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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나와 우리덜

내곡동특검, 단풍마저 거부한 이명박 내곡동 사저 터


Daum 블로거뉴스
 


단풍마저 거부한 이명박 내곡동 사저 터
-말 많고 탈 많은 이명박 내곡동 사저 터 다녀오면서-


지난 4년 반 동안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판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사저 터...
 
그는 퇴임 후가 걱정되었던 것일까.

무엇이 두려웠는 지...사저 담벼락에 빙둘러 쳐진 뾰죽한 쇠창살이
곱게 옷을 갈아입고 손을 내민 단풍마저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제(30일) 오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헌인릉(獻仁陵, 사적 194호,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능인 인릉)'을 다녀왔다. 이맘때 헌인릉의 단풍은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곱기 때문에 만추의 헌인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헌인릉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를 다녀오게 됐다. 참 궁금했다.

헌인릉에서 차를 몰고 이명박의 사저가 있는 내곡동까지는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만추의 헌인릉의 단풍은 생각보다 일찍 잎을 떨구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이명박 사저로 향했다. 썩 내키지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지난 4년 반 동안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판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사저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과 많이도 비교되었으므로 기록을 해 두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서울공항 쪽에서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 터로 가는 길
 

이명박의 사저 터로 가는 길은 불과 2~3년 전과 판이하게 달라져있었다. 글쓴이가 이동하고 있는 방향은 서울공항(성남공군기지)에서 양재쪽으로 왕복 4차선 좁은 도로가 왕복 10차선으로 뻥 뚫려있었다. 보금자리주택 등 택지개발로 도시개발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명박 사저에 대해 의혹을 품을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내곡동으로 향하는 대로에서부터 느낄수 있다고나 할까. 

지난해 10월, 이명박이 퇴임 후 서초구 내곡동에 거주하기 위해 내곡동 일대의 땅을 새로 샀다고 청와대가 밝히면서 내곡동이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 주변은 땅값이 너무 비싸 주변에 경호시설을 건립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대체 부지를 물색하던 중 사저용 부지 463㎡와 경호시설용 부지 2143㎡ 등 모두 2606㎡(788평)의 내곡동 땅을 마련5월 했다"고 말했다. 요즘 모양새가 형편없이 구릴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 특검은 이렇게 시작됐다. 돈 때문이었다.   


화살표 방향은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가 있는 위치,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하거나 다음번 교차로에서 유턴을 해야 함. 뒤로 청계산의 실루엣이다.
 

사저용 땅의 일부인 463㎡(140평)를 아들 이시형(33) 씨가 빚을 내 사들이는 등 '편법 매입' 논란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논현동 집에 경호시설을 짓겠다며 신청한 예산으로 땅값이 싼 지역에 대규모 시설을 짓는 것 역시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부지 대금 가운데 6억원은 시형 씨가 이 대통령 논현동 자택의 일부를 담보로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대출받았고, 5억2천만원은 친척들에게 차용증을 써주고 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저용 터는 이 대통령이나 처 김윤옥씨가 아닌 아들 시형씨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명의신탁·불법증여'의혹도 제기되고 있었다. 시형씨는 2007년 3,650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뒤 2010년까지 3년째 고지를 거부하고 있었다. 뭔가 구린 게 있었던 것일까.



원내는 양재쪽에서 서울공항쪽으로 이동하면서 본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가 있는 위치


내곡동(內谷洞)은 옛 '언주면'의 일부로서 본촌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안골', '안말'로 불리던 것이 한자로 내곡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현재의 위치는 강남구 남쪽의 구룡산, 대모산의 성남시와 분계되는 인릉산 사이에 형성된 분지에 자리잡고 있고, 헌인릉 곁에 위치한 국정원이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안골을 위시하여 샘마을, 능안마을, 헌인마을, 홍씨마을, 신흥마을 등의 자연부락이 산재해 있는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에 '헌인릉'이 있어 주택이 들어설 수 없었으며, 수목이 울창하여 호랑이.여우 등의 짐승이 출몰하던 지역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내곡동을 둘러 싸고 있는 산 중에 '인릉산'은 내곡동과 성남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내곡동 산 13-1번지에 헌릉.인릉이 자리잡고 있어 산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서울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지형이 내곡동의 자연풍광이었다.
 


내곡동의 작은 골짜기 홍씨 마을에서 양재 쪽으로 바라본 풍경, 내곡동 주변은 개발이 한창이다. 


