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간 단성사서 '마법의 기계' 만나다!
지난 10일, 촛불문화제에 참여 하면서 종로의 '단성사' 곁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단성사의 역사속 한편에서 '아리랑'이 깊은 숨을 쉬고 있었으므로
광우병쇠고기 수입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의 의의를 드 높일 것 같은 단성사가
하필이면 제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던 것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단성사는 1907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영화관입니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그 단성사는 우여곡절 끝에 '씨너스 단성사'라는 이름으로 바꿔 달았지만
단성사의 명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영화관입니다.
제가 단성사를 만나면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유서깊은 영화관에서 상영한 '아리랑' 때문입니다.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영화평론가 조희문)는 아리랑에 대해서 매우 의미있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의 글 '극장 - 한국영화의 또 다른 역사 Movie Theatres - Another History of Korean Movie'에 따르면
"단성사가 단순한 극장의 수준을 넘어 역사적 공간으로 부각하는 것은 1926년 <아리랑>을 상영하면서부터.
10월 1일부터 상영을 시작한 <아리랑>은 서울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사는 광인 청년 영진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부잣집 집사 오기호를 처단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돈을 앞세워 마을 사람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부자,
그의 권세를 믿고 마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집사,
그리고 그들에게 시달리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일제 식민지 통치에 시달리는 조선 민중들의 처지와 어딘가 닮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미친 청년 영진이 부잣집 집사를 응징하는 장면에서는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후련함을 느꼈고,
일본 순사의 포승에 묶여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모습에서는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절절하게 느껴야 했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생생한 경험이었다.
<아리랑>은 관객과 함께 시대를 공유하는 영화로 떠올랐고
주연을 맡은 나운규는 민중의 영웅이 되었다.
<아리랑>은 이전의 영화가 경험하지 못했던 선풍과 화제를 일으켰고,
단성사는 그 흥분을 공유하고 확인하는 세례의 장소가 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 아리랑의 제작과 감독에 대해서 아쉬운 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리랑>의 충격파는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는 요도 도라조(淀虎藏)라는 일본인이 설립한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이었고
영화를 감독한 인물은 쓰모리 히데이치(津守秀一)라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아리랑>의 감독이 누구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중에서는
어디에도 나운규가 이 영화를 감독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일본인이 제작하고 일본인이 감독한 영화에서,
당시의 관객들이
시대의 암울함과 그것을 거침없이 두들기는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시대의 모순이 절묘하게 엉겨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성영화시대를 빛내며 영화가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점에서는 긍정을 표했습니다.
한때 저도 영화광이었지만 청소년기에 누구나 '문학'을 사랑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돌이켜 보면 어릴적 한여름밤 학교운동장에서 상영되던 무성영화에 대한 기억밖에 없으나
유독 단성사하면 떠 오르는게 '아리랑'밖에 없었고
아리랑에 얽힌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되새기며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인에 의해서 감독되고 제작된 아리랑이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끌어낸 것 까지는 좋았으나
"일본 순사의 포승에 묶여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모습에서는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절절하게 느껴야 했다."고 말하는 필자의 회고에서
요즘 광우병쇠고기에 얽힌 우리나라의 현실이 문득 떠 오르는 것입니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면에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세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를 통해서 '기독교문화'를 심어가는 것과 같은 경우라 할까요?
21세기 들어서 전쟁을 통한 타국을 침탈하는 행위는 세계적으로 지탄받기 십상이어서
이제는 예술행위를 통해서 '문화적침탈'을 노리는데, 단성사 앞에 조형물로 서 있는 '영사기'를 보니
일제 강점기에 돌렸던 '아리랑의 필름'이 떠 오르는 것입니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실현하게 만드는 도구로 자리매김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 꿈을 만들어 가는 제작자들이 지금은 '대박'을 다시 꿈꾸고 있지만
최근 까지만 해도 그 꿈을 최종적으로 스크린에 담아 실현 시키는 것은 영사기였던 것입니다.
요즘 이명박정부가 출범한지 두달을 겨우 넘기면서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출범당시 국민을 섬기는 머슴과 같이 일하겠노라 맹세한 사람이며
경제를 살려서 서민들의 일그러진 주름을 펴겠노라고 공언한 사람입니다만
현재 지지율이 25%P이하로 떨어진 상태며 국민다수가 정부의 정책이나 발언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대운하'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우왕좌왕하더니
마침내 '미국산 광우병쇠고기 수입 문제'로 국민적 피로감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어코 국민들이 싫어하는 일을 저지르겠다는 것으로
지난대선때 국민을 섬기며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거짓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저녁 방영된 'PD수첩'은 광우병쇠고기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은 경우였습니다.
이런 방송의 시도는 이명박정부가 사실을 호도하며 왜곡했기 때문이며
일부 '광고찌라시' 같은 언론에서 국민들이 알 권리를 막거나 제한했기 때문에 빚어진 조치였습니다.
덩달아 경찰에서는 광우병쇠고기사태로 빚어진 인터넷상의 '괴담' 진원지를 찾아서 처벌하려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촛불문화제'를 '허가되지 않은 집회'로 규정하고 주최자를 처벌하려 들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우리 헌법을 완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 장면만 본다면 단성사에서 상영된 아리랑의 끝부분을 연상하게 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국민들이 국민들을 위해서 뽑아준 대통령이
국민들 위에 군림하며 국민들의 바램을 탄압을 하려드는 것은 명백한 '국민에 대한 침탈'이 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소리도 나지않는 '무성영화'의 장면처럼 국민의 귀을 막고 그것도 모자라
국민들을 미치도록 만든 광우병쇠고기사태 때문에 촛불문화제를 여는 주최자들의 입까지 막으려는 조치로
'순사'를 내세워 그들을 체포하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주객이 전도된 아리랑 같은 처사라 여겨집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있어서 꿈을 심어주는 기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리더의 생각은 가끔 추종자들의 생각과 다르기도 하지만
추종자들 조차 외면하는 리더십은 구시대를 주름잡았던 무성영화의 먹통 영사기와 다를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만드는 영사기는 사랑을 받지만
사람들의 입과 귀를 막고 국민들의 꿈을 앗아가며 민족적 자존심을 내 팽개치는 정치는
마침내 조형물로 내몰려 조롱을 받을 것입니다.
단성사 앞을 지나치면서 본, 마법의 기계 영사기조형물을 보면서
괜시리 생각나는 아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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