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환장'하는 곳이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환상적인 오솔길-
여행자가 어느날 환장을 하다니...
나는 생전 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들 처럼 여행지의 한 풍경을 바라보며 걸신들린 듯 환장하고 있었다. 한나절 중에서 땡볕이 최고조에 이른 때 우리는 로스라고스 주 쟝끼우에 호수 북부에 위치한 뿌에르또 옥따이의 호숫가를 떠나며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던 길을 따라 뿌에르또 옥따이와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우리는 천천히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땡볕은 얼마나 따갑던지 모자를 눌러쓰고 차양을 따로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나 호수에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바다의 바람처럼 차가웠다. 땡볕과 차가운 바람을 적당히 믹서기에 갈아(?)놓으면 어떤 느낌이들까.
우리가 발길을 돌리며 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던 날씨는 그랬다. 조금 전 우리는 한 노부부를 만나 그분들을 저만치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앙증맞은 샛노란 꽃무리. 뿌에르또 옥따이의 호수를 떠날 때 우리를 배웅한 연보라빛 라일락 향기에 이은 꽃들의 환송식(?)은 대단했다. 그들은 우리 발길이 닿는 곳 마다 손을 흔들거나 환호를 하는 듯 작별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했던 것 처럼 그들은 우리를 열렬하게 배웅하고 있었던 것.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꽃을 사랑하면 꽃 속에 깃든 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며, 신의 그림자가 아름다움으로 내 속에 깃든 것."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오솔길
호수변 습지와 작은 언덕에 피어난 풀꽃들...
우리가 쉬고 있는 그늘 바깥의 모습은 눈부시다.
카메라가 눈부셔 어쩔줄 모르는 데 샛노란 요정들은 하늘을 우러러 대합창을 부르고 있다.
이때 나타난 떠돌이개 한 녀석...
녀석이 꽃밭에서 바라보는 곳은 조금 전 우리가 지나쳐 온 곳...
봄볕이 세상을 모두 장주의 호접지몽 속으로 빠뜨린 듯 꿈꾸는 표정이다.
땡볕에 동행한 떠돌이개 한 마리...
꿈을 꾸는 나무 한 그루...
꿈 속에 갇힌 뿌에르또 옥따이 너머 오소르노 화산의 머리 꼭지가 드러나 보인다.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풍경들.
이끼를 잔뜩 머금은 오래된 자두나무에서 분홍빛 요정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꽃잎을 떨구고 있는 장면.
Boramirang
여행자가 어느날 환장을 하다니...
여행자도 사람이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이지, 그걸 논리로 설명해야 할 필요나 이유가 있을까. 좋으면 그냥 좋고, 나쁘면 그냥 나쁘고, 슬프면 그냥 슬픈 것 따위. 좋고 싫은 대상이 논리를 묻지 않는다. 그런데 산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뾰죽한 산이나 둥글넓적한 산 또는 뾰죽하고 둥글넓적한 산이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강도 마찬가지였다. 노도와 같은 급류가 휘몰아치는 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흐르는 듯 마는 듯 잔잔하게 흐르는 강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수초나 늪지가 사라진 운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거나 나쁜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이유는 대상이 아니라 여행자 자기의 모습. 자기의 모습이 대상을 통해 거울처럼 비친 것. 그래서 좋고 싫고 슬프고 노여운 대상들은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자, 자기의 본성에 합하거나 반하는 모습이 세상에 펼쳐져 있었던 것. 필자의 오래된 생각.
강도 마찬가지였다. 노도와 같은 급류가 휘몰아치는 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흐르는 듯 마는 듯 잔잔하게 흐르는 강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수초나 늪지가 사라진 운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거나 나쁜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이유는 대상이 아니라 여행자 자기의 모습. 자기의 모습이 대상을 통해 거울처럼 비친 것. 그래서 좋고 싫고 슬프고 노여운 대상들은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자, 자기의 본성에 합하거나 반하는 모습이 세상에 펼쳐져 있었던 것. 필자의 오래된 생각.
나는 생전 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들 처럼 여행지의 한 풍경을 바라보며 걸신들린 듯 환장하고 있었다. 한나절 중에서 땡볕이 최고조에 이른 때 우리는 로스라고스 주 쟝끼우에 호수 북부에 위치한 뿌에르또 옥따이의 호숫가를 떠나며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던 길을 따라 뿌에르또 옥따이와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우리는 천천히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땡볕은 얼마나 따갑던지 모자를 눌러쓰고 차양을 따로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나 호수에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바다의 바람처럼 차가웠다. 땡볕과 차가운 바람을 적당히 믹서기에 갈아(?)놓으면 어떤 느낌이들까.
