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후리그물 맛을 아느뇨
-남해 문항어촌의 후릿그물 체험 후기-
니들이 후릿그물 맛을 아느뇨...
기다렸다. 우리와 함께 후릿그물질을 해야 할 문항마을 사람들도 선착장 앞에서 물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 물 위에 떠 있던 작은 보트도 어느덧 갯벌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뒤로 보이는 하장도 앞까지 바닷물이 다 빠져나가야 포식자들의 입맛을 충복시킬 수 있는 후릿그물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날 우리가 후릿그물질에 나설 갯벌은 개막이 뒤로 보이는 상장도와 하장도 앞 바다다. 아직은 물이 빠지지 않아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문항어촌마을의 갯벌체험을 담당하고 있는 박상아 사무장으로부터 후리그물질에 대한 노하우 내지 주의사항 등에 대해 숙지해야 했다.
우리는 그녀 앞에서 당장 무장해제를 해야했는데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복장은 후릿그물질에 맞추어 통째로 바꾸는 일. 말끔한 옷을 허드렛일에 필요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래와 뻘 속에 조개껍질이 뒤섞인 갯벌 속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모두 장화로 바꾸어 신어야 하는 것.
뿐만 아니었다. 문항어촌체험마을에서 제공되는 장화는 체험이 끝난 직후 깨끗이 씻어 반납해야 하는가 하면, 후리그물 체험 요령이 그녀로부터 씩씩하게 전달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후리그물 체험이 얼마나 '빡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일행 20여 명이 후리그물 체험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따라서 이 체험은 '빡신 체험'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장화는 발 크기에 따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항이 하나있었다. 장화 뿐만 아니라 모든 신발이 그렇듯 발 사이즈가 작으면 신발 모양도 참 예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실용적인 일이 반드시 생겼다. 발 사이즈가 작으면 갯벌 체험에 앞서 우선 보기는 좋다. 그러나 체험을 위해 갯벌에 들어서는 순간 당장 후회하게 된다. 왜 그럴까.
물이 빠지자 상장도와 하장도가 모세현상을 보이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조금전까지 물 속에 있던 갯벌이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는 곧 이 갯벌을 따라 후릿그물질에 돌입할 것이다. 이곳의 갯벌은 서해의 갯벌과 달리 조가비 껍질이 모래와 뒤섞인 갯벌이어서 반드시 장화를 신어야 한다. 장화는 후리그물 체험을 할동안 장화속으로 스며든 바닷물과 모래나 갯벌 등이 발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맨발에 장화를 신지말고 양말을 착용하라는 게 박상아 사무장의 주문이었다.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말을 신고 장화를 신으면 체험 순간 양말이 젖을 게 분명해 보였다. 양말은 한 켤레 뿐... 여기서 젖으면 양말이 마를 때까지 맨발로 신발을 신어야 했다. 마누라 말도 잘 안 듣는 1인이 사무장 말은 잘도 들었다. 그게 혼자만의 일인가. 장화 사이즈가 작은 어느 1인은 금방 낭패를 보고 말았다. 장화 사이즈가 작으면 신발은 예뻐보여도 장화 기럭지가 턱 없이 짧았다.ㅋ 누군가 투털 댓다.
"...아니 내 장화는 왜 일케 짧아?"
곁에 있던 사무장 아줌마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뭘 모르세효!...장화 사이즈가 작으면 기럭지도 짧거든요.ㅋ"
곁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어느새 문항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닷물로 가득채워져 있던 문항마을 앞 바다는 넓다란 갯벌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후리그물 체험을 위한 그물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었다.
물이 저만치 빠져나간 갯벌 위에서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물고기 무리들을 상상하며 마냥 기다렸다. 아이들처럼 들뜬 기분으로 신나는 후리그물 체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갯벌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갯벌 곳곳에서 잠망경같은 촉수를 드러내고 우리를 감시하는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뽀그락 뽀그락 살아있는 갯벌.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문항마을 앞 바다에서 모세현상을 만드는 아름다운 두 섬. 상장도와 하장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문항어촌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갯벌을 다 들어낸 뒷편으로 문항마을 회관이 보인다. 조금 전 우리가 떠나온 곳이다.
