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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누드와 해바라기가 있는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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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해바라기가 있는 화실




상계동에 있는 K 선생의 화실에 들러 작품을 준비중인 문하생들의 표정과 선생의 작품을 둘러 보면서 잊고살던 삶을 잠시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K 선생은 전라도의 한 고도孤島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림만 그리고 살아오신 분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화단의 거목으로 후학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잠시 붓을 놓고 딴 길을 걷다가 생고생을 하기도 했다. 이른바 개고생이었다. 그저 그림 그리기를 천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사기꾼의 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가 IMF 시기였다. 화가는 그림만 그리고 살아야 할까?라는 작은 의문이 그를 나락으로 빠뜨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던 지인들의 도움으로 빚을 청산하고 다시 자리를잡기 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마도 그는 이런 실험적인 삶 때문에 세상은 예술가들에게 잘 맞지않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일이었다. 말 수가 적고 그림밖에 모르는 사람이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을까?






그의 화실 한켠에는 켄버스들이 빼곡히 쌓여있었고 곳곳에 정물들이 아무렇게나 널린듯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그의 후학들이 열심히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유화를 그리고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분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크기는 20호에서 30호 정도로 크기도 다양했는데 밑그림을 막 그리는 분들도 있었고 작품이 거의 완성된 것도 있었다. 나는 K선생이 최근 대한민국 수채화 전람회에 출품한 '해바라기' 작품의 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이 해바라기다.


지난 가을부터 그의 화실에서 기거하고 있는 해바라기는 마를대로 말라, 열어둔 창으로 부는 바람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하지만 이 해바라기는 여느 해바라기와 달리 K선생의 누드 모델이 되어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해바라기가 누드 모델이라니?...해바라기는 비록 색이 바래긴 했지만 원형을 갖추고 있었고 사람들처럼 군더더기를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최근 K선생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해바라기는 사람들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바라기로 부터 영감을 받은 것일까?  


해바라기와 함께 화실 한쪽에는 작은 누드가 그려져 있었다. 수석에 유화로 입힌 누드화였다. 누드화는 이것 말고도 또 있었지만 그건 작품이라기 보다 그저 심심풀이(?)로 그려본 것 같았다. 지금도 유화를 그리긴 하지만 수채화에 더 몰두하고 있는 그는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을지언정 최소한 겉모습이라도 확인해 볼 수 없는 유화나 겉치레가 많은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했다. 해바라기는 그런 상징물로 보였다.


화실에 있는 해바라기에 필터를 이용하여 '퍼즐조각'을 입혀 봤다.새로운 형태의 비구상 작품처럼 규칙에 따라 조금은 변형된 모습이지만 처음 본 해바라기 보다 어딘지 어색하고 화장을 짙게 드리운 얼굴 모습같이 변했다. 해바라기나 우리가 본래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은 해바라기가 태양만 바라보듯,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이 산만하면 할수록 나(我)로 부터 멀어진다는 것일까? 상계동 화실에서 만난 소품들은 어느곳 하나 예술혼이 깃들지 않은 게 없어 보였다. 주인을 닮은 화실은 그런곳이었으며 그곳에는 태초에 조물주가 인간의 형상을 지을 때 처럼 더도 덜도 없는 자연의 형상 그대로 였다. 매우 편한곳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열어둔 창으로 스며드는 실바람이 연신 해바라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켄버스에 인생의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크기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20호 또는 30호 그보다 엄청 큰 켄버스에 주제를 선책하고 밑그림을 그리며 색을 입혀나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화를 그릴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수채화를 그릴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조각이나 조소 등을 통하여 각자가 원하는 그림 또는 조각품 등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모두 자신이 선택한 운명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리고 어느날 작품이 완성될 시기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 판단이 어떤가에 따라서 운명의 끝자락에 내 걸릴 마지막 작품의 가치가 결정될 텐데, 혹시라도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최초에 선택한 주제가 아니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주제를 선택하고 밑그림을 새로 그려보는 게 구기듯 포기하는 것 보다 낫지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상계동 K선생의 화실을 방문하면서 든 생각이다. 해바라기나 누드 그림이 있는 화실의 풍경이 내게 전해준 작은 영감靈感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붓은다양하다. 어떤 붓을 사용하여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그건 전적으로 당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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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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