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힐링로드 갯가길
-여수 토박이가 안내한 힐링로드-
누군가 함께 걸어줄 길동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주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고속버스를 타고 떠난 곳은 전라남도 여수시의 어느 갯가 마을. 갯가 풍경만 보면 이곳이 서해의 어느 포구나 어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다란 굴 양식장과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여수 토박이들. 이 분들이 요즘 심심찮게 미디어를 빛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숱하디 숱한 길 이름이 존재한다. 길 이름은 너비가 크다고 하여 '큰 길'이라고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작은 길'이다. 그리고 세상에 널린 수 많은 길 중에서 익숙한 길이나 생소한 이름들을 나열해 보니 이러하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숱하디 숱한 길 이름이 존재한다. 길 이름은 너비가 크다고 하여 '큰 길'이라고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작은 길'이다. 그리고 세상에 널린 수 많은 길 중에서 익숙한 길이나 생소한 이름들을 나열해 보니 이러하다.
길의 종류
비가 내리는 길 혹은 빗물에 젖은 길을 빗길이라 부른다. 눈이 쌓인 길 또는 눈이 내리는 길을 눈길이라 한다. 자갈이 깔린 길을 자갈길이라 한다. 모래 밭에 난 길 또는 모래가 깔린 길을 모랫길. 한 군데로만 난 길을 일러 외길이라 한다. 숲 속에 있는 길은 숲길, 산속에 난 길을 산길로 부르며. 옆으로 난 길은 옆길. 마을 앞 또는 남쪽으로 난 길을 앞길이라 불렀다. 집이나 마을의 뒤로 난 길은 뒷길이라 불렀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넓은 길을 한길이라 불렀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 등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은 갓길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고샅길 처럼 고상한 이름으로 불렀다. 돌이나 자갈이 많은 길 혹은 바닥에 돌을 깐 길은 돌길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을 돌너덜길이라 불렀다. 돌서덜길로 불리던 길도 있었다. 냇가나 강가의 돌이 많이 깔린 길이 그랬다. 또 배가 다니는 길은 물길. 위쪽에 있는 길은 윗길. 반대로 아랫쪽에 있는 길은 반대길. 처음으로 가 보는 길은 첫길. 비탈진 언덕의 길은 비탈길. 동네 가운데 있는 좁은 길은 정감어린 골목길로 불렀다.
곧게 뻗어나간 길은 곧은 길. 쪽 곧은 길은 혹은 도덕에 맞는 길을 일러 바른 길이라 불렀다. 땅이 곤죽처럼 질퍽하다고 해서 진창길. 흙탕길은 흙탕물이 질펀하게 깔려 몹시 질척한 길을 그렇게 불렀다. 밤에 걷는 길은 밤길이요. 언덕으로 난 비탈진 길은 언덕길이었다. 그 뿐인가 둑 위로 난 길은 둑길. 큰길로 통하는 작은 길을 일컬어 샛길이라 했다. 언덕배기로 난 길은 잿길이라 하며. 폭이 좁고 호젓한 길은 오솔길이라 불렀다. 갈림길은 갈라진 길이자 논길은 논 사이에 난 길이었다. 조금 더 살펴볼까.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 등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은 갓길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고샅길 처럼 고상한 이름으로 불렀다. 돌이나 자갈이 많은 길 혹은 바닥에 돌을 깐 길은 돌길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을 돌너덜길이라 불렀다. 돌서덜길로 불리던 길도 있었다. 냇가나 강가의 돌이 많이 깔린 길이 그랬다. 또 배가 다니는 길은 물길. 위쪽에 있는 길은 윗길. 반대로 아랫쪽에 있는 길은 반대길. 처음으로 가 보는 길은 첫길. 비탈진 언덕의 길은 비탈길. 동네 가운데 있는 좁은 길은 정감어린 골목길로 불렀다.
곧게 뻗어나간 길은 곧은 길. 쪽 곧은 길은 혹은 도덕에 맞는 길을 일러 바른 길이라 불렀다. 땅이 곤죽처럼 질퍽하다고 해서 진창길. 흙탕길은 흙탕물이 질펀하게 깔려 몹시 질척한 길을 그렇게 불렀다. 밤에 걷는 길은 밤길이요. 언덕으로 난 비탈진 길은 언덕길이었다. 그 뿐인가 둑 위로 난 길은 둑길. 큰길로 통하는 작은 길을 일컬어 샛길이라 했다. 언덕배기로 난 길은 잿길이라 하며. 폭이 좁고 호젓한 길은 오솔길이라 불렀다. 갈림길은 갈라진 길이자 논길은 논 사이에 난 길이었다. 조금 더 살펴볼까.
