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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말 안해도 다 아는 세계적인 그림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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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해도 다 아는 세계적인 그림문자
-수원 해우재에서 만난 재밌는 풍경들-



있다. 없다...

말을 하는 순간, 말을 안 한 것 만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말을 안 해도 그림이나 표정만으로 다 알 수 있는 그림문자.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인이 다 아는 공용어 같은 게 화장실 문화이자 화장실을 표현한 그림문자이다. 세계인이 사용하는 그 그림문자가 '토일렛 픽토그램(Toilet Pictogram)'이란 이름으로 소개되는 곳은 수원(시장 염태영)의 명물로 자리잡은 <해우재>라는 곳이다.

해우재(解憂齋)라는 말은 사찰에서 '근심을 푸는 집'이라고 사용돼 왔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용어. 그런데 참 별난 사람도 다 있었다. 근심을 멀리해 보고 싶었던지, 아예 해우재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심재덕(전 수원시장)이란 분으로 세계인들에게 화장실(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30여 년간 살던 자신의 집을 변기 모양으로 새롭게 지어 해우재로 명명한 것이다.

그리고 심 전 시장의 타계 이후 유족들은 그의 유지에 따라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따라서 수원시는 2010년 이 시설물을 화장실문화 전시관으로 전환하였고, 2012년 화장실문화공원으로 개장하게 됐다. 최근의 일이었다. 
말을 하는 순간, 말을 안 한 것 만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말을 안 해도 그림이나 표정만으로 다 알 수 있는 그림문자와 재밌는 화장실문화 내지 '응가문화'가 펼쳐진 곳은 이런 모습. 그 현장으로 가 본다.





해우재 입구. 두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표정을 잘 살피면 한숨을 덜어낸 행복한 모습. 그 곁으로 응가를 모티브로 한 거대한 응가타워...




다 아는 사실이다. 응가는 황금빛으로 재탄생(?)해야 가장 건강하단다.




해우재는 그런 곳.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현재 위치는 해우재의 1층이다. 이곳에 들르면 맨 먼저 마주치게 되는 건물을 하늘 위에서 촬영한 그림이다. 양변기 모양의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그곳에 세계인들이 말을 안 해도 다 아는 그림문자가 전시되고 있었다. 그림문자를 해독(解讀)한다는 건 오히려 오히려(害毒)과정을 증폭 시킬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두 단어를 조합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있다. 없다...




인류문화사가 이어진 이래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림문자는 그랬다.




피부색깔과 사는 장소와 문화가 조금씩 다를 뿐,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따지는 게 이상한 일이자 따지면 따질수록 복잡한 과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토일렛 픽토그램의 속성이다. 오죽하면 사찰에서 조차 영육(靈肉)간의 의미를 해우소라 칭했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대단한 발상이다.




해우소란 근심을 푸는 집이자, 무소유를 실천(?)하게 만드는 다소 강제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마음을 비워야 정신건강에 이롭게 되듯 우리는 취한 것 만큼 버려야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게 된다면 '백팔번뇌(klesa, 煩惱)'에 또 하나의 번뇌를 추가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게 '변비'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괴롭힐 때 쯤이면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되는 도에 이르게 된다고나 할까. 

취했으면 반드시 버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을 해우소가 깨닫게 해 주는 것이며, 시방 그 이름을 딴 해우재 속에서 다시 한 번 더 '버림의 미학'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곳을 '뒷간'이라고도 불러왔고 '측간'이라고 불렀나 하면, 정낭,통시,변소로 불러왔다. 이같은 명칭은 신분이 낮은 백성들이 주로 사용해 오던 이름이었는데, 왕실에서는 '모바일화장실'도 있었다. 왕 또는 왕비가 먼 길을 행차하게 되면 신하들이 지참한 게 '매우(梅雨)틀'이었다. '매'는 응가를 '우'는 오줌을 칭한 고상한 용어. 왕실은 비우는 그릇(?)이나 이름 조차 특별했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특별한 공간이 시방 필자가 머문 곳.




심재덕이 수원시에 기증한 해우재 내부의 이 공간이 해우재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해우재를 탐방객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해설사에 따르면 심재덕은 수원 시장으로 재직할 때 이곳에서 가족들과 소통했다고 말했다. 양변기에 앉아 근심을 털어내는동안(?) 거실에 있는 가족들과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이 화장실에서 만난 특별한 시설도 있었다.

겹유리 속에 시설된 필름이 외부와 차단을 할 수 있게 만든 것. 화장실이 아니라 과학이었던 셈. 화장실 내부에 있는 전원스위치를 껏다 켰다 하면 바깥을 가릴 수 있게 만든 장치였다. 그림에선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차단한 경우. 그럴 리가 없었겠지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이 장치가 꼭 필요했을 듯. 그런 근심이 다 사라지게 되면 다시 스위치를 작동하면 된다.




