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수원에 완전 취하셨습니다.
수원에 이사 가신 건 아니지요?....ㅎㅎㅎ"
며칠 전 유명 블로거 한 분(참교육 선생님)이 필자('나'라고 한다)의 포스트에 댓글을 남겼다. 수원 화성의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소개하면서 꽤 길게 끼적거린 포스트를 두고 '화성에 홀릭'한 모습을 빗댄 것이다. 그 분이 보시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서울 보다 수원이 더 정감가는 서울시민 1인이었다. 그래서 언제인가 '수원으로 이사를 가 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원 화성을 들락거리면서 화성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깃든 역사적 사실 등은 정조대왕의 '미완의 야망'이 야속할 정도로 다가온 것이다.
또 관련 기록들을 뒤적이면서 화성 축조 등에 얽힌 정조대왕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는, 200 여 년 전의 일이 아니라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것. 요즘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현실이 시간을 자꾸만 뒤로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원으로 이사를 가면 서울에서 느끼는 '나쁜기운'을 좀 더 멀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면 단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이유는 딱 하나.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지인 한 분이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1년?...아마 한 달 안에 죽을지도 모르지..ㅋ"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함께 나누는 걸 좋아하는 1인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주생주사(酒生酒死,술에 살고 술에 죽는)할 게 뻔하므로, 천수는 커녕 한 달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1년이라고 말하자 단박에 '한 달'로 명을 단축시킨게 수원에 살고있는 지인의 농 섞인 한마디였다. 바꾸어 말하면 지인은 하루 하루가 행복에 겨운 것.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정조대왕의 바람처럼 불취무귀(不醉無歸)할 정도로 행복에 겹다면, 그곳은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화성에 매료되어 수원의 명소 곳곳을 찾아다니는동안 적지않은 갈증을 느꼈다면, 명소의 사계를 카메라에 담아보는 것.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방화수류정과 장안문 혹은 화서문 등 화성의 겨울과 만추의 모습을 담아두고 짬 날 때마다 열어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 그런 바람들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수원시민의 젖줄인 광교저수지의 '수변산책로의 만추'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맨 처음 등장한 사진 한 장은 광교저수지 뚝방 아래 메타쉐콰이어가 곧게 자란 아름다운 풍경이고, 뚝방 아랫쪽에서 올려다본 광교저수지의 뚝방길에 누군가 산책을 나선 풍경이다. 광교저수지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에 있는 저수지이며, 광교산(光敎山:582m) 기슭에 위치해 있다. 이 저수지는 1943년에 완공되었는 데 제방 길이와 높이는 각각 373m, 18.5m이며, 총저수량은 243만t, 만수면적 0.33㎢이다.
광교저수지 북쪽에 솟은 광교산.백운산(白雲山 : 564m) 등에서 발원한 작은 계류들을 막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하였으며, 1953년부터는 수원시의 상수도원으로도 이용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 때 풍광이 아름다운 저수지의 수원지 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으나, 현재는 저수지 주변에 광교마루길과 광교누리길 등 수변산책로를 조성해 수원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잡은 것. 지난 14일, 나는 뚝방길 위에서 (사진의 우측에 위치한)광교마루길 대신 좌측의 나지막한 산기슭에 조성된 광교누리길을 선택해 걷게 됐다.
광교누리길,수변산책로의 만추
광교저수지 뚝방 위에서 바라본 광교마루길에 왕벚나무가 붉게 물들었다. 한 차례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 탓에 잎을 많이도 떨구고 빛깔도 보다 더 퇴색했지만 만추의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다. 3.4km에 이르는 광교저수지를 다 둘러보려면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것. 나는 광교누리길을 통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광교저수지로 흘러드는 수원천까지 걷기로 했다. 광교쉼터에서 반딧불이화장실까지 이어진 1.7km 구간은 데크로 만들어져 걷기에 편하지만, 조금은 불편해도 자연스러운 풍광 속으로 걷는 길이 좋았던 것.
광교저수지 뚝방 위에서 내려다 본 광교공원은 절정에 이른 만추의 모습이다. 여가를 이용해 운동을 하는 시민들과 데이트에 나선 사람들...그런데 답사 후기를 끼적거리면서 광교저수지 주변에 형성된 산책로의 이름이 헛갈린다. 광교마루길 혹은 광교누리길,광교수변산책로 등으로 불리는데 내 생각에는 (뚝방 위에서 바라봤을 때 우측은)광교마루길과 (좌측은)광교누리길로 통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수변산책로'인 것. 따라서 '광교저수지 수변산책로'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뚝방길을 따라 광교누리길로 이동하면 눈에 익은 저수지의 풍경. 그 뒤로 광교누리길이라 이름 붙인 숲속의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조금 전 떠나온 광교저수지의 뚝방 아래로 만추의 풍경이 펼쳐진 곳. 수원은 인구 120만의 거대 도시이지만 광교저수지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전원도시 느낌이 강하게 풍겨온다. 수원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저 멀리 뚝방길 너머로 반딧불이화장실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뚝방길을 지나 작은 산기슭에 들어서자마자 광교누리길이 옷을 벗고 속을 다 드러낸 풍경...
아직 이곳에선 참나무들이 노란 이파리를 걸친 채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광교누리길...수변산책로의 만추는 옷을 다 벗어야 동면에 들어갈 수 있는 지, 낙엽 위로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갈 햇살에 드러난 곳.
이런 풍경에 대해 아내는 입버릇처럼 내게 말하곤 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지?...아마도...!"
광교저수지의 오솔길 한편에 정자 하나를 지어놓으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주 다니던 동네 뒷산에서 볼 수 없는 풍경 하나...
광교누리길에 발을 들여놓으면 시선은 늘 오른쪽으로 향하게 된다.
아름다운 산길에서 정중동의 호수를 볼 수 있는 곳.
사람들은 일상에서 갈증을 느낄 때가 너무도 많다. 그게 생리적인 갈증이라면 물 한 바가지를 들이키면 그만 일 것. 하지만 차원을 달리한 갈증이라면 마시고 또 퍼 마셔도 갈증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때쯤 이런 오솔길을 걸으며 갈증의 근원을 살피면 몸둥아리는 얼마나 가벼워질까...
광교누리길을 따라 걷다보니 작은 텃밭의 가을걷이 흔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한 해동안 열심히 일한 이파리들이 나뒹구는 곳...
그들이 벗어던진 갈색 옷들이 빨래처럼 담겨진 곳.
만추의 광교저수지 수변산책로를 걷는 진정한 맛은 이런 게 아닐까.
지금까지 채웠으니 이제 다 비워야 하는 때...
광교저수지 수변산책로의 늦가을 풍경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스크롤바를 굴리며)둘러 보시기 바란다.
광교누리길에서 나의 시선이 머문 곳들...
...
아직 해갈을 하지 못한 것일까. 광교저수지의 광교누리길을 1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여운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한 달 안에 목숨을 내 주어도 좋은 풍광을 가진 마을 한 켠에서 불취무귀로 취하고 싶은 고장이 수원이다. 수원에 취하면 괜히 이사가고 싶어진다. 서울에서 누리지 못하는 작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온 수원의 젖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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