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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

천안함, 해경 501경비함 '송곳 증언'의 진실

Daum 블로거뉴스
 


천안함, 해경 501경비함 '송곳 증언'의 진실 
-부함장 증언, 천안함의 진실 드러낸 침몰 좌표-


법정에서 증인의 신분이 되면 어떤 기분이 들게 될까.
또 증인의 증언 전부를 사실로 믿어도 될까.

지난 8월 22일 오후 2시 부터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 법정에서는 천안함 침몰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의 모두진술 프레젠테이션으로 막을 올린 이 사건은 사흘정도의 시간이 경과했을 뿐인데도 기억만으로 회상해 보니 가물가물한 느낌이 든다. 돌이켜 보니 신 위원의 PT나 법정의 풍경 또는 증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증언에 임하는 모습 등 몇몇 장면들만 오버랩 될 뿐, 무려 4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첫 공판의 다수 내용은 기억 속에서 꽤나 멀어져 있다.

인간들의 기억력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차 망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말이다. 불과 며칠전의 일이 이런 정도인데 하물며 1약 년 5개월전의 일을 기억해 낸다는 건 얼마나 힘들거나 무리가 따를 것인지 짐작이 간다. 오죽하면 군사독재정권 등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 등이 '모르쇠'로 일관하겠는가. 인간의 기억력이 가진 단점을 200% 활용하고 자신의 죄과를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특정 사건의 증인들이 무조건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사회는 당시 일어났던 사건.사고 모습 등을 생생하게 기록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발뺌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인데 천안함 침몰사건 속에서 일어난 사실 등은 신문과 방송 또는 인터넷에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검색창만 두들기면 정보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대명천지가 되었다는 말이며, 법정에서 증인들이 함부로 떠벌떠벌 위증을 하게되면 '위증죄' 등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관련 포스트를 끄적이고 있는 글쓴이의 기억력도 어느덧 쇠퇴하여 일일이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사흘전 첫 공판 내용 조차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공판 상황 거의 전부를 나름대로 속기해 두었으므로 첫 공판 내용 전부는 기억해 내지 못할지라도 중요한 부분 내지 쟁점 등에 관해서는 소상하게 기억해 내고 있다. 기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록조차 개인적인 소회나 관점에서 첵크되었을 뿐 국회속기록 처럼 전문가가 동원된 기록은 아니다.(물론 법정에 녹음은 돼 있는 사실이다.) 오자 내지 탈자가 있을 수 있으며 토씨가 틀려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글쓴이는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이 끝나자 마자 짬짬이 공판분위기 등을 기록해 둔 노트를 들여다 보며 증인들이 증언한 내용들을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사실과 비교해 보는 데 적지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짓을 왜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 있나.




세상에는 믿을 만한 넘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넘들이 공존한다.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사기꾼 내지 거짓말쟁이 등으로 부르며 이웃을 해치는 곰팡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참 불행하게도 그들은 우리 국민들이 (재수 드럽게 없게도) 뽑아둔 대통령과 이들을 추종하는 수꼴 무리들이었다. 이들은 천안함 침몰사건은 조작질 하여 국민들을 통째로 속이려 든 무리들인데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이들이 흘려놓은 짝퉁 정보들 때문에 사실(Fact)이 실종되고 픽션(fiction)이 난무하며, 나라 전체가 통째로 불신 때문에 표류하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소설(픽션)을 사실(논픽션)로 믿어라고 하는 광신도나 사이비 교주나 가능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데,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은 그들이 스스로 조작질로 써 왔던 <천안함 피격사건> 소설을 믿지않는다면 종북세력이라며 국민들을 이간질 하는 질 나쁜 인간이었다. 대통령과 정부와 한나라당은 입만 열면 거짓말 내지 대국민 사기극을 일삼는 등 우리사회를 불신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관련 당사자들의 증언 조차 일일이 대조해 보지않으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혼란을 초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이런 폐단 등 때문에 경찰이나 검찰이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초동수사 (初動搜査)란 "사건 발생 직후에, 범인을 검거하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긴급 수사 활동. 범죄 현장을 관찰하여 수사 자료를 발견·확보하며 참고인의 증언을 듣는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초동수사에 실패하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못해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 내용을 전하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들어가는 말'을 늘어놓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첫 공판에 등장한 증인들은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 맨 먼저 침몰현장을 목격하거나 천안함 인양.구조활동 등에 관계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 증인들의 증언은 구조.인양 당시 상황 등을 상세하게 증언해 줄 것이므로 '픽션과 논픽션'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앞 선 관련 포스트( http://www.seoprise.com/etc/u2/?tid=329271 )에서 언급한 바 관계자의 증언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천안함 인양 문제와 관련한 박규창(당시 해군본부 군수참모부 수송과장) 증인은 이를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관련 포스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의 증언이 시제상으로 '과거'가 되었기에 망정이지 '현재'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하야'했을 정도 이상이었다. 바다 밑에 가라앉아 구조를 기다리는 46명의 승조원들과 그의 가족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통째로 속여가며 늑장대처로 일관했으니 이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위 백령도 앞 바다로 이동하고 있는 삼아개발(주)의 대형 크레인의 위치를 잘 참조하시기 바란다. 백령도 앞 바다 모습을 담은 그림들 속에 '천안함 침몰 추정 위치'에서 백령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자, 첫 공판에서 증언된 '천안함 침몰 좌표'와 가까운 위치가 삼아개발의 크레인 위치이다.
 