또 내곡동의 샘마을은 1972년에 창경궁.창덕궁 인근의 종로구 와룡동 철거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함으로써 형성된 마을이다. 원래는 박석고개 왼쪽에 정착했으나 1979년 취락구조개선사업 때 헌릉로 현재 신흥마을 입구에 자리잡았다. 아울러 헌.인릉 입구 박석고개에서 남쪽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신흥마을이 있다. 이름 그대로 광복 후 월남민들의 개척단이 이룩한 새로 생긴 마을이다. 원래 이곳은 '어둔골'이라 하였는데, 나무숲이 우거져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에 호랑이도 자주 출현하였다고 한다.<자료: 내곡동 주민센터> 글쓴이가 이동한 10차선 도로는 그 한가운데를 통과해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 터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대략 내곡동 주변의 유래및 연혁 등을 참조하면 이곳은 개발을 해서는 안 될 녹지라는 게 단박에 느껴진다. 그런 녹지가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린벨트가 '해제'된 게 우연일까. 이에 대해 전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구입한 내곡동 땅은 2006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현재는 지구단위 계획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을 앞두고 있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라며 "사실상 투기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너머가 이명박 사저 터가 위치한 곳이다.


내곡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 밖 풍경은 개발이 끝나 사실상 일반인들이 토지 등을 사고팔기란 쉽지않은 지역으로 변모해 있었다. 따라서 이명박의 토지 매입과 관련해 야권에서는 시형 씨의 재산문제와 '투기의혹'을 집중 거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전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직장생활 3년차인 시형 씨가 무슨 돈으로 부지를 구입했느냐"며, "대통령 아들이 대통령실과 개발 가능성이 높은 땅을 사들인 데 국민은 의아해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그게 대선을 앞 두고 연일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내곡동 이명박 사저 특검' 논란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사저에서 작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내곡동 홍씨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었다. 이명박 사저는 자연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과 비교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 봉하마을을 찾아온 손님들과 늘 만나며 소통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내곡동을 둘러보는 동안 이명박 사저는 외부인과 철저히 고립된 지역이자 소통이 불가능한 위치였다. 두 대통령의 평가가 사저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작정 내곡동으로 떠난 글쓴이는  오후 햇살이 따사로운 홍씨마을을 내려오면서 산책을 나선 두 아주머니께 이명박의 사저 위치에 대해 물었다.
 

"저...아주머니...(두 분이 흘깃 쳐다봤다.)...이명박...이명박 대통령 사저 위치가 어디쯤 됩니까?..."
"사저 요...저기(손으로 가리키며) 교회있지요...거기 앞에 철조망 쳐 둔 곳입니다. 집은 다 허물어버렸어요."
"교회 앞인가요. 아님 뒨가요..."
"네...사저 바로 앞에 교회가 있습니다." 
 




홍씨마을의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이명박 사저 부지는 능안말길(3길)에 위치해 있었다. 자동차에서 한 컷 자동차에서 내려 한 컷 두 컷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이명박의 사저 위치가 막다른 골목길에 위치한 것 같았다. 비록 좌측 또는 우측으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정면에서 본 사저 위치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언급한 것 처럼 경호가 보다 수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에서 뒤로 바라보이는 숲은 나지막한 언덕같은 산으로 숲이 우거져있는 데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야산이었다. 좌우 양쪽만 차단하면 완벽한 경호가 이루어질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죄를 짓지말아야지 죄를 짓고 살면 완벽한 경호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거의 매일 봉하마을로 찾아오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았는 데, 이명박은 퇴임 후 철옹성 같은 사저에 갇혀 살고싶어 했단 말인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죽을 때 돈이라도 챙겨가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상상 때문인 지.
청와대에서는 애시당초  "처음부터 대통령의 이름으로 땅을 살 경우, 위치가 노출돼 호가가 두 세배 올라가고, 시설 건축 과정에서 경호상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며, "이 대통령이 건축허가 시점을 전후해 납세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취득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럴듯 했다. 지난 4년 반 동안 국민들의 가슴 속을 후벼 판 한 대통령이 자기 이름으로 사저를 구입하게 되면 위치 노출로 오히려 호가가 '다운'될 게 뻔했다. 그게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아닌가.


이명박 사저 터 근처에서 바라본 내곡동 풍경, 사저 터는 'ㄴ' 교회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내곡동 사저 터를 구입한 이후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 청와대의 우려는 국민적 의혹으로 변질돼 가고 있었다. 당장 사저 터를 구입한 돈의 출처 등이 도마에 오르며 입이라도 맞춰야 했던 지. 이명박의 형 이상은은 중국까지 출장을 떠나야 했다. 업무상(?) 처음 떠나는 중국 출장이었다고 한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면 특검 하루 전 날 이상은이 괜히 중국으로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이시형 씨가 최초 진술을 번복할 이유 조차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사저 터 구입 헐값 매입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 처럼 점점 더 부풀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저 터 앞에 도착해 뾰죽한 쇠창살이 박혀있는 울타리 근처로 접근해 봤다. 그동안 언론에 많이도 노출됐던 쇠창살이 박힌 담벼락이었다. 그러나 글쓴이가 방문한 이틀전 오후에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담벼락 곁으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사저 터는 무엇이 두려웠는 지. 담벼락에 빙둘러 쳐진 뾰죽한 쇠창살이 단풍을 거부하고 있는 듯 했다. 곱게 옷을 갈아입고 손을 내민 단풍마저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상 모든 것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불통스러운 모습을 연출한 게 이명박 사저의 담벼락에 박힌 쇠창살이었던 것이다.






