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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원산지의 감자 생김새 포장방법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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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의 감자 생김새 포장방법도 달라
-감자 가게 앞 궁금했던 물건 알고 보니-




어디에 쓰는 어떤 물건일까...
 


언뜻 보면 마치 골동품 처럼 생긴 이 물건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베가 중앙시장(Mercado Vega )' 감자 가게(도매상) 앞에 놓아둔 것. 철근을 서로 다른 적당한 크기로 둥글게 말아 두 곳을 용접해 둔 게 조각품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물건의 정체에 대해 알고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지며 숙연해 질지도 모른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여러날 기회를 살펴 세 번에 걸쳐 촬영된 사진들이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게 숙연해 질지도 모른다는 후자의 경우이다. 사람들 중에는 남녀노소 직업 등에 따라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은 가장 싼 값 또는 웃돈을 엊는 등의 불필요한 조치로 그들의 얼굴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스타들이나 모델들은 비싼 몸값을 원하게 될 것.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프로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초상권을 주장하며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자기 모습을 찍는 사람을 향해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베가 중앙시장에 들러 찬거리와 생필품을 구입하러 갈 때 마다 감자 가게 앞에만 가면 매우 조심 스러웠다. 자칫 감자가 날아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감자를 도매 가격으로 공급하는 이 가게에는 늘 무거운 물건을 광주리에 담아 나르는 사람이 있었다. 주로 주인 한 사람과 싼 임금에 한시적으로 고용된 비정규직 한 사람이 일을 하는 가게였다. 




그는 큰 화물차에서 방금 하역된 감자를 하루 종일(?) 감자 창고에 나르거나 포장하는 일을 도맡았다. 언뜻 봐도 중노동이었다. 그런 분 앞에서 한 여행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건 인지상정. 그 분의 표정은 감자와 광주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노동의 대가에 비해 광주리는 지나치게 흙에 찌들어 보였다. 그 대신 한 노동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한 흔적은 가장 숭고한 빛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필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한 노동의 신성함 때문이었다. 따라서 감자 가게 앞에 가기만 하면 원산지 감자의 넋(?)이 그대로 옮겨 붙은 광주리에 한 눈이 팔리는 것이다. 감자와 광주리와 구리빛으로 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이 하나가 된 것.

그런 감자를 우리는 너무도 좋아했다. 
산티아고에 대략 4개월 정도 머무는 동안, 우리는 무시로 그 값 싼 감자를 사다가 쪄 먹기도 하고 스튜에 넣어 먹기도 하고 볶아 먹기도 했다. 일교차가 큰 안데스 산자락에서 생산된 감자는, 껍질이 고구마 처럼 붉고 육질은 매우 단단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매우 뛰어난 식재료. 한국에서 이런 감자 맛을 못 보게 된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날 감자 가게에 들를 때 마다 광주리 곁에 우두커니(?) 서 있던 용도불명의 물건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됐다. 철근을 구부려 만든 물건은 감자를 수작업으로 포장하는 기계였다. 산티아고 베가 중앙시장에 출하된 감자 빛깔이나 생김새도 달랐지만 포장 방법도 달라보였다. 그 생소한 장면과 포장 공정을 담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던 것. 여러날에 걸쳐 촬영된 장면을 공정별로 재구성해 보니 이랬다. 
 

  
 
 

베가 중앙시장에서 '감자포장' 이렇게 한다





화물차에서 방금 하역된 감자들은 창고에 전량 보관된다. 그리고 적당량 창고에서 꺼낸 감자들은 광주리에 담겨 저울에 무게를 달게 된다. 한 광주리의 무게 단위는 10kg과 20kg. 그 작업은 하루 종일 문을 닫을 때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주로 포장 단위로 물건을 파는 도매상. 소량의 낱개를 (싸게)사려면 눈치를 봐야.ㅜ 
 



무게를 단 감자들은 광주리에 담겨 포장을 기다린다.(잽싸게 찍다가 흔들린 사진, 정말 미안했다.ㅠ )
 




이 장면은 먼저 본 물건(?)과 형태가 조금 다르다. 그러나 쓰임새는 대동소이.




감자 고를 때... 

다른 날 다른 가게에서 촬영된 사진은 이런 모습이다. 참고로 배낭여행자의 천국인 빠따고니아나 산티아고(베가 중앙시장) 등지에 들르게 되면 감자 고르는 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노란 그물망에 담긴 이런 감자는 상품이 아니란 점. 감자에도 등급이 있다.

이렇게 껍질이 벗겨진 감자는 보관에 문제가 생긴다. 빨리 상하게 되는 단점이 있는 것. 조금 사다가 빨리 먹으면 문제가 없지만 값이 싸다고 많이 사 두면 금방 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래토록 보관해 두고 맛 있게 먹으려면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상처가 없는), 흙먼지가 고르게 묻어있는 감자를 고르는 게 좋다.
 



감자의 정체


열심히 노동의 손길을 거친 감자들이 그물망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내친김에 감자의 정체에 대해 알아볼까...감자의 기원에 따르면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 안데스 산맥의 중부 고원지대에서 많은 종류의 야생종 감자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원산지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대략 1만3천년 전부터 (칠레 해안을 따라 자라는)야생감자가 안데스산맥으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믿는 과학자들도 없지 않다.  

감자와 관련된 유물로는 페루(Peru) 북부해안 지역의 잉카 유적지에서 발견된 감자 괴경형태의 초기 조형물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4세기 경에 이미 이 지역에서 감자가 재배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16세기경, 이 지역을 침략한 스페인인들에 의하면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감자를 imoza, iomuy, papa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감자는 남미에서 주로 빠빠(PaPa) 또는 빠따따(
patata)로 부르고 있다. 빠빠는 '아빠' 또는 아버지의 오래된 호칭임을 감안하면, 안데스에 살던 원주민 인디오들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매우 중요한 식품. 감자는 1570년경 남미를 침탈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유럽에 소개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재배가 시작된 것은 감자를 들여온 지 약 200년 뒤인 1700년대 후반부터라고 전한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
는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순조 24년(1824년)에, 산삼을 캐러 함경도에 들어왔던 청나라 사람이 가져왔다고 한다. 당시(1850년경) 이규경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文長箋散稿)'라는 책에 기록한 내용은 이러했다.




"북저(北藷)는 토감저(土甘藷)라 하며, 순조 24~25년에 관북(關北)인 북계(北界)에서 처음 전해진 것으로 청나라 채삼자(採蔘者)가 우리 국경에 몰래 침입하여 산곡에 감자를 심어 놓고 먹었는데, 그 사람들이 떠난 후에 이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잎은 순무 같고 뿌리는 토란과 같다.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옮겨 심어보니 매우 잘 번식한다. 청나라 상인에 물어보니 북방감저(北方甘藷)라는 것으로 좋은 식량이 된다" 

한 때 척박한 환경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던 강원도 지역 사람을 일컬어 '감자바우'라고 부른 배경은 이런 모습. 지금은 세계인이 즐겨먹는 최고의 식품 중 하나가 감자다. 오늘날 감자는 햄버거는 물론 통닭이나 닭도리탕 또는 스튜와 뼈감자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요리와 잘 어울리는 식재료이자 한 번 먹으면 차마 잊을 수 없는 맛. 그런
감자가 누가 뭐라 하지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야심한 밤에 생각나기라도 한다면 조용히 눈을 감자. ^^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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