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속 또 다른 별 '포토시' 기이한 형상! 여행자들이 여행을 통해서 본 사실들은 당시의 환경이나 감정에 의해서 여러가지 모습의 정보로 남을 것이나 그 정보들은 보편적인 사실을 제외하면 상당히 주관적인 게 많아서 특정 정보를 소유하고 먼저 답사한 사람들의 여행지를 가 보면 정보의 내용이 현실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 순간 후발주자는 또다른 정보를 남기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띠띠까까 호수를 건너
알띠쁠라노의 고대 유적지를 향해서 여행하는 길은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쳤다.
2억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안데스의 알띠쁠라노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되고 있었던 것인데,콜럼부스나 마젤란이 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도 서구인들에게 전혀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이 대륙에서도 찬란한 문화가 꽃피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블에서도 언급하지 못한 이 대륙은 노아의 홍수 후 방주가 아라랏 산지에 머문것 처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다가 융기하여 만들어 놓은 거대한 호수를 피해서 높은 곳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문명을 일구고 있었던 것이다.
'알띠쁠라노 Altiplano'는 페루 남부에 있는 티티카카 호 북서쪽에서 시작하여 볼리비아의 남서쪽 끝까지 남동 방향으로 약 965㎞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고 해발 3,650m 정도 되는 일련의 산간분지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옥시덴탈 산맥의 동쪽으로 지맥들이 서쪽 경계를 이루지만, 동쪽으로는 완만하게 경사진 길이 볼리비아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곳을 말한다.
알띠쁠라노 최대 도시는 '라파스 La Paz'로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희박한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도착하자마자 활동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금방 느끼는데 알띠쁠라노의 '띠와나꾸 Tiwanaku' 유적지 발굴현장에서 발걸음을 몇발자국만 옮겨도 숨이차고 매우 힘들었던 경험이 없었드라면 그곳은 평지처럼 느꼈을 정도로 매우 넓은 분지였다.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빡빡하게 짜 둔 여정 때문에 라파스에서 이틀간 머문다음 곧바로 이동한 곳이 볼리비아 남부 최대도시 '포토시 Potosi'였고 이 지역도 여전히 고도 3,976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에 속하는데 알띠쁠라노에서 은근히 시작된 고산증세는 여전했고 포토시에서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이동하는 건기의 마른 날씨와 강렬한 볕은 안사람과 나를 무척 괴롭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 때문에 잘 씻지도 못한채 겨울옷을 꺼내입게 만들기도 했다.
구름한점 없이 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도 높은 고도와 건기의 날씨로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이런 고생은 어쩌면 신나는 체험이자 일생을 통털어 경험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하고픈 여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유니 소금사막을 투어한 후 지프로 이동하면서 본 포토시에 펼쳐진 광경으로 말미암아 가뜩에나 아픈 머리속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바이블 속 천지창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며 아직 에덴동산을 만들기 직전의 모습이자 바이블을 기록한 기자는 단 한차례도 이 광경을 목격한 적이없는 귀한 광경이었다. 따라서 바이블은 특정지역의 사건을 기록한 책일 뿐, 세상을 창조했다고 알려진 창조주가 우리가 사는 별 전체를 재건축(?) 할 여지가 없었던지 아니면 아직 이곳은 재개발금지구역에 묶여있던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 그리하여 대지가 죽끓듯 한 모습을 만든 알띠쁠라노의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나는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지구속에 존재하는 또다른 별이었던 것일까?...
Evolution vs Creationism?
그글어스 속 기이한 형상들!
아래 기이한 형상들은 위 그림속 우유니 소금사막 주변 ㅁ 지역 화산활동이 여전한 지역의 모습이다.
그림의 이름들은 임의로 지어 본 제목들일 뿐 현지에서는 평면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광경이며
참 놀라운 광경이다. '창조와 진화?'라는 명제를 붙여본 것은 바이블이 기록될 시기
오늘날 남미로 불리우는 이 땅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록된 것으로 규정하고 아래 '끄적끄적'으로 대체했다.
이를테면 포토시 우유니를 여행하면서 느낀 상념들을 온라인에서 다시금 여행하며 중얼거려본 이야기다.
사탄의 종말
시거를 문 레슬러
큰바위 얼굴과 다람쥐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호모사피엔스
용암은 뜨거워
라이언 킹
생쥐와 대화를 나누는 곰 가족
토끼 쫒는 사자
남미로 여행온 불곰
용의 형상
외계의 발자국
전사의 투구
남미의 제우스
Evolution vs Creationism?
