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지배한 음식들...!
지구별에 사는 생물들은 각각 자기들만의 운명을 거머쥐고 산다. 생노병사 혹은 그들만의 생리적 사이클에 따라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것.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어야 산다. 무엇을 어떻게 먹던 먹어야 하고 에너지를 충전해야 산다. 안 먹거나 못 먹으면 운명을 재촉하는 것.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은 뭇 생물들과 조금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사바나의 동물들이 먹이를 취할 땐 배가 고플 때며 먹이를 저축(?)하기 위해 사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할 수만 있다면 먹이를 축적하고 먹이를 맛에 따라 구별해 가며 살아간다. 맛있는 음식 맛 없는 음식 비싼 음식 싼 음식 귀한 음식 천한 음식 등 등급을 매겨놓고 사는 것. 오늘날 우리가 선호하는 요리 혹은 음식들이 주로 그런 절차를 밟아 왔다.
사진< http://www.ladanigourmet.com/tarte-tatin-di-pomodori/> 속의 토마토 타르트 타르틴(Tarte Tatin di pomodori)의 주재료인 토마토도 그랬다. 필자가 안데스와 파타고니아를 여행할 때 받은 영감이랄까. 안데스 자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던 음식들은 소박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연명한 건 주로 감자와 옥수수 등이었는데 안데스 사람들의 모습을 쏙 빼 닮았다. 이들이 먹던 음식들이 유럽인들의 식탁에 오른 건 귀족들의 식탐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오 등 토착민들은, 콤럼부스 1를 위시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듣보잡'이었던 음식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면서부터, 이들이 먹던 음식 다수가 유럽인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 건 너무 유명한 사건이다.
음식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대륙의 문화와 역사 등은 주로 에스파냐인들의 침탈로 벌거숭이가 되고 원주민 대부분은 몰살 당하고 만다. 그 덕분(?)에 유럽인들의 식탁이 풍성해진 것. 토마토 타르트 타르틴의 역사 내지 토마토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대륙 침탈부터라 할 수 있다. 그 역사와 효능을 잘 정리해둔 글과 함께 달콤한 리체타 하나를 소개해 드린다.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아니지 아마...!
La storia del pomodoro & Tarte Tatin di pomodori
토마토의 고향, 안데스
토마토의 원산지는 안데스산맥의 해발 2천∼3천 미터 부근의 고랭지인 페루와 에쿠아도르 등지이다. 적도에 가까운 이곳은 열대와 아열대 기후지역으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지녔다. 원래 토마토는 옥수수밭에서 자라는, 노란색의 작은 열매가 열리는 잡초의 일종이었다.토마토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700년 무렵인데,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던 야생 토마토가 인디오들의 이동에 따라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 전해지면서 일상적인 식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야생 토마토를 체계적으로 재배하고 다양한 요리에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바로 멕시코인들이었다. 토마토가 토마토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아스텍 문화권의 고대 멕시코인들인 아스텍인들이 토마토를 ‘토마틀(tomatl)’이라 불렀기 때문이었다. 매운 고추를 좋아했던 아스텍인들은 고추의 매운 맛을 완화하기 위해 토마토를 사용하였는데, 주로 덜 익은 풋토마토를 잘게 썰어 다양한 음식에 섞어 먹었다. 또 붉은 고추와 매운 풋고추, 호박씨 등과 섞어 소스를 만들거나, 고추와 섞어 익힌 후 고기요리나 생선요리에 곁들여 먹었다.
유럽, 토마토를 만나다
아메리카 대륙 침탈 이후 토마토뿐 아니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땅콩, 고추, 사탕수수, 카카오, 파인애플, 파파야, 면, 담배(과연 그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뭘 먹고 살았을지 의심스럽지 않은가?)등을 유럽에 알리게 되었다. 그 첫 테이프를 끊었던 콜럼버스는 총 네 번에 걸쳐 항해를 하였는데, 그는 이 새로운 땅에서 담배, 옥수수, 땅콩, 고추, 사탕수수, 아몬드, 카카오 같은 새로운 식물을 접하고 기록에 남겼다. 그러나 유럽의 식문화를 완전히 뒤집어엎을 두 가지 식품인 감자와 토마토는 발견하지 못했다. 토마토는 1519년, 헤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 점령을 계기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에 등장하였다.
아스텍인들이 토마틀(tomatl)이라 부르던 토마토는 스페인에 건너가면서 토마토(tamate)라고 불리게 되었다. 신세계에서 건너온 새로운 식품들은 유럽 식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전해져 오늘날 전세계의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유럽에 밀려 들어온 수많은 작물들이 모두 순식간에 식탁 위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완두콩이나 호박처럼 이미 유럽에 비슷한 종류가 있었던 것들이나 후추의 일종으로 생각된 고추처럼 저항 없이 곧바로 받아들여진 것이 있는가 하면, 마니오카나 고구마 같은 것들은 유럽에서 끝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감자나 토마토처럼 식용가치가 무시되었다가 오랜 시간이 걸려 식품으로서 받아들여진 것들도 있다.
토마토는 해롭다?
토마토가 식용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당시 구세계인들에게 토마토는 도무지 쓸 데라고는 없는 열매였기 때문이다. 당시 귀족들은 평범한 음식에 독특한 맛과 향을 선사하는 향신료나 약초를 원했고, 굶주린 민중들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배고픈 군중의 배를 채울 수도 없고 귀족들의 취향도 맞출 수 없었던 토마토는 그대로 외면당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새로운 풍토에 토마토가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초기의 토마토는 질이 나쁘기도 했다.
