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천에서 '연어의 향기'를 느끼다
연어의 고장 양양의 남대천에 가면 연어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까? 지난 8월 초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연어의 고향 남대천에서 사흘동안 여름휴가를 보내며 연어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가끔 강원도의 부연동이나 구룡령 쪽을 오가면서 본 남대천은 연어가 회귀할 수 있는 적소였다. 국도변에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남대천을 바라보노라면 알라스카 등 북태평양에서 성장한 연어가 모천인 남대천으로 금방이라도 퍼드득이며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곳이었다. 연어의 회귀가 현실이 아니라 착각으로 변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 지역에 모여살게 되면서 연어가 상류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수중보 또는 댐으로 모두 막혀 더는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의 치어들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수중보로 막은 남대천 물은 농수로를 통해 농사용으로 사용되거나 건기에 부족한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편리 때문에 연어의 희생은 불가피 하게된 것일까? 우리는 자연을 훼손하여 하나를 얻으면 늘 그만한 대가를 치루고 있어서 남대천 상류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연어를 늘 그리워 하며 이번에는 아예 남대천에서 야영을 하며 연어의 체취를 느껴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연어의 회귀가 자취를 감춘 남대천 상류에서 연어의 향기를 느낄 수 있기는 있는 것일까? |
연어의 체취를 느껴 보기 위해선 우선 나 스스로 연어가 되어(?) 볼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변신을 하여 연어가 된다는 게 아니라 연어가 남대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 다녔던 물길에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방법은 이랬다. 몸을 물 속에 완전히 담글 수 있는 수중에서 헤엄을 쳐 보는 것이며 연어가 회귀할 때 얕은 물에서등 지느러미를 내밀고 파다닥이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 보는 것이다. 방법만 생각해 보면 참 우스광 스러운 모습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 보았다. ^^
내가 찾아간 곳의 행정구역은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원일전리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원일전1교 다리밑이었다. 그 다리 위에서 남대천을 바라보니 위 그림과 같은 장면이 드러났다. 천 가운데 큰 바위섬이 있고 천은 그 곁으로 흐르며 약 1m 50cm 깊이 정도의 소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모래와 자갈이 골고루 잘 섞인 강바닥이 넓게 깔려 있었다. 아마도 오래전 연어들이 자신을 낳아준 남대천으로 회귀할 때 이곳을 거쳐 더 깊은 상류로 진출했을지도 모를 일이어서, 그들 선조들이 지나쳤던 통로에서 멱을 감으며 연어의 향기를 맡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리 밑에서 텐트를 쳐 놓고 주변을 돌아봤다. 연어들이 남대천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마지막으로 보았을 풍경이었을 것이며 치어들이 하류로 이동하기전에 기억속에 챙겨 두었을 장면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남대천 주변의 수생식물이나 숲이나 땅에서 천으로 흘러 들어간 채취들은, 그들의 DNA 속을 공명하며 먼 바다를 헤엄쳐 오는 동안 그리움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며, 밤과 낮의 해와 달을 참조하여 항해술(?)에 적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연어 처럼 늘 이런 장면들을 꿈 꿔 왔는데 드 넓은 대륙의 알라스카나 캄챠카 반도와 달리 우리나라를 찾는 연어의 고향은 그에 비해 작은 숲과 천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나 물고기나 자신들을 낳아준 고향 또는 집이 반드시 규모가 크다고 해서 다시 찾거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찾지않는다는 법은 없다. 따라서 남대천을 찾은 기특한 연어들은 규모는 작지만 너무 아름다운 한반도의 남대천을 꿈에도 그리워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며 그 먼 길을 헤엄쳐 이곳까지 도착한 연후에 산란을 끝으로 마지막으로 바라 본 하늘이 또한 내가 바라보고 있는 남대천의 하늘이었다.
주변을 다 둘러 본 이후 나는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아침 나절에 남대천 속으로 들어갔다. 한 눈에 봐도 물은 맑았고 쉼없이 흐르고 있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대천 물은 법수치 계곡과 어성전 계곡 등을 휘감아 내려오는 동안 폭염에 많이도 데워져 있었다. 물이 따뜻했다. 카메라를 낮추어 등지느러미가 노출된 채 상류로 이동하는 연어의 자세를 취해 보았다. 자갈이 많아 물소리가 쉼없이 졸졸 거렸다. 녀석들의 귀에도 남대천의 졸졸 거림은 익숙했을 것이며 남대천을 고향으로 삼은 연어들은 한결같이 남대천의 물소리와 함께 물의 온도 까지도 정확히 기억해 내고 있을 터 였다.
수영복을 입은 채 쪼구려 앉아 카메라를 수면 가까이 갖다대 보니 비릿한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그 냄새는 물비린내 였지만 연어알에서 풍기는 지독한 비린내와 닮아 있었다. 녀석들은 물비린내를 몸에 지니고 살며 서로의 출신인 고향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일까? 남대천의 물비린내를 코로 킁킁 거리며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연어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곳까지 진출한 이후 마지막 남은 힘 까지 쏟아부으며 낳은 알들에서 풍겨난 비린내가 남대천 곳곳을 물들이고 있었지 않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물비린내는 연어알에서 풍기던 비린내가 희석된 듯한 냄새 같았다. 연어가 고향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던 그리움도 실낱 같은 희망 하나를 찾듯 바다와 맞닿은 양양의 바닷가에서 물비린내를 통해서 그들의 고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지 않았을까?
연어가 태어나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뉠 수 있는 남대천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떠할까? 커질대로 커진 몸집으로 이곳까지 진출한 연어가 가끔 고개를 들어 바라본 풍경은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아마도 녀석들은 그 먼 길을 아무것도 먹지않은 채 헤엄쳐 오는 동안 머리속에는 늘 이 장면이 눈에 가물거렸을 것 같기도 했다. 그들 선조들이 대를 이어 이 천을 모천으로 삼고 귀향을 서둘렀던 곳이자 이곳에서 태어나서 하류를 통해 바다로 나아갔을 곳이었다.
그리고 수경을 쓰고 물 속으로 잠수해 봤다. 그곳에는 파라미와 꺽지와 메기 등이 가득했다. 아마도 녀석들은 늘 보던 친구가 보이지 않아 궁금증이 더했을 것이며, 예전 보다 부쩍 늘어난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작은 상상력일 뿐이다. 남대천 원일전1교 다리밑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피서철이었고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들이나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나 처럼 며칠을 이곳에서 묵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나절만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동안 피서가 끝나고 나면 그들이나 나는 돌아갈 곳이 분명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대천 연어는 태어난 곳도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연어의 고장 양양에서는 연어를 인공부화 하여 바다로 내 보내고 있고 그곳은 이곳 남대천 중상류에서 한참 먼 하류 바닷가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녀석들은 그곳 양식장에서 남대천의 물비린내만 기억해 낼 뿐, 그들 선조들이 기억하고 있던 아름다운 풍광은 기억해 내지 못하며 마냥 그리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정이 이러함으로 그들이 자신을 낳아준 고향을 찾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회귀율은 점점 더 줄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림같은 남대천에서 한 사람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꺽지를 잡고있는 이 분을 바라보고 있는 장소는 남대천의 한 수중보 위다. 설령 지금 이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남대천을 거슬러 온 연어라 할지라도, 남대천을 따라 곳곳에 막아둔 수중보에 막혀 최적의 산란장소를 찾지 못하고 마지막 하늘을 봤을 곳 같기도 하다. 남대천의 연어가 그토록 그리워한 고향의 모습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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