조물주의 파렛트
구글어스로 들여다 본 놀라운 광경들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의 모습과 다른 낮선 모습이며
이곳은 아직도 천지창조 전 혼돈속 모습이다. 지구 표면이 죽끓듯 한 모습이다.
볼리비아 포토시 '우유니 투어'는 이곳을 관통하며 지나간다.
위에서 본 큰바위 얼굴이 선명하다.
시거를 문 레슬로도 보인다.
개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얼굴을 맞대고 있는 형상이다.
그들은 곧 다가올 천지창조가 마냥 두려웠을까?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지표의 모습이지만 실제의 모습은 작은 호수들이다.
인간은 이곳에서 흔적도 보아지 않는 작은 티끌과 같은 존재일 뿐
세상 전부를 녹여버린 엄청난 광경이다.
죽끓듯 버블링이 일어난 지표에서 사탄이 종말을 맞이한 것일까?
자연이 만들어 낸 신비한 형상들은 거대한 불덩이와 바람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대체 수억년전에는 이 땅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천지개벽이란 이런 걸 말한다.
세상 모든것을 지워버리고 다시금 그리는 행위
그 모든 행위가 조물주의 파렛트에서 시작된 듯
Evolution vs Creationism?
자궁속을 헤엄치는 정자의 형상이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는듯 하다.
끄적끄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들 속에는 여전히 하나의 사실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세상에는 증거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가설에 불과한 것도 있고 사실이었지만 과거에 존재하여 사람들이 도통 믿으려 들지 않는 것도 있고 어쩌면 허무맹랑한 허구의 사실을 놓고 믿어야 된다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자신이 내세운 가설을 조립하여 완성한 이론을 전부인 것 처럼 말하기도 하고 과학으로 밝혀진 사실 조차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생명이 유한한 인간들은 이 땅에 살면서 부터 이렇듯 주장과 사실을 혼돈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다수 사람들로 부터 읽힌 세계제일의 베스트셀러인 '바이블'은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믿고 싶어한다. 혹자들은 바이블을 일컬어 '인간취급설명서'라고 부를 만큼 천지창조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예수탄생 이후 약 2,000여년 전의 일을 소상하게 기록해 두고 인생의 지침서로 삼도록 권장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이블을 통독하면서 방언은사 등을 체험하고 적지않은 기간동안 신앙생활을 하며 성직자들이 목적하는 바이블 속 인간이 되어 보려고 무진장 애썼다. 하지만 바이블 속 최후 주인공인 예수의 가르침과 그가 죽음에 이르는 불합리한 모습을 동시에 접하며 세상 모든 것은 '죽음'에 이르고 죽음에 이르기 전 세상에 얼마간 유익을 끼쳐야 한다는 작은 진리 하나를 깨우친 다음 오랜 방학(?)에 접어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미여행을 통해서 내 눈으로 목격한 세상의 모습은 바이블이 특정 지역을 묘사하고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가치를 기록해 둔 일기장과 별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인간이 어디로 부터 왔고 종국에 갈 곳은 어딘지에 대해 바이블이 말하고 있는,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같은 모습은 세상 어느곳이든 사람들이 살고있는 곳에는 구전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었고 신화로 남았던 것인데, 정보가 빈약했던 시절에는 세상을 평면적으로만 해석하고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 본 입체적인 해석과 증거 등은 늘 상상속에만 존재하며 발생한 아이러니였던 것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 4학년 때 낡은 그리스 희랍신화 책에 심취했던 나는 개울가에 앉아서 자연의 오만가지 현상들을 놓고 왜?...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내게 답을 던져 준 학문 조차도 늘 의문만 남긴채 나의 질문을 비켜가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 속에는 늘 우주생성의 원리에 대한 물음과 세상에 널린 기록들을 비교해 보는 습관을 남겼고,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않아서 혼돈의 결과와 같은 창조신화의 유형들을 낳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있는 기본 유형 중의 첫번째는, 세계 창조 이전에 이미 존재하면서 창조 계획을 가지고 있던 전지전능하고 지고한 창조자가 있었다는 믿음이다. 이와 대비되는 또다른 우주 창조의 관점에서는 마치 태아가 자라나서 태어나는 것처럼 세계도 여러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생겨난다고 본다. 지고의 신을 상정하는 신화 유형과는 달리 이 '출현신화 emergence myth'에서는 지구의 잠재적 힘과 그 구성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세번째 유형의 우주 신화는 세계를 태초의 부모가 낳은 것으로 간주한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세계의 부모는 창조 이야기에서 대체로 늦게 나타났다. 이 유형과 관련된 네번째 유형으로 우주 알에서 창조가 일어났다는 신화가 있다. 이 알은 세계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합일을 상징하지만 분리나 창조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다섯번째 유형의 창조신화는 어떤 동물이나 악마가 신의 명령에 따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태초의 물로 뛰어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다음백과 創造神話, creation myth> 이런 내용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들 속에 대부분 나타나는 유형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독실한 크리스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게 가치라고 믿는 목자들에게는 첫번째 유형이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별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특정 종교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일 것이므로 지배적 개념을 담은 '교과서'라도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려 들 것이나, 야속하게도 그들의 가치로 볼 때 '사탄'과 같은 사람이 등장하여 '진화론'이라는 엉뚱해 보이는 이론으로 고유가치(?)를 허무는 당사자가 등장함에 따라서 한동안 인간들은 다시금 가치의 혼돈에 빠져 들기도 한다.