그러므로 공판 내용을 단신으로 대충 전할 게 아니라 이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픽션과 논픽션을 대조해 가며, 글쓴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무엇이며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또한 무엇인지 각각의 사실들은 또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도표 등을 확인해 가다보니 사흘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고 말았다. 첫 공판에 지각 출두한 증인이자 천안함 침몰 당시 맨 처음 구조활동에 해경 501호 부함장 유종철 증인을 등장 시키는 게 이렇듯 서론을 길게 끄적이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을 다시 사흘 뒤로 돌리고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 과거로 되돌려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유종철 증인의 증언에 문제가 없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사건은 흥미진진한 진검승부라고 했으므로 증인들이 위증을 하게 되면 증인선서에서 언급한 처벌을 즉각 받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아울러 흥미를 더하기 위해 증인의 증언이 어떤 기분에서 표출되는지 등에도 관심을 가지면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논픽션 소설을 읽는 것 이상의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 그 현장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1. 침몰하고 있는 천안함을 구조하라!...오버!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유종철은 첫 공판 법정에 지각했다. 천안함 함미 인양을 위해 크레인 수배 임무를 맡았던 박규창의 어이없고 황당한 증언 때문에 오후 2시 부터 속개된 첫 공판은 오후 4시 10분에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첫 공판에 세사람의 증인이 출두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박규창 증인 한사람만 출두한 채로 첫 공판을 마무리 할 시점에 유종철이 등장한 사실이 정리로 부터 알려져 왔다. 따라서 재판부는 유종철의 심문을 위해 10분간 휴정을 선포했다. 그리고 유종철의 심문이 시작될 즈음 검찰측에서 "방청석에서 비웃음이 있었다. 증인이 위축될 수 있으므로 주의 주시기 바란다"며 재판부에 요청한 게 이때였다. 박규창의 황당한 증언이 가져온 방청객의 비웃음 등에 검찰이 초죽음이 된 파리한 얼굴로 재판부를 향해 투정을 부리듯 요청한 사실이다. 

유종철은 두툼한 '다이어리' 한권을 들고 증인석에 앉았다. 유종철은 변호인 측의 질문에 답할 때 마다 수첩을 뒤적거렸다. 만약 그가 수첩이 없었다면 증언에 차질을 빚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연신 수첩을 뒤적거렸다. 그의 수첩이 두툼하게 된 이유는 그가 신문 등지에서 천안함 관련 사건 내용을 스크랩해 두었기 때문이다. 유종철의 증언이다. 또 유종철이 수첩을 참조하지 않으면 안될 장도로 이 사건에 등장한 좌표는 정확해야 했다. 따라서 그는 천안함의 침몰 위치를 인천해경(2함대에서 해경으로 구조요청)으로 통보 받을 당시 천안함의 침몰 좌표를 "북위 37도 52분 10초, 동경 124도 37분 86초"라며 수첩을 참조하여 또박또박 밝혔다. 




