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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스님

짜장스님,19박 20일의 기적을 일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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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19박 20일의 기적을 일군 사람들-




"기적은 언제쯤 일어나는 것일까...?"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세월호는 좌현으로 서서히, 그러다가 급격히 기운다. 아직 상황을 잘 모르는 학생들은 기울어지는 배에서 웃고 장난을 친다. 배가 점점 기울고 학생들은 당황한다. 구조를 기다리며 친구,부모님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자기들의 상황을 영상으로 찍기도 한다. 

오전 8시 52분배를 관제해야 할 진도 VTS는 이때까지도 상황 조차 몰랐다.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학생의 마지막 문자가 발송된다. "기다리래" 

오전 10시 25분, 세월호는 선수만 남기고 완전히 침몰한다. 최초 신고로부터 90분 동안, 해경은 배 안의 승객을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한 학생은 동영상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나는 살고 싶은 데. 나 울 거 같은데. 나 무섭다고...

욕도 나오는데 어른들한테 보여줄거라 욕도 못하고 진짜 무섭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데..." 

-故김동철 학생이 동영상에 남긴 마지막 말


11시 1분MBC는 [속보]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후 5시경, 청와대(박근혜)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구조가 힘듭니까"





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4편

-19박 20일의 기적을 일군 사람들-



기막힌 일이자 기적은 없었다. 기적이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일컫는다. 대한민국에 일어나는 기적(?)은 자국민 3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있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않는 것일까. 통한의 참사가 버젓이 일어났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어느덧 해가 바뀌어 1주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00여 일이 지났지만, 진도 앞 바다에는 여전히 9명의 실종자가 가족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가 있고 정부가 있으며 정치인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딴청을 피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월호 실종자 및 유가족 생존자 대책위원회에서 19박 20일 동안 450km에 이르는 도보행진을 통해 실종자와 세월호의 진실 인양을 촉구하고 나선 것. 19박 20일의 여정이 끝나는 2박 3일동안 실종자 및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여한 도보행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다. 한마디로 기적의 현장이었다.



도보행진을 도운 기적의 공양간





2015년 2월 14일 오전 5시


간밤에 진도 군청 앞 광장에서 도보행진 1일 해단식을 가진 자리에서 남원의 선원사 주지(운천 스님-짜장 스님)의 저녁 공양이 있었다. 안산 분향소에서부터 18일간 여정이 마침내 진도에 입성하게 된 것. 필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감개무량해 했다. 보통 사람들이 450km나 되는 그 먼길을 18일동안 걷는다는 건 기적이었다. 낙오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질서정연한 도보행진의 대오를 유지하며 무릎보호대까지 착용한 유가족 등을 보고 있자니 그저 가슴만 먹먹할 뿐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안산 분향소나 팽목항을 미리 다녀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머리속에는 '하늘로 간 수학여행'과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 남긴 가슴 찢어지는 표현이었다. 이랬지...!


"2014.4.16 

이날의 하루 전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들을 꼭안고 

절대로 아무데도 

보내지 않을거야 

정말 미안해..." 

-엄마의 노란손수건




남원의 천년고찰 선원사 주지 짜장스님(운천 스님)의 지휘 아래 도보행진단의 공양을 지원한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엄마들이었다. 멀리 대전에서 오신 분도 있고 진도읍에서 오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부산에서 여수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분들이 도보행진단의 공양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이날 필자는 그 모습 전부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콩가루처럼 사분오열돼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이튼날 저녁부터 이어진 네 끼니의 공양은 톱니바퀴가 물려가는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적을 만들어 갔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도보행진단은 또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기적의 공양현장을 스케치해 봤다.



19박 20일의 마지막 새벽을 깨운 사람들




큼지막한 솥단지가 걸려있고 주변에 서성거리는 분들이 도보행진 자원봉사에 나선 분들이다. 이 때 시각은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으로 30분 정도만 더 기다리면 아침 공양이 시작된다. 