그러나 예쁜 색의 열매를 가진 이 잡초는 관상용이나 장식용으로 자리잡게 되어 토마토가 처음 식탁 위에 등장한 것은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장식품으로서였다. 한 때는 귀족들의 연회에 토마토 장식이 크게 유행하기도 하였다. 토마토를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 이후의 일로, 스페인을 시작으로 나폴리를 거쳐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조금씩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지 어떻게든 배를 채워야 했던 극소수의 배고픈 민중들로 귀족들이나 식물학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토마토를 먹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고 외쳐댔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피에트로 안드레아 마티올리 2(Pietro Andrea Mattioli,1500-1577)로 그는 토마토를 가지와 같은 종류로 분류하고, 먹을 수는 있지만 해로울 뿐 이로운 것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토마토와 가지를 한 가족으로 묶은 그의 말은 ‘토마토는 독’이라는 믿음을 굳혔다. 당시 가지과에 속하는 식물들은 모두 독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외 많은 학자들도 입을 모아‘토마토를 먹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고 꾸짖었다. 토마토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미움을 받았다. 토마토에 독이 있다는 믿음은 영국에서 특히 심했다. 영국인들은 토마토의 예쁜 색깔을 좋아해 관상용으로는 쉽게 받아들였지만 식품으로서는 한사코 거부하였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유럽 최초의 토마토 소스 탄생
“잘 익은 토마토 5개를 불에 그슬려 껍질을 벗기고 잘게 자른 후 다진 양파와 고추, 타임을 적당히 넣는다. 여기에 소금, 올리브유, 식초를 넣고 섞어 소스를 만든다. 삶은 고기 요리에 곁들이면 아주 맛있다.”
1692년 안토니오 라티니 3(Antonio Latini)가 쓴 ‘La scalco alla moderna’에 실려있는 토마토 소스 만드는 법이다. 이것이 토마토 요리법이 소개된 최초의 요리책으로 나폴리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이 소스를 ‘스페인식 토마토 소스’라고 소개하였는데, ‘스페인식’이란 말이 토마토가 들어간 요리를 뜻할 만큼 이즈음 스페인에서는 토마토를 제법 널리 식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토마토를 이용해 만드는 소스는 당시 멕시코에 머물러있던 스페인 요리사들에 의해 흡수되었다.
배를 타고 신세계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들을 통해 토마토 요리법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서서히 서민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라티니는 학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은 경솔한(?) 사람들로부터 그 요리법을 배웠을 것이다. 라티니가 만든 이 토마토소스는 비록 토마토에 씌워진 누명을 벗기진 못했지만, 서서히 실험 정신이 강한 요리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마토 소스가 파스타와 만나기까지는 아직10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정원에서 냄비 속으로
토마토가 유럽의 식단을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은 나폴리에서 새로운 조국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기본으로 한 이탈리아 요리는 나폴리에서 싹을 틔우고 이탈리아 전역과 다른 유럽지역에도 퍼지게 되었다. 토마토를 이용한 최초의 요리법이 등장한 곳도 나폴리였고, 토마토소스를 얹은 피자나 파스타가 탄생한 곳도 바로 나폴리였다. 실험정신이 강했던 나폴리의 요리사들은 다양한 요리에 토마토를 응용하고 토마토요리법이 실린 많은 요리책을 발간해 토마토의 지위향상에 한 몫을 해냈다.
당시 신세계에 전해진 새로운 식물들은 우선 스페인에서 실험 재배된 후 모로코를 거쳐 나폴리로 전해졌다. 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를 ‘무어인의 사과(pomo dei Mori)’ 즉 ‘흑인의 사과’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토마토는 1750년경 나폴리 근교의 베수비오 산기슭의 토양에 잘 적응하여 식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1692년 처음 선보인 토마토 소스는 18세기에서 19세기로 옮겨가면서 이탈리아 및 유럽 식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전환점을 제공한 중요한 사람이 바로 나폴리에 살던 빈첸조 코라도 4(Vincenzo Corrado,1734-1836)였다. 빈첸조 코라도는 1773년 ‘Cuoco galante’에 토마토 소스에 대해 호평하고 많은 토마토 요리를 실었다. 이 책에는 토마토의 전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토마토를 불에 그슬리거나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 껍질을 벗긴 후 반으로 잘라 씨를 제거한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빈첸조 코라도에 의해 토마토는 마침내 정원에서 부엌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토마토, 파스타와 만나다
파스타 요리에 토마토를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천생연분처럼 잘 어울리는 파스타와 토마토, 이들이 만나기까지는 토마토가 유럽에 도착한 후 무려 3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전까지 파스타는 삶은 후 소스 없이 그냥 먹거나 치즈가루를 뿌려 먹었는데 19세기 중반까지 이 방식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파스타의 고향이랄 수 있는 나폴리에서 파스타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길거리 음식이었다.
