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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신의 얼굴이라 불리는 빵과 안데스-그곳에 다시 서고 싶다

 

신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빵은 모든 식탁에 놓여 있는 게 아니다.

 

    서기 2021년 12월 7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흐리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다가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는 멈추었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잔뜩 찌푸리고 있던 하늘에 환한 불이 켜지며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시내 곳곳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알베리 디 나딸레(Alberi di Natal. 성탄 트리)가 시내 곳곳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연중 17일의 공휴일(2021년)이 있는데, 그중 성모무염잉태축일(Immacolata Concezione_불멸의 임신)이 내일로 다가온 것이다. 종교에 따라 여러 형태의 불가사의가 존재하는데 지금은 방학(?) 중이지만 나 또한 한 때 기독교에 심취한 바 있다. 바이블을 통독하고 기도굴에 오래 머무는 등 당시만 해도 매우 신비주의적인 신앙이 나를 지배했던 시기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 저녁부터 이 도시의 어둠을 밝히고 있는 성탄 트리는 전혀 낯설지 않으며, 오히려 이맘때만 되면 다른 아이들처럼 괜히 좋아했다. 그때 무슨 깊은 뜻을 헤아려 좋아한 게 아니었다. 12월이 오시면 전에 못 보던 알록달록한 불빛과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가 그냥 좋았던 시기이다. 오늘 저녁도 별로 다르지 않다. 먼 나라에 와 있는 동안 이맘때 점등되는 성탄트리가 너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지난 여정에 이어 남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생애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하니와 나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쎄로 뽀쵸코를 등반하면서 점점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초행길의 이 산에 오를 때 내 손에 들린 건 묵직한 카메라 장비가 전부였다. 그녀 또한 스틱 한 자루에 의지하며 무작정 산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발바닥 아래는 작은 돌멩이들이 구슬처럼 미끄덩 거렸으며, 풀은 말랐고 선인장이나 용설란 등 이 산중의 수목들은 점점 수분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났던 전혀 다른 풍경들이 오솔길 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다. 지난 여정에서 안데스 비꾸냐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일면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들아 상이 차려졌다


 

 

그녀가 태어난 장소는 이곳 산티아고와 가까운 안데스가 아니라 칠레 비꾸냐(La Vicuña)에서 1889년 4월 7일에 태어났으며, 1957년 향년 68세를 일기(췌장암)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부모는 후안 제로니모 고도이 뷔 라누 에바와 페드로닐라 알까야가 로하스(Juan Jerónimo Godoy Villanueva e di Petronila Alcayaga Rojas)였다. 그녀는 시인이자 교육자였으며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뿌에르또 몬뜨에서 가까운 테무코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걸출한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미스뜨랄이 194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네루다는 197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아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가 파타고니아 여행을 끝마치고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온 후 산티아고의 네루다 박물관 라 챠스코나(La Chascona)를 방문하게 된 이유도 그녀를 기념하기 위함이랄까..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라 세레나(La Serena)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가까운 비꾸냐에서 살았던 그녀의 나이 3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렸다. 그래서 매우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녀의 시적 재능을 일깨우기 위한 조치라는 믿기 힘든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11살이 되던 해 그녀가 다니던 여자 학교에서 친구들의 교재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으며, 그녀의 언니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았으며 언니는 선생님이었다. 

 

 

언니 에밀리나(Emelina)는 그녀에게 성경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 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람들은 그녀의 신비주의적인 작품이 그로부터 발현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녀의 작품 <예술가의 십계명>의 첫째 계명인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이란 표현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녀는 1914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죽음의 소네트>라는 시로 입상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죽음의 소네뜨..

 

 

그녀가 <죽음의 소네뜨>를 쓴 배경에는 그녀의 첫사랑과 무관하지 않았다. 꽤 오랫 시간 동안 어설프게 번역(역자 주)한 노래를 통해 그녀의 아픔을 헤아려 봤다. 누군들 죽음의 소네트를 부르고 싶었을까.. 그녀는 1906년에 철도 직원인 로미오 우레타 카바잘(Romeo Ureta Carvajal)을 만났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1909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지난 여정에서 길게 끼적거린 죽음의 소네트에 당신의 절망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당신의 의지와 의사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시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전혀 남다른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첫사랑에 실패한 후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는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며 아이들을 사랑했다. 천진난만함의 대명사 아이들..

 

 

그녀는 죽음의 소네트를 노래하면서부터 삶과 죽음.. 희로애락 등의 인생사를 터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는 겨우 3살이었던 그녀 곁을 떠나고 다시 첫사랑마저 당신 곁을 떠나면서 하늘은 그녀에게 또 다른 선물을 예비하고 있었을까.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쎄로 뽀초코에 오르는 동안 전혀 낯선 풍경을 만나며 그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떠올린 두 생각은 마푸체 인디오들의 호연지기와 함께 안데스 깊은 곳으로 스며든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사유..

