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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東方朔!

잉카문명 일군 '안데스'의 보물들!




잉카문명 일군 안데스의 보물
 '야콘Yacon' 아세요?

미국의 역사학자 '히렘 빙엄Hirem Binghm'이 남미땅을 밟았을 때 그는 무엇을 만나고 싶었을까?...나는 잉카트레일의 마지막 날 산따 떼레사에서 마츄피츄의 석축 몇이 빤히 올려다 보니는 아구아 깔리엔떼에 도착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 곁을 지나고 있었다.

1911년 히렘 빙엄에 의해 마추피추Machu Pichu가 발견되기 까지 그는 마추피추가 있는 우르밤바 계곡 저편 '빌카밤바 산맥'을 뒤지며 잉카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오늘날 공중의 도시'라 불리우는 마츄피츄만 보고 말았던 것인데, 그가 잉카제국의 괘적을 쫒아서 찾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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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밤바 강을 따라서 아구아깔리엔떼로 가는 길에서 본  두 봉우리...
 우측이 '마츄피츄'고 좌측이 '아이나피츄' 유적이 있는 곳이다.
 
일반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그는 잉카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숨겨둔 보물이고 그 보물들은 에스파냐의 침략자 피사로가 본국으로 나른 황금이 일부였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안데스 어딘가에 황금으로 만든 유물들이 더 많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잉카의 땅에 발을 들여 놓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이 후원한 이 여행에서 그는 결국 보물을 찾지 못하고 정글에 뒤덮힌 마츄피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가 찾던(?) 보물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로 인하여 오늘날 세계속에 '마츄피츄'를 알리는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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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 잉카트레일을 끝으로 만난 공중도시 마츄피츄

그가 안데스에 일군 잉카문명의 괘적을 쫒는 동안 가장 힘들었고 신기했던 게 있었다면 이렇게 험준한 산악에 건설한 수수께끼 같은 문명도 그렇지만 어떻게 깍아지른 절벽에 거대한 돌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도시 건설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안데스의 잉카트레일을 따라서 어떻게 이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을 것이다. 잉카트레일 마지막 날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마츄피츄 베이스 켐프와 같은 마을인 아구아깔리엔떼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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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잉카문명의 발상지 '띠띠까까 호수'가 있는 알띠쁠라노 분지 곁으로
볼리비아 '라파스'와 잉카의 고도 꾸스꼬, 나스까 문명이 있었던 동태평양 부근 안데스산지다.
황색이 안데스가 분포된 곳이다.


남미여행중 '잉카트레일'은 여러모로 잉카인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여행인데 잉카문명의 자취를 따라서 걷다보면 어느새 스스로가 잉카인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먼지 가득한 좁은 안데스의 산길을 따라서 걷다보면 작렬하는 태양빛에 노출된 피부는 화상을 입고 해발고도 4천 미터 이상의 길을 걷는 동안 목이 말라 금방이라도 주저 앉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때 까지도 고산증세가 계속이어지고 있었다.

그 증세는 마치 몸살을 앓고 있는듯 했고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처음 겪어보는 증세였다. 화상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한 마스크가 작은 보조백에 들어있었음에도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고 아구아깔리엔떼에 도착할 즈음 내 얼굴은 화상으로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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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츄피츄에 건설된 경작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잉카트레일에 따라 나선 '기아'와 마부는 늦게 출발해도 어느새 나의 앞을 저만치 앞서갔고 그들은 때 맞추어 식사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짐을 실은 당나귀 보다 더 빠른듯 했다. 나는 속으로 잉카인들이 이러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의 체격은 오늘날 페루인들의 체격보다 휠씬 더 큰 모습이었고 그들의 모습은 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사는 거인족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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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인들이 즐겨 먹었던 과일들이 페루의 고도 '꾸스꼬 중앙시장'에 널려있다.

잉카트레일의 마지막 날 만난 마츄피츄를 만나는 순간 나는 탄성을 지르며 다물지 못한 입 속으로 정말 위대한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데스의 우르밤바 강 지형을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한 건축물이며 이 건축을 위해서 동원된 잉카인들을 떠 올렸다. 기아-가이드-의 설명에 의해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전답이 만들어져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곳에서 생산된 작물만으로는 먹고살기 빠듯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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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춘천 샘밭사두농장에서 재배된 '하이동방삭' 야콘