이런 혼돈들은 어쩌면 서두에 언급한 특정 시대를 살던 인간들의 시각차이에 의해서 발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최근의 일이며, 기자들이 바이블을 기록할 당시 바다 건너에 어떤 새로운 문명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모를 때 일이기도 하다.
나는 요 며칠 남미땅 볼리비아 포토시의 ' 파우나 안디나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de fauna de Andina' 속에 위치한 'San juan de Rosario'를 찾아 나섰다가 기이한 여러 형상들을 만났고 나는 그것들을 한참동안이나 지켜보며 켑쳐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상 최고의 가치라 칭하는 바이블에 의하면 천지창조가 끝날 무렵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고 최초의 사람 '아담 Adam'이 탄생했다는데 에덴동산 건축을 너무 서두른 탓에 부실한 창조를 했던 것일까?... 이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 속에 또 다른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볼리비아의 대부분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포토시 영역에서는 아직도 대지가 죽 끓듯 하며 '버블링 bubbling'을 거듭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에덴동산 Garden of Eden'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바이블 속 에덴동산은 또 다른 대륙 아메리카가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에 알려지기 전에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고 그곳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흐르고 있는 중동지방이었다. 그곳은 인류문명이 탄생했다는 4곳 중 하나였고 현대를 사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발길을 돌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죽자살자 믿고 있는 창조주가 실수를 했던 것일까? 실수를 했다면 어떤 실수를 범한 것이었을까?...남미땅 볼리비아 포토시 곳곳에는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는 '사탄'이 아직도 억울함을 풀지 못한듯 포효하고 있었고 곳곳에는 먼 미래를 재창조하는 듯한 사람의 모습을 닮은 형상과 동물들의 형상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아마도 콜럼부스나 마젤란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고 나서 제일 먼저 햇갈린 게 '천지창조'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포토시 거의 전체의 모습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여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기에 부적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은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이 겨우 분리되었을 뿐 에덴동산에서 자라야 할 온갖 육축과 식물들이 살아가기에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지역이었다. 과학자들은 까마득한 오래전 빅뱅 이후 이 땅이 처음 생겨났을 때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은 한덩어리의 모습이었지만 지각의 변동으로 인하여 둘로 나뉘었다고 하는데 전지전능하여 무소부재한 창조주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는 것이다.
지구상 곳곳에 이러한 흔적들이 적지않자 창조론을 믿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동 땅 깊은 곳에 매장된 석유가 에덴동산에 충만했던 각종 동식물이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매장된 것으로 믿는 한편 바이블 내용이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었으며 매우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 사실들 때문에 서두에 여행자를 비유하여 몇마디 옮겨둔 것이며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 처럼 재미없는 일도 없으니 혹, 태클이라도 걸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자신의 주장에 맞는 이론을 취사선택하여 재미있게 살아가기 바랄 뿐이다.
이 포스팅 속에서는 남미여행 중에 만난 작은 유적지의 위치를 '구글어스'를 통해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평면도를 놓고 내 마음대로 상상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을 뿐, 학문적 업적을 위해 새로운 주장을 하는 마당도 아니고 그럴 입장도 되지 못한다. 다만, 뒤늦게 서구사람들이나 우리들이 애써 외면한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면서 역사적인 사실을 앞에 두고 몇가지 물음을 던지며 스스로 즐거워하는 포스팅일 뿐이다.
