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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그곳에 가면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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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소름이 돋는다
-한 겨울에 듣는 납량특집-


이 포스트는 임산부나 노약자 심신장애자 등 상상 만으로도 까무라 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열어보지 말것을 주문 한다. 그렇잖아도 추운 날씨에 소름이 돋을 수 있는 납량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상상하기 나름이겠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은 밑도 끝도 없어서 스스로 만든 허상 내지 그럴듯한 개연성 때문에 이 포스트를 보고 난 이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다니던 화장실 조차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 포스트를 열어보지 않았드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포스트를 열어본 이후 왠지 화장실에서 늘 마주치던 거울 조차도 볼 수 없다면 당신은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고나 할까.

전혀 불필요한 상상 때문에 정신을 차리려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려는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뒤로 나타날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형상 때문에 한동안 두려움에 떨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호기심 하나 때문에 여기 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맨 처음에 나타난 폐가에서 벌어질 일 조차 미리 상상하가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 폐가에서는 어떤 일일 일어난 것일까. 지나친 호기심이 만든 두려움으로 소름이 끼친 폐가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 여름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강화도 서쪽 후포항 근처 화도면에서 수채화 여행을 하던 중 적당한 장소를 헌팅하던 중에 자동차 차창으로 한 낡은 폐가가 눈에 띄었다. 언뜻 보기에도 이 폐가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낡아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서까래 틈 새로 삐져나온 퇴색된 짚더미는 이 집이 오래전에 초가지붕을 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고, 그 위로 스레트를 얹은 모습으로 미루어 최소한 40년은 됨직해 보이는 오래된 집으로 보였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고 있는 벽면 사이로 싸릿대와 황토를 이용한 벽면 모습 등을 감안하면 그 보다 더 오랜동안 후포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긴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 됐다. 황토와 시멘트가 덧칠해진 폐가의 겉모습 짚더미 초가지붕과 쓰레트지붕이 공존했던 이 집은 사람이 살지않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이 폐가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러 음료수 한병을 사 들고 나오는 순간 조금전 까지 전혀 인기척도 없던 폐가 속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잘 못 봤나...이 집은 사람이 살기 전 까지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었는데 알루미늄 샷시로 만든 창틀 사이로 한 여성이 조용한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조금 전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살 때 노파로 부터 확인했지만 이 집에는 사람이 살고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백주에 이 집안에서 사람의 흔적을 목격하다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폐가를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내 머리속은 두가지 판단이 오락가락 했다. 안 돼~. 들어가 봐~. 나는 어느새 발걸음을 폐가로 옮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못된 습성이 있는 것일까. 자동차 한대가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날씨가 무진장 더웠으므로 할 일 없이 싸돌아 다니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난 강화 화도면 전체가 텅빈듯 했다. 날씨가 얼마나 덥던지 음료수를 들이키며 조금전 봤던 인기척을 확인해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긴 곳은 폐가 좌측 헛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헛간 쪽을 가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조금전 내 눈에 띈 한 여성이 그 방향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뻥뚫린 틈새를 들여다 봤다. 그때였다.


한 여고생이 긴 생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방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수.가...찰라의 순간이었다. 그 여고생은 천막으로 드리워진 마당 쪽으로 사라졌다. 흠...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도 살지않는 폐가 속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조차 믿기지 않는 일인데 나는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진 긴 생머리 여고생의 흔적을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얼기설기 덮어둔 천막을 걷으며 잡초가 듬성듬성한 마당으로 들어가 봤다. 조금전 긴 생머리 여고생이 사라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서 가지. 나는 사라진 여고생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계세요. 아무도...안 계세요...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아니 대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애시당초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않는 집으로 판단 되었고, 앞집 구멍가게 노파 조차도 그걸 확인시켜 주지 않았나. 그런데 벌건 대낮에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고 또 그 모습은 긴 생머리의 여고생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눈이 마주쳤던 게 아닌가. 나는 그제서야 짧은 반소매 팔에 닭살 같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간댕이가 큰 거야. 감각이 무딘 거야.ㅜ 그때 마당을 돌아서는 길이 그렇게 멀어보인 적 없었다. 불과 몇 발자국도 안되는데 말이다.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슬그머니 돌아서다가 맨 처음 들여다 보았던 헛간쪽을 다시 들여다 보며 꽁무니를 내 빼고 있었다. (그냥 가지. 거긴 왜 또 들여다 봐 ㅜ)그곳에는 조금전 나지막하게 소리치며 불렀던 그 여고생이 입가에 미소를 띄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나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자동차쪽으로 옮기는 동시에 후다닥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는 상상이자 쓸데없는 호기심이 만들어 낸 해프닝이었다.

지난 여름 이곳을 다녀온 이후 몇 번 씩이나 이런 납량 경험을 끄적이고 싶었지만 그 때 마다 소름이 돋아서 그림 조차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 시간이 100일 정도 경과하자 다소 싸늘한 느낌은 사라졌다. 그런데도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어둠이 드리워진 폐가 한편에서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한 여고생이 각인되어 있다. 분명한 허상이자 헛것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 그 여고생 모습이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여고생은 폐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긴 있었던 것일까. 

보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포스트를 끝까지 다 본 사람들은 분명 컴 앞에서 뒤를 돌아보기 조차 섬찟할지도 모른다. 특히 한밤중이나 새벽이면 매우 곤혼스러울지도 모른다. 그것도 소변이 마려우면 더 큰 걱정이다. 맨 처음 거울 이야기가 반드시 떠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어떠케!~ ㅜㅜ ) 포스트를 마저 끄적이자 한 소녀가 저 만치서 키득 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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