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일까...!
망중한을 틈타 사진첩을 열어보니 그곳에 산티아고의 베가 중앙시장 풍경이 눈길을 끈다. 100년도 더 된 이 시장은 우리 교민들이 밀집해 살고있는 '빠뜨로나또'와 길 하나 사이에 위치해 있는 곳.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투어를 끝내고 이곳에 머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칠레에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장기 비자(템포라리오) 절차를 마치고 템포라리오를 획득했다. 획득했었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투어를 통해 인간이 살만한 땅이 그곳에 있었고, 가능하다면 청정 지역에 머리를 뉘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운명은 참 얄궂은 것.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인간의 근시안은 우리를 귀국 시키면서 전혀 뜻 밖의 이탈리아행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산티아고에는 우리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친구도 있고 지인도 살고 있으나, 무엇 보다 이곳엔 우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추억이 베가시장의 신선한 과일처럼 알알이 영글어 있는 곳. 사진첩 속에는 새콤달콤 알록달록한 추억들이 가득하다. 위키백과를 열어보니 지구반대편 산티아고는 다른 곳과 달리 엉성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그러나 낮익은 풍경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 다시 가 보고싶다.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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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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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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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 남위 33° 26′ 16″ 서경 70° 39′ 01″좌표: 남위 33° 26′ 16″ 서경 70° 39′ 01″ | ||||
행정 | |||||
나라 | 칠레 | ||||
지역 | 산티아고 현 | ||||
행정구역 | 산티아고 수도주 | ||||
인구 | |||||
인구 | 6,027,690 명 (2012년) | ||||
인구밀도 | 8,464 명/km2 |
산티아고 데 칠레(스페인어: Santiago de Chile, 문화어: 싼디아고 데 칠레)는 칠레의 수도이다. 간단히 줄여서 산티아고(Santiag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5,278,044명이며 중부 계곡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1962년 월드컵 대회가 열린 4개 도시 중 하나이다. 근교를 포함한 도시 지역의 인구는 580만 명으로 세계 48위이며, 남미 유수의 세계 도시이다. 1541년에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원래 명칭은 신 엑스트레마두라의 산티아고(Santiago de la Nueva Extremadura)였다.
역사[편집]
기원과 재단[편집]
몇몇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산티아고 분지에 처음으로 인간 무리가 정착한 시기는 기원전 제10천년기이다. 이 무리는 주로수렵-채집형 유목민으로,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은 기간 동안 구아나코를 찾아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동하였다. 800년 경 마포초(스페인어: Mapocho) 강을 따라 농경 사회가 형성되면서 최초의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주로 옥수수, 감자, 콩을 경작하고 낙타과(라마속과 비쿠냐속) 짐승을 길들였다.
식민지 시대[편집]
산티아고는 1541년 2월 12일에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 (Pedro de Valdivia)에 의해 산티아고 데 콤포 누에바 엑스트레마두라(Santiago de Nueva Extremadura) 도시로 건설되었다. 기공식은 옐렌 일(Huelén Hill, 현재 산타 루치아 일 Santa Lucía Hill)에서 열렸다. 발디비아가 여기에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온화한 기후와 중앙을 횡단하는 마포쵸 강이 마푸체 인의 방어선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건축물은 칠레 중부에 거주하고 있던 인디오의 부족 중 하나인 피쿤체 족 사람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마포쵸 강 남부에 있는 습지는 물이 뽑히고, 알라메다(Alameda, 현재 아베니다 알라메다 리베르타도르 베르나르도 오이힝스 Avenida Alameda Libertador Bernardo O'Higgins)는 산책로 바뀌었다.
독립 후[편집]
1810년에서 1818년에 일어난 칠레 독립 전쟁의 결과, 1818년에 베르나르 오이긴스, 호세 데 산 마르틴의 활약으로 칠레가 해방되면 서방의 장점 서부였던 마이푸 전투에서 약간의 피해를 받았지만 산티아고 공식적으로 칠레 공화국의 수도로 지명되었다.