#1-가. 천안함의 '좌초' 사실과 '침몰 좌표' 증언 의미


해경501경비함이 천안함 승조원 구조에 나설 당시의 천안함 침몰좌표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이를 테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걷던 피해자가 가해자의 칼에 찔려 비틀 거리다가 동네어귀 한모퉁이에서 쓰러져, 안간힘을 다해 '사람살려~'하고 외친 장소 내지 휴대폰을 통해 경찰에 신고한 장소가 어딘가 하는 게 천안함의 침몰 좌표였으며,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 주체가 초동수사에 나서며 범죄 현장을 관찰하여 수사 자료를 발견 또는 확보하며 수사를 용이하게 해 줄 단서가 침몰 좌표와 관계있으므로, 그는 이 사실을 두어번 반복하여 일러주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던 침몰 좌표였지만 이날 유종철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말한 천안함의 침몰좌표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천안함 구조활동을 위해 출동할 당시 "천안함이 '좌초'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당시 '전문'에 남아있고, 구조요청을 한 당사자가 해군 2함대라는 사실 등이다. 첫 공판을 통해 천안함의 좌초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자 인터넷의 진보 매체 등을 통해 발칵 되집어졌다. 천안함의 좌초 사실이 뻔히 드러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의 조작질로 인해 감추어져 있던 진실이,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의 증언을 통해 다시한번 '좌초'로 드러나면서 서서히 들통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해경 501경비함 유종철 증인이 증언한 천안함 침몰좌표와 해경상황도의 사고해점 좌표 등

그러나 다수 메이저 언론이나 방송들은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안함의 진실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지, 아니면 조작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던 것일까. 유종철의 증언을 통해 좌초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한 이후 그가 불러준 천안함 침몰 좌표를 다시한번 지도에 표시해 보는 한편, 당시 KBS가 보도한 최초 보도 내용 등을 참조하며 증인의 증언을 구글어스를 통해 지도에 표시해 보니 위 <그림>과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아울러 천안함의 침몰 좌표를 지도에 옮겨보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좌표를 옮기는 순간 최초 사고해점으로 부터 501함이 구조활동에 나섰던 천안함 침몰위치 등을 다시 점검해 봐야 했다.

서두에 언급한바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 공판에서 글쓴이나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보 내지 자료들은 쓸모는 커녕 너무도 초라할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구조활동에 나섰던 해경 501경비함의 증언과 KBS 등 최초 언론에 보도되었던 천안함의 좌초 정보 등을 참조하여 간략하게 표기해 보니 위 <그림>과 같이 나타났던 것인데, 이날 유종철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두가지 중요한 사실은 천안함이 좌초한 사실과 함께 침몰 좌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유종철은 변호인 측이 좌초 위치를 묻지않았던 것과 같이 <해경상황도의 사고해점 좌표>를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는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 측이 사고지점을 질문 할 때 증인이 <침몰 좌표>를 분명히 언급한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걷던 피해자가 가해자의 칼에 찔려 비틀 거리다가 동네어귀 한모퉁이에서 쓰러져, 안간힘을 다해 '사람살려~'하고 외친 장소 내지 휴대폰을 통해 경찰에 신고한 장소를 정확히 꼬집어 준 송곳같은 증언이 아닌가. 

#1-나.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송곳 증언'의 진실

법정에서 증인의 증언을 기록하는 동안은 그 위치가 정확히 어느곳인지 몰라 큰 감흥이 없었지만 공판 후기를 끄적이는 동안 그 사실을 구글어스에 표기하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울컥 눈시울이 불거졌다. 아...이게 천안함의 진실이 아니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더니 마침내 천안함의 진실이 베일을 벗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사건을 준비하고 묵묵히 달려온 신 전 위원이나 민변 변호사님들과 천안함의 진실을 찾기 위해 응원하고 성원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ㅜㅜ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증인 유종철이 일러준 천안함의 침몰 좌표는, 천안함이 백령도 앞 바다에서 작전 중에 좌초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 하고 있었다. 왜 그런가.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 KBS를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진 최초 정보와 증인이 언급한 침몰 좌표를 비교해 보기 위해 KBS의 보도를 들여다 볼까.

"KBS가 입수한 천안함 침몰 상황도입니다. 천안함이 침몰했던 백령도 주변의 암초지대 등 바다지형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경이 만든 이 상황도에서 사고해점 즉 사고가 난 곳은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8분 지점에 표시돼 있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해점'은 천안함이 "배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고 구조신호를 보낸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반파위치'와 '침몰위치'는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중략)...해경 말 대로라면 천안함은 배가 침수되기 시작해 구조를 요청했고, 이 상태에서 5킬로미터를 표류하다가 백령도 남쪽 해상에서 두 동강이 나 침몰한 것이 됩니다. 국방부는 그동안 천안호(함)의 정확한 침몰 좌표를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출처 http://news.kbs.co.kr/society/2010/03/28/2071024.html>
 