나폴리의 거리는 큰 냄비를 내어 걸어놓고 파스타를 삶아 파는 장사꾼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치즈 가루가 얹어진 파스타를 맨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러다가 파스타는 1839년 드디어 토마토를 만나게 되었다. 역시 나폴리에서였다. 토마토소스를 얹은 파스타는 나폴리의 귀족이었던 이뽈리또 카발칸티 5(Ippolito Cavalcanti)가 쓴 ‘Cucina teorico pratica’에 최초로 등장하였다. 나폴리에서 파스타와 만난 토마토 소스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고 전세계를 장악해 나갔다.파스타와 토마토의 만남으로 파스타 요리는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졌으며, 식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DA http://www.liberidileggere.com/2011/10/il-pomodoro/>
토마토의 귀향
유럽에 토마토를 전해준 것은 남미였다. 그러나 남미에서 가까운 미국에 토마토를 전해준 것은 남미가 아닌 유럽이었다. 온갖 박해 끝에 빛을 보기 시작한 토마토는 18세기말 아메리카 대륙으로 돌아갔다. 토마토는 1774년 미국 최초로 문헌상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토마토는 구박을 받아야 했다. 토마토에 독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영국인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미국의 토마토 재배는 19세기부터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하였지만, 19세기 초까지도 토마토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였다. 심지어 토마토를 먹으면 급사한다고 해서 1820년 뉴욕에서는 토마토 식용을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1831년 로버트 존슨(Rovert Gibbon Johnson)이라는 사람은 토마토에 독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세일럼의 재판소 앞에서 엄청난 양의 토마토를 먹는 쇼를 벌이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양의 토마토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죽기는커녕 멀쩡하자, 그가 자살쇼를 벌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토마토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마토는 19세기 말부터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케찹이 만들어졌고, 미국인들도 토마토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토마토 가공식품의 발달은 토마토 생산을 전국적으로 성장시키는 데에 한 몫을 하였다. 미국은 19세기부터 끊임없는 교배에 의해 다양한 품종을 육성하여 오늘날 토마토 육종의 중심이 되고 있다.
<DA http://biodiversipedia.pbworks.com/w/page/65941220/Un%20rosso%20di%20successo!>
우리나라 토마토의 역사
토마토는 어떻게 아시아에 퍼지게 되었을까? 토마토는 스페인인들에 의해 필리핀에 전해졌고, 필리핀에서 동남아시아로, 다시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之峰類說)에 남만시(南蠻枾)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저작년대인 1614년 이전으로 생각된다. 지봉유설에는 "남만시는 초시이다. 봄에 생하여 가을에 결실, 그 맛이 감과 비슷하다. 본래 남만에서 나왔는데, 근자에 한 사신이 종자를 중국에서 얻어 왔다. 또한 신기한 과일이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 새빨간 열매를 먹을 엄두는 내지 못했던 모양으로 일반인에게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한편 최남선은 토마토의 전래에 대해 ‘임진왜란 때인지 모르겠지만 토마토가 중국을 거쳐 전래하여 남만시(南蠻枾)라고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는 18세기 초 대화본초(大和本草)에 당시(唐枾)로 기록되어 있는데, 1709년 중국을 거쳐 전파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임진왜란(1592-1598)때 일본에는 토마토가 없었으므로 이 때 일본에서 전래된 것은 아니다. 토마토가 중국에 들어간 년도가 17세기 초라고 추정되므로 중국에 들어간 직후에 우리나라 사신에 의해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듯 토마토는 이미 400여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재배가 일반화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27년경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60년대부터는 미국산 토마토 가공식품에 자극되어 소비가 늘면서 전국적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한창 인기가 있는 방울토마토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DA http://www.essenzialmentenaturale.it/pomodori-secchi-che-sorpresa/>
5,000가지가 넘는 토마토의 종류
토마토의 종류는 전세계적으로 5,000가지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중 약 20여종을 재배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끊임없는 교배를 통해 좋은 품질과 뛰어난 맛, 풍부한 영양을 가진 새로운 종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토마토는 크게 분류하여 케찹이나 통조림 등을 만들기 위한 ‘가공용 토마토’와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생식용 토마토’로 나눌 수 있다. 이 두가지는 목적이 다른 만큼 품질도 다르고 맛과 모양도 다르다. 보통 생식용 토마토는 붉은색보다는 분홍색에 가깝고 흠집 없는 예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껍질이 얇고 완숙하면 과육이 부드러워지면서 즙이 많아진다.
그에 비해 가공용 토마토는 크기도 고르지 않고 모양도 예쁘지 않지만 붉은 색이 진해서 아주 새빨갛다. 또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단단하며 즙이 적다. 생식용과 가공용은 재배방법도 서로 다르다. 생식용 토마토는 보통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우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생산되지만, 노지 재배로 햇빛과 비바람을 맞으며 거칠게 자라는 가공용 토마토는 보통 여름에만 수확된다.
<DA http://www.my-personaltrainer.it/Tv/Ricette/Dolci_Dessert/marmellata-pomodori-verdi.html>
가공용 토마토
토마토 소스나 케첩, 통조림 등 주로 토마토 가공에 쓰이는 가공용 토마토는 보통 길이 6~8cm의 타원형으로 가지와 같이 가늘고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생김새가 마치 서양자두같이 생겼다 해서 ‘플럼 토마토(plum tomato)’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공용 토마토는 씨는 적고 과육이 단단하고 알차며 풍미가 강하다. 또 한여름 햇빛을 듬뿍 받고 자라기 때문에 리코펜 함량이 매우 높아 새빨갛다 6. 게다가 감칠맛 성분인 글루타민산도 보통 생식용 토마토의 배 이상으로 풍부해 요리용으로 적격이다.