 


 

 

우리가 파타고니아 여행을 하는 동안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는 안데스가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다. 먼발치에서도 보이고 어떤 때는 안데스의 품 안 깊숙이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치고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다시 안데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쎄로 뽀초코에 오르며 당신의 품에 안기는 것.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나 아이들을 향한 박애정신은 투철했다. 아마도 당신이 못다 이룬 꿈이 아이들로부터 발현되었을까.. 그녀의 작품 <집>에서 그녀는 이렇게 노래했다.

 

 

LA CASA(집)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

 

La mesa, hijo, está tendida(아들아, 상이 차려졌다)

en blancura quieta de nata,(크림의 부드러운 흰색과 함께)

y en cuatro muros azulea,(그리고 푸른 네개의 벽)

dando relumbres, la cerámica.(반짝이는 도자기)

Ésta es la sal, éste el aceite(이것은 소금이고 올리브유..)

y al centro el Pan que casi habla.(가운데는 빵이 먹음직 해)

 

 

Oro más lindo que oro del Pan(금 보다 더 곱고 금 같은 빵)

no está ni en fruta ni en retama,(금잔화도 없고 과일도 없지만)

y da su olor de espiga y horno(그리고 오븐에서 풍기는 밀 냄새)

una dicha que nunca sacia.(끝 없는 기쁨을 준다)

Lo partimos, hijito, juntos,(귀여운 아가야 우리는 빵을 쪼갠다)

con dedos duros y palma blanda,(굳은 손가락과 부드러운 손으로)

y tú lo miras asombrado(네가 놀라운 눈으로 보고있는 동안)

de tierra negra que da flor blanca.(검은 땅이 흰 꽃을 피워내지)

 

 

Baja la mano de comer,(먹는 손을 내려놓거라)

que tu madre también la baja.(네 엄마도 손을 내려놓는단다)

Los trigos, hijo, son del aire,(아들아, 밀은 공기로 만들어진 것이고)

y son del sol y de la azada;(볕과 괭이로부터 온 것이란다)

pero este Pan «cara de Dios»(*)(그러나 신의 얼굴이라 불리우는 이 빵은)

no llega a mesas de las casas.(모든 식탁에 오지않는단다)

Y si otros niños no lo tienen,(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가지지 못했다면)

mejor, mi hijo, no lo tocaras,(아들아, 그걸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y no tomarlo mejor sería(그것을 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con mano y mano avergonzadas.(부끄러운 손에서 손으로)

 

 

Hijo, el Hambre, cara de mueca,(아들아 굶주림은 찌푸린 얼굴로)

en remolino gira las parvas,(타작하지 않은 밀을 휩감으며 회오리친다)

y se buscan y no se encuentran(그들은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할 것이다)

el Pan y el hambre corcovada.(그리고 빵과 곱사등이의 배고픔)

Para que lo halle, si ahora entra,(그래서 당장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금 들어오세요)

el Pan dejemos hasta mañana;(빵은 내일까지 먹지말고 놔 두세요)

el fuego ardiendo marque la puerta,(타오르는 불은 문에 표시된다)

que el indio quechua nunca cerraba,(케추아 인디오는 문을 닫는 법이 없다)

¡y miremos comer al Hambre,(먹는 걸 지켜보자)

para dormir con cuerpo y alma!(굶주린 몸과 영혼이 잠들 때까지)


 

 

그녀의 작품을 번역(역자 주) 하는 동안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작품 속의 시어들 중에서 '신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빵'이 눈에 띈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시 <예술가의 십계명> 중에 첫째 계명에서 언급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다시 언급된다. 빵과 아름다움..

 

 

그녀의 작품 <죽음의 소네트>가 칠레의 백일장에서 큰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녀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쓴 시어들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잘 정제된 것들이며, 당신의 노래에 하늘의 뜻을 담아내고 있었다. 인간의 육신이 빵으로부터 지탱된다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영혼은 하늘로부터 비롯된 것이랄까..

 

 

그녀는 이렇게 노래했다.

 

"신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빵은 모든 식탁에 놓여 있는 게 아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녀가 <집>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가슴 깊이 다가온다. 아기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말이 좋아 말구유이지 더 이상 낮아질 곳 없는 곳이 당신의 출생지였던 것이다. 성탄절에 만나는 당신의 출생지는 화려하게 포장된 지 꽤 오래됐다. 그리하여 겸손을 배울 기회 조차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세상에는 아직 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평생을 혼자 산 한 여성이 어떻게 어머니들만 알 수 있는 모성을 알게 되었을까.. 그녀는 세상의 아들과 딸에게 묻는다. 곧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탄절을 알리는 등불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혼을 불어넣었던 안데스의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아들아 상이 차려졌다!"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Cerro Pochoco, Santiago CILE
Il 07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