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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추사 김정희 마지막 작품 화재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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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죽기 사흘전 작품
-추사 김정희 마지막 작품 화재 위험-


板殿..."이것은 추사 김정희가 쓴 봉은사 판전의 현판이다. 이 현판의 글씨는 노숙한 명필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낙관 부분의 ' 七十一果病中作 칠십일과병중작'이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현판의 글씨는 추사가 죽은 해인 1856년에 쓰여졌다"라고 봉은사 판전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림은 사흘전 봉은사에 들렀을 때 촬영한 것이며 봉은사에 들를 때 마다 가 보는 곳이기도 하다. 판전이라고 쓰여진 두 글자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七十一果病中作이란 '일흔 한 살의 과가 병중에 쓰다'라는 뜻인데 과果는 김정희 선생이 노년에 과천에 살면서 사용했던 호인 과도인果道人, 과노果老, 노과老果 등에서 나온 것으로 선생을 가리킨다. 안내문을 마저 읽어보면 "일설에 의하면 이 글씨를 쓴 3일 후에 추사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판전은 불교 경전을 새겨 놓은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이 판전 안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의 목판을 비롯하여 금강경,유마경 등 13종류 경전의 목판 3,749장이 보관되어 있다"라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추사는 일흔이 되어 과천 관악산 기슭에 있는 아버지의 묘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며 수도에 힘썼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바로 이 '板殿' 글씨가 걸린 봉은사의 스님에게서 구족계具足戒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까지 받은 다음 귀가하여, 71세를 일기로 1856년 10월 10일 작고하였다고 한다. 추사가 유배지에서 돌아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이다. 봉은사 경내를 한바퀴 돌면 마치 선생의 흔적을 따라 도는듯한 기분이 들고 후세 사람들이 판전의 글씨체를 '동자체童子體'라고 부르는 것 처럼 전혀 때 묻지않은(기교와 형식 등이 빠져있는) 동심이 전해지며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흘전 봉은사를 방문하여 이렇듯 귀한 편액이 걸려있는 판전 곁을 지날 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화재 위험 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봉은사는 얼마전 명진스님이 주지로 있을 당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의 '땅밟기 기도'가 물의를 빚기도 한 곳이다. 땅밟기 기도가 기독교적인지 바이블이 권장하고 있는 행위인지 따위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우리 전통의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불교를 사악한 종교로 폄하하고 있는 개신교 광신도 등이 땅밟기 기도 동영상에서 확인되는 것 처럼, 무방비로 노출된 사찰에서 함부로 출입하여 범어사 화재와 같은 방화로 이어질 경우, 한순간에 귀한 작품이나 문화재가 소실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불안감은 그 때문이었다. 판전 좌우편에 소화기 두개만 달랑 놓여있는 모습이 그저 형식적으로 비치해 둔 것 처럼 보였다. 따라서 판전의 편액 등을 진품이 아니라 차라리 탁본을 떠서 모조품으로 걸어두었으면 하는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한편 추사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참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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