마을에서 멀어진 갯벌 저편 바다위에선 보트 한 척이 후리그물을 둥글게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곁에서 박상아 사무장이 후릿그물 체험에 나선 일행을 독려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날 체험은 적지않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후릿그물 체험에 필요한 인원은 대략 50~100명 정도가 필요한 데 이날 후릿그물 체험에 나선 사람은 고작 20여 명. 그 중 사진촬영을 위해 몇 명을 덜어내니 그물 한 쪽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의 수가 고작 10명 남직 한 것이다. 이름하여 후릿그물에 (오히려)걸려든 사람들. 그 속에 필자도 포함돼 있었다.
(어떡하지?...ㅜㅜ)괜한 걱정을 하는 동안 박 사무장이 외쳤다. 후리그물을 펼치는동안 하늘 위로 갈매기들이 한 두 마리 모여들기 시작했다. 박 사무장은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저기 보이죠. 갈매기들이 요 위에서 날아다니는 건 후리그물 속에 물고기들이 많이 있다는 징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리그물의 끝줄을 붙들고 있는 동안 마음이 펀하지 않았다. 필자가 우리나라에서 체험해 본 후리그물질은 백령도에서 해 본 게 전부였다. 그땐 지금처럼 끝줄이 길지도 않았지만 끝줄 양 끝에는 큼직한 경운기 두 대가 쌍끌이를 하고 있었다. 절반의 체험만 요구한 게 당시의 후리그물 체험이었다.
그런데 박상아 아줌마...뭔가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던지 다 합해봐야 20명 남짓한 체험객 앞에 300여 미터의 후리그물을 쭈악~펼쳐놓았다. 후리그물은 양쪽의 끝줄 포함해 대략 500 미터란다. (아흑)어쩌란 말인가...후리그물이 바다 속으로 둥글게 펼쳐지며 끝줄이 반대편에 다다르자 마침내 후리그물 체험이 시작됐다.
당겨랏!~
이때부터 후릿그물 체험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않았다. 그저 끝줄과 그물줄에 매달려 아둥바둥 거렸던 기억외 아무것도...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니들이 후릿그물맛을 아느뇨?...
자...당기세효~ 그물을 똑바로 세우고...
영~차! 여~엉차!...
문항마을의 옛날 이름은 구룡포라고 불리었는데 웅장한 산세와 지형이 마치 아홉 마리의 용과 흡사하다 하여 지은 이름이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않는다. 그대신 '문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어느 선비가 골목마다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니 참으로 부러운 동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세 분이 매년 음력 10월 15일 날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을회관에서 동제(마을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 몸(가짐)이 깨끗하고 가정이 편안한 사람을 찾아 10일 정도 출타도 금하게 하여 음식준비를 하게 한다는 것.
니들이 후릿그물 맛을 아느뇨...
어느 광고를 보니 '니들이 게 맛을 아느뇨'란 카피가 있었다. 그걸 패러디한 한 마디가 '니들이 후릿그물 맛을 아느뇨'란 말이다. 게 맛이든 후릿그물 맛이든그 맛을 진심으로 느껴본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절규같은 한 마디. 그 맛이 얼마나 절절했으면 그랬을까. 후리그물 혹은 후릿그물은 강이나 바다에 넓게 둘러친 후에 그물 양쪽에서 여러 사람이 끌줄을 잡아당겨 물고기를 잡는 큰 그물이 후리그물이다.
먼 바다에 나가지 않고 바닷가 집 앞 혹는 마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물고기를 사냥하는 다소 원시적인 어로작업(漁撈作業)인 것이다. 바닷가에 빙 둘러 쳐 둔 그물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그물 속에 든 물고기 등을 뭍으로 끌어당겨 잡는 게 후릿그물질인데 그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후릿그물질로 물고기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후릿그물 체험을 통해 체험자들이 오히려 후릿그물에 걸려든 것 같은 희한한 시츄에이션. 이름하여 '빡신' 후릿그물 체험 현장으로 안내해 드린다.
