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욕망을 알기나 한 듯, 산티아고의 삐오노노 거리 곁의 한 미술관 앞에는 철사로 만든 투명인간이 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제임스 웨일 감독의 영화 투명인간(1933년 작)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인간들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 지 내재된 욕망속에 감추어진 걸 숨길 수 없는 건 예술인들이 더 한 듯 하다. 첨단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된 세상에서 촌스러운 듯 솔직한 마음을 담은 한 작품이 눈길을 끈 것도 주제답게 투명인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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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보는 순간,...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에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투명인간이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가능해 보인다. 마치 귀신놀이를 하는 듯한 재미를 주는 게 투명인간일까. 투명인간과 관련된 한 설문조사에서 사람들이 상상해 놓은 건 '여탕을 가 보고 싶은 거'란다.
참 값어치 없는 (남성)투명인간인 셈이다. 그 귀한 존재(?)를 써 먹는 게 하필이면 여탕이나 기웃거리는 바보같은 짓이라는 말이다. 차라리 은행의 금고 속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평소 마음에 안들던 친구나 사회적으로 말썽을 피우고 다니는 나쁜 정치인들의 뒤통수를 갈겨주고 모른체 하고 있던지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스파이더맨이나 일지매 같은 모습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 보던 지...
누구든지 투명인간이 되면 한번쯤 해 보고 싶은 게 있을 텐데, 나는 철사로 만든 투명인간 앞에 서서 별 생각을 다 해 보고 있었다. 그 중에 여행자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다면 곧 돌아가야 할 고국의 어지럽기 짝이없는 사회질서를 바로 잡아놓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많고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정의를 외칠 때 마다 시민들이 절망하고 있는 사회를 다잡아 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치 쥐구멍 내지 우물 속으로 제 발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씁쓸한 기분을 들지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투명인간이 이 땅에 살고 있다면 세상은 절로 밝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둑님이나 날강도님들이 투명인간의 존재를 아는 것 만으로도 후덜덜 떨 일인 것이다. 언제 뒤통수에서 불이 튈지 모르니 말이다. 이런 일이 창궐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예전에 없던 일이 창궐할 땐 반드시 원인이 있을 텐데, 그 원인은 비물질로 규정되는 귀신의 존재가 별 볼일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상의 악을 징벌할 '하늘의 사자'가 없는 세상에, 장차 다가올 하늘의 심판 내지 하느님 따위는 그저 사이비 교주들이 헌금을 빼 먹는 수법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나 할까.
죄를 지어도 적당히 거짓말을 둘러대고 휠체어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법원에 한 두번 출두만 하면, 그 다음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모두 잊혀지니 누구든지 잔머리를 굴리기만 하면 세상에서 능력있는 인간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신이 죽어 자빠진 과학의 세상에서 '죄를 받을 넘' 하고 도덕군자 처럼 행세해 봤자 말~짱 날탕인 것이다.
그럴 때 투명인간의 출몰이 세상에 알려지면 세상의 위정자는 물론 세계의 악의 축 따위는 존재 조차 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때 쯤 투명인간이 2세 만들기에 열중하여 마치 성령으로 잉태한 성자 처럼 투명인간을 잉태한 여성이 등장하고, 그 족 수가 하나 둘씩 늘어나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살기좋은 세상이 될까. 그때 쯤 바보같은 설문자들이 도출해 둔 '여탕 방문' 같은 일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며, 세상은 아예 홀딱 벗고 사는 태초의 동산 처럼 변해 옷을 입고 다니는 게 거추장 스러울 정도일 텐데, 여탕 방문은 무슨...
그렇다면 귀국을 앞 둔 글쓴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맨먼저 해 보고 싶었던 일이 무엇일까. 그건 공짜 비행기를 타고 지구반대편으로 날아가 보는 일이다.뭐...이미 왕복표를 발행해 둔 터라 큰 의미는 없지만, 정말 투명인간이 된다면 비행기를 자주 이용해야 할 거 같다. 세상에는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나쁜사람들이 너무도 많으므로, 세상의 악을 징벌할 글로벌한 투명인간이 되려면 비행기를 자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나는 즉시 철사로 만든 투명인간 처럼 변신을 하고 산티아고발 대한민국행 비행기로 걸음을 옮겼다. 대략 한 달 전 산티아고 시내 한복판으로 숙소를 옮겨 파타고니아 여행기를 끄적일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2박 3일 동안 총알 처럼 날아 대한민국에 도착한 것이다. 그 시간이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 가고, 귀국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측근의 한 두사람 외 아무도 모르므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산티아고에서 잠수를 탄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를 향해 지구반대편으로 날아가던 항로를 되돌아, 다시 지구반대편의 대한민국으로 귀국길에 오른 것이다. 산티아고의 피오노노 거리 곁에 서 있던 철사로 만든 투명인간이 작은 영감을 부추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투명인간 보다 더 흥미로운 세계최고의 인터넷 세상에서 노트북을 열어 씨익 웃으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꿈꾸는 그곳을 방문해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드린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이야기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