우리가 발길을 돌리며 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던 날씨는 그랬다. 조금 전 우리는 한 노부부를 만나 그분들을 저만치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앙증맞은 샛노란 꽃무리. 뿌에르또 옥따이의 호수를 떠날 때 우리를 배웅한 연보라빛 라일락 향기에 이은 꽃들의 환송식(?)은 대단했다. 그들은 우리 발길이 닿는 곳 마다 손을 흔들거나 환호를 하는 듯 작별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했던 것 처럼 그들은 우리를 열렬하게 배웅하고 있었던 것.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꽃을 사랑하면 꽃 속에 깃든 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며, 신의 그림자가 아름다움으로 내 속에 깃든 것."
아내의 유치해 보이는 노란색 가방 속에는 치즈버거와 햄버거와 삶은 계란이 들어있음. ^^
꽃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을 것. 나는 안데스의 한 시인이 부른 노래 속에서 꽃과 신의 존재이유를 찾고 있었다. 곧 나의 존재적 의미였다. 그게 신의 그림자라고 불리우는 '아름다움'의 실체.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는 호숫가의 작은 오솔길에서 우리를 배웅하고 있는 샛노란 풀꽃들이 그런 존재이자 봄의 정령이 깃든 꽃밭이었다. 우리는 그 꽃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잠시 짐을 내려놓았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소소한 풍경이며 세상에 널렸을 풀꽃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남달랐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이곳에서 '쉬어가자'고 했던 것. 뿌에르또 옥따이에 도착한 이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하다가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은 곳이며 우리가 미처 발도장을 찍지 못했던 곳. 7년 전 우리는 로스 라고스 주의 봄이나 빠따고니아의 봄 모습이 매우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모습을 뿌에르또 옥따이에서 마주치게 된 것.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 속을 뒤집어 놓은 환장할 만한 풍경이었다. 남미여행을 통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던 이과수 폭포는 폭포 앞에 서자마자 폭포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아마존의 강물이 쏟아져 내리는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말이 그냥 지어진 게 아니었다. 그 폭포 옆에 작은 나비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쟝끼우에 호수 곁에 피어난 샛노란 풀꽃들은 어떤 충동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샛노란 풀꽃들은 어느 순간 우리 가슴 속으로 모두 흡수되거나, 나의 혼백이 이들 풀꽃들과 함께 뒤섞인 묘한 느낌. 비록 땡볕이 내리쬤지만 정신은 말짱했는데, 한 순간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마치 환상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느낌은 혼자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 요기서 사진 한 장 찍오조..."
그렇다면 쟝끼우에 호수 곁에 피어난 샛노란 풀꽃들은 어떤 충동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믿거나 말거나. 샛노란 풀꽃들은 어느 순간 우리 가슴 속으로 모두 흡수되거나, 나의 혼백이 이들 풀꽃들과 함께 뒤섞인 묘한 느낌. 비록 땡볕이 내리쬤지만 정신은 말짱했는데, 한 순간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마치 환상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느낌은 혼자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 요기서 사진 한 장 찍오조..."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오솔길
그야말로 '벌건 대낮'이 아니었드라면 조석으로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했을 풀꽃들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가 이들 요정들과 작별을 나누고 있는 시간은 벌건 대낮. 장자가 호접지몽을 꿈꿀 수 있는 비슷한 풍경. 기후가 다소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굳이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혹은 胡蝶春夢)'을 빗대면 대략 이런 모습.
"어젯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 다녔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었다. 깨고보니 나는 나비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보니 분명 나였다.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필자의 차림을 참조하면 이곳의 날씨가 짐작 가실 것. 참 괴기스러운 모습 ㅋ
벌건 대낮에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을 자다보면 이런 꿈을 꿀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뿌에르또 옥따이의 봄볕과 바람은 장자가 꿈꾸었을 만한 장소는 아닌 듯. 나무 그늘은 추웠다. 그대신 언제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될지도 모를 이별식(?)에 깔아둔 황금빛 주단 앞에서 환장을 하거나 환상을 꿈꾸는 거...
장자는 꿈 속에서 본 나비를 통해 나(我)를 관조하며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지만, 한 여행자는 벌건 대낮 여행길에 환상 속으로 몰입당하고 있었던 것. 아마도 내 속에서 다 깨진 혼백들이 퍼즐처럼 흩어져 있었다면, 그 퍼즐 조각들이 하나 하나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는지.
빠따고니아 여행길에서 잠시 풀꽃들을 만나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환장하는 건, 드넓고 황량한 사막에서 해갈을 한 것 이상의 큰 선물이었다. 세상은 갈증을 느끼는 자에게만 샘이 보이는지. 이런 느낌들은 빠따고니아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해 준 '신호접춘몽(新胡蝶春夢)'같은 모습.
