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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lago llanquihue

여행의 끝자락 남은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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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자락 남은 건 무엇일까
-뿌에르또 옥따이가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 -



여행에서 돌아오면 무엇을 남기게 될까.

지난해 산티아고에 살고있는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던 도중 아내가 흠칫했다. 지인의 여행관이 아내를 놀라게 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 사는 동안에도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으로 산티아고에서 10여 년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고 근면했다. 또래의 이민자들 중에서 최상위급에 속한 그는 열심히 일을 해 돈도 벌었고, 두 아이들은 칠레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머지않아 칠레의 엘리트군에 속할 날만 남았다. 아니 이미 엘리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사업도 성공했고 아이들도 참하게 기른 것.

그의 하루 일과는 눈만 뜨면 사업장으로 나가 일하고, 해가 떨어질 때 쯤 사업장에서 가까운 집으로 퇴근한다. 그리고 퇴근후에는 가끔 술도 한 잔 하며 주말이면 성당에 나가거나 파트너십을 맺은 사람들 끼리 골프를 치러 다니곤 했다. 그는 사회의 모범생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가 식사 도중에 여행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서 여행관을 털어놓은 것.

"여행요...그건 젊었을 때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한 번 정도 필요한 거지 나이가 들면 무슨 소용입니까..." 

아내만 흠칫했던 건 아니었다. 필자도 속으로 약간은 실망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여행길에 지인을 만나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지인의 여행관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시쳇말로 정말 그에게 여행은 '별 볼 일 없는' 것이었을까. 그는 예를 들며 여행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설득하고 싶었던지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언젠가 지인들 끼리 이과수 폭포에 들렀는데...저는 그냥 버스 속에서 잠이나 잤습니다. 무슨 감동이 있어야지요. 하하..."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에게 지인의 여행관은 날벼락 같았다. 그러나 더는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 등에 대해 말을 하지않고 화제를 딴 데로 돌리고 말았다. 길게 이야기 하면 의리가 상할 정도로 판단됐다. 

여행을 떠나면 여행지에서 감동만 느끼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서 매번 즐거운 일만 생기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서 반드시 견문만 넓히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서 현장학습만 하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고급요리만 먹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서 사진만 찍고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아마도 지인은 이런 경험 등이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젊은세대라면 몰라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거나 '이순'에 접어들면 세상을 관조하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는 것. 필자는 지인에게 여행을 통한 '자기성찰'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의 관념속에 고착화된 여행관 때문에 차라리 말을 하지않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바꾼 것. 

내 생각에는 그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사는 데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잊고 살거나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삶 전부를 사업에 투자해 놓고 돈벌이 재미에 푹빠졌다고나 할까.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그의 인생은 '일개미'로 전락해 가고 있었던 것.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넘쳐나는 데 여전히 일에만 몰두해 있었으므로, 우리가 마치 배짱이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성찰이라는 게 뭐 대단한 일인가. 여행의 목적이 반드시 자기성찰에 있는 건 아니지만, 여행자가 길 위에서 자기의 삶을 뒤돌아 보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 쟝끼우에 호수 북부에 위치한 뿌에르또 옥따이의 작은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인다. 풍경만 다를 뿐 사람사는 곳은 다 같은지 오래된 양철지붕과 목조건물 사이로 세월이 가고 오는 게 눈에 쉽게 띈다. 

어느새 한 세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버리고 새로운 세대가 보금자리를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풍경이 한 눈에 띄는 것. 세월 저편으로 숨어버린(?) 사람들은 이 작은 언덕 위에서 늘 머리에 하얗게 눈을 인 오소르노 화산을 보고 살았으며, 자기의 머리카락이 오소르노 화산 처럼 닮아가면, 쟝끼우에 호수와 오소르노 화산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걸 신앙처럼 숭배하고 살았을 것 같은 느낌.




우리는 7년 전 추억을 더듬어 뿌에르또 옥따이의 작은 언덕으로 발길을 옮기며 멀리 오소르노 화산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쟝끼우에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찬데 구름걷힌 하늘에서 내리쬐는 땡볕은 '먹지(한쪽 또는 양쪽 면에 검정 탄산을 칠한 얇은 종이)'에 당장이라도 연기를 피워올릴 것 처럼 따가웠다. 그러나 호수는 더 없이 푸르고 맑으며 잔잔했다. 바람이 잠잠하면 면경같은 호수에 영혼의 참모습이 오롯이 투영될 듯 한 곳.




그곳에 서면 삶의(여행의) 끝자락이 단박에 보이게 된다. 우리네 선조님들은 유언을 통해 자기가 죽게 되면 뒷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했는 데 이곳 사람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안 늘 봐 왔던 쟝끼우에 호수와 오소르노 화산이 잘 조망되는 언덕 위에 공동묘지가 마련돼 있었던 것. 7년 전 이곳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던 것 처럼 이번에도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우리는 어느새 7년 만큼의 세월동안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랬다. 어쩌면 이곳에서 영면하고 있는 영혼들은 오소르노 화산의 하얀 머리카락(?) 처럼 영생을 꿈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와 함께 이 호수 곁에 영원히 남는 것...

이제 돌아갈 시간...언덕 위 공동묘지 옆에 주차해 둔 주인은 아까부터 이곳에서 서성거렸던 세 할머니들. 이 분들은 먼저 떠나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언덕 위에 서성 거렸을 것 아닌가.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턱 없이 모자라는 사람들 중에 우리도 포함돼 있는 것. 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그게 너무도 빤해 보이는 데 무슨 영화를 더 보겠다고 아둥바둥 일개미가 되겠는가.




