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녀온 山들

속초에서 처음 들어 가 본 '여관'


'내악'의 가을 비경 -7부작-
제2편 속초에서 처음 들어 가 본 '여관'
제1편상처 아문 44번 국도를 넘으며!...<영상>

작년 이 맘때 쯤 설악산의 단풍은 너무도 초라했었다. 한계령은 수해로 망가진 자연경관이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고 메마른 니뭇잎들은 미처 엽록소의 빛깔을 환원시키지도 못한 채 바스라지듯 나무 아래 즐비하게 떨어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나뭇잎들이 끄트머리를 말아 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최고의 경관을 보여줄 것만 같았던 공룡능선의 모습은 곳곳에 털이 빠진 망아지 등처럼 보여서 여간 아쉬웠던 게 아니었다. 그러나 금년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뉴스를 타고 전해져 오는 설악산의 단풍은 필경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꼭 꼭 숨어있을 거라 믿었고 그 모습들은 비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와 혜은이 반드시 보고 말겠다고 다짐한 설악의 단풍은 '내설악'의 모습이었다. 이미 대청봉에서는 단풍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1400고지나 1300고지 이하의 계곡을 화려하게 수놓은 단풍과 수채화 같은 나뭇잎들의 모습과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진 곳은 내설악이 최고여서 많은 등산객들은 일찌감치 숨겨둔 비경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고 우리도 짐을 꾸리고 나선 것인데, 문제는 늘 힘들어 한 산행 코스 때문에 적지않게 망설였다.

우리가 계획한 산행코스는 몸상태가 좋을 경우에도 무리를 동반하는 코스인데다 그 동안은 서울에서 설악산 까지 이동한 다음 곧바로 산행을 한 터라 늘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산행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금번 산행은 서울에서 오후에 출발한 후 최종 목적지에 자동차를 주차한 하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황색 실선이 '내설악'을 이루고 있는 곳이며 카메라와 영상장비는 이곳 '내설악비경'을 담을 예정이고 
옥색 실선을 따라서 12시간의 대장정이 이루어질 산행 코스인데, 이 코스를 끝마칠 때 쯤이면 거의 초죽음이 되어있을 것이다. 정말 기대해도 좋은 내설악의 가을 장면들을 담았다.>
 
따라서 한계령을 돌아서 양양으로 간 우리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곁에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이동한 후 수렴동계곡을 따라서 구담계곡 봉정암 소청과 희운각 그리고 천불동 계곡을 따라서 소공원에 12시간만에 도착하고 다시 소공원에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로 버스를 이용하여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터미널 바로 곁 주차장이 널찍한 한 '여관'을 찾았다. 이 여관에서 터미널 까지 거리는 불과 200m나 될까 말까한 곳에 위치하여 용대리로 가는 첫차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곁에는 모텔과 여관이며 여인숙까지 있었는데, 예전에는 '장여관'이나 '여관'이라고 하면 꽤 괜찮은 숙박시설이었음에도 최근에는 여관이라는 우리식 표현을 쓴 숙박시설은 왠지 허접한 것 같고 실제로 그 시설에 들어가 보면 두번다시 가 볼만한 곳이 못되어서 수십년 간 단 한차례도 '여관'이라는 간판을 건 숙박시설에는 갈 이유나 기회조차도 없었는데 마침내 그렇게 꺼려하던 여관에 방을 잡고보니 댕그러니 이불한채와 요가 깔린 모습이 너무도 낮설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오래전 고딩때 친구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은 기억이 떠 올랐다.

지금 그 친구는 친구들 중에 제일먼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친구와 나는 너무도 친하여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면 거의 붙어다닐 정도였고 일제 '야시카카메라'와 '펜탁스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흑백필름을 소비하는데 시간을 많이도 허비하다가 한 여인숙에 들러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속초의 한 여관에 들어서자 마자 그 생각이 떠 올랐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그 여인숙은 말이 숙박업소지 심하게 말하면 창고를 개조한 둣한 골방이나 다름없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서 합판으로 만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쟁반에 물주전자 하나와 물컵이 댕그러니 놓인 방에 알록달록한 벽지로 바른 벽 곁으로 작은 봉창이 하나 댕그러니 뚫여 있었는데 재미있는 모습은 형광등이 반쪽만 달려있는 여인숙이었던 것이었고 그 형광등 반쪽이란 큰 방하나를 합판으로 둘로 나누고 천장에 구멍을 뚫어 형광등을 양쪽방으로 비추게 만든 것이었다.

아마 요즘 이런 풍경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더 큰 문제는 불을 끄고 잠이 든 순간이었다. 합판으로 방을 가로막아 둔 방 저편에서는 옷을 입고 벗는 소리는 물론 대화소리가 다 들렸는데 그쪽의 소리가 잘 들리는 걸로 봐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 소리도 자연스럽게 그 방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나직하게 속삭이며 건넌방의 일거수 일투족에 키득 거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춘기의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두남녀의 보디랭귀지가 만드는 까무라칠듯한 화음이었는데 그 고문(?)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더불어 밤을 꼬박 세우며 처음으로 '관음증'이 무얼 말하는지 알 게한 소리가 연출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건넌방을 엿보게 하는 작은 틈새는 없었다.상상이 가실런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티비에서는 유선방송이 지나간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벽에는 전화선과 케이블등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어지럽게 걸쳐 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그나마 욕실이 달린 방은 이거 하나뿐이라며 내 준 욕실에는 미지근한 물이 나오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모닝콜'을 요청해 두고 겨우 눈을 붙인 다음, 전화가 울린것은 5시 반이 넘고 있었다. 5시에 깨워달라고 요청했던 것인데 아주머니도 함께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이 여관은 방값 2만원어치를 톡톡히 치루고 있어서 세수를 하고 난 후 웃고 말았다.

지난 토요일 서울에서 속초로 이동한 사람들은 줄잡아 4만명은 된다는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모텔이나 여관이나 여인숙은 방이 텅빈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대포항 보다 중앙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걸 보면 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는 게 사실로 보일 정도였다.



하룻밤을 묵으려면 최소한 5만원이상을 지출해야 할 것 같았던 숙소문제는 그렇게 해결되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이른새벽에 터미널로 향하는 우리를 배웅하며 하루를 더 묵으라고 권유하며 자동차를 잘 봐 주겠다는 뜻을 전달하며 깜깜한 새벽의 여관 입구로 등을 돌렸다.

새벽6시의 속초는 아직도 깜깜했다. 매표소에서 첫차표를 끊고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도착지 시간을 물어보니 50분이 소요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시간이 소요됐다. 서울로 가는 첫차는  간성으로 이동하여 미시령을 너머 인제쪽 방향으로 가는데 첫차에 몸을 실은 사람은 우리 포함하여 등산객 6명이 전부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속초에서 잠시 눈을 부치고 이른아침에 백담사가 있는 수렴동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들은 진부령의 10월 12일 모습입니다.

0123456789


희뿌옇게 동해바다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버스는 건봉사 입구곁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백두대간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희뿌연 안개가 진부령령에 내려 앉고 있었다. 버스가 진부령 중턱에 들어서자 여름날  냉장고 문을 연 것 처럼 뽀얀 안개가 스물거렸는데 그 틈으로 단풍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설악의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버스는 정확히 7시 10분에 우리를 백담사입구에 내려 놓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찬기운이 입김을 하얗게 만들고 있었는데 백담사 입구 계곡에는 물안개가 피어 오르며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계속>



 
반응형