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선의 긴 휴식
-여행지 세 번 맛 보는 나만의 노하우-
당신이 연출한 모노로그는 끝났다.
모든 여정 끝낸 목선 한 척
심장은 멎고 미이라로 변한 당신.
몰골은 초라하나 결코 외롭지 않다.
머리를 뉜 곳은 천상의 화원
요정들의 향기와 코러스가 울려퍼진다.
여행지에서 뭘 하고 지내시나요?...
그럴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고있거나 살았던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바다건너 먼 나라에 누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때, 먼 나라로 떠나는 여행은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인터넷을 열거나 모바일폰을 열거나 티비를 켜는 순간 세상 모든 일이 한 눈에 들어오는 세상이 됐다. 특정인의 동태가 매 시간 매 순간 트윗 등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 속의 풍경 하나 만으로 요즘 세태를 알 수 있다.
그들의 손에는 뭔가 하나씩 들려있다. 스마트폰이라는 물건. 그게 얼마나 똑똑한지 사람들은 모두 그 물건에 몰두하고 있다. 곁에 누가 있는지 관심도 없다. 디지털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인터넷에 로그인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이런 사정은 집이나 직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여행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사진은 금새 친구나 가족에게 전파된다. 여행지의 안개낀 아침은 물론 하늘에 별이 총총한 밤 늦은 시각까지 스마트폰은 꺼질 줄 모른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런 습관은 계속된다. 여행의 목적이 견문을 넓히는 일이라면 스마트폰 하나 내지 인터넷만 있으면 족한 세상. 그렇다면 여행지에서서 뭘 하고 지내야 할까...사람들 마다 생각이 다르고 관점 조차 서로 다르다. 그런데 노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경이롭다. 신기하다.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만큼 감동이 넘친다. 온라인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오프라인의 감동이자 여행지의 감흥. 필자는 그 감동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이중으로 즐긴다.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듯 여행지에 펼쳐진 대자연을 한 프레임씩 덜어내 맛을 보는 일이다.
내 앞에 펼쳐진 북부 빠따고니아의 오르노삐렌 마을의 모습이 그랬다. 우리는 썰물 때가 되면(밀물 때 바닷가는 썰물 때 보다 신비롭지 못했다) 바닷가 언덕으로 나갔다. 썰물 때의 갯벌은 온오프라인을 통털어 쉽게 접하지 못한 신비로운 풍경들. 썰물 때 마다 봤던 갯벌 조차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오로노삐렌 앞 바다의 갯벌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는 목선이 곳곳에 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세파에 부대낀 삶을 마치고 샛노란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 위에서 자기가 살아왔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 여행지에서 바쁘고 신나게 스마트폰의 자판을 두드리면 느낄 수 없는 풍경이다. 여행지는 아날로그가 대세. 잠시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면 여행의 참 맛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귀가하여 블로그에 글을 끼적거리며 다시금 여행지를 되돌아 보는 일. 그땐 여행지의 추억이 발효 과정을 거쳐 더 깊고 향기로운 맛을 낸다. 여행지에서, 뷰파인더의 깊이를 통해서, 그리고 여행지의 감흥을 끼적거리며 여행지를 세 번 맛 보는 것. (흠...다 그렇게 하신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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