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지난 주(16일) 아침, 우리는 성남의 모란시장으로 행했다. 남미여행 중에 먹고 싶었던 떡이자 냉동고에 늘 보관되어 있던 떡이 바닥난 것이다. 그래서 한 며칠 부산을 떨어 질좋은 국산팥을 구해서 삶아두고 단골 방아간으로 향한 것. 우리 동네에도 떡방아간이 여럿 있었지만, 우리가 이 방아간을 고집하는 건 이 방아간의 주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아내의 판단이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떡 맛이 좋다는 것. 이 집 저 집 다 똑같은 듯 해도 상대적으로 비용도 저렴하고 친철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전적으로 아내의 고집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모란시장까지 차가 안 막히면 10여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이동거리를 감안하면 몇 천원 '에누리' 해 봤자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마음에 들면 죽어도(?) 한 곳만 고집한 곳이 이 방아간을 포함한 이웃들과 사귀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지난 주 우리는 오래된 습관에 의지하여 모란시장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남미여행 중에 먹고 싶었던 가래떡과 팥떡을 하게 됐다. 그 장면을 (위)영상에 담아봤다. 떡방아간 모습을 처음 보는 건 아니겠지만 낮익은 장면은 설날을 앞 둔 우리에게 묘한 여운을 더해주고 있었다. 영상에서 본 장면들을 공정에 따라 몇 컷 분리해 놓고 보니 떡 맛이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2.가래떡 이렇게 만든다.
우리가 가끔씩 들르는 성남의 모란시장에 위치한 떡방아간 모습.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이다. 왼쪽 대야에 담긴 짙은색 팥이 우리가 만들 팥떡의 재료이다. 가래떡과 팥떡은 공정의 순서에 따라 대략 90분 정도가 소요된 후에 종이상자에 담겨 우리에게 인계 됐다.
가래떡을 찌는 떡시루는 사각형이 아니라 들통(양동이)처럼 생긴 스텐레스 밑 바다닥에 스팀이 올라오면서 찌는 구조다. 그렇게 쪄낸 떡...그 떡이 떡 하니 카메라 앞에서 뜨거운 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것. 이 떡이 가래떡 재료다. 그냥 먹게 되면 '백설기 떡'이 된다. 한 줌 떼내어 호호 거리며 먹어보니 과연...떡맛이었다. ^^
가래떡을 뽑는 공정은 이런 모습. 들통처럼 생긴 떡시루에서 쪄낸 떡은 기계속으로 밀려 들어가 금새 가래떡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다시 도마 위에 올려져 적당한 크기로 잘려져 찬물로 입수!!...
이렇게 입수된 가래떡은 열기를 빼기위한 조치이며 떡국떡을 썰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공정이다.
그렇게 식혀진 가래떡은 선반 위에 드러누워(?) 적당한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자동기계에 의해 삭둑삭둑 썰어져 식탁에 오를 것. 요즘은 한석봉 어머니가 불필요한...ㅜ
그러나 우리가 주문한 가래떡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포장된다. 가래떡으로 뽑아진 직후 한 뼘 정도의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모두 상자에 담는다. 열기가 식지 않도록 상자에 담아 집에서 따로 포장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 그게 남미여행 중에 우리가 먹고 싶었던 가래떡의 본래 모습이다. 그 과정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다.
#3.늘 쫄깃한 가래떡 관리 방법
1.방아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한 뼘(아니라도 좋다) 정도로 잘라 상자에 담는다.
2.가능하면 가래떡이 빨리 식지않도록 상자를 덮어버린다.
3.비닐포장지 속의 가래떡은 수분 증발이 적어 여전히 촉촉한 상태가 된다.
4.집에서 포장지를 개봉한 다음 한 끼의 식사 내지 이동식에 알맞게 서너개씩 나눠 담는다.
5.나눠 담은 가래떡은 열기가 다 식기 전에 냉동고에 보관한다.(냉동고가 조금은 부하가 걸릴 것)
6.보관된 가래떡은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는다.
