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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가을볕 속 '애호박' 누가 말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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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 속 '애호박' 누가 말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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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찾아드는 것일까요?
달력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조석으로 쌀쌀한 바람이 창 틈을 헤집듯이 드나드는데,...

아침 나절 잠시 동네 산책에 나섰더니
그곳에는 어느새 나뭇잎들이 지천에 널려있더군요.

그런데 그곳에는 요즘 보기 힘든 구경거리가 있었습니다.
누구인가 애호박을 썰어 가지런히 펼쳐 놓았던 것이죠.
그림과 같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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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두께도 일정하게 썰렸을 뿐만 아니라
나란히...줄지어 늘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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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줄만 나란히 맞추어 놓은 게 아니라
애호박 그 어느곳도 버리지 않고 잘게 썰어 가을볕에 말리고 있었던 거죠.
애호박 숫자는 많아봤자 두서너개나 될까요?

애호박을 말리지 전에는 꽤 될 것 같은 양이지만
막상 이렇게 떡 썰듯 썰어서 말려 놓으면 부피는 크게 줄어
조물조물 양념해서 무쳐 놓으면
한끼 반찬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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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을볕이 따가워 몸을 비틀고 있는 듯한 얇게 저민 애호박은
한끼 식사에 반찬으로 제공될 양으로 따질 일은 아닌것 같아
몇자 끄적이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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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애호박을 이렇듯 정성들여 말려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흔치않고
가을철에 늦게 핀 호박 줄기 한편에 외롭게 달린 애호박도
비닐하우스에서 대량 재배되는 실정이고 보니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식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호박이 대량재배 되기 전에는
엄동설한이 지나야 다시 맛 볼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으므로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어른들은
 이런 애호박을 애지중지 하여 애호박이라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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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시대가 많이 달라지는 것 하고는 상관없이
어른이 되면 여전히 가을을 타는 습성이 있고
 정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저만치 가는 세월을 불러 되돌려 세우는 한편
꼭꼭 붙들어 놓고 싶은 게 세월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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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씨 여물듯 가을은 세상 모든 만물을 여물어지라고 하는데
애호박이 철없이 말랑거리는 속살을 앞세워 촐랑거리는듯 하니
녀석들을 좀 더 여물어지겠끔
 하얀 속살을 가을볕에 말렸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노랗게 변한 씨앗들이
마치 그냥 떠나 보낸 세월 같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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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새댁들이나 줌마님들은 이런 일을 귀찮게 여길지 모르나
예전 같으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요즘 보다 여성의 권익이라는 측면에서 더 나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넉넉한 집안이면 더 나았겠지만
비록 넉넉한 살림은 되지 않아도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형편껏 욕심없이 살아왔던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애호박을 잘게 썰면서도
오직 자식들 걱정만 하고 살았던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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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요즘과 같이 가을철이 되면 조석으로 쌀랑거리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고
집 떠나 객지에 가 있는 소식없는 자식들 때문에
싸립문 밖 바람소리만 들려도 자식들의 모습이 나타날까 그리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지독한 외로움을 겪고 달래며 하나하나 썰어 나갔던 손길은
다시금 촉촉한 애호박을 들고 볕에 너는 순간에도 이어지며
한 조각씩 내려 놓을 때 마다
자식들의 건강을 빌고 행운을 빌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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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호박 조각들은 어느새 그리움의 조각이 되고
그 조각들은 다시 가을볕에 말려지고
 마침내 쫄아든 그리움이 되어 식탁에 오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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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독한 그리움의 조각들이라 생각하니
동네 한편에 널려있는 애호박 조각들을 그저 스쳐 지나갈 수가 없어서,...

그리움들을 애호박 썰듯
카메라에 한조각 한조각 차곡차곡 담으니
 옛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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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렇듯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것 같았던 사물앞에서
작은 생각을 덜어 놓게 만들며
잊고 살았던 삶의 조각들을
 다시금 하나 둘씩 조합하는 마술같은 시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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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반듯하게 썰어 가을볕에 말린 손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애호박 말랭이를 보는 순간
애호박 꽁지 끄트머리 까지 어디하나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움에 충만한 한 노모의 작품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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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애잔한 그리움이 남아있었던 것일까요?

제 아무리 따가운 가을볕이라 한들 애호박은 쉽게 마르지 않았는데요.
노모의 눈물을 닮은 애호박의 젖은 속살이 다 마르기 전에
노모의 눈물을 거두어 줄 기쁜 소식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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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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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호강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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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전화 한통이면 애호박 말리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죠.

"...어머니!...저예요...이따 저녁에 맛있는 거 사 드릴 게요."

어머니는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자식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이라도 배가 부르고, 자식들 얼굴을 보기만 해도 온 천하를 얻은 것 같이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가을볕 속 애호박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은 아침이었다.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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