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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ondamento della Cheonan/Naufragio del Sewol

[진도여행]여행자 태워준 고마운 진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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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뒷이야기
-여행자 태워준 고마운 진도 아저씨-




"진도에선 청년회장의 나이가 50~60대란다. 왜 그랬을까...?"


지난 13일 오후 4시 27분경, 필자('나'라고 한다)는 진도 팽목마을 입구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선 팽목항이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곳. 조금 전 나는 팽목항에서 허겁지겁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왔다. 팽목항에서 진도군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않았다. 점점 더 조바심이 났다. 세월호 도보행진단이 진도 군청에 도착할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시간을 보니 대략 1시간 이내에 진도 군청 앞까지 가야했다. 팽목항에서 어영부영(?) 할 때까진 몰랐지만 막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 속이 타들어 갔다. 그래서 팽목항 근처를 배회하시던 주민 한 분(노인)께 물었다.


"선생님,팽목항으로 버스가 언제 오나요?"

"오긴 오는데 자주 안 와요. 저~기(버스정류장을 가리키며) 언덕배기에 가면 버스가 올 겁니다."


(이런 젠장...ㅜ)나는 그것도 모르고 팽목항 곁에서 팽목항을 오가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내려다 본 팽목항은 꽤 멀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버스정류장...잠시 윗도리를 벗고 땀을 말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저만치서 봤을 때 언덕 위로 버스 한 두대가 지나가는 게 보였는데 그게 막차였을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만 흐르면 2박 3일간의 진도로 떠난 취재여행은 수포로 돌아갈 뻔 했던 것. 


대책이 (急)필요했다. 그래서 공자님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窮卽變 變卽通)'고 했던가.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서 히치하이커(Hitchhiker)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무런 차량이나 진도읍 쪽으로 나가는 차는 통사정을 해서라도 타고 떠나야 했다. 그때부터 생전 처음으로 안 해 본 짓을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량이 봉고차든지, 자가용이든지, 포터든지, 저만치서 다가오는 차량이란 차량을 향해 손을 들고 '좀 태워달라'며 애원을 했다. 그때마다 차 속에선 손으로 가리키며 가까운 곳으로 간다든지, 안 된다며 손사레를 쳤다. 오후 4시 반경의 진도 팽목마을 입구는 차량의 통행이 점점 뜸해졌다. 그때였다. 저만치서 승용차 한 대가 언덕 위로 다가오길래 다시 손을 들었다. 행운이었다. 잠시 내 앞을 지나치려던 차량 한 대가 멈추어서면서 어디로 가는 지 물었다.


"진도 군청요...(간절한 표정으로 ㅜ)"

"...타세요.^^"

"어이쿠 고맙습니다. (아흑...ㅜ)"


벼랑 끝에 몰려 초읽기에 들어간 나를 구해준 분은 진도 토박이('진도 아저씨'라 부른다)셨다. 부부가 볼일 때문에 진도읍 쪽으로 나가는 길에 나를 만나게 된 것. 두 분은 60대의 나이로 보였다. 졸지에 히치하이커로 변신한 한 여행자는 자동차 뒷좌석을 빌어타고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 진도 아저씨의 배려는 남달랐다. 무임 승차한 내게 진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안함 내지 미안함을 삭혀주었다고나 할까. 





진도 아저씨가 핸들을 잡고 차속에서 내게 전해준 진도 사정은 진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이 처한 실정이기도 했다. 진도에선 청년회장의 나이가 50~60대라고 말씀하셨다. 웃을 수 밖에 없었지만 진도에는 청년들의 나이가 50~60대며 농촌을 지키는 나이였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심각했다. 진도의 인구는 8만명에서 3만명으로 급격히 줄었는데 그 이유는 진도대교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진도는 이미 섬이 아니었고 진도의 처녀들은 모두 서울이나 대도시로 (돈벌러)떠났다는 것. 따라서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진도의 남자(장남)들은 이때부터 '처녀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변하고만 것이다. 그동안은 마을과 마을을 통해 분가를 해 인구가 줄지 않았지만 사정이 달라진 것. 농사는 돈이 안 되고 힘만들어 모두 도시로 나가면서 인구가 급격힌 준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외국인 여성과 결혼해야 하는 일이 생긴 웃지못할 이야기였다.





"...그래서 요즘같은 경우는 처녀 총각이, 특히 처녀가 부족한 거죠. 처녀들은 있어도 인자(이제) 공무원들이나 관공서,농협직원,면직원,군직원 이런 직장있는 아가씨들이나 진도에 있을까. 안 그러면 다 나가버리지요."


진도의 청년회장 나이가 50~60대가 된 이유는 주로 이랬다. 혼기를 놓친 청년들이 피일차일 결혼을 미루는 사이 청춘기는 저만치 사라지고, 진도대교 위로 떠난 처녀들은 돌아올 줄 모르는 것. 진도 아저씨는 진도 군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나를 내려다 주며 길을 떠났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진도 아저씨가 저만치 떠날 때까지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그때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한 여행자의 사정을 잘 헤아려 주신 분 때문에 진도 군청 앞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오후 5시 35분이었다. 세월호 도보행진단의 끄트머리가 막 진도 군청 앞 철마광장에 들어설 즈음이었다. 기적같은 일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 덕분에 '세월호 도보행진 관련 포스트'를 13편까지 끼적거리게 됐다. 다시 한 번 더 지면을 빌어 진도 (토박이)아저씨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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