가공용 토마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토마토의 최고품이라 일컬어지는 ‘산 마르자노(San Marzano)’. 산 마르자노는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에 있는 베수비오산의 화산분지에서 재배되는 최상의 가공용 토마토이다. 베수비오의 산기슭같은 화산질의 토양은 미네랄이 풍부해서 이 곳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땅에서는 기름진 영양분을, 하늘에서는 뜨거운 태양을 맘껏 흡수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맛을 탄생시킨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뛰어난 산 마르자노는 열을 가하면 최고의 맛을 발휘한다. 대부분 홀 토마토 통조림으로 가공되고 건조토마토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
생식용 토마토
우리나라에서는 플럼 토마토 같은 가공용 토마토를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보는 토마토는 모두 생식용이다. 생식용 토마토는 크기에 따라 한 알 무게가 20g 전후인 방울토마토와 150g 이상인 일반 토마토로 나눌 수 있다. 그 밖에 포도송이처럼 송이채로 수확하는 무게 100g내외의 송이토마토도 있다. 체리토마토, 미니토마토, 베이비토마토라고도 부르는 방울 토마토는 먹기도 편하고 모양도 앙증맞아 장식용으로도 인기가 있다. 게다가 일반 토마토보다 당도도 높고 영양가도 더 높다.
방울토마토도 색깔이나 크기, 모양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방울토마토의 대부분은 일본 품종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이 ‘빼빼’나 ‘꼬꼬’이다. 그 밖에 루비볼, 뽀뽀, 꿀, 미니캐롤 등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일반토마토는 보통 디저트나 샐러드, 햄버거용 등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광토마토, 영광토마토, 광수토마토, 강육토마토,광명토마토, 풍영토마토, 선명토마토, 알찬토마토, 세계토마토 등이 재배되고 있다.
<DA http://mangiarebuono.it/il-pomodoro-in-scatola-lidea-che-ha-cambiato-la-storia-della-cucina/>
둘째가라면 서럽다, 전세계의 유명한 토마토들
건조하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한 곳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맛있는 토마토가 자란다. 이런 기후조건에 알맞은 지중해 연안에는 풍부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토마토들이 즐비하다. 심장같이 생긴 독특한 모양 때문에 ‘황소의 심장 (Cuore di bue)’이라는 이름이 붙은 못생긴 이탈리아의 토마토는 생김새는 과연 저것이 토마토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투박하지만 생으로 먹으면 어떤 토마토보다 맛있다고 정평이 나있다. 큰 것은 한 개에 300g을 훨씬 넘어 어른 큰 주먹만하다.
<Cuore di bue. DA http://italyonmymind.com.au/tomato-heaven-how-to-make-a-perfect-pasta-puttanesca/cuore-di-bue/>
나폴리 근교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역도 토마토를 많이 키우는 곳이다. 건조한 기후를 가진 이곳에서 나는 토마토는 단맛이 강하고 향이 진하다. 또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나는 프로방스 토마토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향이 진하고 짙은 붉은 색을 띤 이탈리아의 코스톨루토, 프랑스의 마르망드 등도 지중해 연안에서는 유명세를 타는 토마토들이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DA http://www.cittadeltabacco.it/en/associates/francolise/francolise-gastronomy/>
토마토의 맛은 내가 책임진다
토마토는 품종마다 맛이 다 다르고 같은 품종이라도 자란 환경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덜 익은 그린 토마토는 상큼한 신 맛이 진하며 노란색이나 주황색 토마토는 달콤한 맛이 강하다. 반면 빨간 토마토는 독특한 시큼함과 풍부한 단 맛을 지니고 있다토마토가 단 맛이 나는 것은 토마토에 들어있는 포도당과 과당 때문이며 신맛의 주성분은 구연산과 사과산이다.
영양학자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You are what you eat..'. 즉 한 사람이 먹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무엇을 먹는가는 한 사람을 형성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비만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땅에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흡수해 자라는 식물들도 그들이 먹은 것을 그대로 열매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질 좋은 땅을 좋아하는 토마토는 어떤 땅에서 기르느냐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비옥한 땅에서 키운 토마토는 그만큼 맛도 우수하다.
<DA http://www.my-personaltrainer.it/Tv/Ricette/Preparazioni_di_Base/conserva-classica-pomodoro.html>
글루타민산이 풍부한 천연 조미료
우리가‘구수하다’고 표현하는‘감칠맛’을 내는 성분은 우리의 기본조미료인 간장이나 된장 또는 다시마 같은 맛내기 재료에 들어 있다. 그 주인공은 글루타민산으로 화학조미료의 주성분도 바로 글루타민산 소다(MSG,Mono Sodium Glutamate)이다. 보통 야채나 과일에서는 찾기 어려운 이 감칠맛 성분이 토마토에 들어 있다. 잘 익은 토마토 100g에는 300mg 정도의 글루타민산이 들어있고, 토마토 페이스트 100g에는 약 1.5g, 건조 토마토100g에는 무려 5g이나 들어있다.
요리를 할 때 토마토 퓨레나 페이스트 약간 또는 건조토마토를 조금 잘라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조미료를 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토마토의 이런 감칠맛은 이탈리아의 화학조미료 소비량이 다른 나라보다 매우 적은 것으로도 증명된다. 세계에서 화학조미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대만으로 한 사람당 연간 1kg이상 소비하고 있다. 하루에 3g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아서 대만과 세계 1,2위를 다툰다.
