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밭에 빼곡히 널린 수수들은 막 떠오르는 아침의 볕을 조금이라도 더 쬐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목을 빼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듯 했습니다. 마치 이들은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는듯 봄 부터 여름을 지나 깊어가는 가을까지 늘 그렇게 길다란 목을 쭈욱 뻗어 하늘을 바라봤지만, 야속하게도 동틀 무렵 한번 얼굴을 내민 태양은 아무런 대꾸 한마디 없이 서쪽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참 슬픈 모습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동틀 무렵 수수밭 사이로 오가는 나의 모습도 그들과 닮았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쳐다 봐도 다 똑같은 모습의 수수밭에서 무엇을 찾자고 이리 저리 발길을 돌렸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도 그 형체를 발견할 수 없었으나 한순간 러시아 평원 가득히 펼쳐진 해바라기꽃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가을을 유난히도 많이 타는 내게 찾아온 헛헛함이 드넓은 수수밭 사이를 헤매고 돌아다니게 만든 것 같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소피아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를 보셨나요? 그 영화속에서 소피아로렌(아내 지오반나 역)은 전쟁터에 나간 마스트로얀니( 남편 안토니오 역)을 찾아 떠나게 되는데, 그때 그녀 앞에 광활하게 펼져진 광경이 해바라기꽃이었습니다. 저는 해바라기가 시사하는 내용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해바라기 Sunflower'는 주 배경이 2차대전 당시 전쟁터로 끌려나가 죽음을 당한 남성들 때문에 홀로 남은 여성들이 겪는 가슴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영화속 두 남녀는 군입대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됐지만 운명은(각본대로 겠지만 ^^) 그들 뜻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에 끌려나가면 십중팔구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안 안토니오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병역기피의 한 방 방법으로 택한 건 어께 탈골이나 다른 사람의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수법을 쓴 게 아니라 아주 '미친척'하는 극단적인 수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정신이상자' 등급으로 판정을 받기위해 노력을 했지만 '뽀록'나고 말지요.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병역기피를 하려는 안토니오가 징집을 면하길 바랍니다만 이것 또한 각본대로 실패를 하자 결혼을 하면 괜찮을까 싶어서 지오반니의 순진한 술책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바람둥이 안토니오의 짧은 신혼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운명은 그를 시베리아 전선으로 내 몰도록 짜여있었습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징집에서 면책될 수 없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끌려가게 됩니다.
세월이 얼마간 지난 후 지오반니는 어느 상이군인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전쟁이 끝났음을 알았으나 남편 안토니오의 소식은 알 길이 없어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귀환병사들을 일일이 뒤졌지만 안토니오는 보이지 않아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전선에서 부친 편지속에서 남편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지오반니는 기쁨에 들떠 있었죠. 그 편지봉투 속에는 안토니오의 사진과 함께 그녀를 사랑한다는 짧막한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뻣을까요?
지오반니는 남편의 행방을 찾아나서는 한편 용케도 남편과 함께 '돈 강' 근처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귀환병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녀는 그 얘기를 듣자 마자 이탈리아에서 러시아로 가는 기차로 장도에 오릅니다. 그녀 손에는 남편 안토니오의 사진 한장만 달랑 들려있었을 뿐 어떠한 정보도 모른채 무작정 러시아로 떠나고 있는 것이지요. 참 무모해 보이는 짓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수소문 끝에 남편의 행방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기적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물론 각본 때문이지요.
그녀가 남편의 행방을 찾아 마침내 남편의 거처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한 여인이 빨래를 걷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오반니는 속으로 의아해 했을 겁니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다고 해도 다른 여성을 만나 살림을 차린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죠. 남편이 살고 있다는 주소지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딸 아이 하나를 낳아 기르고 있었으므로 정말 맥 빠지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을 겁니다. 속으로 '이런 망할 놈'이라고 외쳤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영화속에서는 그런 장면은 볼 수 없었죠. 참 고약한 운명이었습니다.
지오반니의 남편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그녀 앞에서 빨래를 걷고 있는 여성은 남편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투중에 죽어가는 한 이탈리아 병사를 구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안토니오 였고 둘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습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안토니오는 할 말이 없는 셈이기도 합니다. 전선에서 목숨을 구해준 건 구해준 거고 결혼까지 한 지오반니를 버리고 새살림을 차렸으니 말이죠. 이래서 안토니오는 세상 남자들을 모두 '도둑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
두 여인은 남편이 공장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기차역 플렛폼으로 마중을 나갑니다. 지오반니는 안토니오의 변명을 들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주야장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며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면 평범한 이웃들 처럼 아이를 낳고 기르며 행복한 삶을 살 것을 늘 꿈꾸며 지루한 기다림도 애뜻한 그리움으로 모두 삭히며 세월을 보냈을 겁니다.
