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설악'의 가을 비경 -7부작-
제4편 골고다 언덕과 봉정골 '깔딱고개'
수렴동계곡을 걸어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은 산행시간을 재촉하게 할 만큼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내가 들고 있는 두대의 카메라는 비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백담계곡에서 마을버스가 쏟아낸 등산객들과 동시에 출발한 사람들은 벌써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혜은도 그들과 함께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는데 나의 카메라가 내설악의 가을을 한컷씩 담을 때 마다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 거리는 영상을 담기 위해서 지체한 시간만큼 멀어지고 있었는데 영시암에 도착해서야 혜은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채고 대략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영시암에는 등산객들이 암자에서 나눠주는 국수로 아침을 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많은 등산객들과 암자를 찾은 불자들이 한데 뒤엉켜 잔치집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 혜은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나 보다 훨씬 더 빨리 수렴동계곡을 빠져나가고 있었을 터인데...나는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영시암에서 5분만 걸어가면 오세암으로 가는 길과 봉정암으로 가는 길이 두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수렴동계곡 입구에서 산행시간을 놓고 처음 목적한 코스외에 마등령으로 갈 수 있는 오세암으로 가는 길을 언급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혜은이 오세암으로 간 것은 아닐까? 나는 급히 봉정암쪽으로 가는 길로 이동해 봤으나 혜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된장!) 나와 혜은은 수렴동계곡을 오가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헤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백담사입구에서 함께 출발한 한 등산객으로 부터 혜은이 나를 찾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나로부터 훨씬 더 앞서 갔을 혜은이 일행으로 부터 낙오(?)된 사연은 화장실에 들러서 볼 일을 보고 나오면서 내가 앞서 간 것이었다. 혜은은 거의 울상이 된 채 두갈래 길에서 서성이며 영시암으로 되돌아 가는 나와 조우했다. 반갑긴 했지만 잠시 속상한 마음은 수렴동계곡을 지나서 구곡담계곡과 봉정암 깔딱고개로 힘들게 가는 동안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군상을 떠 올리게 했다.
처음 목적한 길을 잠시 망각하고 헤매고 있는 모습은 마치 길잃은 양과 같이 보였고 그때 양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목자가 없었다면 방향감각이 무딘 양들은 좌나 우로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곤두박질 칠 게 아닌가? 다행히도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골짜기는 시월을 맞이하여 '황홀한 골짜기'로 변모한 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 가면서 구곡담계곡에 이르자 나는 골고다 언덕을 떠 올리고 있었다.
하느님의 아들로 칭함받은 서른 세살의 '예수'는 세상의 모든짐(죄)를 지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형장이 있는 골고다 언덕을 자신이 처형될 십자가를 어께에 메고 처참한 모습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며 오르고 있었는데, 내가 진 세상의 짐은 기껏 내 배를 불려줄 음식과 나부랭이가 든 배낭뿐이었다.
그리고 두대의 카메라가 나를 애워싸고 있는 군중과 같은 황홀한 내설악의 가을풍경을 담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걸음걸이 속도가 느려지고 호흡은 힘들어 하고 있었다.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는 동안 예수를 떠 올리던 나는 사람들을 향하여 늘 '낮아지라'고 말하고 '자신(我)을 죽이라'는 성직자들의 입술이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오늘날 종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목자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데, 세상에는 목자들이 수렴동계곡에 흐르는 천 곁에 깔려있는 돌멩이나 바위보다 더 많을 듯 싶은데 세상사람들은 오늘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목사는 목사대로 중은 중대로 신부는 신부대로 그들은 스스로 조직이 되고 권력을 만들어 가며 그들을 축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모습은 피식 웃음이 나오게 했다.
