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림만 고둥의 조용한 외출
-일출 기다리는 가로림灣의 고둥들 상편-
고둥은 복족강의 연체동물이다. 몸은 좌우비대칭이며 머리.발.내장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석회질 성분의 원뿔 모양을 한 껍데기는 하나만 있다. 껍데기의 입구(각구)는 닫혀 있는 것이 많다. 껍데기는 나선형으로 감겨 있으며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진화한 종일수록 수관취가 길게 나 있다. 머리에는 촉각과 눈이 있고 수컷 중에는 생식기를 갖는 것도 있다. 대부분 암수한몸이며 체외수정을 하지만 드물게 체내수정을 하는 것도 있다. 고둥은 난생 또는 난태생을 하며, 유생을 낳는 것도 있다. 식용, 장식용으로 쓰이고 옛날에는 화폐로 쓰인 종도 있으며 지금도 조가비를 수집하는 애호가들이 있다. 위키백과가 전하는 고둥의 정체가 이런 모습이다.
그러나 고둥의 정체에 대해 알고자 한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이었다. 지난 2월 20일 오전 6시 경 나는 가로림만灣의 일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른 아침 바람 한 점 없는 가로림만의 한 모퉁이에서 해돋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 곁의 무수한 생명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가로림만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그들은 피동적으로 일출을 기다린 생명들이었지만 마치 일출을 위해 외출을 한 듯 보였다. 새끼 손톱 절반 정도의 크기 정도나 될까. 가로림만 바닷가에 빼곡한 작은 생명채들이 너무도 신기하여 일출 장면은 잊은채 그들과 함께 2시간 정도를 보냈다. 그 첫 장면을 소개해 드린다.
바다가 너무 잔잔하여 꿈 속을 보는 듯한 이 장면은 2011년 2월 20일 오전 6시 경 충남 태안군 가로림만의 한 모습이다. 해무가 잔뜩 끼어 가로림만 저편의 모습은 짐작 조차 할 수 없었는데 아직 차디찬 겨울이라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은 듯 했다. 고개를 들어 새벽 하늘을 우러러 보니 그곳엔 해송 위로 달이 둥실 걸려있었다. 아직 해돋이를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각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해돋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러 아침 일찍 가로림만으로 향했다가 우리를 잇고 있는 숙명같은 존재를 발견하게 됐다. 바삐 사느라 한참 동안 잊고 산 모습이었다.
우리의 삶을 잇고 있는 인연의 밧줄은 무엇일까.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게 무슨 약물 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 조차 너무 아름다운 '가로림灣'의 겨울 풍경 속 썰물에 드러난 고둥들이 전해준 삶의 방식은 한순간 큰 울림으로 내게 다가오며 내 발길을 붙들었다. 그곳에는 수를 헤아릴 수 조차없는 수 많은 고둥들이 나 처럼 일출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바다가 서서히 저 만치 멀어지는 썰물에 드러난 고둥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 앞에서 감탄하고 있었다. (이게 고둥들의 정체란 말이지.) 그들은 각기 다른 바위 하나를 우주로 삼으며 그들의 존재를 숙명처럼 여기게 만든 해돋이를 경배하며 납작 엎드려 있었다.
고둥들이 내 눈에 띈 다음 발길이 조심스러웠다. 뭇 생명들이 내 발길 아래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죽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생전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짙은 해무 속에서 썰물이 시작되자 팥 알갱이 만한 고둥들이 하나 둘씩 무리지어 내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세상에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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