외따로 난 작은 길을 외딴길이라 불렀으며, 뒤꼍으로 난 길은 뒤안길. 오로지 한 곳으로만 난 길은 외통길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벼룻길은 강가나 바닷가 낭떠러지로 통하는 비탈길을 그렇게 불렀다. 하루동안 걸어서 가 닿을 수 있는 거리를 하룻길이라 불렀으며. 나무꾼들이 나무하러 다니면서 낸 좁은 산길을 나뭇길이라 불렀다. 꼬부랑길은 또 어떤가. 여러 굽이로 꼬부라진 길을 그렇게 불렀다.
화살이 날아가는 길을 살길이라 불렀으며, 가깝게 질러서 가는 길을 지름길이라 불렀다. 두렁길은 두렁 위로 난 길이며, 두멧길은 두메산골에 난 길, 벌길은 들길의 또다른 이름이다. 꽃길은 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길이며 두렁길은 구덩이 안에 파 놓은 길을 말한다. 덤불 사이로 난 길은 덤불길이며,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눈석잇길은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이다. 옆으로 난 길을 옆나들길이라 불렀고, 발구길은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나르는 썰매가 다닐 수 있는 길...등등
화살이 날아가는 길을 살길이라 불렀으며, 가깝게 질러서 가는 길을 지름길이라 불렀다. 두렁길은 두렁 위로 난 길이며, 두멧길은 두메산골에 난 길, 벌길은 들길의 또다른 이름이다. 꽃길은 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길이며 두렁길은 구덩이 안에 파 놓은 길을 말한다. 덤불 사이로 난 길은 덤불길이며,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눈석잇길은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이다. 옆으로 난 길을 옆나들길이라 불렀고, 발구길은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나르는 썰매가 다닐 수 있는 길...등등
힐링로드로 재발견 된 여수 갯가길
길의 종류는 이 외에도 숱한 이름으로 포장돼 불리우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길 들 중에서 <갯가길>이라는 이름은 찾기 쉽지않다. 갯가길은 우리로부터 잊혀진 옛길이거나, 갯벌이 있는 나라의 갯가에서 살던 사람이라야 겨우 기억해 낼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여수의 갯가길은 어민들이 갯벌로 나가 일을 하는동안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었다. 그런데 바다로 향하거나 바다 곁에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 힐링로드로 재발견될 줄 누가 알았을까.
서울에서 여수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여수로 출발하기 이틀 전 시내에 나가 볼 일을 보고 KTX티켓을 예매 하고자 했으나 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주말을 맞이해 사람들이 너도 나도 도시를 빠져나가는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 예정 시간에 출발할 수 있는 기차편은 모두 좌석이 없었고, 입석 조차 구할 수 없었다. 거기에 코레일의 파업 소식도 한 몫 거들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여수로 출발하기 이틀 전 시내에 나가 볼 일을 보고 KTX티켓을 예매 하고자 했으나 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주말을 맞이해 사람들이 너도 나도 도시를 빠져나가는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 예정 시간에 출발할 수 있는 기차편은 모두 좌석이 없었고, 입석 조차 구할 수 없었다. 거기에 코레일의 파업 소식도 한 몫 거들었다.
사정은 고속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리 약속을 해 둔터라 펑크를 낼 수도 없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수행 티켓을 구해야 했다.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약속 시간에 도착할 버스표는 딱 한 장 뿐이었다. 그것도 맨 뒷좌석 한 장. 주말을 맞이해 사람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는 데 그 중에는 필자처럼 행운을 차지한 사람도 있었다.
* 사진은 사단법인 여수갯가(http://getga.org/)의 김경호 이사장이 거북이 문양이 새겨진 독특한 갯가길(이정표) 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꽤 오래 전부터 기회가 닿으면 여수 토박이와 함께 여수 곳곳을 돌아보고 싶었던 바람이 현실로 바뀔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다가온 것이다. 그곳에서 굴구이를 앞에 놓고 기다리던 여수 토박이를 만나게 된 것인데, 그 분들이 바로 여수의 갯가길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 주인공들은 사단법인 여수갯가(http://getga.org/)의 김경호 이사장 외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선 여수시민들.