위키백과 속 창조론 [창조설, 창조론자, 창조주의]에 따르면 창조론(創造論, Creationism)은 인간, 삶, 지구, 우주가 신이나 뛰어난 존재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해 신비로운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개입'은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일수도 있고, 이전에 있던 혼돈에서의 질서의 출현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빅뱅' 이후 단 한차례 창조주의 수고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단정하여 말하지 않고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인데 바이블에 기록된 '말'의 일획이라도 바꾸거나 곡해해서는 안된다는 성직자들의 말에 견주어 보면 이 또한 모순되 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혼돈은 여전히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찰라에 이르끼 까지 새로운 창조가 계속 진행되던가 아니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진화가 가속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종의 기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찰스 다윈의 '진화 [Evolution, 진화설, 생물진화론, 진화론]론은 생물학에서 생물 집단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를 축적하여 집단 전체의 특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야기하는 과정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진화론은 찰스 다윈과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가 1858년공동으로 집필한 논문에서 자연 선택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출발했는데, 다윈과 월레스는 한 생물체의 성공적 번식 확률을 높여주는 유전적 특성이 세대가 지남에 따라 유전을 통해 더 널리 퍼지고, 반대로 성공적 번식 확률을 낮추는 유전적 특성은 세대가 지남에 따라 더 드물어짐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지지만 오늘날 이들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어쩌면 아담 이후로 부터 고민해 온 문제들 같고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인간들의 노력조차 바이블 속 창조주는 '바벨탑'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생물 집단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를 축적하여 집단 전체의 특성을 변화'하며 발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인간들의 논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미땅 알띠쁠라노 한켠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창조의 한 형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고 알띠쁠라노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인간들은 최소한 BC3,000년 전 이 높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는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 지역에서 취했으나 달라진 것이라곤 알띠쁠라노에 널려있던 호수의 물이 증발함과 동시에 남긴 '가난' 뿐이었다.
알띠쁠라노에서는 세월이 흐르자 마침내 띠띠까까 호수와 같이 저지대에 남아 있는 호수를 제외하면 다수 고원 근처에 위치한 호수들은 물이 다 말라버렸고 우유니 소금사막은 바다가 융기하면서 담아 둔 해수가 오랜시간 동안 안데스의 볕에 증발되면서 남긴 거대한 소금바다로 남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유니 소금사막 곁에는 한쪽 대륙에서 바이블을 끄적이고 있는 동안 대지는 용광로 처럼 부글 거리며 죽 끓듯 끓고 있었고 곳곳에서는 화산들이 불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지에서 무엇이 창조되고 무엇이 진화될 것인지?...
나는 구글어스를 들여다 보면서 스스로 창조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늘 실수를 되풀이 하는 것도 창조주가 내게 전해 준 유전적 특징 때문이었고, 그 특징들 속에서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지은' 바이블 속 창조주의 계획에 의해서 무한한 실수를 되풀이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실수들은 늘 새로운 창조의 구실을 만드는 '희망의 메세지'로 다시금 내게 다가왔다. 미필적고의?...어쩌면 창조주 보다 한 수 아래인 찰스 다윈을 비롯한 진화론자들은 창조주의 의도된 실수에 놀아난 검사들 처럼 창조론자를 기소하기에 역부족이었고, 창조론자들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홀리 바이블 holy Bible'의 후광을 등에 업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예수가 질책을 마다하지 않은 '도마'와 같이 '봐야 믿을 수 있는' 세계로 진화를 했고 '보지않고 믿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시대로 바뀐지 오래다. 내가 길이며 진리고 생명이다라고 외친들 수면위를 떠 돈 'Holy Spirit'에 대해서 사람들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세상이 됐고 내 손아귀에 몇푼의 돈이라도 얹어야 기적의 '할렐루야'를 외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간이 느리게 더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던 아나로그 시대와 많이도 다른 모습인데, 진화론자들은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진화를 주장하면 설득력을 얻고 지지자를 양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유전자 배열을 놓고 수치상 가까운 결과물에 대해서 선조가 누구라고 말하는 오류는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이 똥파리 유전자와 가장 닮았다고 해서 인류의 조상이 똥파리와 같다는 결론을 내리는 과학자들은 정말 똥파리만도 못한 과학자 임에 틀림없고 한 대륙을 무시한 채 써 내려 간 바이블을 두고 지나치게 '미필적 고의'로 창조주를 옹호하는 것도 인간답지 않은 주장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주의 현상이나 생과 사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고민했던 유년시절로 되돌아 가 '신화'가 내게 준 무한한 상상력을 더 신뢰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신뢰는 봄으로써 '믿음'과 '신뢰'를 더하는 사람들의 깊은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아닌가 싶고 그 해답은 머리속과 가슴속이 텅빈것 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바라본 세상이어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 것이다.