쇠창살 너머에서 본 이명박의 사저 터는 풀밭으로 변해있었다.






(비록 수 십억원을 호가하는 땅일 지 모르겠지만) 풀밭은 정적이 감돌았다.




4년 반 동안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한 한 대통령이 퇴임 후에 거처할 공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 공간은 입으로만 전 재산을 우리 사회에 환원한 척 한
이명박의 또다른 재산으로 변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신교 장로였던 그가 사람들 한테 남긴 불신의 결과였다.







성격이 곧고 착하디 착했던 한 대통령의 퇴임 후 꿈은 농사나 짓고 사는 일이었지만, 임기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거짓말로 연명해야 했던 한 대통령의 퇴임 후 꿈은, 사저 터를 헐값에 구입해 다시금 재산이나 증식시키고자 했을까. 임기 전부를 강 바닥을 파 내는 데 몰두하며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든 한 대통령의 사저 터를 살펴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는 최소한 지난 4년 반 동안 잘 못 뽑은 한 대통령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던 것이다. 쇠창살 옆의 단풍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또 
이명박 사저 터 구입 헐값 매입에 대한 의혹은 하나씩 풀려가고 (?) 있었다.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 21일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서울 내곡동 사저 땅 매입 과정에서 청와대 경호처가 이명박의 아들 시형 씨와 공동구입하는 필지의 값을 애초 매도인이 요구한 액수보다 수억원 낮춰 계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광범 특별검사팀은 시형 씨와 공동으로 구입한 필지의 매매가를 낮추면서 다른 필지의 값을 높인 행위가 시형 씨의 부담을 덜기 위해 국가의 부담을 늘린 것으로, '배임의 범죄 의도'가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그와 함께 
이광범 특검팀은 사저 땅 주인 유 아무개(56)씨가 전체 9필지를 54억원에 한꺼번에 팔기로 한 뒤, 이 가운데 주택이 자리잡고 있던 20-17번지(528㎡·155.7평)의 땅값을 30억원으로 특정해 요구했지만, 사저 터 구매를 담당한 경호처 직원 김아무개(56)씨의 반대로 25억원에 계약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호처 직원 김씨는 애초 20억원에 계약하자고 주장했지만, 유씨가 세금 등을 이유로 반발해 중간가격에 합의가 이뤄진 사실도 확인했다. 



이명박의 사저 터 담벼락 옆에는 카메라기자들이 자주 출입하여 작은 오솔길이 생겼다.


이에 따라 9필지 중 경호처가 단독 구입한 나대지 등 나머지 필지의 가격은 5억원 비싸게 책정됐다. 땅주인 유씨는 애초 나대지를 싸게 팔고 주택이 있는 20-17번지를 비싸게 팔아, 1세대 1주택 비과세 및 주택 장기보유 특별공제 등을 통해 세금을 줄이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검찰 조사에서 "경호처의 요구대로 25억원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 30억원으로 계약하는 것보다 수천만원의 양도소득세를 더 내야 했지만, 출국 일정 등으로 귀찮아서 25억원에 합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사저 터 바로 앞에 위치한 'ㄴ' 교회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러나 특검팀의 수사 결과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매우 적어보인다. 이명박의 형 이상은이 출석을 미루는가 하면 시형 씨의 변호사가 특검에 압력을 가하는 모양새다. 또 특검운영에 필요한 예산(12억8000만원)도 아직 집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특검팀이 애초 압수수색 대상 1호로 꼽힌 청와대 경호처에 대해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특검의 칼날이 점차 무뎌지고 있는 것이다. 또 이 모든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 1인이 떠 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경우 특검은 사실상 별 볼 일 없게 된다. 

이명박 사저 터 담벼락 옆에는 카메라기자들이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모두 사저 터 빈껍데기만 카메라에 담아간 것이다. 글쓴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단풍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사저 터를 돌아서는 순간 눈에 띄는 풍경 하나가 있었다. 이명박 사저 터 바로 코 앞에 있는 한 교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명박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교회 뒤로 숨어야 안심할 수 있었던 지. 사저 터 앞의 교회가 시사하는 바 컷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일까...전현직 대통령의 행불행을 지켜보는 일은 어느모로 살펴보나 불행한 일이다. 그런 불합리와 부조리를 사전에 막는 일은 대통령을 잘 뽑는 일이다. 오죽하면 유신독재자의 딸이 다시금 국민들을 우롱하고 나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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