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백으로 향하는길은
설레임 그 자체였다.
출발하기 전 부터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한 여정...
자정을 막 넘겨 도착한시간이 4시간여
미리 도착하여 자동차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그틈에 끼여 잠을 청하는데
신년의 일출을 기대하니 도무지 잠이 오질않았다.
새벽 4시반 정도면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유일사 입구 매표소에는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남원주->재천->석항->영월->태백으로 이어지는 태백산 입구
바람이 일고 있는 주차장 입구의 온도는 영하4도씨
추운 날씨는 아니건만 몸이 브르르 떨린다.
설렘의 표시다.
모든것을 뒤로한 채
무작정 몸을 맡긴 사람들...
이들을 반겨줄 곳은 이곳 태백이다.
한 해동안 얼마나 사랑하며
또 얼마나 부대끼며 살아 왔던가?
기쁨과 슬픔과 노여움이 실타래 처럼 엉겨서
더 앞으로 가지 못할 때
산은
그 실마리를 풀어준다.
그저 몸을 맡기면 된다.
잠시 눈을 부치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는데
깜박 잠이 들었다가
사람들의 웅성임에 놀라 깬 시각이 새벽 4시 15분...
등산로 입구는 마치 거대한 집회가 열리는 행사장 같았으며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한곳을 바라보며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잠든 사이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버스와 승용차들이 토해낸 사람들 틈에 내가 서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
줄을 서지 않으면 안될 정도다.
그동안 나는 뭘 했을까?...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이 먼곳을 한걸음에 달려와서
난리법석인가?
반디불이 처럼
머리에는 모두들 후레쉬를 이고 있다.
초입부터 아이젠을 착용해야 될 만큼 눈이 쌓였다.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산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산등성이에 서기만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데...
모두들 한가지 이상의 소원을 배낭에 짊어지고(?) 산을 오른다.
유일사 입구
물처럼 떠 밀려 올라가던 거대한 군중이 멈추어 섰다.
여기서도 병목현상이 생겼다.
완만한 산길을 돌아서 첨으로 좁은 등산로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사람들이 흐르는 틈에 나도 그저 흘러서
또 떠 밀려서 산 위로 올려지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있으나
눈 속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자세를 잡는 사이
먼곳에서 동이트고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사람들의 발길이 빨라지며
곁에서 호흡이 거칠게 들렸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알지못할 신음과 같은 감탄을 자아냈다.
어둠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설화가
터널을 이루며
밤새 달려온 사람들을 가슴으로 맞는다.
"어서 오너라!!~~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태백이 팔을 벌려 조용히 반기고 있다.
주목군락지 사이로
사람들이 떼지어 조용히 걸음을 옮길 때 마다
태백은 산행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비록 산의 경사가 완만하다 할지라도
1500m이상의 고지를 오르면 힘들법도 한데
사람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수천년 동안 보지 못한 어버이를 만나는 길...
태백은 하얀 비단길로 아들 딸을 반기고 있다.
"어서 오너라!!~~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곳곳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태백과 아들 딸들의 해후가 시작되었다.
어디갔다...이제 왔냐~?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고생 많았지?~~!
정상이 가까와지자
완만한 능선을 이동하는 사람들은
생전 첨 보는 광경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거나 핸폰을 내 보이며 반짝였다.
태백은 기뻐서 춤을 추고 팔을 힘껏 벌려서
새벽을 걸어온 아들 딸들을 안았다.
태백이 기뻐서 옷깃을 날릴 때 마다
하얀 눈보라가 비단결 처럼 날렸는데
얼마나 나의 뺨을 어루만졌는지 뺨이 얼얼했다.
나는 첨으로 태백과 입마춤을 했다.
아니 입맞춤을 받았다. ^^*
정상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던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곳곳에 널린 태백의 정원은
봄이되면 철쭉으로, 겨울이면 설화로 감탄을 자아낸다는데
어떤이는 이 광경을 두고 설쭉(?)이라고 했다.
태백은 밤새 아들 딸들을 위하여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맘껏 놀다가거라!
내가 너흴 사랑한다!~"
천제단으로 가는길은
꽃길이었다.
천국으로 가는길...
세찬 풍상을 마다않고 수천년을 기다려온 태백...
태백은 아들 딸들을 보자
너무 기뻐서 울부짖으며 아들 딸들을 껴 안았는데
나도 그 속에서 어린아이가 되었다.
"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ㅠ"
내 아버지에 아버지로 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리의 찌든 영혼을 말끔이 씻어 준 산
거기... 하늘을 향하여 祭를 올리던 곳
천제단을 향하여 사람들은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철쭉나무에 묻은 고운 은가루들은
바람의 계곡에서 불어 올린 세찬 바람으로 흔들리고 있었는데
꼭 어버이께서 입고 계시던 풀먹인 모시적삼과 같았다.
산 허리에는 곧고 긴 나무들이
산 꼭대기에는 떨기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태백의 정상에는 주목이 있다.
그 위풍당당함이 태백의 모습이라...!!
결코 모가 나지 않았고 둥근 모습은
어찌그리 근엄한 어버이 같은가?...
그럼에도
세찬 풍상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몸을 낮추고 겸손하라고 태백은 나에게 말한다.
정상에 이를수록 몸을 낮추고 있는 나무들...
오직 인간들만이
세상의 정상에서 오만을 부리고 있다...
" 더 겸손하라! 더 지혜롭게 살아라!
이웃과 더 화목하라! 서로 사랑하며 살거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너희도 서로 사랑하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