갈 볕이 좋았던 시월 초(4일), 필자를 포함한 블로거 20여 명은 전국 어촌체험 마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남해 문항마을의 한쪽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후리그물 체험을 할 예정이었다. 후리그물 체험을 위해선 썰물 때를 기다려야 했다. 마을 어귀까지 들어찬 밀물이 저만치 빠져나가야 후리그물 체험이 가능했다. 최고의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쫒지않고 기다린다고 했던가. 뭍의 포식자들이 바다속의 물고기를 잡는 작업에 맨 먼저 요구되는 건 기다림이었다.
먼 바다에 나가지 않고 바닷가 집 앞 혹는 마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물고기를 사냥하는 다소 원시적인 어로작업(漁撈作業)인 것이다. 바닷가에 빙 둘러 쳐 둔 그물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그물 속에 든 물고기 등을 뭍으로 끌어당겨 잡는 게 후릿그물질인데 그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후릿그물질로 물고기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후릿그물 체험을 통해 체험자들이 오히려 후릿그물에 걸려든 것 같은 희한한 시츄에이션. 이름하여 '빡신' 후릿그물 체험 현장으로 안내해 드린다.
갈 볕이 좋았던 시월 초(4일), 필자를 포함한 블로거 20여 명은 전국 어촌체험 마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남해 문항마을의 한쪽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후리그물 체험을 할 예정이었다. 후리그물 체험을 위해선 썰물 때를 기다려야 했다. 마을 어귀까지 들어찬 밀물이 저만치 빠져나가야 후리그물 체험이 가능했다. 최고의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쫒지않고 기다린다고 했던가. 뭍의 포식자들이 바다속의 물고기를 잡는 작업에 맨 먼저 요구되는 건 기다림이었다.
기다렸다. 우리와 함께 후릿그물질을 해야 할 문항마을 사람들도 선착장 앞에서 물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 물 위에 떠 있던 작은 보트도 어느덧 갯벌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뒤로 보이는 하장도 앞까지 바닷물이 다 빠져나가야 포식자들의 입맛을 충복시킬 수 있는 후릿그물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날 우리가 후릿그물질에 나설 갯벌은 개막이 뒤로 보이는 상장도와 하장도 앞 바다다. 아직은 물이 빠지지 않아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문항어촌마을의 갯벌체험을 담당하고 있는 박상아 사무장으로부터 후리그물질에 대한 노하우 내지 주의사항 등에 대해 숙지해야 했다.
우리는 그녀 앞에서 당장 무장해제를 해야했는데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복장은 후릿그물질에 맞추어 통째로 바꾸는 일. 말끔한 옷을 허드렛일에 필요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래와 뻘 속에 조개껍질이 뒤섞인 갯벌 속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모두 장화로 바꾸어 신어야 하는 것.
뿐만 아니었다. 문항어촌체험마을에서 제공되는 장화는 체험이 끝난 직후 깨끗이 씻어 반납해야 하는가 하면, 후리그물 체험 요령이 그녀로부터 씩씩하게 전달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후리그물 체험이 얼마나 '빡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일행 20여 명이 후리그물 체험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따라서 이 체험은 '빡신 체험'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장화는 발 크기에 따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항이 하나있었다. 장화 뿐만 아니라 모든 신발이 그렇듯 발 사이즈가 작으면 신발 모양도 참 예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실용적인 일이 반드시 생겼다. 발 사이즈가 작으면 갯벌 체험에 앞서 우선 보기는 좋다. 그러나 체험을 위해 갯벌에 들어서는 순간 당장 후회하게 된다. 왜 그럴까.
