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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수원 화성 220주년에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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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의 그리운 4월
-수원 화성 220주년에 부침-



수원 화성 봉돈 앞에 피어난 자목련...!


2015년 4월 어느 봄날, 수원 화성 봉돈 앞에는 뜨거운 가슴을 닮은 자목련이 활짝 만개해 이방인을 반겼다. 마치 시집간 누이가 친정을 찾은 느낌이랄까. 화성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군가 따로 아는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다. 화성 곳곳은 물론 수원의 명소 곳곳은 필자('나'라고 한다)가 살고있는 서울의 명소 보다 더 뻔질나게 들른 곳. 그 중에 수원 화성은 내게 남다르다. 화성을 방문할 때마다 한 시민의 허전한 마음을 다독거려준 곳. 





대도시에서 살아가는동안 가슴속에서 다 아물지 못한 생채기는 화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것.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그러나 방문 횟수가 거듭되는동안 화성이 가진 정체성 내지 매력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것. 수원 화성에 깃든 정조대왕의 얼과 선조님들의 얼이 생채기를 다독 거리며 잠시 편안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곳에 서면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육성을 기억해 낼 수 있고, 아부지와 엄니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 어떤 이유에서든지 바쁘게 사는동안 우리는 나(我) 밖에 모를테지만, 화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 등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대왕도 다르지 않았다. 당신께옵서 정약용 선생 등과 함께 수원 화성을 축성할 당시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 구한말(舊韓末)에 태어나신 할머니께선 손자들을 챙기면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분이 사도세자였고 정조대왕이었다. 벌써 몇 번째 끼적거리는 지 모르겠다. 이랬다.


"아(아이)들 혼내키지 마라. 가(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애비가 뒤주속에 새끼를 가둬..."




할머니께선 어릴 적 무시로 혼날짓을 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부지를  향해 조금은 과장된 어법을 동원하셨다. 할머니 가슴속엔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었던 사도세자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구한말부터 1980년까지 살아오신 할머니의 가슴속에는 늘 사도세자가 자리잡고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아들을 죽게 만든 영조임금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덕분에(?) 우리 남매 아니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인 개구장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내게 수원 화성은 그런 곳이었다. 정조대왕의 정치적 야심 등이 어린 가슴에 자리잡을 수 없는 만큼, 정조대왕 보다 더 기억에 오래남았던 사도세자는 머리가 다 큰 훗날 서서히 지워지면서 정조대왕이 더 뚜렷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당신께서 겪으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극복하고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반듯한 유물 하나를 후손들에게 선물하신 것. 그게 어느 봄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화성의 봄날이었다. 화성 축성 219년이 되는 해였다.




나는 화성의 남수문 곁에 위치한 동남각루를 지나 동삼치와 동이포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성곽을 따라 걷기도 하고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4월이 선물한 아름다운 봄날이 성곽에 기댄채 졸고있는 곳. 참 아름다웠다.




화성 축성 219주년의 대한민국 현주소


성곽 틈새로 바라본 화성안의 모습은 너무 평온하고 아름다워 숨이 멎을 듯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기는 커녕 결코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은 곳.그들의 가슴 속에는 세상을 향한 원망이 가득했으며, 누군가 보듬어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것. 2015년 4월 대한민국의 민낯이 그랬다. 




우리 곁에 다가온 4월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 정부와 정치 혹은 정치인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특히 지난해 자국민 300여 명이 수장된 진도 앞 바다에서는 해가 바뀌어 1주기를 맞이한 현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 규명과 실종자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할 당시 사정도 이러했을까...?




수원 화성의 진정한 자랑거리


동이포루에 올라가 화성을 바라보니 꿈같은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 안팍에는 봄꽃들이 어지럽게 만발했고 성곽은 높은 듯 나지막하게 사람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는 곳. 이렇듯 우리에게 선조님들이 남긴 훌륭한 유산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자 참 고마운 일이었다. 화성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 중에는, 18세기 유일의 군사시설물이자 외국의 축성 방식을 도입해 효율을 극대화 한 것이라고 말한다.




화성은 독특하게도 18세기에 만들어진 전세계의 군사시설물 가운데 '석재'를 사용한 유일한 성곽이었다. 또 화성의 특징인 치성,옹성,공심돈 등 우리나라의 성곽에 도입되지 않은 축성 방식을 중국의 오래된 축성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는 것. 성벽을 돌출시켜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공격하기 용이한 치성이나,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옹성은 화성의 독특한 시설물인 것. 또 공심돈은 적을 감시하는 돈대이자 불랑기포 및 백자총을 이용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었다. 