이날 아침 공양 준비는 오전 5시부터였지만 최소한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알람을 4시 반에 맞추고 자리에 누웠지만 4시에 일어나 아침 공양 준비를 지켜보게 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5시에 특설된 공양간에 모여들었다.




짜장스님의 공양에 따라다니는 브랜드는 '착한스님짜장'이다. 하지만 도보행진단의 공양은 짜장면이 아니라 밥과 떡국이었다.




아침 공양을 부지런히 준비하는 공양간 하늘 위로 하현달이 쪽배처럼 떠 있다. 설날 일주일 전의 모습이다.




그 아래 19박 20일의 마지막 새벽을 깨운 아름다운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짜장스님과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은 수 백명에서부터 수 천명에 이르는 기적같은 공양을 빈틈없이 착오없이 해 냈다. 19박 20일 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 공양부터 점심과 저녁 공양까지 이어지는 과정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 당시 구심점 없이 허둥대는 것 이상으로 방관한 사람들이 자꾸만 비교됐다.




희한하게도 자원봉사에 나서거나 자원봉사 티를 내지않는 사람들은 자기를 낮추거나 감추는 말 없는 시민들이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것. 19박 20일의 도보행진이 끝날 때까지 그분들의 말 없는 봉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적을 일군 바탕 전부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이른 아침 첫술을 뜬 사람들




아침 공양이 시작되면서 이번에는 첫술을 뜬 사람들이 고마워진다. 도보행진단에 참여한 분들은 유가족 및 실종자와 생존자 가족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들과 취재진들이었다. 이웃의 아픔에 기꺼이 동참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었다.




오전 6시 45분, 진도 군청 앞 광장은 여전히 깜깜한 가운데 천천히 공양이 시작되고 있다. 이미 유가족 등 도보행진단은 일어나 아침 공양을 준비하고 있는 중(*영상에 유가족의 인터뷰와 아침 공양 과정 전부를 담아두었음.)




도보행진단에는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세월호 참사 과정 전부를 지켜본 아이의 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2014.4.16 

이날의 하루 전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들을 꼭안고 

절대로 아무데도 

보내지 않을거야 

정말 미안해..." 




지난해 4월 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짜장스님의 아침 공양 준비처럼 일사불란하게 돌아갔으면...MBC의 속보는 '역사적 오보'로 남지않았을 것.




두고두고 아쉽고 원통한 일이었다. 다시 울컥해진다.


"너희들의 빈자리는 바로 나의 자리다"




오전 7시 7분경,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어둠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앞에선 어쩔 수 없다. 




기적은 준비하고 행하는 사람들 앞에서 매 순간 일어난다.


"힘들지 않으셨어요...?"

"아뇨,견딜만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아침 공양...!




진도 군청 앞 광장은 새로운 이벤트에 들뜬 분위기다.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미역국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지난 저녁 공양은 배추시래기를 곁들인 된장국이었지만, 짜장 스님은 속도 풀겸 미역국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날 아침 진도의 기온은 영하 2도였고 바람은 없었지만 추운 날씨였다. 도마 두 개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 테이블은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었다.




마침내 기적같은 아침 공양이 끝을 보일 때 날이 밝았다. 아침 공양이 끝날 때쯤 전국에서 모여든 도보행진 시민참여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이날 도보행진에서 눈에 띈 모습이 있었다. 적지않은 분들이 무릅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무릎 연골이 많이도 상해 부어올랐다고 했지만 이분들을 걷게 한 힘은 진도 팽목항 앞 바다에 있었다. 다리를 절면서도 18일동안 걷고 19박 20일 아침을 맞은 것. 인터뷰를 청하면 자꾸만 목이 메였다. 지난 19일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19박 20일동안 도보행진을 하는 동안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 1박 2일의 혹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힘든 건 팽목항에 도착해도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것. 그 심정을 물어보니 "울어 버릴 것"이라며 말을 흐렸다. 19박 20일의 마지막 날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도보행진 출정식 등이 있었다. 그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도 새벽을 깨운 사람들 때문이다. 이날 하루종일 기적이 일어났다. <계속>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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