태평양 전쟁에 승리한 1880년대는 페루, 볼리비아에서 합병한 북부 칠레에서 질산염이 생성되고 나라가 번영한 것으로, 수도 산티아고도 발전했다. 1930년대에는 산티아고의 근대화가 시작, 칠레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인구도 증가했다. 1985년에 지진이 발생, 센터의 역사적인 건물이 파괴되었다. 1990년에는 국회의사당 약 120km 떨어진 발파라이소로 이전했다.
19 세기 도시[편집]
보수적 공화국 동안 다양한 칠레의 대학과 박물관이 타 정상 등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하수 처리를 위해 도시를 교차 채널이 하수구에 방법을 제공 사라, 가스, 물, 거리 조명에 대한 첫 번째 네트워크가 건설되었고, 1851 년에 최초의 전신 시스템은 발파로 설립되었습니다.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1863년 12월 8일에 회사의 교회 화재로 죽었다.
산티아고 델 센테 나리오[편집]
새로운 세기의 도래와 함께, 도시는 산업 변화의 강력한 개발에 대한 다양한 관련 경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국가의 경제의 중심이었다 발파라이소 천천히 자본의 비용으로 명성을 잃게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1895 년, 국내 제조업의 75 %는 자본과 항구에서 만 28 %에, 그리고 1910, 주요 은행과 상점은 발파를 떠나, 도심의 거리에서 설정되었다.
인구 폭발[편집]
1920대 말, 인구 조사는 전체 인구의 13.6 %에 해당하는 507,296명이 산티아고 주민이라고 추정했다. 이 3.3 %, 거의 3배 국가 대표의 연간 성장률 즉, 1907 년 인구 조사에서 52.47 %의 증가를 표현. 남쪽에서 상경한 농부들은은 주로 건설 중인 공장과 철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주변부가 아닌 도시 중심에서만 일어났다.
큰 산티아고[편집]
다음 수십 년간, 산티아고는 성장을 계속했다. 1940년, 도시는 1952년이 그림은 1,350,409 주민 상승과 1960의 인구 조사는 1,907,378 산티아긔노억원, 952,075 주민을 축적. 1930 년에 도시 지역은 1960년에 20,900에 도달 6천5백헥타르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고, 이 성장은 주거 안정과 중간 및 하위 계층의 가족이 설립되었다.
주변농촌 지역의 도시화에 반영되었다. 1980년 38,296 지역 사회의 대부분은 성장을 계속하지만, 그것은 주로 남쪽 서쪽, 북쪽 캐년 Conchalí 궁전 라 Granja 광산 등의 외곽 지역에 집중되어있다. 상류층의 경우, 라스 콘데스 라 레이나 부문의 산기슭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센터는 무역, 금융 및 정부 활동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공간을 남겨 명을 잃었다.
초기 21 세기 대도시[편집]
1990 년 전환의 시작으로, 산티아고의 도시와는 바람직하게는 남쪽에 살고, 사백만 주민을 능가 플로리다는 푸 엔테 알토와 마이푸 (Maipú)에 의해 인구 하였다. 중산층 가족을위한 주택 프로젝트의 건설에 크게 기인 키리쿠라 (Quilicura) 및 페냐로렌 (Peñalolen) 등이 지방 자치 단체 등의 부동산 개발. 한편, 고소득 가정은 라스 콘 데스의 인구 증가 및 비타쿠라 (Vitacura) 및 반 스테이플 같은 새로운 공동체에 상승을주는 산기슭에 이동 바리오 알토했다. 빈곤이 크게 떨어 시작하지만 또한, 번화 한 글로벌 도시 간의 강한 이분법을 유지하고 도시 빈민가에 흩어져.