그리고 어딘가에서 생활에 필요한 곡물과 채소등을 가지고 와야 할 텐데 어디서 가져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르밤바 유적지와 나스까문명이 있었던 태평양 연안의 아레끼빠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그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했고 히렘 빙엄이 발견한 마츄피츄와 같은 건축물들이 안데스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았다. 뿐만 아니라 히렘 빙엄이 찾고자 했던 보물들은 엉뚱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히렘 빙엄의 속셈인 '황금'은 그 어디에도 있을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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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끼빠로 가는 길에서 본 안데스의 비탈진 경작지

잉카트레일과 우르밤바 계곡을 둘러보는 동안 안데스에 분포된 잉카의 유적지들이 공통점으로 닮은점이 있었다. 그 유적지들은 하나 같이 내진설계가 잘 된 거대한 석축구조물들 이었고 안데스의 높은 곳에 건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건축물 곁으로 전답들이 다랭이 논 처럼 안데스의 비탈을 따라 즐비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말이 비탈이지 조금만 떨어져서 이 모습을 보면 마치 거대한 안데스에 주름이 잡힌듯 쭈글쭈글한 모양인데 그곳에는 자동차가 전혀 다닐 수 없는 곳이고 좁은 산길을 따라서 조랑말 등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지금도 안데스에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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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에서 산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는 모습...아레끼빠로 가는 길에 만났다.

나와 동행한 혜은은 이 모습을 보며 억만금을 주어도 못살 곳이라 했다. 그런데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밭을 일구며 수수께끼 같은 문명을 일구고 살았던 것인데 나는 그들이 뭘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별것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강원도에서 지겹도록 먹었다는 옥수수나 감자 등 전분이 포함된 열량이 높은 음식과 야콘(llacum,yacon)을  주로 먹고 살았다. 에스파냐의 침략자 피사로가 세계에 공헌한 게 있다면 오늘날 세계인들이 즐겨먹는 옥수수와 감자의 전파였을 것이다.

야콘은 땅에서 나는 '과일'이다!


선사시대 이전부터 안데스 사람들은 개간과 화전농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나스까와 까농 델 꼴까를 여행하기 위해서 아레끼빠로 가는 도중 나는 그림속의 모습과 같이 산불을 목격했는데 건기의 황량해 보이는 안데스의 산불은 화전을 일구기 위해서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었다.

이 포스팅의 제목이 '안데스의 보물'이라고 했다. 히렘 빙엄은 마츄피츄 등을 뒤지며 엘도라도를 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잉카인들이 찬란한 잉카문명을 꽃피우기 위해서 그들이 섭취한 음식은 무엇인지 궁금했고 꾸스꼬 중앙시장에서 만난 식품들 중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있나 살펴 보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식품외에 특이한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춘천의 샘밭사두농장을 방문 하면서 원산지가 안데스며 잉카인들이 즐겨 먹었다는 '야콘'에 대해서 주목하며 자료를 뒤적이다가 안데스의 보물이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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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샘밭사두농장에서 재배된 야콘...원산지가 안데스다.

야콘의 재배역사에 따르면 " 페루와 볼리비아의 다습한 산림지역으로부터 안데스산맥의 다습한 경사지를 따라 남과 북으로, 건조한 안데스산맥의 골짜기 그리고 서쪽으로 페루의 해안까지 전파되었다. 에콰도르에서는 영양계의 다양성이 적은데 이 지역에서는 멕시코어가 변형된 xicama라는 이름을 주로 쓰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스페인 침략 바로 몇십 년 전 에콰도르의 잉카 정복과 함께 에콰도르에 야콘이 도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용케도 남미여행중에 만난 지역들이 바로 그곳이었고 그곳은 나스까문명이 사라진 곳이기도 했는데 "페루 나스까Nazca 해안의 유적지(AD 500∼1200)에서 야콘의 가장 오래된 식물학적 형태가 새겨진 직물과 도자기가 발견되었다(Safford, 1917 ; Yacovleff, 1933 ; O′Neal 와 Whitaker, 1947). 그보다 남쪽인 Candelaria 문화의 유적지에서는 괴근형 야콘뿌리로 추정되는 화석들이 발견되었는데(Zardini, 1991), 이곳은 현재의 아르헨티나 야콘 재배지역 남쪽에 위치한Salta주에 있으며, 서기 1∼1000년 사이에 발달한 고대 도시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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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문명이 산재한 우르밤바 강과 안데스의 모습들


야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Felipe Guanman Poma de Ayala (1615)가 쓴, 스페인으로부터 도입된 8가지 농작물을 포함하여 안데스산맥의 원주민에 의해서 재배되었던 55가지 토종작물 목록이다. 역사가이며 신부인 Bernab  Cobo (1653)는, 야콘의 과일로서의 이용도와 해상운송의 여러 날을 견디는 능력에 대해 더욱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고 전하는데 안데스 산지에서 물을 긷기가 쉽지않은 점을 고려하면 부족하기 쉬운 수분 등을 야콘을 통해서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안데스 지역의 시장에서는 야콘이 고구마 같은 뿌리작물로 분류되지 않고, 사과나 파인애플 같은 과일로 취급되며 볼리비아에서는 당뇨병 환자와 소화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먹으며, 신腎부전이나 피부를 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며 브라질에서는 야콘 잎에 당뇨병을 예방하는 약리작용이 있다고 하여 약차를 만들어 음용한다고 전한다.
 
