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올라가는 입구도 변하지 않았는 데 달라진 게 눈에 띄었다. 그땐 이국적인 모습의 화초가 너무 신기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펜션에 페인트를 입힌 것. 꽃단장(?)을 한 게 이런 정도다. 뿌에르또 옥따이에서 제일 큰 펜션(Cabaña)이다. TV안테나가 인상적이다. 간판하며...^^ 참고로 알려드린다. 이곳에선 바캉스 시즌(연말연시) 한 철동안 반짝 특수를 누린 후 1년을 먹고 산다는 것. 그래서 비수기에는 흥정하는 만큼 방값을 절약할 수 있는 곳이다.
펜션 주인 아주머니와 헤어진 뒤 둘러본 곳. 10년 전에 우리가 묵었던 방이다. 허름해 보이지만 여기선 숙소가 이곳 뿐이었다. 1인용 침대 두 개와 샤워기 하나 달린 욕실 하나와 취사도구가 갖춰진 곳. 그 때와 달라진 게 없는 데 아주머니만 달라진 것일까. 감회가 새롭긴 했다. 하지만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오래전 추억의 흔적을 쫓아 뿌에르또 옥따이를 둘러보기로 했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곳.
마을 어귀에 핀 사과꽃이 봄볕에 흐드러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녀석들은 칠로에(Chiloé)와 장끼우에 호수(Lago Llanquihue)에 서식하는 껠떼우에(Queltehue,tregle)란 조류로 생김새가 독특하다. 주둥이 앞쪽과 앞 이마가 까맣다.
확대해 보니 이런 모습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소박해 보이는 집 뒷뜰에도 사과꽃이 흐드러졌고, 볕은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따갑다. 그러나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운 희한한 날씨.
호숫가에서 바라본 오소르노 화산
감개무량했다. 세상을 사는동안 오래된 추억이 박재된 장소로 다시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반대편에 위치한 한 호숫가에서 눈 덮힌 오소르노 화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 저편에서 찬바람이 일렁거리고 호숫물도 덩달아 일렁이는 곳. 빛바랜 왕골들이 바람에 서걱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변해가건만 오소르노 화산과 장끼우에 호수는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세월은 오고가도 변함없는 대자연이 새삼스럽다.
10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장끼우에 호수와 오소르노 화산. 호숫가에서 바라본 오소르노 화산은 신이 거처하는 곳일까. 이곳 사람들의 일상에서 해와 달처럼 빼놓을 수 없는 게 눈 덮힌 오소르노 화산이자 신앙같은 존재. 그곳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뿌에르또 몬뜨에서 뿌에르또 바라스를 거쳐 뿌에르또 옥따이로 올 때까지 가슴 속에 품없던 감정이 알량하게 다가온다. 오래전에 만났던 기억 속의 한 낮선 아주머니로부터 작은 위안과 기쁨을 느끼려했던 게 얼마나 초라해져 오는 지.
하지만 우리 기억속에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길을 따라 언덕위에 오르면, 눈이 시린 풍경 때문에 다시금 속이 시원해져 온다. 어쩌면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가슴에 품을 회한 조차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자리에서 깰 때나 잠자리에 들 때도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듬직한 산봉우리와 드넓은 호수는 장차 돌아갈 곳으로 믿지않았을까.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영혼이 호숫바람에 실려 다시 고향 땅을 찾게 될 것 같은 곳. 죽기 전에 가보면 너무 좋은 곳이다. 우리도 추억 한자락 묻어놓고 돌아선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가는 길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곳이 없었다.
달라진 곳이라곤 이 마을에서 규모가 제일 큰 한 카페 레스토랑(Puerto Muñoz Gamero)이다. 한 때 거대한 목조건축물이었지만 겉모습이 점점 더 퇴색돼 가고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10년 전의 추억이 깃든 선착장으로 가 보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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