짠...보인다. 안 보인다.




바깥에서 과학으로 포장된 이 화장실을 살피면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응가를 소재로 한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응가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게 배출된 그곳에서 기발한 생각을 그린 한 어린이의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




긴 말이나 수식어가 필요없었다.




그새 다녀간 사람들의 표정들도 엄청났다.




해우재 1층 전시관에는 화장실의 역사를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근.현대 화장실 모습이 기록사진으로 남아있었다. 돌이켜 보면 불과 수 십년도 채 안 된 세월동안 화장실은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은 아파트에서 문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친근해진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 옥외전시장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짚더미를 엮어 만든 '뒷간'에 앉아 근심을 다 털어낸 아이의 표정이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이 표정 하나면 화장실의 중요성이 단박에 느껴질 정도. 현자들이 늘 말버릇 처럼 '비워야 한다'는 말 뜻이 표정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비우는 그릇 조차 다른 거 모르는 사람들 없을 텐데 백제 시대 때는 호자(虎子)라는 것도 있었다. 요강과 함께 모바일화장실이었던 셈.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지만 강아지를 형상화 해 놓은듯한 재밌는 모습. 이건 남성용 변기이다.




그리고 여성용변기인 호자. 여성용은 남성용과 달리 앞 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아 걸터앉기 편하게 재작됐고, (농경사회에서)밭에 거름으로 붙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왕실에서는 변기 조차 달랐다. 위 그림이 궁중에서 쓰던 '휴대용변기'인 매화틀과 매화그릇이다. 임금의 변을 매화꽃에 비유하였으며, 실제로 어의(임금의 주치의)는 대소변의 빛깔,냄새, 그리고 맛으로 임금의 건강을 살폈다고 전한다. (맛으로...ㅜㅜ )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한 때 거의 매일 자주 봐 왔던 풍경이다. 이른바 농경사회의 '푸세식화장실'이 다수를 점하고 있을 당시 '똥지게'는 오물이 아니라 농작물에 매우 유용한 거름이었다.얼마나 그 일이 중요했으면 속담에 "밥 한사발은 줘도 한 삼태기 똥거름은 안 준다"는 말이 있었을까. 
 



해우재의 옥외 공원에는 이런 작품들 외에도 우리나라 제주도의 '통시'를 재현해 놓은 곳도 있었다. 통시란 제주도의 돼지우리 화장실을 부르는 명칭이며 응가를 먹고 자란 돼지가 그 유명한 '똥돼지'였다. 그리고 이날 엄마 아빠와 함께 해우재에 들른 어린 아이. 




양해를 얻어 촬영한 사진 속의 아이는 필자가 자랄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하고 과학적인 시설이 된 화장실문화 속에서 살고있다. 불과 두 세대를 거치는 동안 화장실은 단지 배설물을 처리하는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열린 시설로 다가온 것이다. 해우재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들른 화장실. 그곳에서 벽에 걸린 낮선 용기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을 위한 작지만 큰 배려가 화장실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




화장실 출입문 곁에 걸린 이 물건의 용도는 아이들이 양변기 위에서 볼 일을 볼 수 있게 만든 앙증맞은 깔개였다. 변기 위에 걸쳐보니 이런 모습.




요즘은 백성들이 예전 임금들이 사용하던 매화틀 보다 더 좋은 변기를 사용하고 있다. 참 편리하고 쾌적한 시설에서 기분좋게 근심을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 토일렛'이라 불릴 정도로 기발한 생각을 가진 심재덕은, 아예 화장실 형상의 집을 지어 화장실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근심이라곤 없었던 것일까. 해우재의 2층 공간에는 '미스터 토일렛을 (심재덕을)추억하며'라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외갓집 뒷간에서 출생하여 얻은 이름이 개똥이!!...라는 별명. 그의 출생 비화가 결국 화장실문화운동을 태동하게 됐고, 세계의 언론인들은 그를 가리켜 '미스터 토일렛(Mr.Toilet)'이라는 별명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화장실에서 태어나 화장실문화운동을 펼치기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화장실의 철학에 매달린 그에게 붙여준 훈장인 셈이다.

화장실문화운동의 역사는 짧다. 1990년 후반 수원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국내외로 퍼져나가면서 인류의 문화개선 운동으로 자리매김하며 화장실문화의 메카로 자리잡은 게 수원이며 해우재인 것이다. 해우재를 방문하고 돌아서는데 해우재 직원이 내민 선물 조차 재밌었다. 응가를 형상화한 저금통...그리고 팜플렛 맨 뒷장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첫 번째 행위는 바로 똥을 누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똥은 기똥차게 아름답습니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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