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서울 '옛모습' 안타깝네
경복궁과 가까운 사직단으로 가던 중 내 발길을 오랜동안 붙들어 둔 장면은 철거전문 인부를 불러 한옥을 철거하는 한 장소였다. 이곳은 사직단(사직공원)옆 필운동과 경복궁옆 통의동 사이에 위치한 체부동 한편의 골목 깊숙한 곳인데 철거모습을 보며 가던 길을 멈추고 양해를 얻어 먼지와 함께 사라지는 서울의 옛모습 얼마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한옥이 위치한 장소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4대문 안에 위치한 곳으로 기와지붕을 한 서울의 한옥이 모여있는 몇 안되는 장소며 듬성듬성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달리하는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이 동네 뒤에 우뚝 솟아있는 산은 인왕산과 북악산이며 서쪽으로는 안산과 함께 동네를 병풍으로 애워싼듯 하고 경복궁과 함께 서울 중심에 있었던 동네였고, 동네 앞쪽으로는 경희궁과 덕수궁이 담장처럼 둘러쳐저 있어서 포근한 안가의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은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었던 오래된 집들은 물론 문화까지 송두리째 바꾸고 있어서 사직공원 앞을 24시간 통행하는 자동차 행렬에서 알 수 있듯이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없고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서울의 옛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비밀의 정원과 같은 땅이었을까?
허물어져 가는 기와집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다름없었고 기와를 머리에 인 한옥들은 대체로 중상류 이상의 사대부 집안에 어울릴듯한 가옥이었지만 서울의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서울의 모습은 반드시 그런것만 아니어서 고도古都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 주는 가옥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박정희정권 당시 전국적으로 행해진 '새마을운동'으로 우리 전통 가옥의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될 당시에도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는 한옥으로 불리우는 기와집들이 우리 전통문화의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었던 것인데 내 앞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쓰러지고 뜯기는 이 기와집도 그 중 하나였다.
철거현장에서 양해를 얻어 다 허물어진 기와집 속으로 발을 들여 놓으며 마음 한편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움 얼마간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 안타까움 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함부로 옛것을 허물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무라며 마치 내 집인양 호소를 하고 있었고 내 모습 일부가 뜯겨지고 허물어지는 느낌을 동시에 가졌던 것이다. 그런 한편 기둥과 서까래가 뜯겨지며 짚과 흙을 섞어 만든 흙벽이 허물어지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쪽방에서 꿈을 키우던 시간들이 시간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페루의 아름다운 고도 꾸스꼬 전경
나는 여행을 통해서 본 세계의 도시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페루의 고도 '꾸스꼬 Cusco'를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주거 공간이 자연친화적인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고, 시멘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들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흙이나 흙으로 만든 기와 등을 이용하여 만든 가옥들은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서면 다 같은 모양에 같은 구조의 가옥들 같지만,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모습이 마음을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가옥들은 잉카시대로 부터 에스파냐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금씩 변모하긴 했지만 현재에 이르기 까지 그 모습 그대로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기와집이나 오래된 가옥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고층빌딩이 들어선 서울의 모습은, 서울의 랜드마크와 다름없는 경복궁 등 고궁을 제외하면 세계 그 어디에도 내 놓아도 손색만 돋보이고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콘크리트 빌딩만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솟구치고 있는 모습이다.
박정희정권 당시에는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혔고, 오늘날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고층빌딩 짓기에 여념이 없는 한편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 수 있는 오래된 집들이나 동네를 재개발로 허물어 뜨리며 그나마 남아있는 서울의 옛모습 마저도 흔적조차 없애는 정책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수도서울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서울의 옛모습을 찾아 숨박꼭질하듯 해야 하고 어렵게 찾은 서울의 옛모습들은 그나마 사람사는 냄새가 나지않는 전시용 건물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를 외국에 소개하는 한국관광공사 사장 임명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용 인사를 발탁하며 서울이 대한민국인지 미국인지 독일인지도 모를 만큼 스스로 정체성을 말살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모습이다.