반면 이탈리아인들은 연간 114g밖에 소비하지 않는다. 유럽 전체 평균이 200g정도이니,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아도 사용량이 적은 유럽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바로 토마토의 감칠맛이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탈리아인들은 생토마토뿐 아니라 각종 통조림이나 페이스트, 건조 토마토같은 다양한 토마토 가공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화학조미료를 따로 넣지 않아도 음식의 맛을 잘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옛날 토마토와 요즘 토마토
옛날에는 토마토가 아주 맛있었는데, 요즘 토마토는 모양만 근사하지 맛은 형편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모든 과일이나 채소를 제철에나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시사철 웬만한 과일이나 채소는 다 먹을 수 있다. 바로 비닐하우스 덕분이다. 토마토도 마찬가지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토마토의 96%가 시설재배되고 있는 하우스 토마토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하우스 토마토는 겉모양은 번드르하지만 아무래도 맛은 떨어진다.
게다가 좋은 모양을 지닌 것들이 소비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보니 맛있는 토마토 보다는 예쁜 토마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오늘날의 토마토는 초록색이 사라지고 분홍색이 보일 때쯤이면 벌써 수확된다. 그리고 나서는 운반되는 중에 익히거나 에틸렌 가스를 사용해 인공적으로 숙성시킨다. 토마토가 빨갛게 다 익은 다음 따게 되면 유통 도중에 쉽게 무르거나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오늘날의 유통과정이 결국 토마토의 맛을 바꿔놓았다.
토마토의 맛은 마지막 1주일이 결정한다
토마토가 익는 마지막 1주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익기 전 진한 초록색을 띠고 있는 토마토는 클로로필이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연한 초록색으로 변해간다. 그 후 며칠 동안 빨간 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 때가 토마토의 맛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신맛은 줄면서 전분이 단순당으로 바뀌어 단맛이 증가한다. 토마토의 독특한 향을 내는 지방산을 비롯한 복잡한 성분들도 바로 이 때 생성되기 시작한다.
이 기간 동안 중요한 것이 바로 충분한 햇빛이다. 이 때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이런 독특한 성분들이 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토마토 최고의 맛과 향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USDA는 가지에 달린 채 숙성시킨 토마토의 향기 성분이 덜 익었을 따서 익힌 토마토의 10배에 달함을 밝혀내었다. 향기 성분뿐 아니라 비타민 C나 리코펜의 양도 거의 2배 정도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옛날 토마토가 맛있었는데...’ 하는 그 추억의 토마토는 줄기에 달린 채 익은 후 수확된 바로 그 토마토인 것이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DA http://mangiarebuono.it/i-pomodori-col-riso-un-classico-della-cucina-laziale/>
여름 토마토가 맛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토마토는 비옥한 땅에 심어져 햇빛을 듬뿍 받고 자라 제철인 여름에 딴 토마토이다. 토마토는 오이, 수박, 메론과 마찬가지로 여름에 수확되는 여름채소이기 때문에 제철인 여름과 초가을에 가장 맛있다. 토마토는 여름의 직사광선을 신나게 쪼이고 자랐을 때야말로 리코펜과 글루타민산을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게다가 여름 제철에 난 토마토는 영양분도 더 풍부하다.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잘 생긴 토마토를 먹을 수는 있지만,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겨울 토마토의 맛은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견디고 자라난 고집스런 여름 토마토의 맛에 비길 수 없다.
배는 든든하게, 기분은 상쾌하게
토마토는 칼로리가 아주 적다. 200g 정도 되는 보통 크기의 토마토 한 개가 가지고 있는 열량은 30kcal 정도. 밥 한 공기의 열량이 300kcal이니 토마토 10개를 먹으면 밥 한 공기를 먹는 것과 같다. 또한 토마토에 들어있는 구연산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청량효과가 있어서 목이 마를 때 먹으면 갈증이 해소되고 입맛 없는 여름철에 식욕을 돋구어주며 땀을 흘리면서 손실된 미네랄을 보충해준다.
토마토는 피로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인 글루타민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나 쉽게 피로를 느끼는 현대인들은 토마토 주스 한 잔으로도 어느 정도 피로회복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토마토에는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비타민C, 지방의 분해를 돕는 비타민B군, 엽산, 바이오틴, 나이아신 등 각종 비타민이 들어있다. 그 밖에 칼슘이나 조혈에 필수적인 철분 등 무기질도 고루 갖추었다.
하루에 토마토 4개만 먹으면 비타민A와 비타민C의 하루 필요량을 채우고도 남는다. 또한 비타민 A의 전구체이자 항산화효과와 항암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도 상당량 들어 있다. 토마토에 들어있는 영양분은 같은 토마토라도 종별로, 또 재배 방법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가 나는데, 예를 들어 방울 토마토는 비타민 C의 함량이 2배 정도 높고 햇빛이 뜨거운 여름에 키운 토마토가 영양도 더 풍부하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토마토의 빨간 색소, 리코펜
토마토는 녹황색 채소 중 하나다. 녹황색 채소란 카로티노이드 색소(카로티노이드란 식물이 가지고 있는 붉은색과 오렌지색, 황색 색소의 총칭)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색이 짙은 채소를 말한다. 토마토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카로티노이드는 리코펜이다. 리코펜은 최근 베타 카로틴보다 더 강력한 항산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잘 익은 빨간 토마토 1 kg에는 약 30mg 정도의 리코펜이 함유되어 있다.
