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능행차 연시
-눈물겨웠던 감동의 축제 현장-
절대권력자인 왕의 행복한 외출...
인류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늘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존재였다. 더 내놓을 게 없으면 목숨을 내 놓아야 했다. 권력은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며 피와 눈물은 물론 체액이 다 말라 죽을 때까지 닥달하는 무시무시한 존재. 세상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 뒤에 쓰여진 비하인드스토리는 주로 그랬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남아있는 건축물 등이 주로 그랬다. 예술품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생활을 누릴 때 반드시 '끼워팔기'를 해야 하는 건 '귀족 흉내내기'나 다름없을 정도다. 마치 상놈이 '양반증(?)'을 받아내는 게 문화생활일까. 귀족이나 양반이라면 지긋지긋 한 형편을 넘어 치가 떨릴 정도로 횡포를 일삼았던 권력의 존재.
그 한가운데 그냥 권력자가 아니라 그 누구도 당신 앞에서 '찍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절대권력자인 왕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이나 제왕 혹은 황제란 이름표를 단 권력자들은 다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왕들이 행차를 하는 순간 머리를 땅에 처 박고 흡혈귀 같은 카리스마에 눌려 숨 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왕은 인간이 아니라 신적존재. 신이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남아있는 건축물 등이 주로 그랬다. 예술품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생활을 누릴 때 반드시 '끼워팔기'를 해야 하는 건 '귀족 흉내내기'나 다름없을 정도다. 마치 상놈이 '양반증(?)'을 받아내는 게 문화생활일까. 귀족이나 양반이라면 지긋지긋 한 형편을 넘어 치가 떨릴 정도로 횡포를 일삼았던 권력의 존재.
그 한가운데 그냥 권력자가 아니라 그 누구도 당신 앞에서 '찍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절대권력자인 왕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이나 제왕 혹은 황제란 이름표를 단 권력자들은 다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왕들이 행차를 하는 순간 머리를 땅에 처 박고 흡혈귀 같은 카리스마에 눌려 숨 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왕은 인간이 아니라 신적존재. 신이었다.
그러나...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여 년 전, 세상 대부분의 왕들이 백성들로부터 원성를 쌓고 있는 동안 한 대왕은 백성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가 대한민국...아니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대왕(이산)이었다. 당신께서 친히 한양에서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가 묻힌 화성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 또는 화성행차도(華城行次圖)에 그림으로 그려 남겨놓았다. 그 모습을 현대에 사는 우리가 기리게 된 날이 어언 50주년...
그 기록들은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기록돼 있고,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파일 하나로 정리될 작업이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에 남아 후세인들이 당신의 업적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
그 기록들은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환갑잔치 내용을 치밀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기록돼 있고, 김홍도의 책임 아래 최득현 김득신, 이인문, 장한종, 허식 등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들이 제작한 목판화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파일 하나로 정리될 작업이 <정조대왕화성행행반차도>에 남아 후세인들이 당신의 업적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
당시의 기록 수단이 '그림'이었다면 오늘날은' 카메라와 영상기기' 등을 통해 세계인들이 공유하는 디지털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당신의 업적을 치밀하게 기록한 그림 한 장이 현대에 사는 우리를 감동시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모습을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 보고 있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을묘원행(乙卯園幸)'이라 불리는 이 행차는 표면상으로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정조대왕은 조선의 어느 임금보다 궁궐 밖 나들이가 많은 임금이었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으로 천 봉 한 후, 해마다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화성을 13차례나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1795년(정조 19)의 방문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게 을묘원행이라 불리우는 행차였다. 그러나 속뜻은 전혀 달랐다. 이 행차는 표면상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사도세자의 회갑도 같은 해에 겹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참배를 할 수 있고, 살아있는 어머니께는 잔치를 베풀어 드릴 수 있는 기막힌 공간이 바로 (수원)화성이었던 것이다.
정조대왕이 <8일간의 화성 행차>에서 벌인 일련의 행사들을 참조하면, 이 행차가 단순한 회갑잔치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는 효성의 표현이지만, 그 배경에는 정조 자신이 재위 20년동간 쌓아 놓은 위업을 과시하고 신하들과 백성의 충성을 한 데 모아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조는 화성을 무대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을 하나로 묶는 거창한 행사를 펼쳐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대왕은 조선의 어느 임금보다 궁궐 밖 나들이가 많은 임금이었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으로 천 봉 한 후, 해마다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화성을 13차례나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1795년(정조 19)의 방문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게 을묘원행이라 불리우는 행차였다. 그러나 속뜻은 전혀 달랐다. 이 행차는 표면상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사도세자의 회갑도 같은 해에 겹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참배를 할 수 있고, 살아있는 어머니께는 잔치를 베풀어 드릴 수 있는 기막힌 공간이 바로 (수원)화성이었던 것이다.
정조대왕이 <8일간의 화성 행차>에서 벌인 일련의 행사들을 참조하면, 이 행차가 단순한 회갑잔치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는 효성의 표현이지만, 그 배경에는 정조 자신이 재위 20년동간 쌓아 놓은 위업을 과시하고 신하들과 백성의 충성을 한 데 모아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조는 화성을 무대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을 하나로 묶는 거창한 행사를 펼쳐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주말(27~28일 양일간), 필자는 제50회 수원 화성문화제를 다녀왔다. 벼르고 별른 <정조대왕능행차 연시> 투어였다. 그동안은 주로 기사를 타고 전파된 모습만 봐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화성문화제의 백미이자 꽃인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꼭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정조대왕에 열광하는 이유'를 반드시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었다.
