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 봐도 녀석은 깊은 잠에 곯아 떨어진 게 틀림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녀석의 곁을 지나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로 부터 '떠돌이 개(떠돌견이라 부른다.)'로 불리우는 녀석은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카메라 셔터음을 날렸지만, 녀석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든 모습이다. 그 모습은 마치 이방인을 골려주기 위해 '시체놀이'에 열중하는 것 같았다.(흠...살았나. 죽었나...) 녀석은 살아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를 취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든 떠돌견의 배 근처가 실룩 거리고 있었다.
떠돌견에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걱정은 전혀 없는 것일까. 녀석의 취침 자세만 보면 천하태평이자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떠돌견의 천국이라는 칠레 땅에서 만난 녀석들의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녀석이 팔자 좋게 드러누운 산 끄리스토발 입구의 엘리베이터 매표소 앞은 날이면 날마다 이 공원을 찾는 시민들과 떠돌견의 이별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다.
산티아고에 머물면서 거의 매일 산 끄리스토발 공원으로 아침산책을 나가는 동안 작고 검은 떠돌견 한마리와 친하게 됐다. 녀석은 유독 짧은 다리에 작은 몸집을 하고 있어서 이 산으로 떠도는 떠돌견하고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떠돌견이 아니라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애완견 같았다. 그러나 이 공원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안 녀석이 떠돌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산책 중에 간식으로 먹던 치즈 조각을 녀석에게 내밀었는데, 녀석은 그 다음날 부터 멀리서 우리 모습이 보이면 곁으로 다가와 아는 채 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녀석이 측은해 보여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깜둥아..." 그림은 산티아고 레꼴레따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떠돌이개들
녀석은 꼬리를 흔들고 짖어대며 자신을 아는 채 하는 이방인을 좋아했다. 깜둥이와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다음날 부터 우리는 깜둥이 몫의 간식을 따로 챙겨 깜둥이와 함께 아침을 먹게 됐는데, 이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우리는 서서히 정이들기 시작했고 헤어질 때가 되면 곤욕을 치루어야 했다. 떠돌견이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공원입구에서 헤어져야 하는 데, 깜둥이가 우리를 따라나서며 속을 썩이는(?) 것이었다. 녀석이 우리를 따라 숙소 근처 까지 진출한 것이다. 처음에는 꾸짖어 돌려 보냈지만 돌아서는 깜둥이 모습을 보니 생이별을 하는 듯 했다.
여행자의 신분이 아니라면 데려와 키워볼 생각도 없지않았는데, 오늘 아침 다시 그 짓(?)을 반복하며 '깜둥이나 우리가 참 할 짓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도시의 떠돌견들의 꿈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다. 공원 입구에서 죽은 듯이 퍼져 잠들어 있는 떠돌견의 꿈 속에는 이 도시의 인간들과 함께 사는 게 아닐까. 복잡한 도시에 풀어놓아 두면 자유로울 것 같은 떠돌견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시츄에이션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취침하고 있는 떠돌견의 모습이다. 우리가 깜둥이를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 해 주자, 녀석의 두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볼을 타고 내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녀석은 우리들의 생각보다 깊고 어두운 고독과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도시 한편에서 인간들의 사랑을 목마르게 갈구하는 것도
떠돌견이 날이면 날마다 꾸는 꿈 같다.
고독하고 외로운 건
이 도시에 살고있는 인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