야콘의 근대 재배역사는 "19세기에 Weddell(1857)은 Polymnia edulis로 명명된 야콘의 품질에 관심을 가지고 식물표본을 수집하였다. Perez Arbel ez(1956)에 의하면, 세기초에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야콘이 파리에 전시되었으나 유럽인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고 하며, 1930년대 말 이탈리아에서 재배를 신중하게 검토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사라졌다. (Calvino, 1940). 그러나, 위도가 높은 온대지방의 평지에서도 잘 자라고 작물로 재배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 확인되었다."고 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4월, 묘 3포기를 '타키이'사로부터 원예시험장에 도입하여 시험 재배했는데 현재는 전국에서 이 작물을 심을 정도로 특용작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내가 만난 야콘은 샘밭사두농장에서 재배되는 것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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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인들의 주식이었던 '야콘' 원산지 안데스 풍경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야콘은 잉카인들로 부터 점차 멀어져 갔는데
야콘은 생산성이 높고 농업적으로 우수한 특성을 가진 작물이지만 열량이 낮기 때문에 농학자들의 관심이 야콘보다 감자나 oca, ullco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작물로 옮겨져 갔다. 특히 기근이 닥치거나 시대적 위기상황에서 영양가가 적은 야콘의 재래종이 사라져 갔으며, 근세에 들어 안데스지역의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가 이를 가속화 시키면서 최근 운송수단이 발달되어 오지인 안데스지역에 외지의 과일들이 들어오면서 부터 야콘과 경쟁하게 되는 동안 잊혀져 가는 작물로 변했으나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들이 웰빙식품을 찾게 되면서 부터 주목을 받으며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야콘의 '성분'이나 생리적인 '효능'은 다음과 같다.

야콘은 포도당, 과당과 같은 단당류와 설탕과 같은 2당류 그리고, 3∼10炭糖의 올리고당 등 몇 가지 형태의 탄수화물을 덩이뿌리에 저장하며, 약간의 전분과 이눌린(inulin)을 함유한다. 이눌린은 35탄당의 다당류로 돼지감자나 달리아 같은 국화과 식물에 많은 저장 당이지만, 야콘에는 양이 아주 적다. 반면 수확기에는 4탄당 정도의 oligofractan이 건물기준으로 67% (Asami 등, 1991) 정도 된다. 야콘의 올리고당은 글로코스기를 갖는 β-후락토올리고당(이눌린계 oligofractan)으로 알려졌다. 수확 직후에 올리고당은 67%였으며 (Asami 등, 1991), 수확 후 96일에 약 20% (Ohyama 등, 1990)로 낮아진다.

그러므로 올리고후락탄과 단당류의 상대적 비율은 생육단계와 수확에 변한다. 그외 약간의 섬유소, 레티놀 등 비타민과 무기물을 함유한다. 표피의 腺에서 분비되는 터페노이드 젖산이 맛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험결과는 아직 없다.

볼리비아에서는 당뇨병 환자와 소화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먹으며, 신腎부전이나 피부를 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야콘 잎에 당뇨병을 예방하는 약리작용이 있다고 하여 약차를 만들어 음용하며, 말린 잎을 달인 물을 당뇨병 걸린 쥐에 투여한 결과 혈당강하 효과가 밝혀졌다.  

야콘에 많이 들어있는 포도당, 과당은 설탕보다 당도가 높고 장내 흡수속도가 느리다. 올리고당은 체내에서 소화흡수가 적으며, 장내에서 부패균 (E. coli)이나 식중독균 (Clostri dium perfrigens)은 이용하지 못하며, 반면 젖산균 (Bifido bacte rium sp.)은 잘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피더스균을 증강하고 유해균을 감소시켜 장을 깨끗하고 튼튼하게 하는 정장작용과 장의 운동을 활성화하여 변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Mitsuoka, 1982)

혈청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 동맥경화를 예방하며(淺見, 1989 ; Yazawa, 1982), 또한 충치를 유발하는 Steptococcus mutans가 이용하기 어려우므로 감미료로 이용할 경우 설탕보다 충치발생을 효과적으로 억제 할 수 있다. (淺見, 1989)


마츄피츄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오늘날에도 건설하기 쉽지않은 돌로 만든 건축물을 정교하게 다듬어 암봉 꼭대기에 건설했는데 이런 건축물을 만들기 까지 들인 노력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들은 안데스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최고의 음식인 감자와 옥수수나 야콘과 같은 작물에 힘입어 힘든 노동을 했고 목이 마를 때 마다 재배가 손쉬운 야콘을 아삭아삭 씹어 먹었던 것이다.

