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까까중 머리 추억과 봄을 재촉하는 단청

Daum 블로거뉴스
                       
                                   

     

  까까중 머리 추억과 봄을 재촉하는 단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계산 기슭 원터골의 자그마한 사찰 하나가 눈이 소복하게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정겹고 포근해 보여 저도 모르게 발길을 그곳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과 함께 단청의 빛깔이 유난히도 고왔기 때문이며 단청의 안료가 뿜어내는 푸른 기운 때문에 짧았지만 유난히도 겨울 다웠던 날씨 때문에 저도 모르게 봄을 그리워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대웅전 처마 밑에 다가서자 마자 목련의 꽃봉오리들이 모두 단청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듯한 모습 때문에 한동안 풍경과 단청을 번갈아 가며 단청의 5방색이 풍기는 봄기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방색은 청 .적 .황·.백 .흑색으로 빛과 색의 삼원색을 두루 갖추고 있는 색인데, 그 빛깔의 색들이 정녕 봄의 색깔만은 아니었지만 유년의 추억 속에는 그 빛깔이 가득했고, 그 빛 속에서 할머니의 그림자와 제 그림자가 고불고불한 산길을 따라 고목과 이끼 가득한 골짜기 속에 있던 한 사찰을 향해 걸음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수십년도 더 지난 기억들 속에서 물비늘 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기억들이 어느덧 원터골 천개사의 대웅전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천천히 나부끼며 내 기억들을 들추고 있었던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가 바뀔 때 마다 이런 기억들은 반복되기 시작하며 습관을 만들고 있었고 청계산 원터골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언덕에 서면 산기슭에서 할머니와 내려다 본 동네 모습처럼 정겨웠는데 그 동네 뒷산이 어느덧 이 작은 사찰 마당에서 내려다 본 눈 덮힌 골짜기 였습니다. 그 골짜기에서 경인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목련의 솜털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억들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는 몰랐는데 세월이 얼마간 지나고 보니 행복이라는 건 그저 매 순간 행복을 가져다 준 기억들을 되살려 주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면 행복을 느끼는 단순한 구조였고 단청의 짙은 색감이 잠자고 있던 행복한 기억을 눈 녹이듯 살며시 녹이며 흔들어 깨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억 속에는 생각만 해도 우스광 스러운 기억들인데요. 정말 별 거 아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머니 께서는 초파일을 앞두고 가족들의 건강을 비는 것과 함께 소원을 빌기 위해 창호지 쪽지에 가족들의 이름을 쓰고 절을 올리는 일이었지만, 제가 사찰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할머니께서 절을 올리는 등 기복을 빌고 있는 동안 사찰 이곳저곳을 살피며 나를 무섭게 굴던 사천왕을 멀찌감치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슬쩍 훔쳐보는 것이 전부거나 아니면 칠성각 앞에 놓인 신발들과 가끔씩 산신령 그림이 그려져 있는 칠성각 내부를 슬쩍 훔쳐보는 일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땐 왜 그렇게도 사천왕 그림이나 산신령 그림이나 사찰의 목조 건물에 알록달록하게 단장된 단청이 무서웠던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무신을 신고 할머니를 따라간 이유는 정말 왕사탕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재래시장에서 가끔 만날 수 있는 그 왕사탕은 입안에서 금방 녹지도 않아 사찰 경내를 돌아 다니는 동안에도 입안의 침을 늘 달콤하게 만들고 있었고, 가끔 입안에서 꺼내 보면 왕사탕의 알록달록한 색소가 마치 단청의 색깔 처럼 화려하게 보이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왕사탕의 색깔이 점점 더 옅어지면 얼마나 아쉬웠던지 혓바닥으로 낼름 거리며 핥아먹던 기억들이 단청의 5방색 곳곳에 묻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후 1시경 청게산 원터골의 내려다 보고 있는 천개사 대웅전 앞 마당에는 곧게 자란 목련 한그루가 서 있었고 가지마다 매달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목련꽃 봉오리가 겨울 해바라기를 하며 단청 곁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모습이 왕사탕의 단맛을 안 저의 유년시절과 흡사하다고나 할까요? 이들은 대웅전 처마끝 금단청을 바라보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떼우고 있는듯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의 유년기를 더듬어 보면 상고머리를 유난히도 좋아했지만 나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 개인위생이 심각해 보였던지 아버님은 그런 저를 위해 손수 이발기계인 '바리깡, Bariquant de Marre'으로 머리를 박박이 아니라 눈물이 날 정도로 '빡빡' 밀었는데요. 