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한 '붉은 메밀꽃' 보셨나요?
붉은 메밀꽃을 보자마자 나는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 올리며 선생이 메밀 꽃 가득한 봉평의 풍경을 글 속에 담을 때 만약 메밀꽃이 달빛처럼 뽀얗게 부서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보다 달빛에 반사된 메밀꽃이 연분홍 실루엣을 풍겼으면 작품속 인물들의 역할이 보다 에로틱하게 바뀌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메밀꽃이 하얗게 핀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속의 허생원이 심상한 마음을 달빛에 비친 하얀 메밀꽃이 달래주었고, 뜻밖에도 고전이 된 '물방아간의 사랑'도 맛 봤지만 당시 봉평의 메밀꽃이 붉었드라면 '성서방네'는 물방간에서 흐느꼈을 이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물방아간에서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효석 선생이 되어 '메밀꽃 필 무렵' 일부를 살짝 고쳐쓰면 스토리가 이렇게 변하게 된다.
뽀얀 달빛 아래 펼쳐진 연분홍빛 메밀꽃은 허 사장(허 생원)은 한때 경기가 좋을 때 한밑천 두둑히 잡아 룸싸롱에서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다니다가 뉴욕발 증시파탄 때문에 증권에 투자해 둔 돈 전부를 까먹었다. 허 사장은 너무 허탈하여 바람도 쐴 겸 좀처럼 타 보지 않았던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제천 한방건강축제 구경이나 하며 막걸리나 한잔하고 돌아 오려고 마음 먹었다. 서울에서 늦게 출발한 허 사장이 제천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해가 서쪽을 넘어간지 오래된 시각이었다.
제천의 초가을은 해가 떨어지자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붉은 메밀꽃은 환한 보름달빛에 연분홍 물결로 넘실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허 사장이 잘 나갈 때 우연히 룸싸롱에서 만난 아리따운 금자씨와 사랑에 푹 빠졌을 때 느끼던 오르가즘과 흡사하여 한편으로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업은 돌보지 않고 자신을 홀딱 망하게 한 금자씨가 원망스러운 모습으로 교차하며 심란했다.
그때였다. 연분홍 메밀꽃이 넘실 거리는 어둠 저편에서 한 여성이 홀로 붉은 메밀꽃 밭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늦은 시각 축제장 한쪽에서는 술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허 사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 온 여성은 금자씨가 분명해 보였다. 금자씨의 미모로 보아 중년이 된 금자씨 모습이 틀림없었다. 흠칫 놀란 표정을 지은 건 금자씨 였다.
"...혹, 허 사장님 아니세요?"
허 사장은 순간 자신을 홀딱 망하게 한 금자씨를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
"...금자씨?!..."
둘은 약속이나 한듯 서로 꼭 껴 안았다. 금자씨와 허사장이 쓰러진 붉은 메밀꽃 밭 위로 바람이 살랑 거리며 일고 있었고 가끔 붉은 메밀꽃이 자지러드는 듯 파드득이며 바람에 떨리고 있었다. 금자씨와 허 사장은 의림지 앞 한 모텔에서 다시금 약속을 하고 있었다.
"...금자씨 우리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미국으로 도망가 살면 안돼?..."
금자씨는 일행과 함께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축제에 왔고 아이들 때문에 그럴수가 없다고 했지만 허사장의 은밀한 작업에 속수무책이었고, 금자씨는 얼마전 암으로 죽은 남편 이야기를 하며 벌이가 시원찮아 걱정이라고 했다. 허 사장은 재빨리 금자씨의 사정을 눈치채고 가방에 꼬불쳐 둔 뭉치를 보여주며 금자씨를 공략했다. 허 사장이 홀딱 망한 이후 그는 현금을 주로 가방에 넣고 다녔고 제천에 도착할 당시 오만원권 돈다발이 옷가지 사이로 여럿 보였다. 둘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모텔 창가에 서서 가는 바람에 넘실 거리는 붉은 메밀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사장님...뾰~오~옥!...사랑해요. 그땐 죄송했어요. 흑흑..."
"바보 같이 울긴...사는 게 다 그렇지...뚝!...^^*"
허 사장은 깊은 꿈에 빠져 들었다. 그는 뉴욕에서 제기하여 금자씨 소식을 로펌을 통해 아이들 에게 알리는 한편 그냥 미국에 눌러 살며 못다한 공부나 하며 여행이나 다니고 싶었다. 허사장이 잠에서 깨어난 시각은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열린 커튼 사이로 붉은 메밀꽃이 볕에 반짝이며 황홀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누워 있어야 할 금자씨가 보이지 않았다. 혹 화장실에 있나 싶어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어봤지만 금자씨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허 사장 머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가방의 존재를 확인했다. 가방은 PC 아래 그대로 놓여있었다. 그래도 의심쩍어 가방을 열어 본 허 사장은 현기증이 이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메모지를 펴 들었다.
"...허 사장님...이렇게 훌쩍 떠나 죄송해요. 사는 게 다 그렇지요. 그렇다고 바보같이 울지 마세요. -불친절한 금자 올림-"
허 사장은 늦은 밤 다시 의림지 옆 포장마차에서 2차로 마신 연분홍 빛 메밀 막걸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자씨가 간밤에 일러준 이야기들이 여전히 뻥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든 잔돈들이 바스락 거렸다.
아마 이효석 선생이 메밀꽃 필 무렵을 '에로틱한 붉은 메밀꽃 필 무렵'이라고 썻다면 오늘날 처럼 그의 작품으로 인하여 봉평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난 15일 '2009 제천 한방건강축제 http://www.jcfestival.or.kr/~jcfestival/f_.. ' 개막 행사가 열리고 있는 제천비행장 활주로 위에 핀 붉은 메밀꽃을 보니, 소설 속 배경이 소설이나 작가의 사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효석 선생이 오늘날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흔치 않은 붉은 메밀꽃의 존재와 같이 다시 써 본 에로틱한 붉은 메밀꽃의 이야기도 흔치 않아야 할 사는 이야기지만 써 놓고 보니 '허 생원'을 두번 죽인 셈이다. 여전히 '성서방네' 역할은 시사하는 바 적지 않고...^^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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