안데스의 지형속으로 흐르는 물은 우리나라나 물좋은 나라들의 토양과 달라서 그냥 마시기엔 적절치 못해 보였다. 히렘 빙엄이 빌카밤바 산지를 헤메고 다니는 동안 깨닫지 못한게 있다면 마츄피츄와 같은 건축물은 언제 어디서나 건축할 수 있는 역량이 잉카인들에게 있었는데 그는 그저 신전속을 치장한 황금에만 눈이 멀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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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콘이 변이를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른  '야콘 원산지'가 있는 안데스 지역


지금으로 부터 약 1억년전에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진 안데스가 품고 있었던 것은 황금과 같은 광물이 아니라 찬란한 잉카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근저에 묻혀있던 식물들이었고 옥수수와 감자등 낮익은 이름들 중에 현대인들이 잊고 산 야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분이 풍부한 야콘도 저장을 잘하지 못하면 오랜동안 두고 먹을 수 없는 식품이었는데 안데스의 건기가 계속되는 두서너달 동안 야콘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진화가 진행되었고 세대가 거듭되면서 큰 덩이뿌리가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유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계 유일 우리나라 옥광산 '동굴'에 저장된 야콘

이런 야콘은 밭에서 막 켄 직후에 먹으면 효능이 떨어진다고 전하는데 "생식을 하면 단맛이 상당하고 아삭아삭한 느낌이 아주 좋다. 수확 후 햇볕에 말려 후숙시키는 것을 꼬차스까ckochascca라 하는데, 껍질이 약간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말리면 단맛이 더해진다. 껍질에서 송진 맛이 조금 나므로 껍질을 벗겨 먹는데, 껍질을 벗겨 두면 갈변이 심하므로 물에 담가 둬야 한다."고 한다. 이 단맛 등이  오늘날 시판되고 있는 야콘의 약리작용을 하는 셈이며 안데스의 잉카인들은 이 맛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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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밭사두농장에서 금년에 재배한 야콘이 숙성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림속 샘밭사두농장주 허태풍)

이렇게 귀한 작물은 지난주 '무시래기'를 얻고자 방문한 샘밭사두농장에서 막 수확하여 숙성과정을 거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야콘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야콘잎을 따서 쌈을 싸 먹어 본 경험이 있고 그 맛은 '머우'를 데쳐서 먹는 맛과 같은 쌉싸름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게 약리작용을 하는 맛이란다. 샘밭사두농장의 주인(허태풍)은 야콘의 저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수분이 많은 야콘을 숙성후 오랜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수분이 증발되지 않고 상온에 잘 보관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수확한 야콘 전량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는데 그곳은 옥광산으로 유명한 춘천시 동면 월곡리의 속칭 금옥동金玉洞에 있는 세계유일의 연옥(백옥) 광산에 야콘의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야콘이 옥을 만나면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포스팅 속 내용처럼  히렘 빙엄은 금이나 옥에 눈독을 들였지만 야콘은 그 동굴속에서 우리를 만날날을 기다리고 있게 된 것이다.

어제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을 만난 우리 대통령이 오늘은 페루 리마로 간다는 소식이다. 그곳에서 동태평양의 남쪽을 따라가면 나스까문명을 만날 수 있게 되고 다시 안데스를 넘으면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알띠쁠라노 고원이 나타나는데 세계경제는 물론 우리경제도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농촌 현실은 거의 초죽음 상태다. 이러한 때 우리농가의 주 소득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특용작물인 야콘의 재배와 보급은 우리국민들의 건강은 물론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대통령이 페루에 도착하면 양국간 경제협력 외에도 안데스 산지에서 나는 귀한 작물들도 눈여겨 봤으면 한다. 잉카문명을 일군 건 황금이 아니라 야콘이었다.

 
*자료/야콘구매 문의  http://cafe.daum.net/dongbangsak 
                              (샘밭사두농장 허태풍 016-361-0834)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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