경제[편집]
산티아고는 칠레의 산업 및 금융 중심이다. 칠레 국내 총생산의 약 45%가 산티아고에서 나온다. 상파울루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더불어 남미 3대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이다.ECLAC(Economic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같은 국제 기구도 산티아고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근래 들어 칠레의 안정적인 성장 덕에,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산티아고에 지사를 설치하였다.
행정 구역[편집]
산티아고는 다음의 32구 (수도 주와 일치)로 구성된다. 각 구에는 4년마다 선거에서 선정된 구청장 (스페인어: alcalde)이 있다.
- 산티아고 (es:Santiago)
- 세리요스 (es:Cerrillos)
- 세로나비아 (es:Cerro Navia)
- 콘찰리 (es:Conchalí)
- 엘보스케 (es:El Bosque)
- 에스타시온센트랄 (es:Estación Central)
- 우에추라바 (es:Huechuraba)
- 인데펜덴시아 (es:Independencia)
- 라시스테르나 (es:La Cisterna)
- 라플로리다 (es:La Florida)
- 산라몬 (es:San Ramón)
- 라그랑하 (es:La Granja)
- 라핀타나 (es:La Pintana)
- 라레이나 (es:La Reina)
- 라스콘데스 (es:Las Condes)
- 로바르네체아 (es:Lo Barnechea)
- 로에스페호 (es:Lo Espejo)
- 로프라도 (es:Lo Prado)
- 마쿨 (es:Macul)
- 마이푸 (es:Maipú)
- 뉴뇨아 (es:Ñuñoa)
- 페드로아기레세르다 (es:Pedro Aguirre Cerda)
- 페냘롤렌 (es:Peñalolén)
- 프로비덴시아 (es:Providencia)
- 푸다우엘 (es:Pudahuel)
- 킬리쿠라 (es:Quilicura)
- 킨타노르말 (es:Quinta Normal)
- 레콜레타 (es:Recoleta)
- 렝카 (es:Renca)
- 산호아킨 (es:San Joaquín)
- 산미겔 (es:San Miguel)
- 탈라간테 (es:Talagante)
- 비타쿠라 (es:Vitacura)
기후[편집]
산티아고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 (10월 ~ 3월)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건조한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날도 있다. 겨울(6월 ~ 8월)에는 습도가 높고, 평상시에 최고 기온은 15도 정도이지만, 낮은 날은 0도 가까이 내려간다. 연간 강수량은 약 360mm.
강수는 겨울에 집중하며 산티아고 시내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주변 산들에는 풍부한 적설량을 자랑하는 남반구 최대의 스키 리조트가 있다.
분지에 위치하는 스모그와 대기 오염이 심해 겨울 동안 산티아고에 모이는 일이 있다. 정부는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중공업 공장을 분지에서 나가도록 유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숨기기]산티아고 (1971–2000년)의 기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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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최고기온기록 ℃ (℉) | 36 (97) | 37 (99) | 34 (93) | 31 (88) | 31 (88) | 27 (81) | 27 (81) | 29 (84) | 31 (88) | 33 (91) | 36 (97) | 37 (99) | 37 (99) |
