행이도 그 지역은 인천항만과 가까운 거리였고 부두에 종사하는 하역인부들과 잦은 교역으로 이 지역이 널리 알려졌을 것이며

그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자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주방의 일을 자처하고

그 노하우를 어깨 너머로 전수 받았을 즈음, 이 땅에 새로운 음식문화의 콘텐츠인 '자장면'이 탄생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블로그뉴스'에 기사를 송고한지는 '블로그2.0'이 시작되고 부터다.

그러니까 한 6개월이나 채 했을까?...아직 만1년의 세월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애송이'에 불과 하다.

그 동안에 블로그2.0은 눈부신 성장을 했고 나도 덩달아 그 성장에 힘입어 작은 전리품을 챙겼지만,

내가 본 '블로거기자'들의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자장면이 국민대중의 사랑을 받고 우리의 음식으로 자리잡은 역사가 100년이다.

물론 그때는 오늘날과 같은 매체가 없었던 아나로그 시대였다.

그러나 너무도 조급하여 블로거들이 준비를 소홀히하고 성급히 '결실'을 기대하면

'편집자'나 '블로거기자' 모두가 불편해지며 '블로거뉴스'는 도태를 거듭할 뿐이다.


한 걸음만 더 늦추어 가자.

자장면이 나오기 전에 단무지를 한입 먼저 베어 먹는 것 처럼 말이다.      

       



 베스트블로거기자Boramirang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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