여수갯가길,민간에서 주도하다
그 속에는 꾸준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블로거 임현철(여수갯가 이사) 아우님과 선박의 해상기계기관수리업을 하는 이회형님과, 또 재능기부(NFC,Near Field Communication 시스템)를 통해 갯가길의 퀄리티를 높이고 있었던 제주오름보전연구회 김홍구님 등이 함께 있었다. 이분들이 내고장을 위해 발벗고 나서거나 재능기부를 하면서 갯가길이 태동되고 있었는데...
그 길은 제1코스로 우두리항(돌산대교 아래 출발점)에서부터 → 돌산공원→ 신추(거북선대교)(seaside) → 진목마을 → 밀듬벙 → 범바위 → 용월사 → 월전포 → 안심개 → 하동 삼거리→ 마상포 → 진모마을 → 안굴전 → 무술목(종착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길 이름은 여수갯가길,행복한 희망 세상을 걷자~...
그 길은 제1코스로 우두리항(돌산대교 아래 출발점)에서부터 → 돌산공원→ 신추(거북선대교)(seaside) → 진목마을 → 밀듬벙 → 범바위 → 용월사 → 월전포 → 안심개 → 하동 삼거리→ 마상포 → 진모마을 → 안굴전 → 무술목(종착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길 이름은 여수갯가길,행복한 희망 세상을 걷자~...
굴양식장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의 생굴전문점(정우 굴구이,061-643-6125)에서 생굴요리를 배 터지질 정도로 넉넉하게 먹은 우리 일행이 나선 곳은 갯가길 체험. 체험은 세 조로 편성되어 각 구간을 돌아보게 됐다. 이날 필자와 한 조가 된 분은 여수갯가 회원인 이회형 씨. 중년의 이회형 씨와 갯가길의 길동무가 된 우리가 이씨로부터 듣게 된 건 갯가길의 길이였다. 갯가길의 총연장 길이는 무려 400km...
속으로 즈윽이 놀랐다. 400km라면 서울에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정오 경에 도착할 정도의 거리이자, 서울-여수를 잇는 길이와 비슷한 거리. 그 길이 앞으로 조성할 갯가길의 큰 계획이었는데, 옛 어민들이 다니던 길을 먼저 개방한 곳만 해도 12개 구간에 23km나 됐다. 그 길이 여수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재능기부 등으로 옛길을 복원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갯가길 체험에 나서면서 필자를 기분좋게 만든 건, 이 사업이 관에서 주도하는 '개발사업'이 아니라 민에서 먼저 시작한 '복원사업'이었으며, 자연 그대로 원형을 보존하는 친환경적으로 조성하고 있었다는 것. 여수갯가길이 관에서 주도되면 민간에서 주도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르게 개발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시행돼 온 각종 개발사업이 남긴 난개발 등 폐해를 살펴 보면, 도시인들이나 지역의 시민들에게 힐링을 가져다 줄 자연환경 다수 내지 대부분이 개발로 인해 훼손되는 아픔을 맛보고 있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힐링을 가져다 줄 목적이 아니라 토목사업에 이익을 보태는 토목건설사업으로 변질돼 왔던 것이다.
무수한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갯가길
그러나 먼저 개방한 제1코스의 갯가길을 들어서자마자 '이게 갯가길인가' 싶을 정도로 길의 흔적은 희미했다. 갯가길이 개방된 지난 10월 경부터 갯가길의 존재를 안 시민들이 다녀가면서 찍어둔 발도장이 갯가길의 윤곽을 서서히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처녀길이 갯바람을 실어 보내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고나 할까.
서울에서 출발 할 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풍경 속에는 잔설들이 희끗 거렸지만, 여수 갯가길의 풍경은 만추의 옷을 벗어 갯가길에 걸어둔 것 같은 따뜻한 남쪽나라의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갯가길에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은 옷깃을 여며야 했을 정도. 그 겨울 바다를 오갔을 옛사람들이 남긴 자국이 갯가길로 재발견되면서, 갯가길은 수 많은 스토리텔링을 갖춘 원시의 바다로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참 이상하지?...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고 눈길 조차 한 번 제대로 준 적도 없는 갯가길이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갯가길 곁에는 사람들이 '생활쓰레기'로 부르는 쓰레기들이 밀물을 따라 바닷가에 이주(?)한 이후 자기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너무 오래되고 색이 바래 누구 하나 거들떠 볼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시동안 떠나온 대도시의 풍경은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지도 않았다.