또 남편의 생존 소식에 기뻐한 나머지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던 것인가요? 아마 그녀는 기차를 타고 오던 중에 본 광할한 해바라기 농장이 그제서야 자신의 운명과 닮았다는 것을 눈치채며 해바라기를 저주했을지도 모릅니다.
플렛폼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러시아 노동자들이 막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살폇지만 남편은 나타나지 않다가 마지막 쯤(영화는 꼭 이래요.^^)에 초라한 차림의 안토니오가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제가 지오반니 같았으면 그 자리에 퍼질고 앉아 통곡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사무친 그리움 때문에 눈물이 먼저 시야를 가려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오반니는 그런 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자신의 처지와 같은 안토니오의 새 아내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혼 때 헤어졌기에 망정이지 살림을 살다가 바람피우는 장면이 이렇게 목격되었더라면, 잘은 몰라도 안토니오의 머리채는 성하지 않았을 테지요.
물론 각본의 배려로 안토니오는 무사했습니다. 다만 기차에서 내린 안토니오가 지오반니와 얼굴을 마주치자 마자 굳은 표정 내지 무표정만 보면 이미 머리채가 다 뜯겨나간 모습처럼 넋이 나간 표정입니다. 두 주인공도 긴장했던 장면이고 영화팬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 였습니다.
지오반니가 그토록 기다렸던 남편이었지만 막상 그를 만나자 마자 그녀는 한마디도 못하고 막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맙니다. 기차에 오르자 마자 지오반니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통곡을 합니다. (...자식! 얼마나 기다렸는데...나쁜자식...얼마나 그리워 했는데...이 망할 자식 얼마나 사랑했는데...)하며 속으로 외쳤을 법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는 승객들은 그녀가 왜 이렇게 통곡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영월의 한 산골짜기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잘도 자란 수수는 그 키가 3m는 훌쩍 더 넘어보였는데 수수들의 기다림도 지오반니와 같은 애뜻한 그리움을 안고 긴 시간을 기다려왔던 것일까요? 수수밭 빼곡히 알알이 영근 수수열매의 모습을 보니 기다림에 지쳐 러시아로 떠나기 직전의 지오반니의 가슴속에 맺힌 그리움의 알갱이들 숫자만큼 될 법 했습니다. 이런 지오반니의 속 마음을 단 한점도 헤아려 주지 못한 안토니오가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그리움을 가슴 가득 안고 해바라기 밭을 지나쳤던 지오반니는 희망은 커녕 속이 쓰리다 못해 가슴을 송곳으로 후벼파는듯한 아픔을 견디며 자신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던 해바라기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치 신주단지 처럼 애지중지했던 안토니오의 사진을 박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그녀의 꿈을 고스란히 담아 둔 남편의 모습이자 청춘이 다하도록 만든 그리움의 대상이었죠.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수수밭의 수수가 볕을 바라보고 있는 것 처럼 안토니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후할 날을 손 꼽아 기다렸던 것인데 이제 더는 그녀가 바라볼 대상이 아니라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안토니오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한편 분에 못이겨 액자를 암바(?)로 꺽는 등 극도의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며 안토니오를 향한 사랑을 접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해바라기의 삶을 살았던 것이죠.
9월 말경의 영월 곳곳에는 수수가 풍년이었습니다. 골짜기 한 고비를 넘을 때 마다 짙은 갈색의 수숫대를 볼 수 있었는데 예전 강원도와 같이 척박한 땅에서는 여성들이 시집갈 때 까지 쌀 한 말(20리터)을 채 못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고 옥수수와 감자 등과 함께 수수는 이곳 사람들의 주식이 되었죠.
그 수수 조차도 마음껏 먹지 못해 술을 담궈 내다팔 때 술 지게미를 먹으며 고생을 마다않고 어렵게 살아왔는데, 요즘 한 광고 카피를 빌리면 '개고생'과 다름없는 삶이 예전 우리네 여성들에게 주어진 삶이었다면 지오반니가 겪은 애잔한 사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척박한 환경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모두 함께 한 아내를 '조강지처'라 하고, 조강지처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이 이곳에서 유래된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숙연해질 따름인데, 오늘날 우리네 부부들은 이렇듯 불가항력이 빚은(물론 각본이지요.^^) 운명 때문에 이별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사사롭기 그지없는 일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며 평생 해바라기의 삶을 살고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영화 해바라기 줄거리 속에서는 지오반니의 남편 안토니오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지오반니 조차 우리네 옛 여성들 처럼 육제적인 생고생을 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녀가 해바라기 처럼 그리움만 간직한 채 남편만 바라보며 청춘이 다하도록 기다린 모습을 보면 여성들이 겪어야 할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가을은 이렇듯 풍요로운데 괜스레 풍년이 든 수수밭을 보며 애잔한 사랑을 떠 올리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