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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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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우체통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즘골의 봄의 단상-



누구를 기다리시는 것일까.

이곳은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즘골의 아침. 아직은 안개가 자욱하다. 즘골의 한 집 앞에 세워둔 우체통이 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누구의 솜씨인지...이 우체통은 세상을 통털어 단 하나 밖에 없는 창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대기 하나에 합판 조각하나 올려놓고, 그 위에 다 쓰고 버린 빈고추장통을 엎어두고 노끈으로 칭칭 둘러맷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빈고추장통을 우체통으로 사용하기에 미안했는지 하얀 페인트칠로 단장했다. 즘골의 아침을 즐기며 산책을 나섰다가 눈에 띈 참 재밌는 우체통. 누구를 기다리시는 것일까.




즘골은 한 때 금맥이 발견되어 사람들을 끌어 모은 곳이기도 했다. 그 때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즘골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을 파고 이 땅에 묻혀있던 금을 파 내 일본으로 실어나른 곳.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그 중 한 곳을 돌아보니 그곳에는 평상이 깔려져 있었다. 또 라면을 끓여먹은 흔적들. 이 마을에 사는 도예가 김원주님께 들어본 즘골의 슬픈 이야기다.

"여름에는 어르신들이 너무 더워서 굴 속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시원하거든요."


 



한여름에 동굴 속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곳은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는 쾌적한 곳. 시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슬픈 과거가 동굴 속에 오롯이 남은 듯 하다. 한 때 70여 가구가 모여살던 큰 동네는 이제 겨우 몇 가구가 이 마을의 명맥을 잇는 게 전부였다. 금맥은 끊기고 사람들은 도회지로 떠났다.




아침을 깨우던 사람들의 소리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그곳에서, 한 우체통이 하루종일 누구인지도 모를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체통 곁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뭇새들이 우지진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그 우체통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황톳길이 슬픈사연 하나를 더 전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우체통 앞길로 우체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의 소식을 전하지만, 오래 전 이곳은 단종이 슬피울며 유배지를 향해 지나간 길이었다. 12살, 어린 단종의 걸음으로 청령포는 또 얼마나 멀고 힘들었을까. 나중에 사사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절명을 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를 일.

울다가 저리다가 오늘도 해가지네
한양길 그리워라 숙부여 살려주오
청령포 애끓는 곳에 과객 또한 슬프다




단종의 애끓는 어제시(御製詩) 중에서...그러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운동을 꾀하자 '단종이 살아 있어서 역모가 일어난다'하여 사약을 내렸다. 우체통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단종이 지나친 길이자 저 멀리 등을 보이며 충신 왕방연 등과 함께 멀어지는 곳. 즘골은 그런 곳이었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즘골의 아침 풍경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배산임수의 즘골에는 나지막한 언덕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올망졸망 모여살고 있었다. 그 언덕 위에는 산수유가 터지기 직전의 모습.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집들은 주인을 잃고 폐가로 변한지 오래. 아직도 폐가 한쪽에는 우체통이 걸려있다. 그 길을 따라 즘골을 한바퀴 돌아본 아침 풍경. 













즘골에서 아직도 농사를 짓는 분들이 못자리를 내기 위해 논을 일구었다. 곧 파종이 될 것이며 새싹이 움트면 모내기가 시작될 것이다. 요즘은 귀해진 농촌의 일상이다. 그곳에서 눈을 들어 작은 언덕을 바라보면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즘골의 과거와 현재를 증언해 주고 있다. 달래와 냉이가 수북히 피어오른 논길을 따라 즘골을 돌아본다.

지난 3월 19일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우체통이 위치한 곳




그 집 앞 논둑에서 보면 멀리 금광이 있었던 골짜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괜히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풍경 하나




누구인가 자기를 기다려 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또 세상에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어떤 것 보다 값어치 있는 게 아닌가. 즘골의 아침을 깨운 건 아날로그의 진정한 소통수단이자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사는 짧디 짧은 과거의 일. 그 과거 속에서 단종이 슬피울며 지나간 길...그 곁에서 말 없이 서 있는 우체통 하나. 그곳에서 불과 수 십 미터도 안 되는 곳에 유배지로 떠나고 있는 단종의 뒷모습이 오버랩 된다.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터만 남아있는 이곳은 한 때 서낭당이 있던 곳. 인적이 뜸한 이곳을 12살 어린 단종이 슬피울며 지나간 길이다. 우체통이 서 있는 곳에서 지척에 위치한 곳. 즘골의 아침을 숙연하게 만드는 한 장소. 이 길을 따라 10여 분만 더 가면 고달사지에 이른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그 시공을 다 잊게 만든 건 단종이 슬피 울며 지나갔을 유배지 길에 피어난 황금빛 산수유. 그 곁에서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도 단종 때문이었을까. 누군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자,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쁨을 잉태하고 사는 일이다. 즘골 작은 언덕위에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산수유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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