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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

김인혜 교수 투서질로 음해한 교수님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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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음대 콘서트홀 앞에 버려진 고급도시락
-김인혜 교수 투서질로 음해한 교수님들 보세요-


예술인들은 늘 배고픈 것일까.

얼마전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故최고은 씨는
'밥과 김치를 못 얻어먹어 굶어죽은' 예술인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예술인이 굶어 죽어야 했던 현실이 사실일까.

최고은 씨는 갑상선 질환과 췌장염 등을 앓고 있었으며
 여러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드시 굶어죽은 예술인이라고 말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 나돈 이유는 최 씨가 사망하기 전 남겨둔 쪽지 때문이었는데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들겨 달라"


예술인 최 씨가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 마지막 메세지다. 이 장면만 그대로 보면 참담하게도 굶어죽은 예술인의 모습이다. 따라서 인터넷 등지에서는 젊은 예술인들이 생활고를 겪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과  대중문화계 전반의 구조적인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아무튼 최 씨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세상을 향해 밥을 구걸한 결과가 되었으므로 굶어죽은 예술인의 모습으로 남게 됐다. 최 씨가 남긴 쪽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흘전 서울대학교 음대 콘서트홀 앞에는
 최 씨의 상황과 정반대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림에서 보시는 것 처럼 버려진 고급도시락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었다. 도시락 업체의 배달 날짜를 확인해 보니 이틀전에 콘서트홀로 배달된 도시락이었다. 요즘 대학은 새학기를 맞이하여 동아리 모임 등 각종 단체 모임이 많은 달이다. 서울 음대 콘서트홀 앞에 버려진 도시락은 그런 모임 등 때문에 학생들이 먹다버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버려진 도시락 가운데 학생들이 전혀 손을 대지않은 도시락이 눈에
띈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도시락 배달업체의 자료 등에 따르면 최소한 이 정도의 도시락 수준이면 도시락 1개/1인분에 대략 6~7000원 정도 수준이다. 또 아무리 싸게 잡아도 5천원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급도시락이다. 어떤 도시락은 2만원 짜리도 있다는 거 참조하시기 바란다. 또 도시락업체의 브랜드를 확인해 본 결과 최소한 10만원 이상의 도시락을 주문해야 배달이 될 정도니, 음대 콘서트홀 앞에 쌓아둔 도시락 규모를 보니 비용이 꽤나 지출된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손도 대지않은 도시락이었다. 약속이 펑크가 났던지 아니면 콘서트홀에서 배달업체 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 도시락업체가 요구하는 숫자를 맞추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손도 안댄 도시락은 곧 폐기처분될 게 틀림없었다. 굶어죽는 예술인이 있는가 하면 배가 불러 주체를 하지못하는 예술인이 있다는 말일까. 최고은 씨가 밥과 김치를 마지막으로 구걸하는 쪽지를 남긴 한편 서울 음대 한편에서는 고급도시락이 버려지고 있는 풍요로운 예술계의 한 단면이었다.

꽤 길게도 고급도시락 이야기를 끄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한동안 김인혜 교수를 마녀사냥식으로 음해하고 파면에 이르게 하는 등 투서질로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 서울대 음대 동료교수들이 이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서다. 투서질을 잠시만 되돌려 볼까. 찌라시로 전락한 조중동 등이 여론몰이에 나선 주요 핵심은, 김 교수가 학생들을 폭행했다는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도제식 교수방법 등을 문제로 삼고 있었다.


또 찌라시가 노린 것은 교수가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유린한 폭행사건 등이 음대에서 관행적으로 저질러오고 있었다는 선동적 의혹제기였다.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찌라시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발끈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포털에서는 하루에 수십만 건 씩 조회가 이루어지는 등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 결과 찌라시 언론에 제보한 서울대 교무처 등 음모 당사자들은 김 교수를 즉각적으로 파면에 이르게 했다. 네티즌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을바라보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발견되어 이의를 제기하는 포스트를 쓰게 됐다. 김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전말이 뜬금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포스트를 발행하는 한편 서울 음대의 김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사흘전 서울대 관악 켐퍼스를 직접 찾아 가 본 것이다. 휴일이었지만 논란의 실마리를 찾아줄 단초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대와 콘서트홀 주변을 서성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우에 따라서 음대생 등을 통해 증언을 인터뷰 하고 싶었지만, 콘서트홀 앞에 버려진 도시락 하나만으로도 김 교수 논란 배경 등에 대해 글을 끄적일 수 있을 거 같았다. 서울 음대를 방문한 날 전혀 뜻 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관련 포스트 <김인혜 교수 파면 흔적 찾아 서울대 가 봤더니>에 따르면 서울대의 이슈는 제자들의 폭행논란 등에 휩싸인 김 교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국립대학을 사립대학으로 만들려는 음모 때문에 서울대가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MB정부와 한나라당이 국립대학을 돈벌이 수단 등에 악용하기 위해 서울대법인화법을 만들어 놓고 지난해 연말 날치기로 상정하고 날치기로 강제통과 시킨 악법으로 학생과 대학 당국 내지 정부와 여당간에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등을 뜨겁게 달군 서울 음대의 김 교수 논란의 단초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콘서트홀 앞에 버려진 도시락만 챙겨(?)오게 된 것이다.

