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퍼담는 쪽배
퍼 담아도 퍼 담아도 마르지 않는 불멸의 샘이 있을까...
사람들은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짬짬이 작은 언덕에 오른다. 사노라면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마련인 생채기를 본래 모습으로 마법같이 돌려놓는 쪽빛바다가 하늘처럼 펼쳐져 있는 곳. 뿌에르또 몬뜨를 안락하고 신비롭게 만든 땡글로 섬 꼭대기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앙꾸드만을 내려다 보는 순간, 생채기는 한 순간 사라지는 마법같은 힐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땡글로 섬 언덕 위에 도착하자마자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언덕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언덕 위에 서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눈에 띄는 풍경. 쪽빛바다다. 앙꾸드만의 바다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쪽빛 바다. 벼랑 끝에 다가서면 마치 경계를 허문 쪽빛 속에 갇힌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태어났고, 보지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볼 수 밖에 없는 바다를 낀 도시가 고향인 내게, 이 바다의 존재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가끔씩 침묵을 깨뜨리는 홍조롱이의 울음 소리를 제외하면 진공포장된 세상에 갇힌 느낌이랄까.
그 속에서 살랑거리는 바람과 알 수 없는 느낌의 아련한 바다의 향기를 맡으며, 우리는 7년 전 거닐었던 땡글로 섬의 해변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조금 전 우리가 타고 내린 보트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듯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조각조각 쪽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섬에 지남철 같이 끌려온 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추억을 만들게 될 텐데, 그 때 저 쪽배들은 추억을 퍼담는 도구가 될 테지.
그러고 보니 추억을 퍼 담는 쪽배가 장난감처럼 발 아래로 펼쳐지고 있었다. 풀꽃도 착하고 황조롱이도 착하고 바람도 착하고 말들도 착하고 쪽빛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쪽배까지 착한 곳. 또 그곳에 서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두 개의 화산. 오래전 비글호에서 채집 등을 위해 잠시 하선한 챨스 다윈이 칠로에 섬에서 바라본 쟝끼우에 호수 곁의 오소르노 화산과 형제처럼 솟아오른 깔부꼬 화산은 땡글로 섬 위에서 바라보면 환상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뷰파인더를 조금만 돌리면 멀리 안데스가 병풍처럼 둘러져있는 곳.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조금 전 우리가 하선한 땡글로 섬의 선착장이 보인다. 그곳으로 또 한 척의 보트가 다가선다.
그곳을 이름도 모를 풀꽃들이 봄볕을 쬐며 내려다 보고 있다. 마치 자연계와 유토피아를 둘로 나누어 놓은 것 같은...
그곳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락 날락거리는 황조롱이 뒤로 펼쳐지는 쪽빛바다. 난 이렇게 착한바다를 본 적 없다.
7년 전...
우리는 저 쪽빛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 땐 두 개의 화산이나 장난감처럼 펼쳐진 마을을 볼 수 없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차가웠던 바다.
그러나 언덕 위에서 바라본 그 바닷가는 물론 마을 조차 봄볕 때문인지 따뜻하게 느껴지며 침묵에 빠져든 모습.
깔부꼬 화산이 우기를 끝내고 머리에 인 눈을 터는 듯, 쪽빛 바다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하나는 외로운 지...두 개의 화산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그리고 땡글로 섬 위에서 만나게 된 말 세 마리...우리가 이 언덕 위에 있는 동안 한시도 쉬지않고 풀을 뜯던 말들 말이다.
뿌에르또 몬뜨는 남부 빠따고니아 사람들이 동경하는 도시이며,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또 산티아고에서 살고 싶은 게 꿈이다. 우리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몰려 아웅다웅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됐다. 우리는 풀만 뜯고 사는 말처럼 이런 곳이 더 좋아보이는데 사람들은 보다 더 편리한 곳을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법같은 '힐링'을 선물한 쪽빛바다
벼랑끝에서 내려다 본 바닷가에 누군가 거닐고 있다.
Borami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