평균최고기온℃ (℉) | 29.7 (85.5) | 29.1 (84.4) | 26.9 (80.4) | 23.3 (73.9) | 18.7 (65.7) | 15.2 (59.4) | 14.9 (58.8) | 16.7 (62.1) | 19.0 (66.2) | 22.3 (72.1) | 25.4 (77.7) | 28.4 (83.1) | 22.47 (72.44) |
평균최저기온 ℃ (℉) | 13.0 (55.4) | 12.4 (54.3) | 10.7 (51.3) | 8.0 (46.4) | 6.3 (43.3) | 4.3 (39.7) | 3.9 (39) | 4.8 (40.6) | 6.1 (43) | 8.2 (46.8) | 10.1 (50.2) | 12.0 (53.6) | 8.32 (46.97) |
최저기온기록 ℃ (℉) | 6 (43) | 6 (43) | 3 (37) | 1 (34) | -3 (27) | -5 (23) | -7 (19) | -6 (21) | -2 (28) | -1 (30) | 2 (36) | 2 (36) | -7 (19) |
강수량 mm (inches) | 0.4 (0.016) | 0.8 (0.031) | 3.2 (0.126) | 10.4 (0.409) | 42.2 (1.661) | 70.4 (2.772) | 86.6 (3.409) | 51.8 (2.039) | 22.0 (0.866) | 13.4 (0.528) | 9.2 (0.362) | 2.1 (0.083) | 312.5 (12.303) |
% 습도 | 54 | 59 | 63 | 68 | 75 | 79 | 76 | 75 | 72 | 67 | 58 | 53 | 66.6 |
평균강수일수 | 1 | 1 | 2 | 2 | 6 | 7 | 8 | 6 | 4 | 2 | 2 | 1 | 42 |
일조시간 | 322.4 | 279.7 | 263.5 | 186.0 | 117.8 | 90.0 | 108.5 | 139.5 | 159.0 | 207.7 | 267.0 | 322.4 | 2,463.5 |
출전#1: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1] | |||||||||||||
출전#2: BBC Weather[2] for record highs, lows and humidity |
문화와 사회[편집]
문화 유산 기념물[편집]
산티아고의 대도시 지역 내 174가 유산 국립 기념물위원회의 구금 62, 고고학 건축 사적, 플러스 일반 지역과 지역 그중는. 이들 중, 93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티아고의 집단으로 간주, 역사적인 센터. 도시를 63는 어떤 기념물 산티아고가 선언되지 않았지만 세계 문화 유산 으로 유네스코 잉카의 성소: 3 개는 칠레 정부에 의해 제안되었다 세로 엘 (Plomo), 교회와 수도원 샌프란시스코 와 라 몬데의 궁전.
산티아고의 중심에서 스페인의 지배에 지어진 여러 건물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등 가톨릭 교회에 해당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샌프란시스코의 전술 교회. 기간의 다른 건물의 측면에있는 사람입니다 아르 마스 광장으로, 왕실의 좌석, 우체국 또는 카사 (Colorada)의.
동안 19 세기 와 독립의 출현, 새로운 건축 작품은 젊은 공화국의 수도에 건립되기 시작했다. 귀족 작은 내장 궁전을 중심으로 주변 주거 사용을 위해 이웃 공화국, 오늘날까지 보존된다. 이 같은 유럽의 예술 동향을 채택한 다른 구조에 의해 합성된다. 산티아고의 승마 클럽,의 본사 칠레의 대학과 가톨릭 대학, 중앙역 (Central Station) 및 (Mapocho)역, 중앙 시장, 국립 도서관, 조형 예술 박물관 및 파리 - 런던 다른 사람의 사이에서.
도시에서 다양한 녹색 지역 경제 특성의 다양한 사이트 내에서 주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중의 요새입니다 세로 산타 루시아, 성모 마리아 신사의 상단에 세로 산 크리스토 발, 의 호화로운 토굴 산티아고의 묘지, 삼림 공원, 공원 히긴스와 타 노멀.
엔터테인먼트 및 문화[편집]
산티아고가의 주요 기업에 위치한 극장으로 알려진 국제 극장 축제 기간 동안 가장 높은 표현을 도달하는 다양한 국내외 작품을 호스팅 산티아고 밀 년부터 매년 여름 개최, 1994 및 어떤이 함께 하나 이상을 가져 만 관중. 첨가 있습니다 산티아고 드 칠레의 대학 천문관 .