김 교수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틀림없다. 어쩌면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사립대학이 대학생 생산공장 처럼 우후죽순 설립되고 있었지만, 서울대학교 내지 서울대 출신을 따라 잡으려면 세월이 꽤나 지나거나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유가 뭔가.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서울대에 입학할 자격을 갖춘 학생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집요한 끈기를 가진 노력파이거나 아니면 천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건 사립대학에 등록한 학생들이 도무지 흉내낼 수 없는 서울대 학생들만의 장점이다. 예컨데 쥐새끼가 개구리로 둔갑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고 되는 건 되는 상식의 문제가 서울대와 일반대학의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서울대에 이 같은 등식 전부가 통용될 수 있다는 말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일반대가 서울대 보다 더 잘하는 게 있듯 서울대에도 반드시 맹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뭔가. 요즘 찌라시들이 괜히 구태 관행을 붙들고 여론몰이에 나서 김 교수를 마녀사냥식으로 파면하는 등 정부의 실정을 감추어 보고 싶었던 예체능계의 실태다. 한 학년 모집 정원이 25명 내지 30명에 불과한 성악과 등 음대생들은 상대적이지만 약 10: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졸업할 때 반드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서울대의 장점 등에 따르면 그들 또한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나던지 아니면 훌륭한 교수의 지도 아래 뼈를 깍는 수업의 결과 등에 따라 위대한 예술가의 칭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훌륭한 지도교수를 보유하고 또 재능있는 학생들을 보유해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며 우리나라 최고 학부의 면모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 교수 논란의 흔적이라도 발견하고 싶어서 방문하여 우연히 보게 된 음대 콘서트홀 앞에 버려진 도시락과, 김 교수를 음해하는 등 투서질을 한 동료교수나 동료교수들의 꼬드김에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참조해 보니, 예술인의 가장 기초적인 마음가짐이 안 된 것 같았다. 글을 맺어야 겠다.



요즘은 너무 풍요롭게 자란 세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콘서트홀의 단편적인 모습을 통해서 최소한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을 이렇듯 내팽개 칠 정도라면, 그들이 보여줄 창작 등 예술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을 무한 감동 시키기는 커녕, 그들 자신 조차 예술적 호기심에만 머물며 스스로 추락을 거듭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들의 안목 속에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학부가 그저 그들 스스로의 인격만을 지켜줄 이기적인 민주적 도량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고, 타인의 인격이나 가치를 드높힐 수 있는 예술적 멘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 조차 없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국립대학에서 사립대학으로 바뀌던 말든 그저 나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사악하기 그지없는 서울대법인화법에 의해 사립대학으로 바뀐 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쓸 수도 있을, 닳고 닳은 교수들의 꼬임에 한번 정도는 넘어가 줄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까. 안타깝게도 도시락을 내다 버린 학생들이 머물고 있는 서울 음대의 세계적 디바는 동료교수와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투서질 하며 내다버린 김인혜 교수였다. 예술인이 아니라도 굶어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인들이 함부로 버리는 음식들이나 투서질로 내몬 그들 스승의 모습을 보니 배부른 예술인이 설 땅은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우리가 내다 버려야 할 예술인들이자 서울 음대의 슬픈 현실이 아닌가 싶다.


서울음대 초대학장 현제명 대구 출생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대구 계성학교와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시카고에 유학하여 음악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의 서양음악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 조선음악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문예회에 참여하여 친일 활동을 시작한 후 대동민우회,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친일 단체에 연이어 참가했다. 조선음악협회의 음악회에서 친일적인 내용의 성악곡 〈후지산을 바라보며〉를 발표하고 대화숙 주최 '국민음악의 밤'과 같은 친일 행사에 참가해 독창을 하거나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전국 순회 가창지도대에 참가하는 등, 그의 친일 행적은 음악가들 가운데서 매우 뚜렷한 편이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소속의 우익 음악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울대학교에 음악대학을 설치해 예술학부 초대 학부장을 맡았다.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고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창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 오페 연출자로도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예술원의 종신회원을 지냈다. 1960년 10월 16일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향년59세) <자료출처 : 경향신문 1960.10.16일자>

흠...최근 김인혜 교수 논란을 마녀사냥으로 선동질한 친일 친정부 조중동 찌라시들의 정치적 문제는 일제강점기 때 부터 시작하여
 친일친미 극우보수 정권과 최근 한나라당의 서울대법인법 날치기 강행처리 때 까지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김 교수의 동료교수 등이 왜 관행을 문제삼아 등 뒤에서 학생들을 꼬드기며 친일친미 정권을 이롭게할 비수와 같은 투서질을 했을까...
기독교의 탈을 쓰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정치판의 유다 같은 인간들이 만든 희생치고는 대가가 너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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