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잘 생긴 햇감자가 1kg에 350빼소(한화 800원 정도)로 엄청 싸다. 한국의 감자는 생긴 모습이 울퉁불퉁한데 칠레에서 생산되는 감자는 매끈하고 껍질이 고구마 처럼 붉은 빛이 감돈다. 이게 감자인가 싶을 정도로 감자가 잘 생겼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유명한 청과물 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이상하게 생긴 농산물을 발견하고 너무 신기하여 정체를 케 물었더니. 글쎄 감자란다.
여러 청과물 속에 진열해 둔 알록달록한 색깔의 청과물이 감자라고?...
그래서 이 시장 곳곳을 방문해 봤더니 왠만한 곳에는 요렇게 앙증맞고 컬러풀한 감자를 다 구비해 두었다.
글쎄...알록달록한 게 감자로 보이시나요?...!!
색깔이 얼마나 강렬한지 그 중 하나를 들어보니 짙은 빨간색이다.
요렇게 신기한 감자중에는 노란색 감자도 포함되어 있고 보라빛이 감도는 감자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가게 주인들이 감자라고 해서 감자인줄 알지만 보다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페루아나(아줌마)를 만났다. 이유가 있다. 감자의 원산지가 안데스의 페루나 볼리비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 선조들은 안데스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감자를 심어 식량으로 삼으며, 건조한 창고에 말려 보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6세기 이 지역을 침략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이미 감자를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세계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순조 24년(1824년)에 만주 간도지방으로 부터 전래되었다고 하니 '강원도 감자바우'의 역사는 일천한 셈이다.
안데스에 살고있던 께로족들은 감자를 말려 저장하고 요리해 먹었는데, 그 감자이름이 '쭈뇨'였다. 감자를 여러번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감자가 쪼글쪼글해진 모습인데 산티아고 베가 센트로 시장에서 만난 컬러풀한 감자를 보니 별안간 페루아나가 손에 쥔 알록달록한 감자와 함께 감자의 역사와 문화가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쭈뇨는 안데스 잉카인들의 주식이었던 것이다.
그 주식 가운데 요렇게 앙증맞고 화려한 색깔을 지닌 감자가 있다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베가 센트로 시장의 알록달록한 감자를 보니 스페인이 살륙한 안데스 남미의 인디오들이 흘린 피 빛 같다는 생각도 들며 왠지 묘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마치 감자 속에 인디오의 영혼이 깃든 것 처럼 말이다.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100년 넘은 '베가 센뜨로(Vega Centro)' 재래시장에 현대인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감자아 양파가 무진장 출하되고 있다. 그 중 감자를 먹는 동안 안데스 인디오들을 늘 떠올릴 것이므로, 스페인이 남미를 침탈한 이후 오히려 안데스 인디오들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전파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스페인에 의해 세계로 전파된 감자는 오늘날 포테이토(POTATO)로 주로 불리지만, 감자의 원산지에서는 빠따따(PATATA) 혹은 빠빠(PAPA)로 불리운다. 100년이 더 넘은 산티아고의 청과물 시장에서는 감자를 일컬어 빠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치 그들을 늘 보살핀 '아버지'를 일컫는 말 처럼 들린 묘한 여운이 감돈다. 2차 남미여행을 통해 다시금 인디오와 안데스에 매료되게 만든 식품이 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