리코펜은 열에 강하고 쉽게 분해되는 성분이 아니기 때문에 토마토를 농축시켜 만든 케찹이나 토마토 페이스트에 더 많은 양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볶음밥이나 햄버거에 케찹을 듬뿍 뿌려 먹거나 식사 후 토마토 주스 한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항산화물질을 보충할 수 있다.
고기와 잘 어울리는 알칼리성 식품
토마토는 무기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반면 고기나 생선 같은 육류는 산성식품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 몸의 체액은 약알칼리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산성식품인 육류를 많이 먹으면 건강에 이로울 것이 없다. 게다가 육류의 과다 섭취로 체액이 산성을 띠게 되면 신비한 우리의 몸은 뼈에 저장되어있는 알칼리성 무기질인 칼슘을 끄집어 내와 혈액의 pH를 맞춘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골다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도 육류섭취가 높은 나라에서 골다공증의 발생이 더 높은 것은 이를 증명해준다.
따라서 고기를 먹을 때는 알칼리성을 띠고 있는 채소를 함께 먹어주는 것이 좋은데, 토마토도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으로 산성 식품을 중화시켜준다. 게다가 토마토는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단백질의 소화를 도와 위의 부담이 감소된다. 서양요리 중에는 미트소스처럼 고기 요리에 토마토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매우 현명한 먹거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패스트푸드 햄버거에 케첩을 잔뜩 뿌려 먹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DA http://www.valfrutta.it/orto-insieme/blog/pomodori-5-idee-per-conservarli-tutto-lundefinedanno>
폐를 젊고 튼튼하게
민간에서는 토마토가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해서 감기에 걸렸을 때 끓여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토마토의 약효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토마토를 많이 먹는 사람은 폐기능이 자기 나이에 비해 3년 정도 더 젊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의 새러 루이스 박사는 2,633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식사습관과 폐기능 검사 등을 통한 호흡기 건강을 조사한 결과 토마토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폐기능이 양호함을 밝혀냈다. 토마토는 폐기능을 강화시켜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데, 토마토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폐가 건강하다고 한다. 특히 일주일에 토마토를 3개 이상 먹었을 때 효과가 가장 커서 만성 기관지염에 걸릴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DA http://www.valfrutta.it/orto-insieme/blog/pomodori-5-idee-per-conservarli-tutto-lundefinedanno>
피는 맑게, 혈관은 튼튼하게
토마토에는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심장질환이 사망원인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식품이다. 토마토가 고혈압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첫째로 토마토에 칼륨이 넉넉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칼륨 섭취는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다. 칼륨과 나트륨은 체내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칼륨은 체내의 염분을 몸 밖으로 배출해 주는 효과가 있어서 짜게 먹는 데서 비롯되는 고혈압이나 순환기 질환 예방에 좋은 것이다.
따라서 소금 섭취가 많은 우리 식생활에서 특히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토마토에는 비타민 P의 일종인 루틴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루틴은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혈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마지막으로 빨간색 영양, 리코펜은 뛰어난 항산화작용을 통해 혈액 중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막아 동맥 경화를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다.
<DA http://www.all4food.net/2011/08/26/pomodori-basil-marinated-olives/>
새로운 항암식품, 토마토
토마토가 새로운 항암식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토마토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 노르웨이, 미국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토마토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위암과 폐암, 전립선암, 경부암, 방광암, 췌장암 등 각종 암발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하바드대에서는 성인남자 47,000명을 6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토마토 요리를 주 10회 이상 먹고 있는 사람은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45%나 낮았다고 밝혔다.
특히 조사 대상이 된 131가지의 가공 식품 품목 가운데 전립선암을 억제하는 가공 식품 4가지가 밝혀졌는데, 바로 토마토소스, 토마토, 피자 그리고 딸기 가공 식품이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세 가지가 토마토와 관련된 식품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일주일에 7번 이상 토마토를 먹는 사람이 거의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암 발병률이 50% 이상 낮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또 같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토마토를 많이 먹는 남부 이탈리아 쪽이 소화기계의 암 발생률이 낮다.
이렇게 토마토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낮은 이유는 바로 리코펜의 항암작용 때문이다. 빨간색 리코펜은 항암효과가 알려진 황색의 베타카로틴보다 더 강력한 암억제능력을 지니고 있다. 토마토에는 리코펜 외에도 P-쿠마릭산, 클로로겐산 같은 암과 싸우는 물질이 들어있는데, P쿠마릭산과 클로로겐산은 식품 속의 질산과 결합하여 암 유발물질인 니트로사인이 형성되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꿈꾸는 그곳 번역본 보기
Tarte Tatin di pomodori
written by Daniela Barutta
Il pomodoro. Protagonista assoluto dell’estate italiana e testimone della capacità e flessibilità nostrana di sfruttare le risorse disponibili. Da frutto esotico importato dall’America del Sud nel XVI secolo, pare per scopi ornamentali, è stato oggetto di sperimentazioni gastronomiche nel nostro paese dal 1700 con grande successo.
La Tarte Tatin, come ben si sa, nasce come una torta capovolta, in cui le mele cuociono in un ricco caramello e vengono coperte da una pasta brisée fragrante. L’idea di sfruttare la tecnica di questa preparazione ed applicarla a piatti salati è geniale, ed è stata impiegata anche da chef stellati, come Davide Oldani con la suaCipolla Caramellata.
