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고구마순의 생애를 지켜보다
생명이란 모두 다 소중한 것...
지난해(2012년) 늦가을, 녀석과 첫 만남은 참 우연하게 시작됐다. 녀석의 이름은 고구마 쪼가리. 고구마라고 부르기도 뭐 해 그렇게 불러야 마땅했다. 배란다에 내놓은 고구마에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자 아내는 부랴부랴 녀석들을 쪄 먹기 위한 조치에 돌입했다. 그 때 내 눈에 띈 게 작은 새싹들. 그래서 고구마 한 쪽 모퉁이에 돋아난 새싹 부분을 칼로 싹둑 잘라낸 다음, 옹기 그릇에서 키워보기로 했다. 그게 고구마 쪼가리...고구마순이었다.
2012년 11월 21일
고구마 쪼가리에게 일정한 수분을 제공하기 위해 우선 '티슈'에 물을 적셔 깐 다음, 책상 왼쪽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한 열흘이 지나자 녀석들은 앙증맞은 모습으로 순을 길게 뻗거나 춤을 추는 듯 한 모습으로 나를 즐겁게 했다. 정말 아가들 같이 너무 귀여운 모습. 컴에 로그인 할 때 마다 녀석들과 눈을 마주치고 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얘들아 안녕~"
그러면 녀석들이 나 한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
하마터면 생명이 있는 녀석들을 먹어치울 뻔 한 것. 우리가 늘 쪄 먹는 고구마 속에는 이런 생명이 빼곡했던 것이다. 큰 일 낼 뻔 했다.
"얘들아 안녕~"
그러면 녀석들이 나 한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
하마터면 생명이 있는 녀석들을 먹어치울 뻔 한 것. 우리가 늘 쪄 먹는 고구마 속에는 이런 생명이 빼곡했던 것이다. 큰 일 낼 뻔 했다.
2012년 11월 23일
녀석들은 식욕이 왕성했다.(...앗~싸~^^*) 고구마 쪼가리는 어느덧 고구마순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엷디 엷은 연두빛 이파리는 핏줄(?)이 다 보였다.
컴에 로그인 할 때 마다 새로 돋아나는 순들은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몸짓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고마워요...살려주셔서...ㅜㅜ "
식물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녀석들의 몸짓을 잘 살펴보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때 마다 난 녀석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새로 돋아나는 고구마순을 손등으로 어루만졌다. 혹시라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 너무 여린 이파리 표면에 난 솜털같은 피부(?)에 상처를 낼 것 같았기 때문.
식물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녀석들의 몸짓을 잘 살펴보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때 마다 난 녀석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새로 돋아나는 고구마순을 손등으로 어루만졌다. 혹시라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 너무 여린 이파리 표면에 난 솜털같은 피부(?)에 상처를 낼 것 같았기 때문.
2012년 11월 29일
녀석과 늘 마주치던 시간이 어느덧 한 달이 더 지났다. 늦은 가을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고구마순은 2012년 11월 말까지 눈에 띄게 무럭무럭 자랐다. 고구마 세 조각에서 자라난 싹은 작은 숲을 이루었다.
맨 살에 포동포동 살찐 고구마순은 어느덧 짙은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분재같은 모습을 갖췄다.
이런 생명을 하마터면 쪄서 죽일 뻔 한 것.(ㅜㅜ) 컴에 로그인 할 때 마다 매일같이 눈을 마주치며 즐거움을 준 고구마순은 마치 어린아이를 기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고구마 쪼가리는 더이상 고구마순의 중심을 견딜만큼 크지 못하고 티슈에 물을 적시는 횟수가 늘어 마땅한 조치가 필요했다. 따라서 티슈를 제거하고 다른 화분에 있던 파쇄목 거름으로 고구마 쪼가리를 덮어주었다.
2012년 12월 1일
사흘 후, 고구마순은 생각보다 더 잘 자라 주었다. 한 달 만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고구마 쪼가리는 어느덧 고구마순으로 숲을 이루며 내 책상의 친구이자 주인의 대리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까지 창가에서 비치는 옅은 볕을 쬐는 한편, 컴에 로그인을 하면 LCD창에서 비치는 빛과 전자파를 다 잡아먹는 듯 블로깅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잠시 생각할 일이 생기면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한쪽으로는 녀석들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솔솔했다. 녀석은 어느덧 나의 친구...^^
이날은 녀석들을 책상에서 옮겨 처음으로 찬물로 샤워를 시켰다.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소나기 내지 장맛비를 체험시킨 것. 녀석들은 깜짝 놀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 녀석들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저요 저요...)ㅋ 아저씨, 넘 시원해요. 또 해 줘요.또 해 줘요. ㅋㅋ "
"(저요 저요...)ㅋ 아저씨, 넘 시원해요. 또 해 줘요.또 해 줘요. ㅋㅋ "
2012년 12월 4일
볼수록 신기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고구마 쪼가리 일 뿐이자 흔해빠진 고구마 줄거리가 책상 앞에서 묘한 마술을 부리는 듯 했다.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혹한이었던 지난 겨울, 녀석은 노트북의 냉각팬에서 가늘게 뿜어져 나오는 난방장치(?)와 주인의 따뜻한 배려에 마냥 행복해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구마순은 어느덧 고구마 줄기로 성장하여 갈색빛이 자주빛으로 변했다. 녀석의 변천사를 정리해보니 이랬다.