인간들은 대개 자신이 많은 지식을 소유하면 세상을 보다 더 광법위하게 이해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세상을 반백 이상으로 살아보니 '지식'을 가치로 삼는 인생들의 삶은 마치 투명한 유리에 색을 입힌 것과 같아서 지식이 증가하면 할수록 세상은 지식에 가려서 지식이 준 것 만큼 보이게 되는 아이러니를 낳게 되는 모습을 왕왕 봐 왔고 이 포스팅에서 링크로 인용한 글 또한 그와 다름 없어서 읽는 사람이 자신의 처지에 맞도록 적절한 필터링을 해야 하나 언급한 것 처럼 개개인의 능력차로 인하여 사물을 보는 모습이 서로 다름을 언급했던 것이다.
여행자들은 잘 아시리라 믿지만 이미 세상은 대명천지가 되어 무엇 하나 숨길 수 없는 시대가 됐고 여행자들이 전하는 주관적 정보들은 보편적 사실들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됐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구글어스'와 같은 장치들은 창조주 영역에 속하던 '파파 Papa'와 같은 장치로 인간들의 사회에서는 최고급 정보를 독점하던 한 국가나 그와 동일 하거나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으나 현대에 와서는 이 장치가 보편화 됨에 따라서 창조주의 영역처럼 인식되던 입체적인 인식이 모두 개인에게 나누어졌다.
따라서 의지만 있다면 이 장치를 가동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별 곳곳을 관찰 할 수 있게된 것인데, 문제는 이 장치로 볼 수 있는 현상을 창조론적 관점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봐야 옳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고, 그 결과 각각의 관점에 따른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그러나 빠레트에 물감을 끼얹어 놓은듯 불확실한 형체의 물감들이 제 형상을 되찾을 때 그 형상들을 기억하는 인간은 이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창세기 이후로 부터 계속되어 온 것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안데스의 알띠쁠라노 한 지역의 유적지를 구글어스로 뒤져 보다가 구글어스에 드러난 기이한 형상을 보며 여행지에서 느끼지 못한 경이로운 현상과 마주치게 됐다. 그 현상들은 내가 오래전에 그리스 희랍신화를 읽으면서 느낀 상상속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고 그 모습들은 인간들이 가진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형상이었다. 감성이 뛰어났던 예전의 사람들은 이런 자연적 형상들에 대해서 신화속 그림이나 말을 통해서 우주 저편에 있는 별들의 형상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라 했고 우주의 이야기가 환등기나 영사기 처럼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 세상의 모습이라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날마다 쬐고 있는 햋볕이나 달빛이나 밤하늘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빛들은 각자가 지닌 파동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별에 흔적을 남겼던 것인데 그 흔적들은 물이되고 불이되는가 하면 흙이 되고 또 바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미친듯 심취한 신화들 속에서 본 개울에 흐르는 물과 물비늘을 흩날리게 한 햋볕과 돌틈바구니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민 작은 풀꽃과 꽃잎을 흔들리게 하던 바람은 모두 저 우주속에서 쏘아 보낸 신호들이었고 인간들은 그 신호들을 '코드 Code'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Laguna Colorada 호수 곁에서...사방은 적막하고 건기의 바람이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곳이다.
우연찮게 들여다 보게된 알띠쁠라노의 한 대지위에 들끓고 있는 장면은 어쩌면 인간들이 보지말았어야 할 천지창조의 한 모습일지 모르며 그냥 바람처럼 그의 곁을 스쳐지나야 했을지 모르지만 말도 안되는 이 글을 끄적이게 만든 것도 내 속에 내재한 알 수 없는 계획에 따라 밤을 지새게 만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들에게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다시금 생각해봐도 정말 무익한 이론일 뿐이다. 이렇게 척박하기도 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땅에서 주어진 삶을 붙들고 그저 죽는 날 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 갈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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