그러나 수원 화성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시설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정조대왕께옵서 능행차시 서장대(화성장대)에 올라 화성행궁을 내려다 보며 장용영의 군사를 지휘했던 서장대의 실루엣이 솔숲과 봄꽃 사이로 보이는 곳. 




화성의 규모가 짐작되는 곳에서 화성의 진정한 매력 내지 자랑거리를 떠 올리며 흐뭇해 했다. 그건 화성의 빼어난 축성 기술도 성곽의 모습도 아니었다. 수원 화성의 하드웨어가 정조대왕이라면, 화성의 소프트웨어는 단연 정조대왕의 얼이었던 것. 화성 어디로 발길을 옮겨도 정조대왕의 얼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어보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분오열된 채 고아처럼 방황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구심점을 잃고 사는 것. 우리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한 때문이 아닐까. 화성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화성으로부터 받게된 포근한 기운과 위로였을 것. 가난하고 낮은자 혹은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듬을 수 있는 건, 정조대왕으로부터 발현된 화성만이 가진 치유의 힘이자 우리가 돌아봐야 할 화성의 진정한 가치일 것.  


 

수원 화성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


화성이 축성된 지 어느덧 219주년을 맞이했고 내년이면 22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가끔씩 수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수원시(시장 염태영)가 화성을 잘 가꾸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화성 주변의 땅을 매입해 화성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가 하면 행궁동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는 등 수원시민이 힘을 합쳐 가꾼 화성은 우리나라의 진정한 보물 1호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특히 수원화성문화제에서 만난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는 이를 처음 봤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정조대왕이 부활한 것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가슴 설랬다. 그게 나만 그런 줄 알았지만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 모두가 열광했다. 이를테면 행사에 등장한 정조대왕은 시쳇말로 '짝퉁'이었지만, 정조대왕이 화성의 정문이자 북문인 장안문에 도착하자 백성(?)들의 환호가 이어졌던 것.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었고 덩달아 흥분했었다. 왜 그랬을까...!! 




그동안 세상은 정조대왕의 염원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당신께옵서 불취무귀를 꿈꾸었지만, 더 이상 배고플 이유도 없을 것 같은 세상 사람들이 여전히 목말라 하는 게 있었던 것. 마시고 또 퍼 마셔도 배고픔과 갈증이 가시지 않았던 건 알 수 없는 소외감과 외로움이었으며 지독한 고독함이었던 지...




화성 축성 후 219년 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효심 지극했던 정조대왕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이 나라 이 땅에는 국민들이 위탁한 권력이 존재하고 정치인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들은 전혀 국민들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꼈고 권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수원 화성 220주년에 부친다


다행이었을까...사람들이 도망치듯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서울에서 1시간 남짓한 장소에 화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조대왕께옵서 능행차를 떠나며 지극한 효심을 보였던 길이다. 서울로부터 대략 60km 떨어진 곳에 피안의 세계이자 보통사람들의 안식처가 만들어졌던 것이며, 정조대왕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대명천지로 바뀌어 지구촌 곳곳의 소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손아귀 속에 들어왔다. 휴대폰을 열어 앱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도께비 방망이 같은 세상이 열리는 것. 출근길 그 복잡한 전철 속에서도 사람들은 디지털에 열광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잠시 흥미를 돋구던 앱이 허전함을 달래줄 망정 삶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 할 수 없는 것. 




수원 화성을 아끼는 한 시민이 화성 축성 220주년에 부친다. 화성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잊고 살거나 잃어버린 아날로그의 향수로부터 출발한다. 정조대왕이 친히 보여준 효심이나 당신께서 꿈꾼 사람사는 세상은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밖에 없을 것. 이 시대가 목말라 하는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수원시는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앞두고 4개분야에 걸쳐 34개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게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였다. 정조대왕은 화성 착공 이듬해인 1795년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한강 배다리터-안양-수원을 거쳐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성 융릉까지 60㎞에 걸쳐 행차를 했는데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서울시(시장 박원순)와 함께 추진하기 위해 논의중이란다. 




참 반가운 일이다. 원컨데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서울 창덕궁으로부터 출발해 한강을 건너 수원 화성 장안문과 정조로로 이어지는, 꿈같은 행사가 국가적 축제로 승화되었으면 싶다. 대한민국의 요즘 표정이 너무 어두운 시기에 활로를 모색하는 건 당연할텐데 그 일을 수원 화성으로부터 답을 찾아내었으면 싶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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