잘 알려진대로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서울의 옛 기와집들이나 그와 닮은 유형의 가옥들은 인체에 유해하다는 중금속 함유 시멘트나 콘크리트와 달리, 한옥의 주요재료는 천연 나무와 원적외선을 다량 함유한 흙이며 방부처리를 하지않은 원목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목들을 목수들이 일일이 다듬거나 제재하여 뼈대를 세우는 한편 지붕에 서까래를 깔고 개판을 올려놓은 뒤 황토를 얹는데 이런 공법이 대를이어 서울에 살던 사람들의 문화 전반을 차지했건만, 그 모습들이 내 앞에서 철거인부에 의해 목숨을 다한듯 힘없이 쓰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서울의 전통가옥을 허물고자 했을 때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서울의 옛 기와집들은 오늘날 아파트에 비해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고, 내 앞에서 허물어지는 좁고 작은 방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적용하면 적지않은 불편을 감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게 아니고 적지않은 사람들은 그 보다 못한 형편에서 머리를 뉘고 있는데도, 셈을 잘하는 머리좋은(?) 후손들이 건폐율과 용적율을 따져보면 비싼땅을 그냥 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며 개발회사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건설회사와 정치이득을 노린 사람들이 만나면 재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한편, 서울의 옛모습은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의 콘크리트 빌딩이 늘어나며 서울을 서울답지 못하게 만든 모습은 결국 정치인과 건설업자의 만남이 만든 볼썽사나운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해방후 전쟁을 겪으면서 폐허가 된 서울을 오늘날 처럼 변모시킨 것도 그들이었고 서울 곳곳에 산재해 있는 쪽방촌들을 볼 수 없게 된 것도 그들과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한 사람들 때문에 고도의 모습을 볼 수 는 없지만 현대화된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보다 서울답게 만드는 노력들은 과거의 불가피한 선택과 달라져야 할 것이며, 서울의 랜드마크와 같은 고도의 모습을 되찾는 한편 근현대사가 어우러진 현장을 잘 보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기초적인 생계문제 때문에 허덕이고 있지만, 다수 서울시민들이나 수도권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나 우리 국민들은 밥술 정도는 뜰 형편에 있으므로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날을 잠시 반추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었던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우리 옛모습이나 서울의 옛모습을 잘 보관하는 한편 신구新舊의 조화로운 발전이 요구되는데, 서울지역 곳곳에 산제해 있는 기와집과 같은 서울의 옛모습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면 고궁밖에 보이지 않던 서울의 매력이 다시금 소중하게 여겨질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라지는 서울 '옛모습' 안타깝네
지금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서울시의 원대한 계획하에 진행되는 미래의 서울은 청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다. 한강변에는 친환경적인 수생식물들이 자랄 것이며 접근을 편리하게 만든 한강에는 시민들이 한강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며 서울의 누추한 곳은 재정비되어 '문화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아울러 도심 곳곳에 조성된 공간은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서울의 숨통을 어느정도 틔울 전망이다.
그럼에도 세계 사람들이나 지방에서 처음 상경한 사람들이 서울에 첫발을 디딘후 서울에서 제일 먼저 만나보고 싶은 명소를 찾을 때 머뭇거림이 없어야 진정한 문화서울의 모습일 테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해도 서울을 다 소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문화도시 다운 면모를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데, 우선 서울 시민인 나 부터 서울에서 카메라를 들고 선뜻 나설만한 장소를 찾기 쉽지않다. 이게 문제다.
세대간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서울의 랜드마크는 여전히 경복궁과 같은 고궁이지 청계천과 같은 특정 시설물이 아니며 두바이를 닮아가는 지천에 널린 고층빌딩군도 아니며 잘 정리정돈해 둔 인사동 골목도 이미 옛모습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그런 곳은 도무지 사람사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 나 같은 경우 짬이 나는데로 지금은 잊혀져 가는 모습 앞에서 이렇듯 발길을 멈추고 서 있는 것인데 그 마저도 복잡한 머리속을 닮은 온갖 문명의 이기들 때문에 시선을 애써 피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먼지 날리는 철거현장 한편에서 기름먹인 장판지가 흙벽에 무너져 덮치는 광경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몸을 뉘며 흐릿한 전등 아래서 꿈을 키우던 우리 이웃들의 삶을 되돌아 보는 한편, 경희궁의 운명을 닮은 주인잃고 허물어져 가는 옛가옥의 모습을 바라보며, 할 수만 있다면 시민들에게는 전혀 쓰잘데 없는 미디어법 만드는데 매진할 게 아니라, 서민들이 마음편히 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동네를 잘 보존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조금은 불편해도 사람사는 냄새 나는 공간이 많은 서울의 모습으로 변했으면 싶기도 하다. 제발 재개발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이웃은 물론 서울의 옛모습을 함부로 바꾸는 노력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뿐만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의 옛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둔다고 해서 반드시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며, 어떤 부분은 옛모습이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볼썽사나운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의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들의 정서가 깊이 녹아있는 서울다운 모습은 한번 훼손하면 영원히 사라질 귀한 문화유산 중 하나일 것이며, 조선 5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경복궁 등 고궁 외 근현대사를 함께 한 특정 가옥이나 동네나 골목 등은 서울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는 소중한 볼거리며 현대 서울시의 진정한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철거현장에서 뜯겨져 나가는 기둥과 서까래는 물론 기와지붕을 받치고 있던 개판과 진흙덩이와 함께 기와집 벽을 이루고 있던 싸릿대에 남겨진 공들인 흔적 등을 보니, 그 자체로 서울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둔 박물관의 모습이었고 다시는 원형을 복구할 수 없는 가옥 한채가 내 앞에서 먼지를 남기며 쓰러져 가고 있는 모습 때문에 주절주절 안타까운 말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500년 고도 서울이여...1,000년의 세월이 다시금 흘러도 여전히 그리운 문화도시를 꿈꾸시기 바란다.
Boramirang
SensitiveMedia
MB583 미디어 블로그 - 1인 미디어 연합 | MEDIA BLOG |
네이버에서 구독 ※ 마우스를 올려놓고 휠을 사용해 보세요 |
'2011 나와 우리덜 > 나와 우리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화문광장 '교통안전' 사각지대 (3) | 2009.08.03 |
---|---|
광화문광장 새빛들이 축제 '초대장' 받고보니 (5) | 2009.08.01 |
작은 기적 만든 '단박 왕 돈까스' 얼짱 청년 (24) | 2009.07.31 |
무더운날 '덕구'가 약오른 까닭? (6) | 2009.07.30 |
아기냥이 눈에 비친 세상 (1) | 2009.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