7.산행을 하기 전날(밤에) 미리 한 끼분의 식사 내지 이동식 분량을 상온에 해동 시킨다.
8.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동되어 쫄깃한 가래떡 맛을 볼 수 있게 된다.
9.물론 렌지에 넣어 가열하면 좋을 것. 그러나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수분 증발이 안 되게 포장된 채로 가열.
10.이런 방법은 가래떡 외 찰떡 등에도 적용하면 좋다.
#4.방아간 할아버지의 20년된 자전거
이런 방법을 아시는 분들은 적지않다. 특히 산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의 입맛을 충족 시키는 데 최고. 필요한 만큼 만들어 두고 무시로 꺼내 먹으면 가래떡의 쫄깃한 맛을 아무때나 느낄 수 있다. 먼 곳 남미여행 중에 우리나라 처럼 쌀을 이용하여 떡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없어 한동안 떡을 먹지 못한 경험이 있다. 현지식에 적응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가래떡으로 매콤한 떡볶이를 만들어 먹던 생각이 간절했던 것. 그 습관이 되살아 나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어느날 모란시장의 한 방아간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진귀한 장면을 만나게 됐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자전거 한 대가 방아간 앞에 서 있었다. 요즘 보기 힘든 '짐차'였다. 요즘은 주로 오토바이나 화물차로 배달을 하지만 한 때 이 자전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배달용으로 쓰던 자전거였던 것. 그래서 혹시나 하고 방아간 주인인 할아버지께 여쭈어 봤다.
"할아버지...이 자전거 요즘 보기 힘든 건데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하하 이거 요...20년이나 됐습니다. 계속 고쳐 타는 데 지금은 부속이 없어서 (타려면)애 먹어요."
20년된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아직도 멀쩡해 보였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떡방아간은 자전거의 나이와 같았다. 20년 전 할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곳 모란시장 한 모퉁이의 장갑짜는 공장을 인수해 그 때부터 떡방아간을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다 자랐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전히 방아간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방아간 일이 중노동이나 다름없었을까.
지난 해 이곳에 들렀을 때 할머니는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신 후에도 일을 계속해 오신 것. 방아간 앞에 서 있는 20년 된 자전거 보다 할머니의 몸이 더 쇠약해 보였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멀쩡해 보이는 자전거를 보면서 자기 물건을 이토록 애지중지 하시는 분이라면 남의 일 조차 애지중지 할 것이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근면과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할아버지였다. 20년된 자전거 한 대로부터 신뢰가 저절로 느껴지는 것. 아내의 판단이 옳았다. 서울에서 굳이 모란시장의 한 방아간으로 가래떡과 팥떡을 하러 간 아내는 떡을 잘 만드는 방아간 보다 요즘 우리 이웃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뢰와 인간미를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
#5. 팥떡이 다 됐다.
네모난 스텐레스 떡시루에서 김이 모락모락...막 쪄낸 떡시루의 모습
그 위로 허리가 편찮으셨던 할머니가 작두날(?)로 칼집을 낸다.
그리고 단숨에 번쩍들어 엎어놓고 떡시루와 떡을 분리한다.
곁에서 지켜보니 이런 모습...
팥떡은 켜켜이 팥을 뿌려넣고 시루에 쪘다.
수수팥떡은 아니지만 팥떡을 본 귀신들은 얼씬도 못할 걸...^^
방아간 할아버지의 20년 된 자전거와 함께 모란시장 한편에서는 20년 동안 떡냄새가 진동했을 것.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20년 동안 방아간을 운영해 오면서 단골이 끓는 이유에 대해 말을 아끼셨다. 그러나 두 분이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20년 동안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발길은, 온 몸으로 보여준 신뢰와 인간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가치가 가래떡과 팥떡에 묻어나고 있었던 것. 우리는 그런 가래떡과 팥떡이 먹고 싶었다.가래떡과 팥떡이 먹고 싶었던 또다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