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덕구'와 나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만남을 선택하고 괴로워 하고 있는지 모를 운명이었다. 가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선택이 반드시 옳았는지 반성해 보는데 그때마다 우린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으로 부터 약 1만 6천년 전 덕구가 '이리'의 모습으로 눈 덮힌 평원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동안 우리도 먹이를 찾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덕구의 조상 이리나 오늘날 우리들의 조상이었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서로의 희생을 담보로 한 울타리 밑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조금만 더 불편한 생활을 감수했더라면 보다 더 나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로 남지 않았을 텐데...그땐 왜 그렇게 간절했는지 몰라.
우리는 한 울타리 밑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이래로 늘 같은 길을 걷고 있는듯 보였지만, 늘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이므로 서로가 생각하는 관점이나 고민도 달랐어. 덕구인 나는 늘 덕구의 무리와 어울리고 싶었지만 사소한 약속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려 애 썼고, 그 인간 또한 나와 한 약속 때문에 한 눈 팔지 못하고 늘 내 곁에 있었어.
생각해봐. 그와 나는 볼 일을 보는 것 조차 달랐고 관심은 달라도 너무도 달랐어. 나는 보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지만, 그는 단 한끼를 걸러도 나를 식품으로 여길 정도로 나약한 동물이었지. 그와 동거를 시작한지 1만 6천년이 흐른 지금, 나 또한 그 습성에 익숙해져 한끼만 거르면 죽는줄 알지. 그래서 우리는 애시당초 불편한 동거를 선택한 것을 속으로 후회하고 있는 거야. 처음 우리가 만나기 전 그 시절이 더 좋았던 게지.
서로 언어가 다르고 모습 또한 다르지만 이젠 눈빛만 봐도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조린다는 말을 만든 것도 그가 나에 대해 안 불편한 진실이야. 나를 아주 개 취급하면서 얕잡아 보며 잘난 채 하는 꼴이란 차마 말을 할 수 없기 망정이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질 때 당시를 생각하면 많이도 달라진 모습이야. 그땐 나 없으면 죽는줄 알았던 인간이 말이다.
인간들은 이런 모습을 아주 유연하게 처리하고 있었어. 가끔 썬데이서울 같은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성격차이'로 인해 헤어진다는 말을 남기며 불편한 동거를 청산하고 있더라구. 성격으로 치자면 벌써 오래전에 우리는 인간과 함께 동거 하기를 포기했어야 마땅 하지만 덕구의 삶은 그리 녹녹치 않았어. 평원은 고사하고 우리가 머리를 뉠 공간 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속으로는 하루에도 골백번 우리들의 만남을 후회하며 헤어지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어. 나를 사랑해 주는 인간은 머리가 다 커서 내 생각을 함부로 읽고 주인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지만 착각도 유분수야.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야. 그의 아들과 딸들이 나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는 거지. 이런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그 인간은 오늘도 자기만 사랑해 달래. 별 꼴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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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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