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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video land

양재천 누치들의 은밀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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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누치들의 은밀한 행진



지난 겨울 새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설국을 이루었던 양재천을 다시찾은 시간은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타워팰리스가 빤히 보이는 다리위 난간에서 내려다 본 양재천은 지난 겨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앙상하게 매말랐던 나뭇가지는 솜사탕 같이 부푼 녹음이 무성했다. 2010년 6월 11일 오후 5시경의 양재천은 6월의 땡볕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듯 했다. 지난 겨울 눈이 하얗게 쌓였던 한편으로 조용하게 흐르든 냇물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청둥오리들은 여전히 양재천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녀석은 내가 다리 난간에서 지켜보고 있는줄도 모른 채 젖은 깃털을 손질하고 있었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누군가 우리네 삶을 저만치서 관찰 당하고 있으면 저렇듯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늘 쫒기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양재천을 지키고 있는 청둥오리는 세월 저편에 있는 듯 한가해 보였다. 다리 난간 사이에 카메라를 살며시 들이밀고 녀석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버드나무 숲 저편에서 하얀 왜가리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은 점보 뱅기 처럼 랜딩기어를 길게 늘으뜨린 채 수면위로 막 착륙하고 있었다. 녀석이 비행을 마치고 착륙한 곳은 어둠이 깃들이 전 녀석의 배를 채워줄 저녁 찬거리를 찾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녀석이 착륙한 곳은 작은 여울이 형성된 곳이고 갯버들이 울창한 천변이었다. 아마도 녀석의 동태를 잘 살피고 있으면 길다란 부리를 가로지를 만큼 커다란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다리난간에서 녀석의 착륙을 보는 것을 끝으로 공항에서 녀석을 마중하러 나가는 것 처럼 재빨리 다리아래로 내려갔다.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저만치 다리 아래서 녀석은 수퍼마켙에서 물건을 고르듯 얕은 양재천 곳곳을 이리 저리 살피고 있었다. 청둥오리들은 곁에서 풀씨를 훑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녀석들과 나의 거리는 약 20여 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개망초 뒤에 살며시 몸을 웅크리고 하얀 왜가리를 살피고 있었는데 아주 잠시 녀석이 재빨리 허리를 숙이고 부리를 든 그곳에는 종류미상의 물고기가 파다닥이다가 이내 조용한 모습이었다. 녀석이 가로챈 사냥감은 탈출을 포기한듯 했다. 죄우로 방향을 맞추는가 싶더니 물고기는 어느새 왜가리의 긴 목줄기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갯버들 숲은 여전히 조용했고 냇물은 그저 쉼없이 졸졸 거렸다. 사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왜가리나 청둥오리를 만나보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겨울 눈이 소복히 쌓였을 때 깊은 동면에 빠졌을 누치들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곧 장마가 시작되면 녀석들을 만나기 쉽지않고 6월의 빼곡한 녹음 속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녀석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맘때 쯤 녀석들은 언제 어느때든지 만나볼 수 있었는데 나는 갯버들 줄기에 몸을 의지한 채 몸을 숨기며 녀석들의 은밀한 행진을 엿보고 있었다. 숲에서는 후덥지근한 습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여울이 끝나는 곳에 형성된 모래톱 위로 어른 팔뚝만한 누치들이 떼를 지어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이 금방 눈에 띄었다.


노란 꼬리 지느러미가 죄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곧 정박할 항구에 도달한 커다란 상선처럼 '데드슬로우어헤드 Deadslow Ahead'로 전진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선단을 형성하고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가끔씩 흐릿한 물 속에서 녀석들의 비늘이 오후의 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갯버들 줄기 뒤에서 꼼짝도 하지않은 채 녀석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만약 인기척이 들리면 녀석들의 음탐에 노출되어 금새 저만치 달아날 누치들이었다. 눈치가 빠르기로 유명해서 붙여진 이름이 누치가 아닌던가?