고구마쪼가리➞고구마새싹➞고구마줄기➞(고구마나무?)...
2012년 12월 23일
그런데 어느날 고구마줄기에 변화가 감지됐다.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는 어느날 고구마 줄기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것. 두어달 동안 컴 앞에서 나를 맞이하며 행복하게 해 주었던 고구마줄기에 가을이 찾아든 것일까. 늘 파릇파릇 하던 고구마 이파리에 노란 단풍이 들면서 마치 단풍나무 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기를 늘 사랑해 주던 주인이, 어느날 잠시 좌절을 맛보는 사이 고구마 이파리도 이심전심 함께 아파하고 있었던지. 2012년 크리스마스...산타 할아버지는 오시지 않았다.(ㅜㅜ)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달라진 모습. 대략 3개월동안 컴 앞에서 희노애락을 같이 하던 고구마순은 그렇게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자기를 늘 사랑해 주던 주인이, 어느날 잠시 좌절을 맛보는 사이 고구마 이파리도 이심전심 함께 아파하고 있었던지. 2012년 크리스마스...산타 할아버지는 오시지 않았다.(ㅜㅜ)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달라진 모습. 대략 3개월동안 컴 앞에서 희노애락을 같이 하던 고구마순은 그렇게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2013년 1월 19일
지난해 12월 18일부터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나의 산타'는 크리스마스에 찾아오지 않았지만, 고구마순은 무럭무럭 씩씩하게 다시 잘 자랐다. 새로운 산타를 기다리며 빠따고니아 여행기를 끼적이는 동안 녀석은 늘 내 곁에서 포근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아저씨...다 잊어버리세요. 세상은 다 그런 거 아녜요?...까꿍~^^ "
녀석은 낙엽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리면서도 연두빛 엷은 이파리를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컴 앞에 작은 숲을 이루었다. 녀석의 자리가 비좁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고구마 한 쪼가리 속에 숨겨진 생명의 기적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녀석과 나의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11월 어느날 내 앞에 나타난 고구마 쪼가리의 만남과 이별은 주로 이런 모습.
2013년 1월 23일
이별을 직감한 이후 하루 하루의 만남은 애뜻했다. 새해들어 몰라보게 쑥쑥 자라고 있었던 고구마순은 성장 속도만큼 이파리를 떨구는 횟수도 잦고 많았다.
그렇게 떨군 이파리들이 작은 그릇에 낙엽으로 쌓여가고 고구마순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줄기와 잎을 키워내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가야...ㅜ"
"미안하다. 아가야...ㅜ"
어쩌면 고구마 쪼가리들을 수경재배를 하지않고 흙을 담은 화분에 키웠으면 낙엽대신 작은 고구마를 잉태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애시당초 그런 생각은 못했던 일.
"아저씨...그동안 고마웠어요. 해를 바꿔가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다 봤거든요. 이 세상에서 나 만큼 행운을 타고난 고구마들은 없을 거예요. 넘 행복했어요.ㅜㅜ "
"아저씨...그동안 고마웠어요. 해를 바꿔가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다 봤거든요. 이 세상에서 나 만큼 행운을 타고난 고구마들은 없을 거예요. 넘 행복했어요.ㅜㅜ "
고구마순이 불과 서너달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그는 컴 앞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일을 다 보고 있었다. 세상이 보다 살기좋고 희망이 넘쳐났으면 고구마순은 생명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었을까. 고구마순은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이별식을 치르고 있었다. 노오랗게 물든 이파리가 그 신호였던 것. 다급해진 나는 고구마순에게 '힘을 내라'며 링거(영양제)를 맞혔다. 아직 작은 그릇 속에는 처음 봤던 앙증맞은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2013년 1월 30일
영양제를 흡수한 고구마순은 기력을 회복하는 듯 작은 싹을 잎으로 다 피워냈다. 그렇지만 그 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단풍으로 변하고 있었다. 고구마순의 만추는 그렇게 다가왔다.
2013년 2월 2일
...그리고 사흘 전, 고구마순은 스스로 허리를 꺽어 자세를 낮추었다. 앙증맞은 고구마순의 생애가 끝나고 있었던 것. 나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만들었던 고구마순의 기나긴 동면이자 영면은 컴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맙구나. 네 삶 전부를 바쳐...나를 행복하게 하다니... "
** 작은 기록은 이랬다. 해를 바꿔가며 한 두 컷 모아 둔 '고구마순의 생애'를 통해 생명들의 여행을 느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봄과 여름과 가을이 교차했다. 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신이 있다면 관찰자의 모습일 것.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신의 나라와 가깝게 다가간다는 확신이 선다면, 그는 축복 받은 사람이 분명해 보인다. 이 포스트를 보신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
"고맙구나. 네 삶 전부를 바쳐...나를 행복하게 하다니... "
** 작은 기록은 이랬다. 해를 바꿔가며 한 두 컷 모아 둔 '고구마순의 생애'를 통해 생명들의 여행을 느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봄과 여름과 가을이 교차했다. 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신이 있다면 관찰자의 모습일 것.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신의 나라와 가깝게 다가간다는 확신이 선다면, 그는 축복 받은 사람이 분명해 보인다. 이 포스트를 보신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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