L’ispirazione e la ricetta per questa Tatin di Pomodori provengono dal libro “Da uno a infinito” di Stefania Corrado, e l’immagine di questo piatto che appare sulla copertina è proprio uno dei motivi che mi ha spinto ad acquistarlo. Il libro è proprio figo, suddiviso in base alle stagioni, unisce tecnica ad accostamenti accattivanti e raffinati, facendo capire in modo non scontato che, in base alla situazione, con stile e creatività si possono declinare differentemente gli ingredienti.
Ho usato pomodori di grandezza media, ben maturi ma sodi. Bisogna cercare di evitare pomodori con troppa acqua, altrimenti si rischia di inumidire eccessivamente la pasta. Non ho preparato la “pasta sfoglia minuto” che indica Stefania Corrado per mancanza di tempo sufficiente, ma ho fatto una pasta brisée ottima e veloce, tratta da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di Julia Child.
TATIN DI POMODORI
Ingredienti per una teglia da 26/28 cm – sufficiente per 10 persone
PASTA BRISEE
170 g di farina 0
135 g di burro ben freddo
5 cucchiai di acqua ghiacciata
2 pizzichi di sale
poi
1 kg di pomodori di media grandezza, maturi ma sodi
100 g di zucchero semolato
25 g di burro
olio evo, sale, pepe
timo
Per primo preparare la pasta brisée.
Tagliare il burro a tocchetti e mischiarlo velocemente con la farina, usando la planetaria o a mano, fino ad ottenere una sabbia grossolana. Se si procede manualmente è molto importante essere veloci e cercare di avere le mani fredde, per non rischiare di scaldare il burro.
Aggiungere il sale, e poco alla volta l’acqua fino a formare una palla di impasto compatta e malleabile, e non umida e appiccicaticcia.
Trasferire il tutto su un pianale infarinato per il cosidetto “fraisage“, la lavorazione finale di burro e farina. Usando il “tallone” della mano, allungare l’impasto pressandolo sul piano di lavoro. Aiutandosi con un raschietto o una spatola staccare l’impasto dal pianale, riformare una palla, ricoprirla di pellicola e farla riposare in frigorifero per almeno 2 ore.
Nel frattempo preparare i pomodori.
Incidere i pomodori e sbollentarli per 1 minuto; scolarli in acqua e ghiaccio e procedere a pelarli.
Dividerli a metà e privarli di tutti i semi con cura e lasciarli sgocciolare per una decina di minuti (anche di più) in un colino.
Condirli con olio, sale, pepe e qualche fogliolina di timo.
Far caramellare lo zucchero a secco in una padella antiaderente e versarlo in una teglia da 26-28 cm e lasciarlo intiepidire.
Distribuire tocchetti di burro sopra il caramello e disporre con cura i petali di pomodoro precedentemente ricavati, appoggiandoli in modo da avere la parte concava visibile.
Ricoprire con la pasta brisée stesa sottile (3-4 mm) e della dimensione della teglia. Con la punta di un coltello praticare qualche foro e rincalzare bene gli angoli, in modo da creare una sorta di guscio intorno ai pomodori.
Cuocere in forno preriscaldato a 170-180° per 20-30 minuti.
Lasciarla intiepidire per pochi minuti ed estrarla dalla stampo, capovolgendo la Tatin su un piatto con delicatezza.
Una preparazione golosa e raffinata, che intriga nel suo leggero contrasto tra dolce e salato. Veramente deliziosa così com’è, tiepida o fredda . Ma dev’essere una goduria abbinata a una quenelle di ricotta di bufala come propone Stefania Corrado.
Enjoy!
- Cristoforo Colombo (in latino: Christophorus Columbus, in spagnolo: Cristóbal Colón, in portoghese: Cristóvão Colombo; Genova, fra il 26 agosto e il 31 ottobre 1451[1] – Valladolid, 20 maggio 1506) è stato un esploratore e navigatore italiano, cittadino della Repubblica di Genova prima e suddito del Regno di Castiglia poi. È stato tra i più importanti navigatori[2] che presero parte al processo di esplorazione delle grandi scoperte geografiche a cavallo tra il XV e il XVI secolo. [본문으로]
- Nacque a Siena nel 1501 (1500 ab incarnatione), ma passò la sua infanzia a Venezia, dove il padre, Francesco, esercitava la professione di medico. L'anno ab incarnatione A quell'epoca, nel Senese e nel Fiorentino, si utilizzava un calendario diverso da quello usato attualmente e che inizia con il primo di gennaio. Quello senese e fiorentino, infatti, iniziava il 25 marzo, ovvero il giorno dell'Annunciazione a Maria. Tutte le date erano quindi un anno indietro tra il 1º gennaio e il 24 marzo. Questo modo di contare gli anni si chiamava "ab incarnatione" e poiché Mattioli nacque e morì proprio nei primi mesi dell'anno, ne derivano due date diverse sia per la sua data di nascita che per quella di morte, a seconda del calendario considerato. Mentre infatti per il calendario gregoriano il 1501 va dal gennaio 1501 al dicembre 1501, per quello senese e fiorentino i primi tre mesi dell'anno, ovvero dal primo gennaio al 24 marzo, si è ancora nel 1500. Bisogna quindi fare attenzione allo stile delle date per