<출처 : 국립해양조사원 수치조류도 http://www.khoa.go.kr/ / http://blog.daum.net/gumdansan21/18>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과 정부는 천안함의 '좌초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천안함이 폭침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조작질을 통해 천안함이 좌초 이후 침몰에 이를 당시 맨 먼저 천안함의 항적정보를 숨기며 누리꾼들이나 국민들 또는 승조원 가족 전부를 기망하며 북한에 책임을 떠 넘기고 있었다. 또 천안함의 진실에 목마른 사람들을 향해 '종북세력'이라며 이간질을 일삼고 있었던 게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었다.(이런 게 대통령 맞나.) 따라서 천안함 침몰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가장 똥줄 타는 게 이 사건 관련자들일 것이며,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관련 내용이 업데이트 되는 포탈의 블로그 등을 들락거리며 그들의 질나쁜 행위가 드러날 것을 엿보며 피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않을까 싶다. 

그런 일은 524호 법정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천안함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하며 고개를 떨구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던 검찰측은, 반대 심문을 통해 유종철 증인에게 좌초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물어보며 천안함의 좌초 사실을 부정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증인은 '좌초(坐礁,grounding)'에 대해 "배가 바다의 암초에 걸리는 등 해난사고 다수를 그렇게 부른다"는 취지로 검찰 측의 심문을 한방에 일축해 버리고 말았다. 마치 이 사건의 피고가 사건을 기소한 검찰인 것 같은 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천안함 승조원 구조 당시 해경 501함 부함장이었던 증인 등 해경은 군 당국과 정부의 압력에 의해 최초 좌초 사실 등을 침묵한 사실이 있었다. '뷰스앤뉴스' 등 이사실을 전하는 언론에 따르면 해경과 군 당국(해군)의 마찰 모습이 이렇게 그려지고 있었다.

"해경 관계자는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저희(해경)공식으로 나간 것은 9시 15분으로 해군의 공식입장이 21분으로 되어 있어서 왜 다른지 해경보다는 해군의 입장을 들어야 될 것 같다"며 군당국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뉴스데스크>는 이와 함께 인천 해경의 상황보고일지를 단독입수해 보도했다. 일지를 재구성해 보면 천안함은 9시15분에 최초 문제가 발생한 뒤 상당한 거리를 최고 속력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지에 따르면, 해경이 본청과 해군에 띄운 상황보고 1보에 나타난 좌표는 위도 37.50, 경도 124도 36. 그런데 군당국이 발표한 천안함 최초 상황보고 좌표는 위도 37도 55, 경도 124도 37이다. 경찰 상황보고 1보의 위치가 군이 발표한 사고지점에서 남쪽으로 무려 약 9km나 떨어진 대청도 서쪽 지점이다. 그런데 이후 9시 33분, 부함장이 인천해경 상황실에 전화해 통보한 천안함 위치는 다시 바뀌었다. 처음 지점보다 약 9km 북쪽 백령도 인근으로 올라왔지만 군 당국이 발표한 위치보다 약 2km 서쪽이다.

해경이 이후 상황보고 2보를 내보낼 때서야 사고 발생지점은 군당국 발표와 동일한 좌표로 바뀐다. 해경 상황보고가 엉터리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면 천안함은 대청도 서쪽에서 처음 문제가 발생한 뒤 백령도쪽으로 9km 정도 이동하다 침몰한 게 된다. 18분 동안 30노트 이상의 속도를 내서 9km 이상 움직였다는 얘기다. 이는 천안함이 작전상황에서 가스터빈을 켜고 전속력을 낼 때 나오는 속도다. 해경 보고가 맞다면 9시 15분에 문제가 생긴 천안함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했는지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뉴스데스크>는 지적했다. <출처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1501>
 

< 출처: 천안함의 진실 - Version 3.3 (첫 재판 프리젠테이션) 중,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64806 >
 

군 당국과 정부의 이같은 천안함의 항적정보(좌표) 조작질 때문에 해경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었다. "해양경찰청이 최초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최초 상황보고 전파를 군경 직통전화로 발생위치를 통보했으나, 인천해양경찰서가 상황보고서 작성과정에서 이를 잘못 적어 전파했다"고 한 사실 때문이었다. "군이 전해준 사고위치를 인천해경에서 담당자가 실수로 잘못 적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해명자료가 배포되자 해경 내부에서 논란이 일며 해경 관계자는 "지금까지 각종 해상안전사고 시 사고시간과 장소는 조난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이를 실수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만약에 해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해경이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것이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한바 있다. 