그런 걸 두고 사람들은 '힐링'이라고 말했나. 갯가길은 오후 햇살에 반짝이며 사람들을 하나 둘씩 불러 모으고 있었다. 누구인가 처음 내 디딘 그곳이 여러분들이 다녀갈 길로 변하는 건 그리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갯가길은 갯벌 곁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갯벌에서 작은 언덕 위로 또 바닷가의 작은 산꼭대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길이 총연장 400km에서 첫 걸음을 뗀 게 고작 23km...
그 중 필자가 걸었던 길은 불과 수 킬로미터였을 뿐. 어쩌면 사람들은 갯가길의 존재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곳에 무슨 유명한 전설 같은 게 있나 싶은 궁금증이나 기대감이 생길 법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등 SNS가 대명천지를 만든 세상. 향후 갯가길이 모두 완성되어 400km를 걸을 수 있게 된다면, 그곳에서 적지않은 전설들이 드러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백분의 일'도 채 될까 말까한 갯가길을 천천히 걷는동안, 여태껏 숨어(?) 살아온 전설보다 더 많은 전설들이 바닷물에 떠밀리거나 떠 내려와 갯가길의 전설로 자리잡고 있었다. 태고적부터 존재했을 갯벌과 용암이 굳어 만든 암릉은 파도에 씻기고 바람에 쓸려 오만가지 형상을 하고 있었고, 팥배들이 차가운 풍경을 난로처럼 보듬고 있는 바닷가 언덕 위에는, 청미래덩굴이 빠알간 알을 연어의 알 만큼이나 소복히 안고 있었던 것.
불가사리로 환생한 별 이야기
우리만 몰랐지!...갯가길의 본래 주인들은 언제인가 당신들이 뿌린 씨앗을 거둘날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기다렸을 것. 도시로 떠나게 된 연어새끼들이 다시 그 갯가의 향기를 그리워 하며 돌아오게 될 진풍경은 여러편 준비했다. 필자가 만난 갯가길은 1박 2일도 모자라서 2박 3일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끝까지 동행해 준 여수갯가의 김경호 이사장(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은 갯가길 곳곳에 걸어둘 리본에 새겨진 거북이 문양을 설명하면서 "거북이 등에 그려진 게 불가사리"라고 일러주었다.
그냥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심심할까. 그는 "그 불가사리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며 부연 설명 했다. 거북이 처럼 천천히 걸으며 감성의 더듬이를 세밀하게 펼쳐야 보일 꿈같은 해석이었다. 도시에 살던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을 들끓게 하던 알지 못할 그리움들이, 어느날 불가사리로 환생하여 갯가길에서 만날 수 있는 불가사의 한 전설로 환원되고 있었던 것. 그 전설은 자기 고장을 너무도 사랑한 여수인들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꿈같은 장면들을 모았더니 엄청난 분량의 이미지 파일로 남게 됐다. 감성 풍부한 여수 토박이로부터 디자인 되기 시작한 갯가길을 통해 장차 여수의 밤하늘에 쏟아지게 될 찬란한 별빛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고장 사람들이 즐겨찾고 아끼기만 하면 천혜의 갯가길은 장차 미어 터질 게 분명해 보였다. 여수 토박이들과 자연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시는 분들이 주야장천 애써 가꾼 그 길을 두 눈으로 보았으며 기록으로 남겼다. 또 길동무들이 하나 둘씩 남기고간 이야기들 전부가 오롯이 갯가길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뒤 이어 포스팅 될 <갯가길로 떠나는 힐링여행>이 남긴 추억들을 솜사탕 핥듯이 혀 끝과 눈설미 등 오감을 내맡기며 천천히 천천히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계속>
사단법인 여수갯가
전남 여수시 중앙동 686번지 2층
Tel. 061-920-5888
Web. www.getga.org
Facebook. https://www.facebook.com/getga.org
** 이어질 포스팅은 성격별로 서로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될 예정입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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