가끔 바리깡 날에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아 뽑히는 날에는 눈물이 찔끔 거릴 정도로 아팟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 그 시절이 좋은지 모르겠네요. ㅜ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사찰이 있던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머리 꼭대기에 찬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할머니께서 대웅전에서 절을 올리는 동안 사찰 뒷편 칠성각 등을 싸돌아 다닌 동안 제 머리 스타일을 닮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제 머리 스타일을 닮은 사람들이었고 그 스타일은 '까까중 머리'라고 불렀던 것인데, 아버님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여전히 제 머리를 까까중 머리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개구장이였으면 그랬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흐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계산 원터골을 내려다 보고 있는 천개사에는 그런 까까중을 만나기 힘든 대신 대웅전 처마끝을 장식하고 있는 금단청 곁으로 목련꽃 봉오리들이 빼곡하게 단청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까까중 대신 목련꽃 봉오리들의 회색빛 뾰죽한 모습들이 수천 수만 나한들 처럼 머리를 빡빡 깍고 대웅전을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그들의 추위를 덜어 줄 겨울 볕이 처마 끝으로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 곁에서 서성이는 두 그림자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함께 어느덧 훌쩍 크고도 남아 할머니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제가 그 곁에서 서성이며 단청에 부딪쳐 떨어지는 빛의 폭포 아래에서 행복해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시간이라고 해 봤자 불과 5분여 남짓 할 테고 이런 저를 방치(?)하고 저 만치 앞서간 안사람은 눈 덮힌 청계산 등산길에 등산화 차림에 아이젠 까지 착용하며 사라지고 있었으니, 저는 마치 할머니께서 절을 올리시는 동안 사찰 이곳 저곳을 기웃 거리는 호기심 많은 아이와 같다고나 할까요? ^^ 허겁지겁 눈 덮힌 산길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에도 금단청의 5방색은 쉽게 기억 속을 벗어나지 못한 채 청계산을 돌아내려 오는 길 까지 이어지며 셔터가 찰칵이고 있는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은 이렇듯 컴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만지작이며 옛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큰 재미며 행복인 것 같고, 할머니와 함께 가까운 뒷산에 올라 왕사탕을 핥아먹던 기억 만큼 달콤한 재미가 제 블로그에  '진채 眞彩', '암채 岩彩'로 불리는 광물질 안료로 정성을 다해 금단청 바르듯 하는 포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찰이나 궁궐 등지에 알록달록하게 칠해져 있는 단청이 봄을 앞당길 수 없다는 것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단청속에 묻어있는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파릇한 봄기운 처럼 되살아 나는데 일조하고 있는 고운 빛깔의 단청이 까까중 머리를 한 과거의 시간을 되돌려 놓으며 봄을 재촉하고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웅전 처마끝 풍경을 따라 이어진 단청을 올려다 보는 건 유년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지만,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바람을 가질 때 비로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 기억 속을 풍요롭게 해 준 단청의 고운 빛깔들은 청계산을 돌아 내려오는 길 내내 이어졌고 저는 예나 지금이나 단청의 5방색에 갇힌 채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고 싸돌아 다니고 있는 모습입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청은  
잘알려진대로 궁궐이나 사찰 등 목조건물을 장식하는 '의장기법 意匠技法'의 하나로 '진채 眞彩', '암채 岩彩'로 불리는 광물질 안료의 청 .적 .황·.백 .흑의 5방색(方色)을 기본으로 하여, 머리초.별지화.금문.천장무늬 등을 그리며 단청의 종류에는 긋기단청.모로(毛老)단청· 금(錦)단청· 금은박단청.옻칠단청.칠보단청.금은니단청 등이 있다고 하며, 보통 사찰에는 금단청, 궁궐에는 모로단청, 서원에는 긋기단청을 사용하였다고 전해 집니다. 단청이 건물의 격에 맞추어 사용되었다는 말이며 사찰에는 주로 금단청이 사용된 점을 미루어 저나 우리들이 주로 사찰에서 만난 단청은 금단청이라는 말인데, 단청에 얽힌 사상이나 철학 등을 알게 되면 유년 시절 왕사탕으로 사탕발림하며 꼬드긴(?) 저희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들 보다 더 멋진 추억들을 가까운 사찰이나 고궁 등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죠.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계산의 '천개사 天開寺'는 원터골에서 청계산 매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고 청계산 남쪽자락에 있는 '청계사 靑溪寺'와 규모나 역사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원터골에서 주 등산로가 아닌 오죽이 늘어서 있는 작은 사잇길을 따라가다 보면 청계산에서 제일 먼저 봄이 찾아오는듯한 곳에 대웅전 하나가 전부인듯 조그마한 사찰입니다. 두어달 시간이 지나 그 좁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어 피는 곳이며 탱자나무가 담장을 이룬 텃밭 사잇길로 봄기운을 원터골로 나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 좁은 길이 그토록 정겨울 수 있었던 것은 먼 발치에서도 쉽게 보이는 알록달록한 단청이 아닌가 싶고, 곱게 차린 단청이 발산하는 색깔들 속에는 억만겁의 하늘을 돌아 내려온 빛의 요정들이 하늘의 소식을 무진장 퍼나르며 길손을 즐겁게 만드는 곳이 '하늘이 열린' 천개사의 단청이 아닌가 싶네요. 천개사 대웅전 앞 마당에 서성이고 있는 까까중 머리의 작은 꼬마가 보이시는지요? ^^*    






Daum 블로거뉴스                    SensitiveMedia내가 꿈꾸는 그곳
            세상에서 제일 작고 강력하며 너무 따뜻~한 Media




Daum 검색창에 내가 꿈꾸는 그곳을 검색해 보세요. '꿈과 희망'이 쏟아집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