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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서울 물폭탄 피해 컷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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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수표교 남산으로 왜 갔나?
-서울 물폭탄 피해 컷던 이유?-


추석을 하루 앞 두고 서울에 쏟아져 내린 폭우는 그야말로 물폭탄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곧 무슨 난리가 날 것 같은 예감이 들 정도였는데 트위터들은 물폭탄이 투하된 서울 곳곳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왔다. 홍수 상황을 보니 서울이 금방이라도 물에 잠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물난리와 무관할 것 같았던 서울 곳곳에 침수피해가 이어졌다. 기상청이나 서울시가 미처 집중호우에 대한 대비를 하지못했다는 질책과 비난이 쇄도했다. 예상 강우량 보다 4배나 더 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상청이나 서울시가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집중호우가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들 무슨 대책이 있기나 했을까.

자리를 옮겨 문화재로 가치를 잃어버린 장충동의 수표교 앞을 재개발 하고 있는 문화재청이나 서울시의 이런 노력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대책이라고 해 봤자 고작 저지대에 살고있는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그런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행복한 추석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고, 그 사이 수재민이된 시민들은 불행한 추석을 보내고 있었다. 참 안타까운 모습이었다.서울에서만 1만1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1천8백가구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며, 인천과 부천도 1,148가구와 3,262가구가 침수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서울에 퍼부은 물폭탄은 왜 배수가 되지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서울시 등이 집중호우 사실을 알고 있어도 대책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림과 영상은 지난 4월 18일 국립극장에서 열리고 있었던 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남산으로 이동하던 중, 수표교 곁에서 공사중인 모습이다. 한 눈에 봐도 수표교 주변을 가꾸고 있는 모습이자 새로운 비용을 투입하며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표교 난간에 붙어있는 푯말을 보면 수표교가 문화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해치서울'이라는 영문표시가 보인다. 해치(해태)가 서울을 지켜준다는 말일까? 아시는 분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문화재의 가치는 본래의 자리를 이동하는 즉시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만다.



수표교는 본래 청계천의 삼일교 아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동'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이곳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복개공사와 개발이 만든 불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불행은 계속 됐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재임(2002. 7. 1 ~ 2006. 6. 30)할 당시였던 2005년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원래 자리에 다시 놓으려고 했으나, 복원된 청계천의 폭과 수표교의 길이가 맞지 않아 옮겨지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에 시작된 복원공사가 대선 때문에 얼마나 후다닥 거렸는지 시간을 보면 다 아는 사실인데 수표교 따위가 눈에 들어왔을리 만무하다. 4대강 사업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청계천 수표교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그 대신 아무런 역사적 문화재 가치도 없는 임시 다리가 놓여 있을 뿐이다. 청계천에 가 보신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청계천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하느님께 봉헌한 청계천 복원사업에 수표교의 폭과 길이가 맞지않아 옮기지 못했다는 사실과 서울에 쏟아진 집중호우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일까? 청계천에서 자리를 옮겨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수표교 모습을 자세히 보면 현재의 청계천의 폭이나 높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본래 수표교의 높이는 콘크리트 하수관 처럼 생긴 청계천의 모습보다 더 낮은 모습이고 길이 또한 더 긴모습이다. 물론 자세히 측정은 해 보지 않았지만 육안으로 얼마든지 관측된다.(수표교 길이 27.5m, 21∼23m의 청계천 폭) 그렇다면 청계천의 본래 모습은 어떨까? 아래 그림은 약 100년 이전 청계천의 모습이 담긴 귀중한 사진 자료다. 한번 살펴볼까?  


자료사진을 잘 살펴보면 청계천 수표교는 나지막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알 수 있다. 아래쪽 1920년대 청계천 모습을 보면 (지금은 돌아가셨을)아이들이 빨래터 주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며 넓직한 청계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청계천의 수표교는 만들어질 당시 그 곳에 마전(馬廛)이 있어서 마전교(馬廛橋)라 불리었다. 세종 23년(1441년) 다리 앞에 개천(開川, 청계천)에 흐르는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水標, 보물 제838호)를 세웠다.
 
내가 꿈꾸는그곳 관련 포스트 수표교가 '남산'으로 올라간 이유?에 삽입된 <경.진.지.평>이라는 네 글씨

다리 아래에 '在長通橋東橋西中央立石標刻尺寸之數 凡雨水以知深淺(장통교 동쪽에 있고, 다리 서쪽 중앙에 석표를 세우고, 척촌을 새겨서 무릇 빗물의 깊고 얕은 것을 알았다)'고 기록하였다. 그 후 영조 36년(1760년) 다리를 수리하면서 돌기둥에 ‘庚(경)·辰(진)·地(지)·平(평)'이라는 글씨를 새겨 물높이를 4단계로 측정하였다. 이 때부터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라는 말이 생겨나 '수표교'라 부르게 되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수표교 자료 출처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269589