빠따고니아 여행길에서 잠시 풀꽃들을 만나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환장하는 건, 드넓고 황량한 사막에서 해갈을 한 것 이상의 큰 선물이었다. 세상은 갈증을 느끼는 자에게만 샘이 보이는지. 이런 느낌들은 빠따고니아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해 준 '신호접춘몽(新胡蝶春夢)'같은 모습.
세상에는 수 많은 길이 있다. 그러나 여행자를 환장하게 만드는 길은 흔치않을 것.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오솔길'은 이랬다.
그 곳에서 모처럼 짐을 내려놓고 행복해 하고 있는 것...
필자가 어께에 맨 작은 배낭 속에는 카메라 렌즈와 비상용구급약과 여벌의 옷가지와 음료수 등이 들어있다. 무게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짐을 내려놓는 순간 어께가 가벼워진다. 이 배낭은 빠따고니아 투어 끝까지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을 한 서브배낭. 메인 배낭은 늘 숙소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 여행 중에 어께에 매거나 손에 든 짐은 마음먹고 아무 때나 내려놓으면 그만. 그러나 삶을 짓누르는 세상의 짐은 달랐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동안 하나 둘씩 비늘처럼 뜯겨져 나갔던 게 샛노란 풀꽃들의 요정들인지. 우리를 환장하게 한 작은 풍경들이 묘한 감정을 선물한 것이다.
필자가 어께에 맨 작은 배낭 속에는 카메라 렌즈와 비상용구급약과 여벌의 옷가지와 음료수 등이 들어있다. 무게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짐을 내려놓는 순간 어께가 가벼워진다. 이 배낭은 빠따고니아 투어 끝까지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을 한 서브배낭. 메인 배낭은 늘 숙소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 여행 중에 어께에 매거나 손에 든 짐은 마음먹고 아무 때나 내려놓으면 그만. 그러나 삶을 짓누르는 세상의 짐은 달랐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동안 하나 둘씩 비늘처럼 뜯겨져 나갔던 게 샛노란 풀꽃들의 요정들인지. 우리를 환장하게 한 작은 풍경들이 묘한 감정을 선물한 것이다.
호수변 습지와 작은 언덕에 피어난 풀꽃들...
우리가 쉬고 있는 그늘 바깥의 모습은 눈부시다.
카메라가 눈부셔 어쩔줄 모르는 데 샛노란 요정들은 하늘을 우러러 대합창을 부르고 있다.
이때 나타난 떠돌이개 한 녀석...
녀석이 꽃밭에서 바라보는 곳은 조금 전 우리가 지나쳐 온 곳...
봄볕이 세상을 모두 장주의 호접지몽 속으로 빠뜨린 듯 꿈꾸는 표정이다.
7년 전 추억의 편린들이 이 호숫가에서 비늘처럼 뜯겨져 나뒹굴다가 샛노란 풀꽃으로 환생한 것일까.
삶에서 연습은 없다. 되물리는 법도 없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우리는 어쩌면 쟝끼우에 호수 곁에서 삶을 되돌리고 싶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게 비록 헛된 꿈일지라도 잠시 환장할 수 있었던 곳. 되물릴 수 없는 시간들이 샛노란 풀꽃으로 변해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오솔길은 그렇게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도 많았는지 돌아보고 살펴보고 또 돌아본 그곳...세상 모두가 호접춘몽에 빠진 듯 하다.
땡볕에 동행한 떠돌이개 한 마리...
꿈을 꾸는 나무 한 그루...
꿈 속에 갇힌 뿌에르또 옥따이 너머 오소르노 화산의 머리 꼭지가 드러나 보인다.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풍경들.
뿌에르또 옥따이 버스터미널(Terminal,'떼르미날'이라고 읽는다.)에 도착해 보니 한 손님이 땡볕을 피해있는 모습. 터미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략 인구 3천명이 살고있는 뿌에르또 옥따이는 버스 시간에 맞추어 손님들이 오는데 아직 버스 도착 시간이 멀었던 것. 그래서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마지막으로 이 마을을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뜻 밖의 풍경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환송식은 끝나지 않았던 것.
이끼를 잔뜩 머금은 오래된 자두나무에서 분홍빛 요정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꽃잎을 떨구고 있는 장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나비의 꿈 속에 내가 보인 건지. 내 꿈 속에 나비가 보인 건지...)
쟝끼우에 호수 곁에서 뿌에르또 옥따이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분홍빛 꽃가루를 흩뿌리며 앞 서 걷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풀꽃 요정들은 성당을 떠받치고 있었다. 어쩌면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가 다녀간 곳이 우리가 머물렀던 곳일까. 꽃가루와 꽃향기가 무시로 바람에 날리는 작은 마을에서 느낀 여행자의 환상은 끝나지 않았다. 한 여행자가 환장한 곳은 이런 것인지.<계속>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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