다양한 문화 행사, 예술과 음악을 수행하는 다른 인클로저가 있는 하이라이트 내 Mapocho 문화 센터 , 문화 센터 Matucana 100,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화 센터 , 센트로 문화 팔라시오 데 라 몬데, MOVISTAR 경기장 및 Caupolicán 극장 . 반면에,의 프레 젠 테이션 발레 와 오페라가 영구적으로 호스팅되는 시립 극장 산티아고 1500 관중의 용량을 가지고있는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
수도에서 18도 영화관 144의 총 객실 아트 시네마 프로젝션 5 센터를 추가하고 32 개 이상의 000 석. 66 최근이되고, 도시의 다양한 영화 축제가되었습니다 강조 SANFIC 에서 시작, 2005 그리고 자신의 판에 2007 300 기능과 55 000 참석자가 있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같은 다양한 유흥,이 놀이 공원 판타지, 국립 동물원 이나 뷰 인 동물원 은 도시의 외곽에가. 지역 벨라 비스타, 브라질 , 마누엘 몬트, Ñuñoa 및 스웨덴 나이트 클럽, 음식점, 놀거리와 도시, 자본의 주요 이브닝 엔터테인먼트 센터에서 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지역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법의 건축 금지 카지노 수도권 내 68 만 자신의 근처에 있습니다 카지노 의 해안 도시 비냐 델 마르 120km는, 멀리 산티아고와의 몬티 첼로 그랜드 카지노 의 지역에서 Moston 56km 남쪽 산티아고가에 오픈 2008.
박물관 및 도서관[편집]
산티아고에는 다양한 박물관이 많은데, 그 중에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스페인어: Dirección de Bibliotecas, Archivos y Museos)하는 국립역사박물관 , 국립순수미술관, 국립자연사박물관도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은 도시 중심의 건물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된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국립역사박물관은 왕립재판소 내에 있고, 산티아고 박물관은 카사 콜로라다(스페인어: Casa Colorada)에, 식민지박물관은 산 프란시스코 교회 한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전의 미술을 다룬 박물관(스페인어: Museo de Arte Precolombino)은 옛 관세청에 있다. 국립순수미술관은 도시 중심에 있지만 20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1947년에는 그 뒤쪽에 칠레 대학교 예술학부에 소속된 현대미술관이 지어졌다.
킨타 노르말 공원(스페인어: Parque Quinta Normal)에도 박물관이 있다. 앞서 언급된 국립자연사박물관 이외에 아르테킨 박물관(스페인어: Museo Artequin), 과학기술박물관, 철도박물관 등이 있다. 그 밖에 세리요스(스페인어: Cerrillos)에 항공박물관이, 프로비덴시아(스페인어: Providencia)에 타하마르 박물관(스페인어: Museo de los Tajamares)이 있다. 2000년에 개장한 체험박물관(스페인어: Museo Interactive Mirador)은 주로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박물관이다. 그란하(스페인어: La Granja)에 있으며, 현재까지 280만 명 이상이 방문하였다.
공공 도서관으로는 국립도서관이 산티아고 시내에 있다. 국립도서관의 역사는 18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서관은 초기 공화정이 설립하였고 이후 한 세기가 지나 현재 위치로 옮겨져 국립문서보관소 본부와 함께 있다. 2005년, 시민과 더욱 가까이 있으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새로운 기술을 통합하기 위하여 바리오 융가이(스페인어: Barrio Yungay)에 산티아고 도서관을 세웠다.
교통[편집]
공항[편집]
산티아고의 관문이 되는 공항인 코모도로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 (Arturo Merino Benítez International Airport)은 남미에서는 잘 갖추어 진 공항이다.
철도[편집]
산티아고의 철도 중앙 역 (Estación Central)에서 칠레 중부 탈카(Talca) 등으로 칠레 국철이 달리고 있다. 산티아고 대도시권에는 메트로 트렌(Metrotrén)로 불리는 근교 전철이 산 페르난도(San Fernando)를 향해 달리고 있다.
지하철[편집]
산티아고는 프랑스의 협력으로 건설된 4개 노선의 지하철(메트로 = Metro)가 현재 1호선, 2호선의 확장이 계획되어 있다. 비교적 안전한 수송으로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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