또한 "이 다리는 물길을 건너는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해 수량을 재는 역할을 했던 중요한 다리로, 영조 36년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마치고 다리 동쪽에 준천사(濬川司)란 관청을 두어 수량의 변화를 한성판윤(漢城判尹)에게 알려 홍수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수표교에 '丁亥改造(정해개조)', '戊子禁營改造(무자금영개조)'라 새겨져 있어 준설공사가 끝난 후 영조 43.44년(1767.1768년)에 다리를 다시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표교의 역사는 500년이 더 넘었고, 청계천 복개공사와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 까지 청계천을 지키고 있었던 소중한 문화재이자, 청계천의 홍수 등을 가늠케 해 주는 바로미터였다. 수표교 설치 당시에도 홍수 때문에 준설을 한 흔적이 자료로 남아있고, 수표교 교각 높이를 보면 사흘전 서울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만 같은 물폭탄에 잠길 정도가 아닌 모습이었다. 수표교는 500년 동안 그렇게 청계천의 명물로 우리 선조님들과 함께 역사를 지켜왔다.  


그런데 방송과 언론 등은 추석을 하루 앞 두고 쏟아진 물폭탄이 기상관측소가 생긴 이래 104년 만에 최고의 강우량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서울의 물난리는 인재가 아니라 천재지변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그렇게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계천의 수표교가 남산으로 올라 간 이후 최소한 서울시를 지배(?)해 온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오세훈 서울시장입장에서는 104년 만에 일어난 홍수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이 포스트를 끄적이게 된 이유다. 왜 그런가? 아래 다음스카이뷰 그림 한 두장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아마도 위 그림을 보면서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애써 이명박 정부나 딴 나라당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거나 시민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서울시민이라면 뻔한 사실을 앞에 두고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흘전 서울을 강타한 물폭탄은 광화문 네거리 등 청계천 청계광장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그 지역을 '갈 길 잃은 폭우 물폭탄 맞은 광화문'이라고 표시해 봤다. 주지하다시피 청계천의 발원지(?)는 청계광장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놨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었다. 그림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까?


청계천은 청계광장을 끝으로 뚝 잘린 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한강물 등을 펌핑하여 흐르게 하는 거대한 인공 하수관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방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은어 한마리가 상류를 거슬러 올라오게 되면 난감한 경우에 부딪치게 된다. 녀석은 청계광장 앞 폭포에서 고민 끝에 이렇게 훌쩍일 것이다. (나...돌아 갈래 ㅜㅜ) 그러나 돌아갈 길도 마땅치 않다.


위 그림을 잘 보시면 서울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는 본래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가야 마땅하지만 '사라진 청계천' 때문에 광화문을 물바다로 만들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었다. 빗물이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광화문을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런 모습을 하느님이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청계천은 폭이 더 좁아지고 깊어졌으나 정작 서울시내 한복판에 쏟어져 내린 홍수는 외면하고 있는 하수관이었던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서울시 공무원들이  추석연휴를 반납하고 발 벗고 나선들 어찌할 도리가 있겠는가. 속수무책이란 이런 걸 두고 일컫는 말이다. 원망을 하려면 이런 불상사를 만들며 하느님께 청계천을 봉헌(?)한 이명박 서울시장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정작 청계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금년 장맛비만 보더라도 홍수가 난 지역은 모두 지방하천이며 4대강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은 일찌감치 200년 빈도의 강우량을 첵크하여 홍수피해에 대비해 둔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이 홍수나 가뭄을 방지하는 사업이라며 국민들을 기망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4대강 사업은 한강개발을 벤치마킹한 사업이며 자연적인 물길을 인위적으로 하수관 처럼 만들며 천혜의 자연을 초토화 시키고 있는 망국적인 사업이다. 그냥 초토화 시키는 게 아니라 수십조원의 국부를 낭비해 가며 국민들로 부터 삽질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밀어부치고 있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4대강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100년 여 전 청계천에서 볼 수 있었던 천변의 모래밭이 사라진 것 처럼, 4대강의 물길을 청계천 개발 처럼 하수관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4대강의 배후습지를 초토화 시키고 곧게 편 물길을 따라 크루즈 유람선을 띄우고 도박장을 만들며 수변개발 사업을 하겠다는 게 4대강 사업의 실체며, 댐과 같은 수중보를 건설하여 수심 6m을 유지하는 게 경부대운하의 기초작업이라는 의혹 속에 있다. 아직 이 사업에 투입된 어마어마한 국가의 예산이 어떤 용도로 어디에 쓰여졌는지 조차 알 수 없다고 하니, 서울에 쏟아진 기이한 형태의 물폭탄은 혹자들의 주장 처럼 청계천 개발을 거짓으로 봉헌한 한 장로 때문에 내린 하늘의 경고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표교가 서울 남산으로 올라간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모두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익 등을 위해 개발에 눈독을 들이며 자연의 섭리를 어긴 결과가 아니겠는가. 청계천 발원지가 청계광장이라니 이게 말이나 될 법 한가?
 

서울시가 문화도시로 거듭나려면 우선 남산의 수표교를 제자리로 옮기는 게 급선무며 옳은 일이다.
 또 끊어진 청계천의 물길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4대강 사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인재로 인한 불행은 한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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