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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낮선 도시에서 눈길끈 수제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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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선 도시에서 눈길끈 수제포스터
-유치한 듯 완성도 높은 보물같은 수제품-



누가 만든 작품일까.

산티아고에 머무를 때였다. 거의 매일 아침 산책삼아 걷던 '산 끄리스또발' 언덕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가던 길이 있었다. 그 길의 이름은 '봄베로 누녜스(Avenida Bombero Núñez)'다. 산티아고의 봄베로 누녜스 거리에는 오래된 근사한 째즈바와 고급 술집이 여러군데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삐오노노(Avenida Pio nono) 거리에는 대학생들이나 젊은세대가 삼삼오오 모여 주로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봄베로 누녜스 거리는 주로 중년층 내지 성인들이 모여 와인과 위스키를 즐기며 연극이나 째즈공연 등을 즐기는 유흥공간이다. 삐오노노 거리에 비해 씀씀이가 큰 거리이자, 밤 늦게 이 거리를 지나치면 낮에 보던 썰렁한 풍경과 전혀 다른 밤문화가 펼쳐지는 곳.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게 손으로 만든 '수제(
手製)포스터'였다. 오리지널 핸드메이드라는 것.




un cartel en la Calle, Bombero Nu
ñez SANTIAGO

세상에 손으로 만들지 않은 물건들이 거의 없겠지만, 오늘날의 인쇄 기술 등 시각디자인산업은 컴퓨터를 만나, 필요한 때 목적에 따라 수량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디자인돼 시도 때도 없이 무한정 배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런 세상에 글쎄...손으로 포스터를 만들어 사람들을 유인하겠다는 발상. 어리석은 건지 유치한 것인지. 지구반대편에서 날아온 한 꼬레아노의 눈에는 마냥 신기한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우뚝 서 버린 것. 




그리고 자세히 뜯어(?)보니 수제포스터는 대단한 정성이 깃든 보물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 번 쯤은 불조심 포스터나 반공방첩 포스터(요즘은 없음)나, 6.25전쟁 포스트 또는 산아제한 포스터나 금연 포스터 등 무수히 많은 주제를 가진 포스터(Poster,cartel스페인어는 '까르뗄'이라 부른다)를 그려본 사람들도, 봄베로 누녜스 거리에 나 붙은 수제포스터를 보는 순간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단박에 깨닫게 될 것. 




따라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수제품이라는 걸 확인시켜줄 '인증샷'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위나 칼 등으로 자르거나 오려 붙인 흔적을 촛점에 맞추어 슈팅을 날린 것. 맨 처음 본 수제포스터를 보면 포스터에 풀칠해 붙인 종이가 건조되면서 오그라든 모습이 보일 것이다. 수제포스터의 매력은 이런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더 놀라게 된다. 수제포스터는 그저 적당히 자르고 오려 붙여 만든 게 아니란 것. 샘플 하나를 참조해 볼까.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제작한 종이가 특별(?)해 보인다. 우리는 포스터를 그릴 때 '켄트지(Kent紙)' 등에 도안을 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봄베로 누녜스 거리에 나 붙은 수제포스트는 신문지 위에 그려진 것. 기발했다. 적당한 크기의 신문지를 펴 놓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해 바탕을 만들고, 물감이 잘 건조되면 다시 그 위에 포스터의 주제에 맞는 그림이나 글씨 등을 써 넣거나 오려 붙여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다면 이런 수제포스터는 산티아고 전역에서 아무때나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아니었다. 그런 기대는 하지않는 게 좋다.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이 같은 작품을 봄베로 누녜스 거리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들 수제포스터들은 이 거리의 특정 업소 근처에서만 발견된 소수의 작품들이었다. 비슷하게 만들었을지언정 똑같은 작품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보물같은 수제품이라고 불렀던 것. 얼핏 보면 엉성하고 유치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행인의 눈길을 끈 이 작품들은 포스터 본연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며, 이 골목만이 지닌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컴퓨터)로 만든 디지털 포스터(Google Image) 

주지하다시피 요즘 만들어지는 디지털 포스터는 주로 이런 모습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이미지'를 견본으로 사용했다. 전적으로 손으로 만든 아날로그 포스터와 격이 다르다. 보다 디테일 하고 컬러풀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표현을 연출해낸 건 매우 세련된 디지털 포스터. 그러나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들 포스터에서 주제는 파악할 수 있을 지언정 사람 냄새가 나지않는다.




물론 용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수제포스터는 카페나 레스토랑 또는 극장(연극) 등에 활용되면 참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서 있었던 것. 평소 도시 속에서 늘 봐왔던 세련미 넘치는 광고물 보다, 다소 우스광스럽거나 유치해 보이는 포스터 한 장이, 이 거리에 들어선 여행자 내지 손님을 기분좋게 '힐링' 시킨다면 일당백의 효과를 본 게 수제포스터가 아닌가 싶은 것. 




이 거리에 넘쳐나는 그래피티 등 이들의 솜씨를 참조하면 보다 더 세련된 포스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작품성을 드러낸 것일 뿐 '포스터의 목적'에 부합하진 못할 것. 손으로 칠 하고 그리고 찢고 자르고 써 내는 과정 등을 통해 만들어 낸 수제포스터...여행자의 발길을 잠시 붙들어 놓고 미소짓게 만든 행복한 풍경은 이런 모습이다. 
 



보다 스마트 하고 보다 디테일 하고 보다 차고 넘치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보다 어수룩 하고 유치한 발상이 그리운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봄베로 누녜스 거리에 나 붙은 수제포스터를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도시인들의 심정을 잘 읽어내는 아날로그식 오프라인 광고마케팅의 고수가 분명해 보인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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