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건축가가 지어야 된다는 편견과 '디워'
집은 '건축가'가 지어야 된다는 편견이 디워 100분토론의 전부였고
건축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니 이해해 달라는 피고소인(?)의 답변이 전부였던 심야 토론이었는데
어째 토론을 끝내고 나니 허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진중권 평론가의 디워에 대한 평론은 거침없었고 그 평론속의 심형래 감독은 마치 새장의 새처럼 처분만 기다리는 목숨처럼 흔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더하면 더 할수록 평론가는 여유를 피웠고 디워는 곧 추락할것만 같았습니다.
그림출처 ⓒ2007 쇼박스
진중권평론가는 마치 잘 훈련된 조교와 같았고 그의 입술이 열릴 때 마다 패널들과 방청석은 술렁거렸습니다.
그를 위한 100분 토론과 같은 장이었습니다. 사실은 심형래감독이 연출한 디워에 관한 세상이야긴데도 말입니다.
진중권님이 말한 내용중에 심형래 감독이 만든 작품속의 '플롯' 등 도대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그 무엇은 상실한 채 CG만 어필된다고 하며
이것으로 '헐리웃'에 진출하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는 이야깁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그는 건축으로 치자면 감리사였고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면 그 결점들을 관련법에 따라서 분석하여 자잘못을 가리는 사람같았습니다.
그가 마이크를 들고 말한 이야기 전부는 제가 보기에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가 디워를 이루고 있는 요소요소를 지적할때마다 심형래감독은 마치 마취를 하지 않은 채 수술대 위에 올라 누운 사람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가 말하는 구절주절들은 비이커 속에서 흔들리며 분석되는 한 미생물처럼 금방 정체가 드러나고
정체를 드러낸 미생물은 하얀 백지 위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부끄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건축이 아니며 예술입니다. 건축또한 예술이지만 예술의 장르는 '창조적'표현입니다.
기존의 고정화되고 정형화 된 틀을 마음데로 넘나 들 수 있고 또 부술 수 있는 장르가 예술이라는 장르며
이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은 '무너뜨려지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지식인'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틀을 결사적으로 사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평론가'입니다. 그들은 점토 막대 하나라도 자기 생각에 따라서 만들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며
남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작품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실험실의 한 실험기구와 같은 존재일 뿐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합니다.그가 말했습니다.
"...보다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보 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심형래 감독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그림출처 ⓒ2007 쇼박스
그의 말은 옳은 말 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충무로가 언제부터 그렇게 해 왔고 당신의 표현대로 그렇게 발전 해 왔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도 그들은 충무로의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애국심'에 호소 하더니
충무로에 기생하며 강단에 설 수 있었던 한 사람 또한 그와 같은 '패거리'였을 뿐입니다.
충무로가 하지 못했던 일을 심형래감독이 할 수 있었던 것은 CG가 아니라 '도전'이었습니다.
진중권님은 CG빼고는 볼 것이 없다고 했지만 저는 다른것은 고사하고 CG가 백미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감상을 하는데 CG를 보러 가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형래 감독은 CG의 불모지 였던 대한민국에 CG분야의 일대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피아노선이 어슬프게 노출되는 아나로그 표현방식의 단점을 CG가 커버를 하면서 노출된 문제점들...
어설픈 가발을 뒤집어 쓰고 나타나 관객들이 역겨워 하는 것과 CG만 볼 것이 있다는 차이...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백남준님이 해외로 건너가서 티비브라운관에 자신의 예술혼을 심을 때 사람들은 행위예술과 설치예술의 정형론을 내세우며 그를 폄하했으나
그의 사후에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은 그의 작품이 1세기는 앞서 있다고 말합니다.
충무로가 '짜고치기 대종상'을 남발할 때도 국민들은 눈감아 주었고 연극같은 대사로 안방을 드나들때도 충무로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영화를 볼 줄 몰라서가 아니라 자본이 막대하게 투입되는 영화산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외국의 영화산업과 비교하면 너무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세월이 지나자 마치 그들 스스로 잘나서 그런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집은 건축가가 설계를 하고 설계에 따라서 잘 지으면 하자를 최소화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보다 나은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건축가가 아니라도 집은 누구라도 지을 수 있으며 굳이 건축가가 제안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건축가의 입맛에 반하는 집을 지었다고해서 그 집을 허물 필요는 없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어떤 비판이나 비난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문지방을 나서면 맑은 물이 있는 곳에 굳이 수도관을 설치해야 되는지 의문스럽고
화장실이 굳이 안방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어딘지 어슬퍼 보이는 '지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 같습니다.
사용자가 편리함을 느끼고 주거하면서 안락함을 느끼면서 자연에 대해서 친화적이고 튼튼하면 무슨문제가 됩니까?
꼭 화장실에 거울을 달아야 하며 비데를 설치해야 '플롯'에 충실한건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갓을 쓰고 LA로 가는 일이 그렇게도 부끄럽습니까?
그들 시장에서 흥하고 망하는 것은 그들 시장으로 닭의 목을 비틀어 피를 떨어뜨리며 갓을 쓰고 가는 심형래감독의 몫일진데
기름한방울 넣지 않는 그대가 왜 유턴이나 좌우회전을 시키고 있는지...!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죠. '콜럼부스의 달걀'이라는...
말많던 인간들이 그의 모험을 폄하하기를 즐기자 달걀을 테이블위에 바로 세워 놓는 게임을 콜럼부스가 제안합니다.
다들 제대로 세울 수가 없었지요. 그때 콜럼부스가 달걀밑에 소금 얼마를 뿌리고 달걀을 세우자 그들은 '누가 소금을 뿌리고 그걸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남들이 겁먹고 죽어도 가지 못하겠다는 길을 외롭게 걸어 간 사람이며
그가 걸어 간 길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습니다.
이제 심형래감독을 폄하하던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진작 이 길을 갔을텐데... 내겐 기회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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