"사고 당시 56명의 천안함 승조원을 구출하고도 해군 측 압력으로 언론에 이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는 상황부터 시작해서 사고시간과 사고장소 등 해군과의 마찰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여러 가지 할 말은 많이 있지만 더이상 밝히지 못하는 해경 측의 입장도 고려해달라"고 주문해 향후 사고를 둘러싼 양 기관의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었다.  <출처 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3355http://news.kbs.co.kr/society/2010/03/28/2071024.html>
 



지난 22일 오후 해경 501경비호 부함장 유종철은 천안함의 침몰사실을 3월 26일 오후 9시 34분에 해경으로 부터 통보받는 즉시, 9시 35분에 피항중이었던 대청도와 소청도 중간 해역에서 급히 출발하여 천안함이 침몰한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 15분경이었다. 증언에 따르면 선령이 낡아 최대 항속 17노트(Kts)로 전속력으로 이동한 거리는 직선거리 상으로 대략 12마일 정도의 거리였고, 소요된 시간은 42분 정도였다. 그는 당시 상황을 두꺼운 수첩을 통해 하나 하나씩 확인해 가며 증언에 임하고 있었다.
 
그가 맨 먼저 해경으로 부터 통보를 받을 때 "772함(천안함)이 백령도 남서방에서 사고가 났으니 빨리 인명구조에 임하라"는 명령과 함께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전문으로)알려주었다"고 진술했다. 자세한 내용은 천안함 침몰 좌표가 포함됐다.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유종철 증인은 당시 군 당국이나 정부로 부터 받았던 설움을 법정에서 증언 한마디로 모두 날려버렸던 것일까. 그는 수첩을 들여다 보지않아도 될 정도로 또렷한 구조 당시의 생생한 기억들을 증언하며 다시금 검찰측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직적인 조작질로 초동수사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천안함의 침몰 좌표는 유종철의 송곳 증언으로 탄력을 받고, 이명박 정권의 조작질에 의한 혐의 다수를 밝히는 데 성공하고 있는 모습이다. 해경 501경비함의 구조장면 등 오후 6시 30분 까지 이어진 증언 등 방청 후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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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천안함의 진실 - Version 3.3 (첫 재판 프리젠테이션) 중,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64806 >
 
위 KBS가 보도한 초기 천안함 침몰 사고 내용 속에서 국방부가 천안함의 정확한 침몰 좌표를 공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글쓴이 포함하여 다수 언론이나 방송사들의 헛발질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며, 이명박 정권에 의한 조작질은 하루가 다르게 의혹을 부풀리며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위 <그림> 속에 표시된 좌표는 매우 간단하다. 즉, 피해자가 괴한으로 부터 칼에 찔려 비틀거리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최초 사고 장소로 부터 이동한 흔적이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 괘적이다. 증인 유종철이 제시한 침몰 좌표는 피해자가 일정 경로를 따라 이동한 이후 최후에 출혈이 심하여 쓰러져 숨진 장소 정도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2. 군 당국과 정부의 '좌표 조작질'에 놀아난 국민들

증인이 또박또박 불러준 침몰 좌표는 글쓴이 등이 관계자로 부터 처음 들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군당국과 정부 등이 조작질 된 좌표 등 허위사실을 유포 함에 따라 천안함이 어디에서 침몰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안함의 항적정보가 조작된 결과로 인해 우리는 천안함이 엉뚱하게도 백령도 주변의 조류 흐름과 전혀 관계없는 쪽으로 함수 함미의 위치를 찾는 등 헛발질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기막힌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TOD 영상 괘적을 쫓는 등 장촌 앞바다에서 시선을 뺏기는 동안 친정부 합조단은 유유히 천안함을 폭침으로 조작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괘씸한 인간들.

 따라서 위 지도에 표시된 침몰 좌표를 약 5km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는 KBS가 해경상황도를 참조하여 보도한 사고해점 좌표가 등장하는 데, 그곳은 놀랍게도(새삼스럽지만) 천안함이 연화리 앞 바다에서 좌초하여 "물이 새기 시작했다"며 해경으로 구조신호를 보낸 지점이다. 그곳은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8분 지점이고 사고해점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천안함의 침몰좌표로 부터 대략 3분(1'(분)=1,862m) 정도 떨어진 지점이므로, 오차를 감안할 경우 천안함은 사고해점으로 부터 약 5km 정도 거리를 표류하다가 침몰 좌표에 이르러 반파하게 되는 것이다. 증언에 따라 위도상으로 보면 1마일 정도(1')의 거의 오차 범위 내에서 천안함은 백령도 남쪽으로 표류하다가 침몰한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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