욕심같아서는 그런 일련의 작업들이 김홍도 사단이 그린 능행차도와 전혀 비교는 안 되겠지만, 디지털시대의 블로거 1인이 조금만 노력을 더 기울인다면 <新정조대왕능행차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따라서 정조대왕능행차 연시가 시작될 때까지 장안문 앞 VIP석 한쪽을 차지하고 정조대왕의 행차를 기다렸다. 두 시간 기다리고 두 시간 동안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마쳤다.
욕심같아서는 그런 일련의 작업들이 김홍도 사단이 그린 능행차도와 전혀 비교는 안 되겠지만, 디지털시대의 블로거 1인이 조금만 노력을 더 기울인다면 <新정조대왕능행차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따라서 정조대왕능행차 연시가 시작될 때까지 장안문 앞 VIP석 한쪽을 차지하고 정조대왕의 행차를 기다렸다. 두 시간 기다리고 두 시간 동안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마쳤다.
눈물겨웠던 감동의 축제 현장
-화보,2013 정조대왕능행차 연시-
오후 내내 장안문 앞과 뒤 또는 위와 정조로 등을 오가며 남긴 파일은 엄청났다. 그 기록들을 필자의 블로그 <내가 꿈꾸는 그곳>에 기록할 수 있게 되다니 감개무량했다.(티스토리의 장점 중 하나는 대용량이란 것. ^^) 그런데 이날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기록하는 동안 절대적권력의 상징인 왕에 대한 절대적지지(?)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장소를 이동해 장안문 성곽 위로 올라, 그곳에서 능행차 연시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나온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당신들의 숨통을 틔워준 왕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기 위해 도열해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행복해 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수원화성에서 정조대왕은 절대권력자가 아니라 절대적인 사랑의 메신저였다. 그 모습을 장안문 위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괜히 주변을 살폈다. 감동의 축제현장에서 '행복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없던 봉건 불통의 시대 당시의 주종관계가, 정조대왕능행차로부터 수평으로 이동하여 구경을 나온 사람들과 정조대왕의 눈높이가 같아진 것이다. 이제 절대권력자인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왕은 친히 백성들을 살피는 세상. 그게 정조대왕 이전 또는 이후에 가능하기라도 했던가.
주지하다시피 정조대왕께선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 조선 최초의 임금이었다. 봉건사회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같은 불행이 없을 것이란 걸 굳게 믿었던 어질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왕. 역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당신께서 친히 겪은 불행을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싶게 만들었던게 8일간의 화성 행차였던가.
을묘원행에 기울인 정조의 정성과 관심은 대단했다. 준비 기간은 1년 전부터 시작됐고 행차 비용은 국가의 공식적인 경비를 전용하거나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한 게 아니라 정부의 환곡을 이용한 이자수입으로 충당했다. 그렇다고 해도 비용 전부를 행사 경비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2만 냥은 전국의 농민들에게 농사 밑천으로 사용할 재원으로 빌려주었고, 1만 냥은 흉년이 든 제주도 백성의 구호 자금으로 썼다. 또 1만 냥은 화성의 둔전을 건설하는 데 썼다.
행차 비용의 절반 가까이 백성과 나라를 위해 쓴 것이다. 행차를 통해 백성들을 돌아보고 불통과 대립으로 꽉 막힌 궁궐 밖으로 나들이도 할 수 있었으니 진정 백성들과 소통을 즐기는 왕이 어니었던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반갑고 아름답게 보이다니...정조대왕도 그랬을 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설렘으로부터 시작해 감동으로 이어진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수원화성문화제 이모저모는 계속이어진다.
주지하다시피 정조대왕께선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 조선 최초의 임금이었다. 봉건사회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같은 불행이 없을 것이란 걸 굳게 믿었던 어질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왕. 역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당신께서 친히 겪은 불행을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싶게 만들었던게 8일간의 화성 행차였던가.
을묘원행에 기울인 정조의 정성과 관심은 대단했다. 준비 기간은 1년 전부터 시작됐고 행차 비용은 국가의 공식적인 경비를 전용하거나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한 게 아니라 정부의 환곡을 이용한 이자수입으로 충당했다. 그렇다고 해도 비용 전부를 행사 경비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2만 냥은 전국의 농민들에게 농사 밑천으로 사용할 재원으로 빌려주었고, 1만 냥은 흉년이 든 제주도 백성의 구호 자금으로 썼다. 또 1만 냥은 화성의 둔전을 건설하는 데 썼다.
행차 비용의 절반 가까이 백성과 나라를 위해 쓴 것이다. 행차를 통해 백성들을 돌아보고 불통과 대립으로 꽉 막힌 궁궐 밖으로 나들이도 할 수 있었으니 진정 백성들과 소통을 즐기는 왕이 어니었던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반갑고 아름답게 보이다니...정조대왕도 그랬을 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설렘으로부터 시작해 감동으로 이어진 정조대왕능행차 연시와 수원화성문화제 이모저모는 계속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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