전도나 포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습들은 무슨 다단계판매원도 아니고 세일즈맨 같이 생각되어 '예수주식회사'나 '석가모니그룹'의 직원들 처럼 종교의 촉수를 넓히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들이 찌라시를 손에들고 세상사람들에게 예수나 석가모니를 들먹이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모습이 '우리회사 증권을 사면 큰 이익을 남길 것이다'라고 하는 것 처럼 생각되었고 믿기만 하면 반드시 '구원'에 이른다는 소리도 '증권사찌라시'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피곤하던 다리가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세상에서 사라진지 2천년도 더 되는 위대한 두인간의 이름이나 행적이 기록된 책을 펴 놓고 달달 왼 다음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데, 나는 가끔씩 이런 사람들이 고고해 보이는 한편 지금처럼 말도 안되는 행위로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골고다 언덕을 힘겹게 오른 예수의 속사정이나 온 우주를 꽤 뚫어 보면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숨을 거둔 석가모니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세치혀를 함부로 놀리며 복음화를 외치며 교회성장을 외칠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산사를 떠나서 경쟁적으로 도회지에 포교당을 만들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이외수선생이 '하악!~하악!~' 하며 세상을 향하여 단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럴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의 육신을 태운 후 남은 '진신사리'를 가지고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 오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했거나 아니면 단정하여 '부처님'이 된 인간 석가모니의 흔적을 심산유곡에 두고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돈이 된다면 죽은 인간의 흔적이라 할지라도 돈으로 만들어 거래를 할 것이고 마침내 진신사리와 같은 흔적들은 재벌들의 손아귀 속에서 오가며 경매장의 최고가를 경신하며 액수를 불려갈 것인데, 오늘날 종교라는 이름으로 밤하늘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십자가나 산에서 도시로 내려온 포교당이 결국 두 인간의 이름으로 상품으로 만들어 세일즈맨을 통한 판매를 독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장이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은 인간 석가모니의 귀한 흔적을 저자거리에 놔 두면 인간들이 그 가치를 조금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몇과의 사리를 들고 석가모니를 닮은 내설악 용아장성의 한 암봉 아래에 오층으로 된 석탑을 만들고 그 속에 사리를 숨겨(?) 둔 것이다. 그리하여 현세는 별 볼일 없거나 현세의 부富를 내세에도 가져갈 요량으로 사계절 처럼 돌고도는 자연의 순환을 '윤회'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상품을 만들까봐 사리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가르치려 골고다 언덕과 다름없는 봉정골 깔딱고개 너머에 사리를 안치해 둔 것이었다.
나는 봉정골 깔딱고개 밑에서 세상의 짐이라곤 밥풀떼기 몇개 든 배낭과 카메라 두대를 잠시 내려놓고 수정과 같이 맑은 물이 쉼없이 흐르는 구곡담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청봉이나 봉정암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수렴동계곡에 발을 들요 놓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봉정골 깔딱고개는 제 아무리 튼튼한 다리를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깍아지른 고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깔딱고개 바로 너머에 봉정암이 있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속세에 전해진 세일즈맨(?)들의 찌라시에 따라서 '봉정암에 세번만 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는 꼬드김으로 드디어 깔딱고개 너머 봉정암에 이르면 그들이 가슴속에 품고 온 소원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돌아 갈 길을 두고 걱정을 하게 된다. 아울러 세상 속에서 품었던 소원은 목숨만 부지 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되어 예수나 석가모니가 더욱더 위대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나 '인자는 머리를 뉠 곳도 없었다'는 예수의 일성은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해 본 게 아니었다.
깔딱고개를 오르는 사람들...
'공중나는 새도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는데 예수가 가르치지도 않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소리를 착각하여 오늘도 찌라시를 들고 세계로 세계로 '복된 소리'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예수가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그가 현현하여 세상의 성직자들에게 다가가서 '그게 아닌데?...'하면 '허!...뭘 모르는 말씀...'이라며 오히려 예수가 한수 훈계를 들을 판이다. 누가 '교회당'을 세우는 게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석가모니가 아파트단지 곁에 포교당을 만들어 '내 뜻을 세상에 전하라'고 가르침을 내렸는지 나는 알 수 가 없다.
깔딱고개에서 바라 본 내설악 전경...본 포스팅 속 그림들은 영시암을 출발 후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과 깔딱고개에 이르는 내설악의 가을 비경을 담고 있다. 그림이 너무 많아서 슬라이드로 처리했다.
나는 스스로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등에 진 밥풀떼기가 든 짐가방 조차도 깔딱고개 앞에서는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위대한 두 인간의 가르침 속에 든 티끌같은 화두 하나를 안전띠 처럼 붙들어 매며 내설악 가을 비경을 향한 깔딱고개를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봉정골 깔딱고개는 곧 극락이나 천당의 모습이 어떠한지 두대의 카메라를 통하여 내게 보여 줄 것이며, 이 계절은 자연 속 윤회의 일부분이자 세상짐을 다 지고간 예수가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게 한' 대역사의 현장을 내 눈 앞에 펼쳐 보이며 '살아라고 이르는' 생명生命'을 일깨우는 스승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세상이 좋다'는 말은 죽어 본 사람이 말하는 가르침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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