quanto riguarda la biografia di Mattioli come quella di altri personaggi dello stesso periodo, anche perché papa Gregorio XIII riformò il calendario nel 1582 saltando 10 giorni in ottobre ma i domini fiorentini si allinearono al nuovo calendario solo a partire dal 1750. Appena sufficientemente grande, il padre lo mandò a Padova dove inizia a studiare varie materie umanistiche, come il latino, il greco antico, la retorica e la filosofia. Tuttavia Pietro Andrea si appassionò più che altro alla medicina, e proprio in questa materia si laureò nel 1523. Quando il padre morì, tornò tuttavia a Siena ma la città era sconvolta da una faida fra famiglie rivali per cui decise di recarsi a Perugia per studiare chirurgia sotto il maestro Gregorio Caravita. Da lì si trasferì a Roma dove continuò i suoi studi medici presso l'Ospedale di Santo Spirito e lo Xenodochium San Giacomo per gli incurabili, ma nel 1527, a causa del sacco dei Lanzichenecchi, decise di lasciare la città per trasferirsi a Trento dove rimase per un trentennio. [본문으로]
- Antonio Latini nacque a Colle Amato, presso Fabriano, nel 1642. Rimasto orfano all’età di cinque anni, fu costretto a servire fin dalla più tenera età in cambio di un tetto sopra la testa e di che sfamarsi. Che fosse di umilissime origini lo sappiamo per certo, perché è stato recentemente ritrovato e pubblicato il manoscritto dell’autobiografia, dettata nel 1690 a un frate. A sedici anni, dopo aver imparato a leggere e a scrivere presso la nobile famiglia Razzanti di Matelica, Latini tentò la fortuna emigrando a Roma. Assunto dal cardinale Antonio Barberini come sottocuoco, passò a mansioni via via superiori, per approdare infine, a soli ventotto anni, all’ufficio di scalco, ossia di soprintendente alle cucine, a cui spettava selezionare e dirigere i cuochi e la servitù, rifornire la dispensa e organizzare i banchetti. In casa Barberini imparò anche la difficile arte del trinciante, i modi del gentiluomo e a tirar di spada. Successivamente esercitò la scalcheria a Macerata, Mirandola e Faenza. Concluse degnamente la carriera a Napoli, alle dipendenze del reggente Esteban Carillo Salsedo. Qui crebbe la sua fama; qui fu insignito del titolo di cavaliere dello Speron d’oro; qui, negli ultimi anni della sua vita, compilò Lo scalco alla moderna, o vero l’arte di ben disporre i conviti, che diede alle stampe in due volumi tra il 1692 e il 1694. Morì nel 1696. [본문으로]
- Vincenzo Corrado (Oria, 18 gennaio 1736 – Napoli, 11 novembre 1836) è stato un cuoco, filosofo e letterato italiano. Uomo di grande cultura, fu soprattutto grande gastronomo e uno dei maggiori cuochi che si distinsero tra il '700 e l'800 nelle corti nobiliari di Napoli, simbolo del suo tempo nella variegata realtà partenopea. Fu il primo cuoco che mette per iscritto la "cucina mediterranea", il primo, a valorizzare la grande cucina regionale italiana. Scrisse Il cuoco galante nel 1773, definito all’epoca un libro di alta cucina, testo richiesto in tutto il mondo dalle principali autorità dell'epoca, e ristampato per ordini del principe per ben 6 volte. Preparava elegantissimi banchetti in principio alla corte di Don Michele Imperiali Principe di Modena e Francavilla presso il palazzo Cellamare di Napoli, dove coordinava un piccolo esercito di maggiordomi, domestici, volanti e paggi e preparava i pranzi o le cene con particolare assortimento di vivande accoppiandole con tanta fantasia e particolari accorgimenti architettonici ed artistici al fine di formare una coreografia sontuosa e raffinata. [본문으로]
- Discendeva da un'antica famiglia nobile dalla quale proveniva il più famoso poeta Guido Cavalcanti, amico di Dante. La famiglia nel 1311 lasciò la Toscana per trasferirsi nel Regno di Napoli, dove nel 1331 Giovanna I nominò viceré uno dei Cavalcanti. Già baroni di Buonvicino i Cavalcanti nel 1720 ricevettero il titolo di duca di Buonvicino, in Calabria Citeriore. Ippolito nasce da Guido Cavalcanti , 4º Duca di Buonvicino e 4º Duca di Montemurro dal 1799, Patrizio di Cosenza, Governatore di Tropea nel 1783, Governatore di cappa e spada di Napoli nel 1785 e dalla sua seconda moglie Anna Capparelli. Nel 1810 sposa Angela Como dei duchi di Casalnuovo e Baroni di Santo Stefano Molise. Con il cognato Giuseppe Como, barone di Santo Stefano, Ippolito Cavalcanti fece parte degli Eletti di Napoli, un a ristretta cerchia di cittadini che collaboravano al governo della città. [본문으로]
- 라이코펜(Lycopene) 또는 리코펜은 빨간 카로티노이드의 색소로, 토마토와 기타 빨간 식물에서 찾을 수 있는 파이토케미컬이다. 카로틴과 이성질체 관계에 있다. 라이코펜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흔한 카로티노이드이며 가장 효능이 좋은 카로티노이드 산화 방지물 가운데 하나이다. 라이코펜은 토마토의 생물 분류 에서 가지속((―屬)의 토마토 종 (―種)인 Solanum lycopersicum (주로 Lycopersicon esculentum)을 어원으로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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