물이 빠지자 상장도와 하장도가 모세현상을 보이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조금전까지 물 속에 있던 갯벌이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는 곧 이 갯벌을 따라 후릿그물질에 돌입할 것이다. 이곳의 갯벌은 서해의 갯벌과 달리 조가비 껍질이 모래와 뒤섞인 갯벌이어서 반드시 장화를 신어야 한다. 장화는 후리그물 체험을 할동안 장화속으로 스며든 바닷물과 모래나 갯벌 등이 발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맨발에 장화를 신지말고 양말을 착용하라는 게 박상아 사무장의 주문이었다.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말을 신고 장화를 신으면 체험 순간 양말이 젖을 게 분명해 보였다. 양말은 한 켤레 뿐... 여기서 젖으면 양말이 마를 때까지 맨발로 신발을 신어야 했다. 마누라 말도 잘 안 듣는 1인이 사무장 말은 잘도 들었다. 그게 혼자만의 일인가. 장화 사이즈가 작은 어느 1인은 금방 낭패를 보고 말았다. 장화 사이즈가 작으면 신발은 예뻐보여도 장화 기럭지가 턱 없이 짧았다.ㅋ 누군가 투털 댓다.
"...아니 내 장화는 왜 일케 짧아?"
곁에 있던 사무장 아줌마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뭘 모르세효!...장화 사이즈가 작으면 기럭지도 짧거든요.ㅋ"
곁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어느새 문항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닷물로 가득채워져 있던 문항마을 앞 바다는 넓다란 갯벌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후리그물 체험을 위한 그물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었다.
물이 저만치 빠져나간 갯벌 위에서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물고기 무리들을 상상하며 마냥 기다렸다. 아이들처럼 들뜬 기분으로 신나는 후리그물 체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갯벌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갯벌 곳곳에서 잠망경같은 촉수를 드러내고 우리를 감시하는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뽀그락 뽀그락 살아있는 갯벌.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문항마을 앞 바다에서 모세현상을 만드는 아름다운 두 섬. 상장도와 하장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문항어촌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갯벌을 다 들어낸 뒷편으로 문항마을 회관이 보인다. 조금 전 우리가 떠나온 곳이다.
마을에서 멀어진 갯벌 저편 바다위에선 보트 한 척이 후리그물을 둥글게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곁에서 박상아 사무장이 후릿그물 체험에 나선 일행을 독려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날 체험은 적지않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후릿그물 체험에 필요한 인원은 대략 50~100명 정도가 필요한 데 이날 후릿그물 체험에 나선 사람은 고작 20여 명. 그 중 사진촬영을 위해 몇 명을 덜어내니 그물 한 쪽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의 수가 고작 10명 남직 한 것이다. 이름하여 후릿그물에 (오히려)걸려든 사람들. 그 속에 필자도 포함돼 있었다.
(어떡하지?...ㅜㅜ)괜한 걱정을 하는 동안 박 사무장이 외쳤다. 후리그물을 펼치는동안 하늘 위로 갈매기들이 한 두 마리 모여들기 시작했다. 박 사무장은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저기 보이죠. 갈매기들이 요 위에서 날아다니는 건 후리그물 속에 물고기들이 많이 있다는 징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리그물의 끝줄을 붙들고 있는 동안 마음이 펀하지 않았다. 필자가 우리나라에서 체험해 본 후리그물질은 백령도에서 해 본 게 전부였다. 그땐 지금처럼 끝줄이 길지도 않았지만 끝줄 양 끝에는 큼직한 경운기 두 대가 쌍끌이를 하고 있었다. 절반의 체험만 요구한 게 당시의 후리그물 체험이었다.
그런데 박상아 아줌마...뭔가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던지 다 합해봐야 20명 남짓한 체험객 앞에 300여 미터의 후리그물을 쭈악~펼쳐놓았다. 후리그물은 양쪽의 끝줄 포함해 대략 500 미터란다. (아흑)어쩌란 말인가...후리그물이 바다 속으로 둥글게 펼쳐지며 끝줄이 반대편에 다다르자 마침내 후리그물 체험이 시작됐다.
당겨랏!~
이때부터 후릿그물 체험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않았다. 그저 끝줄과 그물줄에 매달려 아둥바둥 거렸던 기억외 아무것도...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니들이 후릿그물맛을 아느뇨?...
자...당기세효~ 그물을 똑바로 세우고...