필자는 관련 포스트를 통해 '여행을 목적으로 일을 하라'고 할 만큼 여행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세상에 많고 많은 가치들이 인간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 처럼 여겨지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산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돈 전부를 지키기 위해 살 것인가.아니면 열심히 일하는 동안 해보지 못했거나,또 가 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 누군가 이런 카피를 남겼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 귀 담아 듣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우리는 이 언덕길을 따라 쟝끼우에 호수와 오소르노 화산을 바라봤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이 길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반대편이자 같은 장소에 여러번 발을 디디면 친근할 망정 처음 느낀 감동은 없어지기 때문이며, 이곳에 연고도 없다. 그래서 (앞 선 포스트에서)민박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알아주었으면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 언덕길에 우리를 마중했던 깜둥이는 카메라 앞에서 괜히 서성거렸다. 


Puerto Muñoz Gamero, Puerto Octay CHILE


뿌에르또 옥따이의 'Puerto Muñoz Gamero Cafe Restaurant' 전경

그리고 뿌에르도 옥따이의 전설 전부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3층짜리 목조건물이 호수 곁에 서 있었다. 뿌에르또 무뇨스 가메로(Puerto Muñoz Gamero)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 아직은 영업중이지만 곧 이 레스토랑도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땔감으로 변하게 될 것.

이곳을 드나들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오소르노 화산이 잘 조망되는 작은 언덕 위에서 영면에 든 것 처럼 말이다. 그 곁으로 아내가 마스크 차림에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지나치고 있다. 우리에게 오래토록 기억될 역사의 한 장면...
호숫가에는 아직 찬바람이 불고 하늘에선 뙤약볕이 작렬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참 희한한 날씨.


 


맨 처음 봤던 사진의 원내가 '뿌에르또 무뇨스 가메로(Puerto Muñoz Gamero)'의 위치. 뿌에르또 옥따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예전의 목조건물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맞은 편 호숫가에 요트들이 정박돼 있다. 이곳을 돌아 우리는 뿌에르또 바라스를 거쳐 뿌에르또 몬뜨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7년 전 우리 가슴 속에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준 뿌에르또 옥따이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 것. 세월은 가고 오는 것...언덕 위에서 삶과 여행의 끝자락을 맛 봤다면 언덕 아래는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절정으로 도망치는 로스 라고스의 봄꽃들이 한 올 한 올 톡톡 터지고 있는 풍경은 이랬다.




그대 이름은 '푸치시아(Fuchsia)'...





한국에서 보기 힘든 푸치시아는 빠따고니아 끝까지 피어있는 꽃이었다. 종류가 다양했다. 어떤 종(種)은 나무 끝에 치마를 입은 요정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본 푸치시아의 꽃망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가들의 눈망울을 닮았다. 여행길에서 만난 소소한 장면이자 귀중한 장면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구별에서 만날 수 있는 생물 등은 극히 제한돼 있다. 따라서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든 건 대단한 인연 아닌가.
 



그 인연들이 담벼락에서 우리를 배웅하고 있는 것. 이런 장면도 그냥 지나치면 평범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소중한 인연. 누군가 말했다. 꽃은 누구인가 불러줘야 의미가 된다는 거. 우리의 존재의미도 그러한 것 아닐까.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거나 버림받는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나는 이 땅의 풀꽃 하나 조차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 장면들이 하나 둘씩 쌓여 작은 기록으로 변하고 있는 것. 지구반대편의 봄에 피어나는 (겹)찔레꽃은 유난히도 싱싱하고 기름을 발라놓은 듯 반질반질 거렸다. 우리네 정서에 숙명처럼 달라붙어 노래를 만든 그 찔레꽃은, 빠따고니아 끝에서 '로사 모스께따(rosa mosqueta)'로 변해 우리를 또 얼마나 기쁘게 해 준 식물이었던가.




그 서막이 뿌에르또 옥따이의 호숫가에서 피어 오르고 있었다.










카메라의 촛점이 향한 곳을 잘 보시면 로스 라고스의 봄이 보인다.







작렬하는 땡볕의 그림자를 이용한 풀꽃 사진 한 장...그대 이름은 또 무엇이뇨.




그리고 담벼락에 핀 라일락 한 무더기...







여행에서 돌아오면 감동의 여운은 있을 망정, 그 여운은 곧 흔적도 없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담아온 사진들은 오롯이 남아 추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 또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만 남는 게 아니다. 일생 일대에 나 또는 우리와 만난 인연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얼마나 큰 기쁨으로 남게 되는지. 그 추억의 향기가 영혼 깊숙히 스며들어 삶의 끝자락을 풍요롭게 만든다면, 어디든 한 번 마음 먹고 떠나야 직성이 풀릴 게 아닌가.

7년 전 추억을 묻어 놓았던 뿌에르또 옥따이의 호숫가를 떠날 때, 연보라빛 라일락 향기가 다시금 우리를 배웅해 주고 있었다. 그 향기가 얼마나 짙었던지 우리를 붙들고 '제발 떠나지 마세요'라며 애원하는 것 같았다. 꽃을 사랑하면 꽃 속에 깃든 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며, 신의 그림자가 아름다움으로 내 속에 깃든 것. 안데스가 낳은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아름다움을 신의 그림자'라고 했었지. 뿌에르또 옥따이의 봄은 꽃의 정령과 신이 함께 노니는 낙원이었다. 그 황홀했던 장면들이 다시금 이어진다. 
<계속>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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