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디자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날 세계속의 '서울'을 디자인 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한것은 '서울 디자인 올림피아드 2008' 행사를 직접 참관 하면서 생긴 물음이다.
아마도 이 물음은 세계속에서 서울 디자인올림피아드를 선 보인 서울이 궁극적으로 늘 되물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주지하시다 시피 오늘날 서울이 있기 까지는 적지않은 고뇌섞인 세월이 흘렀고 그 세월을 500년 도읍지를 넘어 오늘날 600년의 고도를 만든 '서울'을 있게 만든 한 디자이너(?)의 공로가 돋보인다.
세상은 디자이너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져 왔고 이 세상은 태초에 위대한 디자이너인 '창조주'로 부터 디자인 된 세계라는 것을 부인하거나 시초를 잘 모르는 사람은 디자인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더 해야 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인 바이블에 의할 것 같으면 일주일에 걸쳐 완성되었고, 일주일 동안 완성된 세계가 오늘날 우리가 오감으로 체험하는 세상인데, 그 세상속에서 인생의 삶을 도왔던 최초의 디자인이 에덴동산이며 그 동산에 디자인 한 사과Apple 조각 때문에 인류의 삶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 '바이블'은 전한다. 한 디자이너의 야속한 '드로잉'이 인류의 삶 전체를 구속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서울을 만든이는 누구일까?...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태조 이성계라는 사람이다. 그는 335년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고 어느 날 이자춘이 꿈을 꾸었는데,...꿈 속에서 하늘에서 오색 구름을 타고 선녀가 내려왔다. 그 선녀는 이자춘에게 절을 하고 "천계에서 그대에게 내리는 것이니,... 장차 이것을 동쪽 나라를 측량할 때 쓰십시오"라며 소매 속에서 침척(바느질에 사용하는 자)을 꺼내 바쳤다.
이자춘이 그 자를 받은 뒤에 부인 최씨는 임신을 하였고, 13개월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은 용과 같았고, 눈은 봉황처럼 부리부리했다고 한다. 그 아기가 바로 이성계라고 말하는데,...그를 놓고 조선을 만든 최초의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오늘날 '서울'을 만든 '디자이너'라고 생각해 본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이성계 디자이너(?)는 서울을 천년 도읍지로 삼기전에 오늘날 북한에 속한 '개성'을 도읍지로 삼고 있다가 개성은 100년도 채 못되어(편집자 주) 망할 수도로 생각하여 미래의 세계속에 유일하게 강과 산과 벌을 끼고 있는 최고의 도읍지로 서울을 선택한 것이며 마침내 숫가락 몽댕이 하나까지 다 챙겨 서울로 이사를 한 것인데 그 전에 한 일이 바로 '서울을 디자인'한 참으로 놀라운 일인 것이다.
인류의 삶은 이렇듯 한 디자이너의 의해서 운명을 좌지우지 할 만큼 단순 하면서도 복잡하고 미려하게 발전해 왔으며 한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지 못한 삶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네 모습인데, 세상을 잘 만들거나 서울을 잘 디자인 했다 손 치더라도,
그 디자인 속 삶의 모습은 다시 디자인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별의 별 몸짓을 다하고 살았으며 놀랍게도 '이성계 디자이너'의 설계속 수도 서울은 좌충우돌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이성계디자이너가 만든 서울속에 살고 있었던 나我 였던 것이다.
'서울 디자인 올림피아드 2008'을 참관 하면서 나는 서울의 한 구석에서 우리네 삶을 윤택하게 했던 박씨(김씨면 어떻고 이씨면 어떠랴)가 한 '전시관'에서 나를 부드럽게 째려(?)보며 내게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사진속의 그가 말을 한다고 믿는 사람은 디자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고 그가 단 한장의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술한 이야기가 말짱 꽝이다.^^
박씨가 처마밑에 펼쳐둔 것은 고무신이고 낡아 빠진 주방용품이다. 그 중에는 양은냄비도 있고 별의 별 취사도구가 있었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도구들인데 유독 이 전시관에서 강조한 부분이 '쌀 부대'였고 '고무신'이었다.
지금이야 유명 상표로 얼마든지 뻐기며 무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박씨가 이 가게를 지킬 때만 해도 저 고무신의 위상이란 이봉주가 신은 마라톤화 못지 않았고 고무신에 수 놓은 디자인은 금순이의 가슴도 벌렁거리게 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나는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 디자인 올림피아드 2008'이 내 가슴에 쏙 다가 온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서울을 디자인한 조선왕조가 있었고, 그 속에 위대한 한 디자이너가 꿈을 펼치고 있었는가 하면 나는 태초에 세상을 디자인 한 '창조주'가 디자인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디자이너의 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디자인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으므로 자신이 생각해 낸 디자인과 비교해 볼 시간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로 부터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가 발전되어 왔다. 1인 미디어의 세계도 그와 같지 않을까?...태조 이성계가 1,000년 도읍지로 오늘날 '서울'을 택했듯이 보다 긴 안목의 '블로거 미디어'를 디자인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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