영~차! 여~엉차!...
시작은 거창했으나 나중은 심히 미약했던 것일까. 일행의 노력에 비해 수확은 생각보다 적었다. 50~100명이 체험해야 할 후릿그물질을 20명 남짓 사람들이 바둥거리며 해낸 탓인지, 그물 속에 포획된 건 갑오징어 몇 마리와 전어와 꽃게 숭어, 그리고 낙지 한마리가 바구니 속에서 꼼지락 거렸다. 꽤 오랜동안 후리그물 한쪽에서 바둥거렸더니 허리가 뻐근해 왔다. 그러나 후리그물 체험이 끝나자마자 몰려드는 건 피곤함이 아니라 소수의 우리가 '해냈다'라는 자부심.
비록 중간에 후리그물이 엉켜 포획된 다수의 물고기들이 탈출을 했지만, 마지막까지 그물에 걸려든 포획물들은 이날 저녁 회무침으로 숙소로 배달됐다. 보물섬 남해의 밤하늘을 수 놓은 별들 아래서 맛 본 전어회. 후리그물 체험을 통해 잊고살던 기다림을 배우고 함께 즐기는 노동(두레)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해 준 시간이다.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기주의에 빠져든 세상. 함께 해야 맛 볼 수 있는 후리그물 체험은 공동체의 조직을 결속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체험이 아닌가 싶다. 이날 필자는 아슬아슬 하게도 (양말을 신은)장화속에 바닷물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약간은 뺀질거린 덕분이자 기럭지가 조금은 긴 장화 때문이었다.ㅋ
남해 문항어촌체험마을은?
문항마을의 옛날 이름은 구룡포라고 불리었는데 웅장한 산세와 지형이 마치 아홉 마리의 용과 흡사하다 하여 지은 이름이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않는다. 그대신 '문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어느 선비가 골목마다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니 참으로 부러운 동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세 분이 매년 음력 10월 15일 날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마을회관에서 동제(마을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 몸(가짐)이 깨끗하고 가정이 편안한 사람을 찾아 10일 정도 출타도 금하게 하여 음식준비를 하게 한다는 것.
전국 어촌체험 마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문항마을은 전국 최고의 어촌체험 마을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대국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이다. 70가구에 150여명이 살고 있으며, 장수촌으로도 유명한 마을이다. 바지락, 굴, 쏙, 우럭조개, 낚지 등 수산물이 풍부한 이곳은 갯벌의 출입이 용이하여 외지의 많은 체험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해상에서는 휴식을 겸한 낚시체험을 할 수도 있다.
마을 앞 바다에는 아름다운 두개의 섬이 있는데, 이 섬은 상장도와 하장도라 불리며 만조 시는 어선을 이용하여 이동이 가능하나, 간조 시는 육지와 두개의 섬이 육지로 연결되는 모세현상으로 관광객이 걸어서 두개의 섬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다. 섬에서는 해안산책과 아울러 해안에 있는 고동, 게 등 수산동식물을 채취할 수 있어 가족단위나 연인 간 아름다운 시간을 즐길 수 있고, 하루에 두 번 모세현상이 일어나는데 S자처럼 살짝 굽은 길이 섬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출처 문항어촌체험마을 http://vill.seantour.com/Vill/About/Intro.aspx?fvno=3601>
마을 앞 바다에는 아름다운 두개의 섬이 있는데, 이 섬은 상장도와 하장도라 불리며 만조 시는 어선을 이용하여 이동이 가능하나, 간조 시는 육지와 두개의 섬이 육지로 연결되는 모세현상으로 관광객이 걸어서 두개의 섬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다. 섬에서는 해안산책과 아울러 해안에 있는 고동, 게 등 수산동식물을 채취할 수 있어 가족단위나 연인 간 아름다운 시간을 즐길 수 있고, 하루에 두 번 모세현상이 일어나는데 S자처럼 살짝 굽은 길이 섬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출처 문항어촌체험마을 http://vill.seantour.com/Vill/About/Intro.aspx?fvno=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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