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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누치의 외로운 여행

 
Daum 블로거뉴스


누치의 외로운 여행
-탄천에서 누치와 10분간 데이트-


여행이란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것일까?...가끔 여행과 방랑을 착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이렇다. 방랑은 정처가 없다는 것이며 여행은 정처가 있다는 말이다. 방랑은 그저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발 길 닫는대로 언제 어느때고 아무대나 가는 것이자 돌아갈 곳이 없는 외롭고 고독한 짓이지만 여행은 다르다. 여행은 방랑과 비슷해 보일 망정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까닭이다. 최소한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집이나 가족이나 그를 필요로 하는 사회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방랑은 짚시같은 삶이지만 여행은 당신을 구속하는 공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이다. 방랑과 여행은 그래서 구속을 통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며, 방랑은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당신 한 사람 밖에 없는 매우 외롭고 고독한 러너와 다름없는 모습일까?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을 용케도 만난 것은 지난 6월 19일 오후 3시경이었다. 한강 지천인 탄천 둔치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개망초 때문에 시선을 온통 빼앗기며 카메라에 담아 둔치에 마련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6월의 모습을 만끽하던 찰라 발 밑에서 작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곧 장마가 시작되면 물에 잠기기를 반복할 광평교 아래 잠수교를 지나치는 순간 어른 팔뚝만한 누치가 탄천의 수초 곁에서 아가미를 부지런히 놀리며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눈에 띈 것이다. 대개 누치들은 무리를 지어다니는 모습이었는데 탄천에서 만난 누치는 혼자였다. 그러니까 녀석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함을 지닌채 방랑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녀석을 발견하는 순간 가던 길을 멈추고 몸동작을 매우 느리게 슬로우모션으로 안단테를 반복하며 녀석 근처에 살며시 접근했다.


가던 길을 멈추는 동시에 내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 두대는 전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나의 존재 따위는 애시당초 마음에도 없었던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니 거들떠 보지못한 게 아니라 내가 저 만치서 오는 것을 눈치챈 이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누치는 눈치가 빠르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비록 내가 슬로우모션으로 다리에 걸터앉아 모른척 녀석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지만,
 이미 녀석의 동공 가득히 내 모습이 찍혀있을 법 했다.
녀석과 나의 거리는 불과 1.5m 정도 되는 거리였으니 나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카메라 줌을 당겨서 본 누치의 눈을 확인해 본 결과 이미 나의 존재는 누치의 가시거리에 들어와 있는 모습이었지만
괜히 나는 숨을 참으며 카메라 두 대를 조용하고 은밀한 척 작동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누치의 측면을 촬영할 수 있는 정도인데 누치가 나의 존재를 모를 리 없는 것이다. 
누치가 내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아저씨!...누굴 바본줄 생각하세효?...^^ "


탄천의 누치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어떤 경로로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탄천변에 서식하고 있는 몇 안되는 수초를 발견하고 휴게실 삼아 잠시 쉬고있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며 신기해 하는 나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었다.

"...아저씨!...우리 딱 10분만 데이트 해요. ^^ " 


누치가 내게 그런 말을 할 까닭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누치가 왜 혼자 탄천에서 방랑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린 원래 그래요. 돌아갈 곳이 마땅하지 않잖아요." 

누치가 그렇게 말 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수초 곁을 계속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산란 때문에 이곳을 찾지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누치가 내게 10분간의 데이트를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숨을 죽여가며 슬로모션으로 누치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녀석의 등지느러미와 함께 꼬리지느러미와 아가미와 입놀림 등 몸놀림을 바라보고 있다가
 불현듯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만난 여행자 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누치는 날 더러 방랑하는 인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치가 나를 돌아갈 곳이 없는 방랑자로 생각한 것이나, 내가 누치를 그렇게 판단한 것이나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탄천의 광평교 아래로 잠시 실바람이 불었다.
나지막한 다리 위에서 쪼그리고 앉아 녀석을 관찰하며 별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
 뷰파인더 속에서 갑자기 누치의 모습이 사라졌다.

내 귓전에 누치가 던진 한마디가 왱왱거리는듯 했다.

 


아저씬...돌아갈 곳이 지붕밑이나 가족들의 품이라 생각하세요?!...


(흠...그렇군!!...우린 지구별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이지...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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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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