수심이 발목 정도되는 얕은 물에서 누치는 스러스터 탱크에 가득찬 물을 빼 내는 듯, 흘수선을 저만치 드러낸 빈 상선 같이 꼬리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녀석은 내가 갯버들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설령 눈치를 챗더라도 안전한 거리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녀석들의 안전한 정박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심코 천변을 내려다 본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바로 내 발밑에 팔뚝 보다 더 큰 누치가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거의 숨을 죽이며 슬로우모션으로 카메라를 빼 들었다. 갯버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처럼 움직였다. 녀석들은 놀란듯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면 순식간에 흙탕물을 남기며 저만치 달아날 판국이었다. 오랜동안 숨을 참았더니 헛기침이라도 해서 숨을 고르고 싶었지만 물한모금 겨우 삼키듯 숨을 고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역관에 노출된 녀석들의 은밀한 잠수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도 모를 정도였다.


내가 몸을 숨긴곳은 바로 이 숲속이었다. 풀숲이 엎드려 있는 이곳에는 나 처럼 누치의 은밀한 행진을 지켜본 사람들이 또 있었던 것일까? 작은 오솔길 처럼 여겨지는 이곳을 따라 가다보면 누치들을 언제든지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기댄 나무등걸은 이런 모습이었다.


서너마리의 누치들이 여전히 내 발 밑에서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씩 녀석들의 짙은 갈색 등지느러미가 물 위로 나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풀숲에서는 찌르레기의 울음소리가 찌르륵 거렸다. 나는 여전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미동도 하지않고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갯버들 숲에 가려져 응달이 된 이곳에서 누치들은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일까? 역광에 그늘진 곳이어서 가끔씩 뷰파인더에서 녀석들이 사라지곤 했다. 후레쉬를 터뜨려 봤다. 녀석들은 사진관에서 증명사진 촬영하듯이 사진사의 말을 잘 듣는듯 했다. 그런데 긴장한 쪽은 오히려 나 였다.


나는 여전히 숨을 참고 있어서 깊은 호흡을 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크고 깊은 숨으로 하~악...하고 숨을 내 쉬고 싶었지만 바로 내 발밑에 녀석들을 두고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역광에 가려진 녀석들은 하늘 저편 딴 별에서 온 생물들 처럼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눈이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두마리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걷는듯 매우 느리게 내 발밑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모두 숨 조차 쉬지 못하게 만드는 녀석들의 늠름한 포스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내 뿜는 늠름함 때문에 나는 보이지 않는 암바를 당하며 실신지경에 이를 정도로 꼼짝도 하지않은 채 녀석들이 나를 풀어주기만을 기다렸다.


내 발 끝을 돌아나가는 녀석을 뷰파인더로 들여다 보고 있자니 어느덧 내가 갯버들이 되어 녀석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듯 했다.


녀석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항구 저만치 정박해 둔 대형 유조선을 보는듯 했다.


녀석들은 도선사도 필요하지 않았고 태그보트도 필요하지 않았다. 양재천 바닥의 흙때 묻은 돌틈 사이로 부드럽고 조용한 행진을 하는 동안 지느러미 하나 작은 돌틈에 건드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 부터인가 오히려 내가 녀석들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누치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누치들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듯이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목을 조르며 숨도 못쉬게 한 지독한 미팅은 이 나무등걸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녀석들과 데이트를 끝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서 청둥오리들이 여전히 풀씨를 훑고 있었고, 또 다른 하얀 왜가리가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랜딩기어를 내리며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고 막 이륙한 왜가리의 날개짓이 정적을 깨뜨리며 펄럭였다.


개망초가 흐르러지게 핀 양재천의 유월은 깊어만 갔다. 바람 한줌이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로 갯버들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지난 겨울 눈을 하얗게 머리에 이고 있던 양재천은 녹색의 숲으로 누치들의 행진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나의 작은 다큐 속에서 누치들은 펄떡이는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행진하는 양재천의 귀족이었다.  
 

내가 몸을 숨기며 누치들의 은밀한 행진을 지켜본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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